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 한국사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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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국제정세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어서 잠시만 관심을 끊으면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지경이다. 일본의 경제도발에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로 맞서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로비를 받았는지 은근히 돌려말하지만 지소미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또 그 와중에 주한미군의 부담금을 높이려고 한다. - 삼십여년전에도 주한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땅의 대여비용은커녕 비용부담과 온갖 범죄사건의 조사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심지어 그 옛날 우리보다 더 약소국이라고 여겨졌던 필리핀도 미군기지가 사용하고 있는 토지비용을 받아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우리를 압박하려 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만만치않다. 이런 주위의 정치경제적인 압박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나가야 할까.

 

왜 왜란 다음에 호란을 다시 맞았을까?

책을 펼쳤을 때 첫장의 물음이 이것이었다. 역사적 사건인 왜란과 호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당시 임금의 무능함과 정세파악을 하지 못하는 양반들의 무능함과 또한 자신들의 권력다툼과 이권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부분적으로 승리를 거둔 전투가 있다하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전쟁의 상황에 놓인 백성들의 삶은 파탄날수밖에 없는 것임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의 내용은 역사속으로 깊이 있게 빠져들게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왜란과 호란사이의 38년의 기록을 이 책은 홍한수전이라는 소설 형식의 글과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점의 역사적 기록을 설명하고 해설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홍한수라는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라고 하지만 실존 인물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하니 그 옛날 기구한 운명을 살아야 했던 김영철, 안단 같은 민초들의 삶을 떠올리면 애통할뿐이다. 거기에 더하여 한때 욕으로 쓰였던 환향녀, 우리의 어린 소녀, 여인들을 지켜내지도 못했으면서 그들이 죽지않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럽게 살아돌아왔다는 사관의 붓놀림속에 흔적만 남겼다고 하는 글은 더욱더 그렇게한다.

왜란때는 그나마 자진해서 의병을 일으키고 참여하는 백성이 많았지만 호란때는 관군을 동원해서야 겨우 의병모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호란의 시기가 짧았던 이유라기 보다는 그만큼 백성의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7년이나 지속된 왜란으로 고아가 되어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을 모아 아동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홍한수전의 시작은 바로 그 아동대에서 조총을 배우는 장면이다. 조총사격술을 배운 홍한수는 왜란을 넘기고 명과 후금의 전쟁에 징집되어 압록강너머로 갔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어 죽을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또다시 조선을 침략하는 후금의 군사로 조선으로 들어오지만...

이 소설로 각색된 이야기가 허구같지만 실제 이보다 더한 삶을 살아간 수많은 민초들이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병자호란에 만주로 잡혀가 청나라에서 노예로 살다가 수십년만에 도망쳐 조선으로 왔는데 조선의 국경에서 조선인에게 잡혀 다시 청으로 되돌아간 안단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중국과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구경꾼처럼 방관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5.18을 이야기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홍콩시민들의 마음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지...

 

이 책은 소설은 소설로서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왜란과 호란을 대하는 왕조사 중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 온 왜군의 전쟁방식과 성을 점령할필요없이 속전속결로 약탈을 일삼는 유목민의 특징을 가진 청군의 전쟁방식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잘 알수있도록 하게 해주고 있지만 조금 더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수밖에 없는 것은 단 한줄로 표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비극적 상황을 알수있게 하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성벽에 돌담이 쌓여있는것처럼 보이는 것이 무엇이지 몰랐는데, 붙잡혀 온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을 필요없어 죽인 후 성밖으로 던져버린 시신이 그렇게 쌓여있던 것이다, 라는 한마디로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아가야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된 역사는 비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난과 난 사이 흘려보낸 38년과 명과 청 사이에 낀 조선을 역사로만 박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345)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의미는 많지만 반복된 역사는 비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문장 하나에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을 전해본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입을 빌려 역사가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우리가 지루하고 따분한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지나온 아픈 과거가 비극으로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리고 희극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조금 더 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과연 홍한수와 김영철들의 삶을 반복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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