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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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큐멘터리 피디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출장 겸 다녔던 수많은 여행지 - 아마도 그래서 일반적인 관광지라기보다는 조금은 특별한 곳으로의 여행이 많았을 것이고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여행의 풍경이 많았을 것이고,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해 낸 에세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쓰며 나는 나의 내면에 있는것을 끄집어내려 했다. 차마 다 꺼내지 못한 것들도 있겠지만, 나를 나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를 긍정하지 않으면, 긍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정하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어딘가 뒤틀리고 말 것임을 알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내가 이 책을 쓴, 전문 작가도 아닌 피디의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글을 읽다보면 왠지 나의 경험과 생각이 맞닿아있다는 걸 느끼기도 하고 그의 진솔한 표현들이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같기도 해서 자꾸만 마음의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어나가게 된다.

 

예전의 기록이 있을까, 싶어 뒤적여봤는데 역시 짧은 글 하나가 나온다. 그런데 이건, 나의 글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저자의 글을 인용한 글만 적혀있다. 아직 가본적은 없지만 얄팍한 나의 신앙으로 인해 익히 들어왔었던, 그래서 왠지 더 가까이 느껴지는 나가시키에 대한 글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일까? '진보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연말연시에 버림받은 것 같은, 폐허가 된 것 같은 나의 상태를 위로할 마음은 없다. 다만 원폭기념공원의 안내문을 읽고 나니, 그러한 폐허를 겪었던 나가사키가  육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주 예쁘고 단정한 모습을 되찾은 것이 반가웠던 것만은 사실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살아가야 했을 사람들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도시를 재건했을 거싱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살아있으니, 그 폐허 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왔을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의 상태가 폐허라면, 한번에 그 폐허를 흔적도 없이 말끔히 날려줄 일, 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지금 할 수있는 것들'만 생각하기로 하고..... 

  

여러 의미를 떠올리게 하지만. 역시. 지금 나의 상태가 폐허라고만 멈춰있었는데 이제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세월호 100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기억은 일부러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그 사이 또 많은 것을 잊고 지내고 있다가 이 책을 다시 끄집어 내어 읽고 있으려니 그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나의 인생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정도의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역시의 기록과 신문에서만 보던 사라예보의 거리를 걸었던 기억도 내 삶의 한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건너오다'라는 제목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런 이해심을 갖게 해 주었다. 늘 글로만 접해왔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짧은 시간이지만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2차대전의 시작점으로 알고 있는 사라예보의 다리를 건너기도 했지만 내게 더 다가오는 전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남북통일만 되면 끔찍한 전쟁은 사라질 것만 같았던 90년대의 보스니아 내전이었다.

 

 

 

  

철조망도, 담장도, 심지어 돌멩이 하나도 없이 문화의 만남이라고 되어 있는 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은 확실히 그 선을 중심에 두고 동쪽을 바라보고 서쪽을 바라봤을 때의 풍경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저 구경거리처럼 양쪽 거리를 바라보고 무심히 지나가는 개 한마리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하고.... 90년대 인종청소, 종교전쟁, 학살, 비극...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그저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찬 남의 일이었다. 그게 겨우 삼십여년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들지만. - 하기는 21세기에 수학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어느 한순간에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낯선 공간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감각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건, 그것에 대해 읽거나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의외로 자주 무시된다. 12

 

아무튼 그러한 곳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 내 바로 앞에는 이슬람 회당이 있었고 그 앞을 수녀님들이 지나치고 있었던, 그 거리에 있으려니 역사의 한 사건이 이해가 되면서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이다...

 

"기억은 일부러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 뭔가 좀 다른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나는 나이기에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글이라고는 이것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바로 엊그제 책을 읽으며 새삼 다시 공감하며 되새겼으면서도 그새 그걸 잊고 스스로를 높이 내세워보려 했다는 걸 인정할수밖에 없는 지금, 그냥 서둘러 글을 끝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어느 시기엔가 자신이 위대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꼭 본인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기에 그 깨달음은 종종 받아들이기 어렵다. 때론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아 백팩 하나와 시시한 여행자 키트로 며칠을 버텨야 할 수도 있고, 내가 구할 수 있는 자전거의 안장이 너무 높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걸 가지고 그 '다음'을 살아야 한다. 77

 

그러니까 그 '다음'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작정 여행이 좋았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여행이라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통한 여행서를 읽으며 반쪽의 만족과 희망을 품고만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났지만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그럴 것을 또 왜 떠나느냐고 한다면, 앞으로는 저자의 글을 인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려고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낯섬'이 일상에게 해주는 대답을 찾으러...... 174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이유가 상상의 두려움 때문일 때가 많다. ... 그런데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뿐만 아니라, 일이 늘 두려워했던 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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