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이앤 세터필드의 대서사시가 시작되었다. - 라는 문장 하나로 다 이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 표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벨맨이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의 묘사가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라 서둘러 책표지를 보고 있으려니 새삼 멋진 표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물론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당황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책을 다 읽고난 후, 오랫만에 읽어 본 대서사의 흐름에 잠시 말을 잃었다. - 아니, 벨맨의 후대로 이어지는 이야기까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는 있었다.

 

"비록 그런 것들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겠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눈앞에 살아온 삶 전체가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벨맨 앤드 블랙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시작부터 마음을 친다. 마지막 순간에... 삶 전체가 펼쳐진다니. 도무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궁금함은 마음을 홀리듯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소년들은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또래가 몰려다니면서 경주를 하고, 나무를 타고, 싸움과 팔씨름을 하고 놀이처럼 새총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윌리엄은 남다른 솜씨로 멋진 새총을 만들어낸다. 재능있는 윌리엄의 새총을 알아 본 친구들은 진짜 새를 맞춰보자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결국 휩쓸리듯 돌멩이를 넣은 윌리엄의 새총은 떼까마귀 한마리를 맞춰 떨어뜨리고, 떼까마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열병을 앓으며 윌리엄의 기억에서 열병처럼 사그라져간 듯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윌리엄의 일생은 떼까마귀와 관련없이 그 자신의 노력과 재기와 성실함으로 성공의 삶을 누리기 시작하게 된다. 능력을 인정받으며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책을 읽으며 떼까마귀의 이야기는 어느덧 잊어버리고 윌리엄 벨맨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고 있는데 윌리엄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일상이 이어져가며 계속 블랙이 뇌리에 맴돌게 된다. 한 사람의 일생과 떼까마귀와의 질긴 인연 역시.

 

"...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슬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회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의 삶은 요동치는 긴 절정의 행복에 다름 아니고, 아무 고뇌 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머지 않아 작가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로 환생하리란 것을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유능하고 편안한 삶이 되리란 것을 그는 알고 있기에"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조류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영리하며, 자신의 조상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대한 기록을 자신의 몸에 새기며 생존하는 것은 까마귀가 유일하다고 했던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인지 벨맨 앤드 블랙의 이야기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빨려들어가게 했다.

떼까마귀와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떻게 맞물리며 거대한 대 서사가 되는지, 궁금하시면 벨맨 앤드 블랙의 첫장을 펼치시기를.

 

"비록 그런 것들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겠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눈앞에 살아온 삶 전체가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