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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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새로운 소설이 출판되었다. 응? 하고 보니 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이라고 한다. 솔직히 언젠가부터 -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엽적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 재미있다고 느낄수는 없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내게는 조금은 지루한 말의 향연일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건가. 그의 유작이라고 하니, 더구나 "[제0호]를 준비하는 신문사의 편집부, 결코 발행되지 않을 신문의 배후에 도사린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되어있는 이 소설에 관심을 갖지 않기는 쉽지 않았다.

쓸데없이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이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조금 더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그가 얼마나 대중적이면서도 현실의 정치,사회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빠져들수밖에 없는 비유들을 절묘하게 쓰고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는 것은 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92년, 그 전후의 시기는 세계적으로 -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엄청난 정치스캔들이 터지면서 대대적인 부정부패청산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도마니(내일)라는 신문을 만드는 과정을 책으로 써 달라는 제안을 받는 콜론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과정을 그려낸 책은 "내일을 알려면 어제를 보라"가 될 것이라는 제안자 시메이는 실제로 신문은 발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무슨 모순된 이야기인가? 거기에다가 책은 콜론나가 쓰지만 그는 유령작가일뿐이고 저자는 시메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도마니의 창간을 위해 모인 편집인들의 회의가 진행되며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그런 이야기속에는 무솔리니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라거나 교황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주장에 대해 상당한 근거를 갖고 논리를 펼쳐나가는 브라가도초의 주장도 있는데, 그런 그가 어느날 누군가의 칼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과연 그의 수많은 가짜같은 이야기들 속에 진실이 담겨있고 그 진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일까?

 

소설이 이어져가는 내용자체도 흥미롭지만 글의 사이사이에 번뜩이는 움베르토 에코의 비유들이 -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모르그가의 원숭이라거나 그런 것들뿐이기는 하지만 - 책을 읽는 사이사이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유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글이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라니!

 

아무튼 재미있으면서도 쉽지는 않기에 나의 생각을 대신하고 또 그에 더하여 더 깊이 들어가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짧은 인용문을 그대로 넣어본다.

 "나는 뉴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어.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젼도 거짓말을 해"(61)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신문들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평판을 따라가는 건가요, 아니면 세평을 만들어 내는 건가요? 두 가지를 다 합니다.처음에 사람들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말해주면 자기들의 생각이 어떤 쪽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145)

오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에코의 생각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다행이지 않은가, 라는 위안을 가져보게 된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당신에게 행운이 왔다는 뜻이야. 생각해 봐.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이든 혼자서 활동하는 미치광이든 정말로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다시 기억해 내고 있다는 사실에 겁을 먹겠지. 하지만 겁을 먹었다 한들 어떻게 한 집단이나 한 인물을 해칠 수 있겠어? 없애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우리가 찾고 있는 나라는 비밀이 없는 나라, 모든 일이 모두가 다 알도록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야"

 

"삶은 견딜 만하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대로 - 남의 말을 인용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나는 1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제 남들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자 한다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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