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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즈의 마법사 2 - 환상의 나라 오즈 (한글판+영문판) - 환상의 나라 오즈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77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손인혜 옮김, 존 R. 닐 그림 / 더클래식 / 2013년 12월
평점 :
[오즈의 마법사]가 1900년 출간되고 이후 뮤지컬 등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939년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동명의 영화로 등장하고 나서도 한참 후인 1950년대에 이르러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오즈의 마법사] 리뷰에서 말씀드렸었다. 본서는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중 둘째 권으로 전작이 출간되고 4년 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오즈의 마법사를 시리즈로 기획하기는 했으나 연이어 바로 집필을 한 건 아니고 [오즈의 마법사] 1권인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출간하고 4년 후에야 후속작인 본서를 출간했다. 그사이 오즈의 마법사의 다음 편을 집필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과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을 바라는 열띤 요청들에 힘입어 본서를 집필하게 된 거라 한다.
앞서 말한 금서가 된 배경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이분한 공산 사상의 흔적이 본서에서 읽어지기도 하고 페미니즘이 다소 묻어나 있기도 해서라는 게 대부분에 비평가들 이야기인 모양이지만, 사실 전작인 [오즈의 마법사] 1권만으로는 작가의 이런 사조를 읽어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1권의 도로시,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상징했다는 건 다소 억지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도로시의 가족과 도로시가 부르주아를 상징하고 강아지 토토가 프롤레타리아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코웃음만 치고 말았을 것이다(이건 작가의 시각이 아니라 아마도 이랬다면 비웃었을 거라는 내 말이다). 오즈의 구성원들 중 왕과 여왕인 마법사와 마녀들이 부르주아를 상징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윙키 등 오즈의 각지에 시민들인 구성원들이 프롤레타리아로 상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1권만 읽고는 다소 억지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권부터는 그런 색채가 다소 느껴지는 게, 첫 등장인물인 팁과 마녀 할멈 몸비의 관계 자체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고, 몸비가 또는 팁이 창조한 캐릭터들인 호박머리 잭과 목마가 팁과 함께 몸비에게서 달아나는 서사나,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가 오즈의 지배자 허수아비로부터 왕국과 왕권을 빼앗는 서사도, 프롤레타리아의 저항과 혁명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아 보였다. 또한 빼앗긴 왕권을 허수아비가 찾는 것이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에게 왕권을 빼앗긴 원래의 왕의 딸인 오즈마에게 돌려주는 것, 그리고 착한 마녀 글린다의 소녀군대가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로부터 오즈의 왕권을 탈환한다는 설정 자체도, 여성이 빼앗은 권리를 여성이 되찾는다는 개념이기에 페미니즘적 성향이 엿보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가 에메랄드 시티를 빼앗으며 왕국의 보석들이나 탐하거나, 여성이 권리를 장악해 집안 살림과 육아를 남자들에게 전담시켜버리자 오히려 맛없는 남자들의 요리에 에메랄드 시티의 전 여성들이 진저리를 친다거나, 뜨개바늘로 혁명을 일으킨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가 고작 쥐 몇 마리에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설정들은, 어찌 보면 페미를 표방하면서도 남성일 뿐인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남성으로서의 또 그 시대인으로서의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여겨진 건, 찾을 수 없던 에메랄드 시티의 왕위 계승자인 오즈마 공주가 마녀 할멈 몸비에 의해 남성인 팁으로 변신해 있다가 다시 여성으로 돌아간 것, 그리고 소녀에서 소년이 되었다가 다시 소녀가 되면서도 그저 ‘달라진 것뿐’이라는 오즈마 공주와 호박머리 잭의 대사는, 남녀 성별의 차이에 내재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인 1904년을 고려할 때 그 시대적으로는 상당히 명쾌한 정의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본서는 동화다 보니 다소 구성과 서사가 단조로운 듯도 여겨지지만, 어린이를 위한 짧은 이야기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그려낸 저자의 결단이랄까 행동력이 남달라 보이기도 했다. 저자의 페미니즘 성향으로 저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도 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듯한데, 사실 나로서는 10명의 다자이 오사무보다 1명의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권익을 위해서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린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가 혁명의 뜨개바늘을 들면서 왜 이러냐는 남성들의 물음에 한 대답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남긴 명언과도 다름없지 않나 싶기도 했다.
“너희들의 도둑질을 계속 참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배가 고플 것으로 생각했고, 손에 넣을 수 없는 새하얀 빵도 유리창을 부수면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어떨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는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고 남성 위주의 사회는 남성들만이 조성한 것이 아니며, 남성이 사회 지배층의 다수로 있는 건 여성보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바에 보다 더 친화적이며 더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이미 자라면서도 남성이 보다 더 사회 지배적인 사고에 순응하고 적응되도록 조성되어 있는 것이 양육과 성장환경이며, 이런 환경 또한 남성 혼자 만든 게 아니다.
여성 권익의 향상이 이 시대까지 정체된 것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회로 진출할 기회를 얻은 여성들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가정으로 돌아온 아직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남성들을 생업으로 복귀시키며 자신들은 사회적 의무를 저버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또 무엇보다 남자는 거저 권리가 주어졌다고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지만 그리스에서든 로마에서든 고구려에서든 남성의 권리는 목숨을 바치고 목숨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 권리가 이후에도 남성의 생명을 담보로 하며 이어진 것이다. 이걸 어떻게 거저먹은 거라고 볼 수 있는지 그게 더 의문이다.
대다수의 남성이 페미에 적대적이게 된 배경의 첫 관문은 이미 사회와 연애, 결혼 등 많은 일상에서 남성이 겪고 있는 차이가 적지 않은 데 남성들은 이것을 차이로 보았지 차별로 보지 않았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연애에서 결혼에서 자신들이 보고 있는 이점은 없는 것처럼 모두 다 차별만 겪어온 것처럼 주장하기에 남성들 역시 자신들이 차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었구나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페미니즘에 적대적이 된 거라고 본다. 이런 식이면 대립각만 날이 서고 남성과 여성의 성 대결적 구도만 조성될 수 있다.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권리 신장에 협조할 때 여성들도 역사를 바로 보고 여성에 대한 차별만큼 남성에 대한 과도하고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주어졌으며 남성의 권리는 그 의무와 책임에 비례한 만큼 주어진 것이란 걸 인정할 때 원만한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으로서는 서로에 대한 반감이 혐오로 커나가고 있는 시절 같기도 해 안타깝다.
그렇다 해도 이 소설에서 브레히트의 명언을 인용한 건 여성이 굶주린다고 느낄 때 갈증이 난다고 느낄 때는 정당한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서 진저 장군의 소녀군대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빼앗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지배하지 못했다. 급격한 쟁탈보다 완만하더라도 준비되고 확실한 권리의 쟁취가 여성들을 위해서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사회의 한 축과 다른 한 축을 어느 성별이던 나란히 지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차별이 아닌 화합이 이 시절에는 더욱 절실하지 않은가 싶다.
본서는 동화이면서도 다채롭고 폭넓은 시야이고 원만한 듯 보이면서도 과격한 면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시리즈 전편이 완간된 1919년에서도 한참이나 세월이 지난 1950년대에 미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문학가가 서술하는 계급에 대한 견해와 페미니즘 등을 동화로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접근 같아 이 시리즈를 완독할 생각이다. 그 두 걸음째인 [환상의 나라 오즈]도 제법 재미진 동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