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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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국내에 알려진 프랑스 문학가 중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 소설가로 30년 전 [개미]라는 그의 명작 시리즈 이후 현대 프랑스 소설가 중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작가이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들은 몇 개 이상 이름은 익히 알 정도이다.

 

그의 이번 신작은 그의 남다른 창작 능력, 미래 예지 문학이라 자부하는 그의 뛰어난 창의성이 빛나는 작품으로 그의 기존 소설들을 사랑하고 익히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3차 세계대전에 대한 가정과 그즈음 유전자 조작을 시행해 혼종 세대를 창조해낸다는 가정으로 창작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5년 후 현실화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박쥐와 인간 혼종, 두더쥐와 인간 혼종, 돌고래와 인간 혼종을 창조해내고 아흘로틀과 인간 혼종까지 DNA의 프랑스식 철자 ADN의 배열을 기반으로 에어리얼, 디거, 노틱의 세 혼종을 상상하고 이후 아흘로틀과의 결합으로 공기, , 물의 세 원소에 불을 상징하는 혼종까지 4원소설에 기반해 상상력을 펼친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흥미롭기도 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프랑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이종 유전자 조작을 실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이가 해당 실험을 주도한 알리스라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살해를 시도하자 그녀를 우주 정거장으로 도피시켜 실험을 이어가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우주에 도착한 그녀는 우주 정거장에 먼저 체류하던 우주비행사와 과학자들과 합류하지만 그녀의 실험에 반대하는 피에르라는 우주비행사에 의해 실험물들이 파괴되는 테러를 당하고 피에르를 저지하려던 우주비행사 중 미국인 두명이 우주 미아가 된다. 시몽이라는 우주비행사는 그녀를 도우며 피에르를 가두지만 그들이 그러는 사이 지구에서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은 우주에 기약없이 체류하게 된다. 알리스는 우주에서 혼종 실험을 이어가고 그녀의 실험에 반대하던 피에르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혼종을 창조한다. 우주에서 식량이 바닥나자 지구에서 안전지대로 파악되는 지역으로 실험관에 담긴 혼종 아기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피에르는 역설적으로 혼종 아기들이 담긴 실험관들을 지켜주며 사망하고 그녀와 시몽은 지구의 대피시설에서 정착한다. 혼종 아기들에 대한 실험은 이어져 세 혼종은 각기 다수의 인구를 이루게 되고 대피시설에서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인간들과 대립하게 되어 알리스와 그녀의 딸 오펠리와 함께 혼종들은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지상에서도 습성과 세계관이 다른 그들 혼종 간의 대립이 일어나 각각 독립 지역을 갖기를 계획하게 되어 박쥐 인간들인 에어리얼 집단과 알리스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곳의 인간들과 합류해 우호적인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평화로울 즈음 두더쥐 인간 디거의 일원이 그녀에게 디거와 노틱 간에 전쟁이 발발했다며 중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온다. 그녀는 결국 중재를 시도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과도 같은 극심한 혼종 간의 대립이 드러나고 이들의 인간에 대한 경계의식을 느끼고 만다. 그녀는 돌아와 아흘로틀과 인간의 결합인 다른 혼종을 창조하고 이 혼종 소녀가 20살이 되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며 마지막 에피소드가 이어지지만 여기까지만 적겠다

 

3차 세계대전과 혼종 인류의 창조라는 상상만으로도 기발하지만 이를 ADN4원소에 대입하고 그를 다시 각각의 혼종이 인간과 타문화에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거나 파괴적인 그리고 회피적인 각각의 차별적인 대응을 하는 것으로 구성한 것도 흥미로웠다. 혼종과 인간들, 그리고 혼종 간의 서로에 대한 차별적인 대응은 인종차별이나 민족주의가 연상되고 이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인간들의 갈등과 충돌과 전쟁을 반영해 그려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혼종에 대한 상상에 인간의 속성과 문화를 담아,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속성에 빛과 어둠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구성이다.

 

이 창의적인 소설에는 이채로운 설정으로 흥미를 이끌어내고 몰입하게 하면서도 삶과 인간, 인간들이 만들어낸 사회와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문체적 특징이 모두 담겨있다.

 

기발하면서도 깊이 있고 재미와 흥미로움 속에서 성찰을 담고 있다. 무더위 속에 청량함과 깊은 격동을 동시에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할 만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3차세계대전 #유전자조작 #혼종인류 #인간의속성 @openbook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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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괴물 사기극 (저자 친필 사인 수록) -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의 연대기
이산화 지음, 최재훈 일러스트 / 갈매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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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나무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근대 괴물 사기극]이라는 제목에서 혹하는 대목이라면 사기극이라는 키워드만으로는 부족하고 괴물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부제는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의 연대기]이지만 괴물 창조는 거짓말, 실수, 착각보다는 근원적인 기대와 바람이 담겨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일상의 것들과는 다른 것에 대한 기대나 바람은 하나님이나 예수 같은 종교적 환상만이 아니라 수퍼맨 등 수퍼히어로와 그의 대극일 빌런이나 괴수를 상상해내게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거짓을 창조하는 내면에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일종의 자아충족과 자기 망상의 경향도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대개의 모든 바들이 원형적인 것들이지 않은가 싶다.

 

본서에서는 물론 실수와 착각도 많이 언급된다. 1763년의 찰턴멧노랑나비, 1854년의 수정궁의 이구아나돈, 1857년의 황제벼룩, 1892년의 늪 살무사, 1926년의 보스로돈 등은 전문가들의 착각과 실수로 시대적 괴물로 잠시 등극한 경우이다. 이 사례들은 전문성의 한계가 있던 시대적 한계나 검증할 과학기술력의 한계 등도 있겠으나 이런 실수 역시 전문가의 기대가 작용을 해 대중에게 오해를 사도록 한 경우가 아닌가. 실수와 착각이라는 자체가 대상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 눈이 어두워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이유 역시 기대와 허영 즉 바람(원함)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도적 사기, 기만도 적지 않았다. 1770년의 체스 두는 로봇인 튀르크인이나 1882년의 피지 인어, 1869년의 카디프의 거인, 1917년의 코팅리의 요정 등은 명백한 사기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중을 기만하고 부를 쌓으려는 의도이거나 어린이들의 치기였거나 하는 경우지만 이건 명백히도 속이려는 의도 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에 속아 넘어간 대중에게도 책임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모든 괴물 사기극의 근본은 감정적 고양이든 혐오 등의 감정적 추락이든 특이하고 괴이한 타 대상을 매개로 정서적 지성적 변화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이나 기대나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 것들은 1758년의 동굴 인간이나 1835년의 달의 박쥐 인간, 1938년의 [우주전쟁] 속 화성인과 같은 미지의 대상을 가공해낸다. 다른 괴물 사례들처럼 전문가의 착오나 의도적 사기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누구나의 기대나 바람이 괴물이 현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것들은 인간들의 내면에 원형들이 현현하는 것이고 대중의 바람과 기대와 두려움과 혐오가 어우러져서 야기되는 상황이다. 착각과 실수는 그저 거드는 역할만 할 뿐이다.

 

세상에는 용의주도한 악인들이 있고 그들의 사기는 철두철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고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 수도 대중을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외의 지적 생명체들도 알겠지만 모든 인간도 결국 죽고 영혼이 된다.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사기는 없다. 그래서 억울한 죽음도 세상에서 밝혀지지 않더라도 세상을 넘어서는 순간 억울함은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들린다고 보인다고 모두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언젠가 공간이 데이터 저장소라는 것을 과학이 파헤치게 된다면 그리고 연구가 지속된다면 공간 속에서 시간을 너머 과거의 진실들을 실제로 보고 들으면서 알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배우던 것, 듣고 보아서 믿던 것들에 이면, 진정한 진실을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계 속 억울했던 낱낱의 사람들에 억울함이 풀릴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괴물 사기극들도 결국 신문 지상이나 라디오로 들리고 형상으로 보였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은 감각을 매개로 살아가지만 감각만이 실체는 아니다. 속을 때는 속는 상황에서 주어진 것들이 현실이겠으나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넘치게 알 수 있었다. 진실은 진정으로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저 건성으로 대강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진실은 집요한 자의 것이다.

 

그리고 시대에 괴물들은 거듭 창조되고 있다. 학교괴담이나 지역괴담 등도 그렇겠지만 이제는 AI가 창조해내는 영상들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이다. AI가 대중을 자살로 유도한 사례가 AI 대중화 초창기부터 알려졌다. 인간의 악의만이 아니라 기계랄까 인공정신이랄까의 무감정한 유도로 야기되는 사건들까지 인간을 피폐케 하는 시대다. AI 문제는 짧게 언급할 사안이 아니니 이쯤에서 접지만 시대는 또 다른 괴물을 창조했고 아직 그것이 지나친 우견이나 염려인지 어떨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살아가다 보면 진실이 드러나는 시대가 다가올까? 정치와 세계를 보면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 나로서는 아마도 그전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속이고 속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속이지 않는 자에게 오히려 자신을 속였다고 말한다. 그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라는 부제 속 주제를 가지고 생각하면, 인생이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한 괴물이며 그 괴물이 퇴치되어야 한다는 걸 자각하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괴이하게 생긴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아기를 아파트 고층에서 던지는 엄마, 자신의 미취학 아동인 아들을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멍과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져진 상처를 남긴 채 때려죽이는 부모, 죽은 자기 아기를 냉장고 냉동칸에 얼려 버리는 부모, 죽은 자기 엄마를 옆방에 놓은 채 일상생활을 몇 개월째 이어가는 자식, 게임처럼 해보고 싶었다며 자기 초등학생 동생을 난자해서 죽인 중학생 형, 자기 친딸을 강간한 아버지, 자기 여동생을 평생 강간해온 법조인 오빠와 그걸 숨기려는 친부모들, 자기 중학생 조카를 강간한 이모. 그들은 인간이다. 괴물은 인간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라고 호소하는 모두이다.

 

이 책의 감상은 주제를 숙고하며 그렇게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고 그래서 난 더 이상 진실을 알아달라는 호소를 할 생각이 없다. 미래에도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 미래인들은 공간 속 데이터를 읽어내 진실을 알 것이고 현재 살아있는 인간들은 결국 모두 죽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숨이 트인다.

 

#근대괴물사기극 #이산화 #최재훈 #갈매나무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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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8-13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샀습니다. 다 읽고 리뷰 읽으러 올게요. 기대됩니다^^

이하라 2025-08-13 09:48   좋아요 1 | URL
건조한 문체이지만 흥미진진한 주제이기때문에 따분하지 않고 주제를 통해 사유하게 해주는 면이 있었습니다. 재미난 독서 되세요. 꼬마요정님^^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평정심의 철학
이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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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는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저서 [화에 대하여]를 기반하고 스토아 철학에서 보는 삶의 태도에 관해 서술한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삶의 기술이 담겨있다고 보았다는데 그와 같은 시각에서 출발한 스토아 철학 전반의 삶의 기술을 현대적으로 서술한 것이 본서다.

 

본서에 관한 서술 이전에 본서의 근간을 이루는 가르침을 펼친 철학자 세네카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자면 그는 네로 황제 당시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있다가 네로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철학자이자 스승이기 이전에 네로 황제를 견제하는 데 정치적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기도 한 세속적인 인물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세속을 벗어나지 않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이야기하는 삶의 기술이라면 이성이 어떻고 천상이 어떻고 하기 전에 이미 상당히 현실적인 지혜를 이야기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미더움이 생기기도 한다.

 

본서는 삶의 기술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의 기술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그리고 시간과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를 어찌해야 하는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서의 각 장을 보면 분노, 질투, 복수, 역경의 통제, 불안 극복, 시간에 대한 관점, 죽음에 대한 자세, 불평과 감사, 자기와 삶에 대한 태도, 자유와 행복에 이르기까지 10개의 장으로 스토아 철학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덕성을 갖추는 것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기존의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가르침과는 다르게 덕성을 자유를 찾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찾은 것으로 보는 등 스토아 철학의 덕성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에 순응한다던가 이성에 따르는 삶을 산다던가 하는 교과서적 정의로는 잘 이해도 포용도 되지 않던 스토아 철학의 덕성이 저자로 인해 다소 삶에 대한 태도로 다가오는 듯하기도 했다.

 

본서의 제목이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인 것은 삶의 여러 제반 문제들을 다루는 본서의 내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인듯하다. 본서는 화가 날 때 화가 나는 초기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이 화가 난 상태의 초기에 분노를 절제하도록 하여 분노를 가라앉히게 하는 등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또 복수의 장에서는 무조건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적합한 방식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시간 화를 내는 것을 권하고 있기도 하다. 모든 순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전체 장들의 그 밖의 내용들까지 현실적인 이 가르침들은 결국 자신을 찾는 것을 또 자유를 찾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타인의 반응이나 태도 세상의 이목이나 자기 자신의 감정에 좌우되는 상황은 노예의 상태인 것으로 보고 노예가 아닌 자유를 찾은 상태를 권하고 있다. 여행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지만 저자는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여행이기보다 탐험이며 이것은 여러 곳을 헤매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평소 나의 지론도 앉은 자리에서 자기를 찾지 못하면 세상 어디를 헤매도 자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겠다는 의도로 여행은 하지 않는 편이다. ‘수행하는 그 자리에 나도 자유도 없다면 세상 아니라 우주 어디로 떠나도 나를 또 자유를 찾을 길은 없지 않은가?’ 시간에 대하여 말하는 장에서도 스토아 철학적 시각은 미래를 탐하는 태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데서는 자유도 지혜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삶의 여유 시간, 여가를 통해 자신을 마주할 수 없다면 바쁘게 사는 삶에서 자신을 잃는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진정한 행복eudaimonia라고 했다는 데 이는 좋음을 뜻하는 eu정신또는 마음을 뜻하는 daimon에 합성어에서 유래했다며 스토아 철학이 이해하는 행복은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좋은 마음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양심 良心 이라는 말의 뜻과 같지 않은가? 결국 좋은 마음을 갖는 길이 행복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혜는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면서 좋은 삶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습관으로 만들면 좋은 마음이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삶의 기술달리 말해 삶에 대한 태도와 방법을 아우르고 있다. 이는 탐진치를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고 동양의 고전들과도 다르지 않다. 서양과 동양의 전승을 달리 보는 이들이 많고 서양은 기술, 동양은 영성으로 구분하지만, 알고 보면 이러한 구분은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전승과 단절되며 동양에 심취하면서 비롯된 것이지 서양의 전승이 동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를 통해서도 그렇고 고대 그리스 철학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대에는 동서양 어느 전승을 통해서든 마음의 위로와 평화가 절실하기도 하다. 스토아 철학을 통해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역시 좋은 마음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다.

 

#화내며살기엔인생이너무짧다 #스토아철학 #철학책추천 #이진우 #추수밭 #청림출판 #서평단 @chungrim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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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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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교훈과도 맞닿아 있는 심리기법과 선사상과도 같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된다. 일의 능률이나 세상을 사는 지혜라기보다는 내적 외적 평화와 안정을 찾아주는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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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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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이론가제본서평단 #렛뎀이론 #멜로빈스 #소이어로빈스 #비즈니스북스 #자기계발서

 

출판사 비즈니스북스 bizbooks_kr 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에서 반향이 큰 책이라고 들었고 렛뎀이란 말이 가리키는 방향성이 좋았다. ‘내버려 두라는 말은 선승의 일갈과도 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는 내면의 안정을 찾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일갈이었다. 저자는 바로 행동하게 하는 지침인 [5-4-3-2-1 법칙]에 관한 책으로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작가라고 하는데, 이 단순한 법칙과 렛뎀의 간명함이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복잡해지지 말고 여러 생각만으로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라는 게 [5-4-3-2-1 법칙]의 요지라면 렛뎀 이론도 마음 상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내적 갈등에 빠져있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싶다.

 

렛뎀은 내버려 두기(Let Them)와 내가 하기(Let Me)가 주제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내버려 두기는 인생을 살며 대다수가 결국에는 깨우치는 바인 [받아들임]에서 표현 양식만 바뀐 바이기도 하다.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행동, 그것이 렛뎀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대개 갈등과 충돌이 다반사인 세계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소통과 설득을 보편적인 삶의 양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갈등을 해소할 때만큼 갈등을 더 키우거나 오해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런 갈등과 오해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은 내가 먼저, 다시 말해 내 감정, 내 생각, 내 관점, 내 이익, 내 만족이 먼저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 20대 중반까지도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의 태반을 살고도 내가 먼저라는 이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 살아가다 보면 라는 것이 내게는 자신이겠으나 타자에게는 그 사람 자신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들이 더불어 함께 행복한 길은 서로 자기만의 관점이나 바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 자신의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 당연한 진실을 깨우치는 데 왜 이리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버려 두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저자의 또 다른 주장 내가 하기는 두가지 경로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이던데 저자가 말하듯 고민이나 타인은 내버려 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받아들여지기로는 해석의 문제였다. ‘친구에게 좋은 친구가 되려고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지 말자. 내가 좋은 친구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자’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조부모님을 뵈러 가지 말자. 조부모님과 가족을 우선시 하는 것이 내게 행복이라면 조부모님을 뵈러 가자.’ 저자는 이런 말들을 하는 데 이는 행동의 동인을 외부에 두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만족감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해석 같기는 했다. 이건 내가 만족을 찾는 해석을 하며 행동하라는 뜻이라면 좋은 말이지만 저자가 하는 말을 단순하게 만족스런 일만 선택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하지 마라로 받아들인다면 이건 극렬한 사타니즘의 핵심 주제와 같아진다. 사타니즘의 핵심 주제도 행복하라이다. 하지만 이 주제를 실천하는 데 한 가지 단서가 붙는데 그건 너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선택에서 남을 고려하지 말아라이다. 앞서 말한 저자의 주장을 말 그대로만 받아들여 행동한다면 자녀들이 날 필요로 한다고 근로와 가정에 충실하지 말자. 자녀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행복할 때만 일하고 가정을 돌아볼 것이다가 되어 버릴 수 있고 낭떠러지에 매달린 아이나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며 저 아이가 나를 보고 살려 달라고 소리친다고 저 아이를 구하지 말자. 저 아이를 구하는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할 때만 저 아이를 구하자라고 사고들이 왜곡되어 버리면 결국 자녀도 버리게 되고 살려달라는 아이의 절규에도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극단적인 과장 같겠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되거나 죽어가는 아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아주 작은 해석의 하나 차이가 천국도 지옥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의 차이 하나로 지옥을 만들고 있는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바르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내가 만족스러워야 베풀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와야 할 사랑이나 보살핌은 당연한 것이다라고만 믿어 버리는 순간 천국은 연옥을 거쳐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

 

내가 삶에서 얻어온 교훈들과 이 이론의 감상이 비슷하다는 것에서, 삶의 지혜와 심리 기법의 정수가 녹아든 것이 렛뎀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틀즈의 [Let it be] 가 주는 여운은 삶을 통해 어느 순간 깨우침이 되기도 하는데, 이 깨우침들이 이 시대에는 [수용전념치료]라던가 본서 [렛뎀 이론]과 같은 치유와 자기계발의 방편으로 다가온다. 모두 내적 외적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지혜들일 것이다. 이론이나 철학이기보다 치유이면서 진리인 방편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전체 20장 중 5장까지만 편집한 가제본을 읽고 남긴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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