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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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시답게 하는 것은 시인과 독자의 감성 즉 마음이겠으나 

시를 완성하는 것은 시대일 것이다 


물론 시라는 것이 굳이 시대를 노래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의 소회와 감상을 담음에서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나, 

개인적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잠언 같은 시들에 문득 깨우침을 얻고 

시대를 넘나드는 다가섬에 감격스울 때가 더 좋다 


최영미 시인이 권하는 55편의시 

[내가 사랑하는 시]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 55편의 시 모두에서 

감동을 느낀 것도 아니고 여류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에 파문을 남긴 

시들에 공감을 얻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감성을 두드린 시들이 내게 다가와 준 경우도 있었다 

더욱이 가깝고 먼 어디에서나 일고 있는 사건사고와 전쟁과 테러, 재해와 질병이 

견뎌내기 버거운 이 시대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시들이 있다 


존 던의 '명상17' 중에서 

누구든 그 스스로 완전한 섬이 아니다. 

... 중략...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느니. 


왜 이스라엘은... 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왜 말레이기를 격추한 우크라이나 또는 반군들은 이 시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레이디스코드 은비양과 리세양의 죽음을 불러온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이 사회에도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에볼라와 마버그열병, 뎅기열, 호흡기증후군 등 사건사고, 전쟁, 테러, 자연재해 이외에 지독한 전염성 질병까지도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이 시대는 누구나의 귓가에 울리고 있는 종소리이다.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지가 궁금해 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 눈떠야 한다. 


'코코아 한 잔'이라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도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을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후략... 


꼭 테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로 가자지구 거주민들을 보며,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보며, 또 그외의 독립 열기가 고취되고 있는 지역들의 대립을 보며 이 시가 와닿기도 했다. 

(허나 결코 IS 같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이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날로 격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4천의 낮과 밤'이란 시에서 다무라 류이치가 말했듯 시를 완성하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이 사살되고 암살되고 독살되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시대가 끝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기형도의 시 '빈 집'에서 처럼 사랑을 잃고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고 빈 집에 가엾은 사랑(희망)이 갇혀버리는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아! Ay!' 처럼 제발, 나를 이 벌판 속에 홀로 울게 내버려 달라며 그렇게 체념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존 던의 '명상 17'을 다시 인용하자면 누구든 완전한 섬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가 깨우칠 일이다. 이 시대라는 종이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 울림을 누구나가 깨달을 일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랑에의 길'이 일러주듯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최영미 시인이 모아준 [내가 사랑하는 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시대를 일깨워준다. 

그대라는 시는 결코 시대를 떠나 읊조려질 수 없으니, 이 시대에 그대가, 우리가 노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시집을 읽으며 묵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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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4.10.14 타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