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명상 - 예언자의 예언비법 아리예 카플란의 유대 명상
아리예 카플란 지음, 김태항 옮김 / 하모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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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감상을 힘주어 쓰자면 매일 몇 시간씩 쓴다 해도 4주는 걸릴 것 같다. 이미 정리해 놓은 손글씨 정리집은 있다. 하지만 본서에서 저자가 인용한 성경 구절들과 개역개정판 성경만을 대비하고 배경이 될 성경 구절들만 인용하자고 해도 너무 골치 아픈 작업이다. 그래서 그냥 간소하게 이 도서를 읽기 전인 분들에게 대략적인 소개를 하는데 그치려 한다. 앞으로도 읽는 도서마다 대략적인 소개에 그칠 작정이다. 


우선 본서는 1978년 출간된 저작으로 원제는 Meditation and The Bible이다. 한국어 제목이 '성경과 명상'인데 표지의 제목 아래를 보면 '예언자의 예언 비법'이라는 부제가 있다. 그런 부제가 따로 있을 정도라면 이 책이 동양식 명상 방식과 유사한 명상 방식이 유대 사회에도 있었다는 걸 증거하려는 데서 그친 저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그보다는 명상에서 나아가 예언을 하기 위한 서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본서는 성경 구절들에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각 히브리어 어휘가 가리키는 명상 방식을 읽어내고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자 선지자들이 예언을 이룬 방식을 구현해내려는데 목적이 있다. 


우선 '루아흐 하코데쉬'는 성령께서 임하심을 이르는 말이다. 아리예 카플란님은 이를 가리켜 명상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깨달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히트보데두트'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히트보데두트'는 '자아격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육체적 격리'(최고단계의 계시를 가져오는 내부격리 즉 명상을 위한 준비과정)와 '내적 격리'(내면의 본질을 생각에서 분리: 계시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계시 그 자체를 위한 과정)로 나뉜다. 여기까지 요가에서 제감이라 번역된 감각을 철수시키는 '프라티아하라'와 의식을 하나에 집중 시키는 응념으로 번역되는 '다라나'를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하는 바 지향하고 있는 바가 전혀 다르다. 처음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는 대도무문이란 성어를 떠올렸지만 적정과 채널링에 이르는 길이 어느 노선까지만 같은 길을 간다니 대도무문이란 성어와도 다르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해 랍비들이 한 정의들을 보자면, 


궁극적 수준까지 우리 자신을 생각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육체에서 분리가 될수록 그만큼 지각력은 커진다.  - 랍비 하임 비탈 1543~1620


상상이나 다른 지각 능력으로부터 의식이 분리/격리를 요구한다. -랍비 레비 벤 게르숀 1288~1344


저자가 한 명상 상태에 대한 정의를 보면 "더 이상 상상(다른 감각이 차단될 때 경험하는 시각적 이미지와 의식의 흐름인 통상적 공상)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의식이 생각에서 분리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올곧이 계시를 받고 예언을 하기 위한 목적이다. "예언자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 에고를 없애서 빈 파이프(Byu) 같이 되어 자신을 하나님의 영을 위한 통로 (channel)로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담아 전했다.


"이렇게 혼(Neshama)이 하나님께 결합되면 예언자는 일반인이 지닌 지성의 힘을 훨씬 뛰어넘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음은 혼의 속성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혼이 최고의 근원(하나님)과 긴밀히 연결되었을 때 온다. 혼은 이 상태에서 훨씬 고급스러운 방법으로 사물을 지각한다"


"예언의 힘은 루아흐 하코데쉬의 힘 보다 훨씬 위대하고 정보제공의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예언은 인간에게 최고의 깨달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창조자(하나님)와 연결되는 정도가 가장 긴밀한 것이 예언이다."


하지만 이러는 과정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예언자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 빈 파이프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시편 109:22]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생의 고통이 견딜만했던 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중심이 상하고, 상한 심령이 되어 통탄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선지자가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명상이란 것이 이런 과정이라면 명상도 때려치우고 말리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굳이 누가 생의 고난과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것밖에는 달리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싶겠나? 욥 같은 이가 되어 욥처럼 자녀도 죽고 재산도 흩어지고 집도 무너지고 온몸에 악성 피부병이 걸려 고통받으면서도 하나님은 축복만이 아니라 환난도 주시는 분이라 기도드릴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차라리 유일신을 믿느니 이 세계에 자연적 그리고 초월적 섭리라는 운영 체계가 있다는 정도로는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시아흐/수아흐, 하가, 라난, 샤샤, 히트보네누트 같은 히브리어들이 성경에서 쓰여진 구절들을 들며 각 히브리어의 어근과 어간, 파생어까지 예로 들어 어떠한 명상을 이르는 것인지 풀어놓는다.


각국 언어로 다채롭게 번역되었으나 알고 보면 여러 의미로 번역된 동일어이거나 파생어인 경우를 들어 해당 히브리어의 특색을 논하고 그에 따라 어떠한 명상인지 설명한다. 만트라를 이용하기도, 음악을 이용하기도, 감상적이 되어서도, 명상과 깨달음으로 이르는 보상으로 논해지기도, 위빠사나처럼 맑고 투명하게 바라보기도 하는 다양한 명상의 성격에 대해 나열한 장들이다.


이 정도 길이의 리뷰라면 크리스찬이면서 명상에 관심 있거나 이미 명상에 입문한지 오래이며 세계의 명상 체계들이 궁금하다는 분들도... 아니면 성경과 명상이 대체 무슨 관계냐는 님들에게도 이 도서를 선택할지 말지 결정하기 편하도록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리뷰는 이만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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