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의 어느 리뷰어님이 "제목을 보고 건전한 남성이라면 배워 보고 싶을만한 기술"이라는 리뷰를 남겼더라. "자신의 망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선택했다나...
나 역시 최면 세뇌술이라는 제목에 혹한 것은 맞으나 난 공권력이 공공연하게 또 은밀하게 대중심리를 유도하는 통제 사회이기에 당연히 알아두어야 할 분야라는 생각에 선택했다. 11살 즈음이었나? 당시 이전에 A특공대라는 미드에서 머독 역할을 했던 배우님이 맥가이버라는 미드에서 초절정 최면 마스터로 등장해 맥가이버와 대립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후 20세 전후 까지 최면과 자기최면 도서를 읽어 보았는데 본서가 가장 가독성이 높았다.
다만 최면술에 대한 경각심을 방지하고 위험성을 회피하게 하고자 하는 방편으로 저자는 두가지 주장을 억지스럽게 써내려 간 것만 같다.
최면은 "인지 능력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명료하고 강력하게 인지 할 수 있는 상태다." "의식이 더 명료하고 체험에 더 강해진 상태를 말하지 지워지거나 흐려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최면이란 고도의 집중상태와 같으며 의식과 의지가 명료하게 깨어있는 상태다"
이런 주장자로 내려치며 할을 일갈하던 선불교의 전통이나 빠딴잘리가 요가 수트라에서 했을 법한 주장을 하면서 저자는 잠시 잠깐 기억이 사라지고 마는 단기기억 상실을 앓는 사람 같았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부록을 배치하고서 책을 펼치면 바로 "원한도 없던 어쩌면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살해"하거나 "정숙한 여성을 점진적으로 세뇌하며 공감대(라포)를 형성해 성매매녀로 전락시킬 수도 있음"을 인정했었다.
그래 놓고는 최면은 하나의 제안이며 어두운 암시 같은 것이 아니니 최면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본인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명 책의 전반에 걸쳐 "내가 말하고 네가 체험한다 내가 말하고 네가 행한다"는 꺼림직한 발언을 하기도 하지 않았나? '의식이 현실세계에서 이탈(Dissociation)하여 가상세계에 몰입(Association) 하는 것' 이라고도 하였고... 누군가가 그럴싸한 점진적으로 납득가능한 검열왜곡(비판적 사고의 우회)만 제대로 하여 선택적 사고를 자리잡게만 한다면 살인도 성매매도 자살도 그렇지만 그걸 너머 돌연사 마저도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최면이 아닌가? 현대의 최면가들은 최면을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콜드리딩이니 NLP(신경언어프로그램)니 다크아트니 하는 응용 최면 분야에서 일어나는 폐해는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최면의 위험성만 주목 된다면 도서의 판매에 이롭지 못하리라 여긴 출판사측의 압력도 있었을테고 독자층을 한정하려 해당 응용최면 분야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은 배제한듯 하다.
본서는 저자가 보여준 도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긍정적 최면분석만으로도 유익한 도서였을 것이다.
'5장 체인지워크'장만해도 문제 많은 현실에 처한 누군가에게 상당히 다채로운 최면 분석 테크닉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하기에 유익한 내용들이다. 부록 편에서의 극단적인 예가 최면이 악용되는 상황에서의 어두운 면이라면, 다채로운 최면분석들로 아프고 지친 누군가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대목들은 상당히 호감이 가는 기법들이라고 여겨졌다.
-리그레션:연령퇴행으로 문제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최면상담이다. 파트 테라피:다중인격화하여 자신의 인격의 어떤 부분이 감당 못하던 문제를 직시하고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것도 최면상담 최면 분석의 기능이다. 유니버셜 테라피: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으며 문제의 진정 주목해야할 부분이 무얼지 고려하고 배려하여 풀어나가는 기법도 매력적이다. 골든박스:잠재의식에 직접 문제의 해결안을 귀뜸해 주는 것은 너무 적나라해서 유치하게도 보이지만 문제가 해소되는 이가 있을 것 같다. 형이상학 테라피:전생과 빙의 까지 넘나드는 치료기법은 '이 시대의 샤먼이고자 하는가?' 살짝 미소지어지던 부분이다. 이런 각 기법들의 방식을 보고 최면이 아닌 일반적인 정신 분석도 다채롭겠구나 싶었다. 이리 최면분석의 다양한 면모를 보고 느낀 것은, 일상에서의 진솔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결국에는 치료라는 것이었다.-
흑과 백, 또는 명암이라해야 할 부분은 어디에든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해당방편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과 의지에 달린 것이라 본다. 호메오스타시스(항상성)가 동조만 하지 말고 조화하는 정도 또는 나 자신을 지키는 정도로 강화된다면 대중(심리)통제의 이 시대에 꺾이지 않고 당하고도 체감은 왜곡되는 상황까지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