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가면 1 : 원시 신화 까치글방 160
조셉 캠벨 지음, 이진구 옮김 / 까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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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켐벨은 그의 저서 《신의 가면1 원시신화》에서 신화가 주는 의의의 공시적 측면과 통시적 측면 둘 다를 깊이가 남다르게 전하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낱낱의 사람들에게 신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변화의 양상을 띠며 다가오는 순간마다 획기적인 국면 전환의 요소였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러한 관점을 전하기 위해 수렵부족과 농경민족, 사냥꾼과 농경인, 남성심리와 여성심리, 완고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 정직한 사냥꾼과 샤먼 등으로 상징들을 대비시켜 이해를 돕고 있다.

 

수렵부족은 남성심리로 완고한 마음을 지니는 정직한 사냥꾼이라 상징화하고 있다. 그 근본적 주제는 성취와 달성에 있다고 한다. 이는 농경민족으로 대변되며 여성심리로써 부드러운 마음이 상징하는 샤먼의 대칭인 것이다. 이들의 주제는 기도 즉 주술을 행하는 것이다.

 

사냥의 세계에서는 남성적 심리가 지배적이라 여성적 원리는 비교적 침묵을 지키며 남성적 덕목과 함께 어떤 유치한 순수성이 우세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농경의 세계에서는 여성의 경험이 지닌 전적인 신비가 드러나며 이것은 처녀의 신비 속에서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된다고 한다.

 

-아마도 ‘처녀의 신비’ 라는 표현은 ‘처녀’ 라는 어휘가 지닌 순결과 순수를 상징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처녀작’, 처녀비행‘ 의 표현들처럼 신비(일상에서의 경이)를 체험하는 이들에게 첫걸음과도 같을 신선함으로 다가갈 것이기에 더해진 표현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분법적으로 나눈 이 속성이랄까 역할이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기가 속한 지역적 세속적 조건에 애착을 보인다. 그러나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을 지향한다. 여기서 신화의 변형을 초래하는 자극은 남성과 여성의 상호 작용 및 상호 간의 영적 풍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상징은 두 극에 의해서 경험되고 해석되지만 동시에 두 극 사이의 적대적 협력(antagonistic cooperation)을 이루어 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대칭의 중재나 통합만이 신화의 경험과 해석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런 투의 전개가 이 저작 전체를 꿰뚫으며 거듭 반복되니 말이다.

 

샤먼이 걷는 ‘고통의 길’ 은 ‘마르가’라고 하며 ‘심리학적 변형의 길’ 이라고 한다. 샤먼은 이 여정을 통해 ‘영적인 죽음과 부활’ 을 거치며 ‘개인적 경험의 지평이 확장되고 깨달음의 깊이가 심화’ 된다.

 

샤먼은 정신 그 자체의 신비와 접촉하여 영혼과 그 세계에 관한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샤먼이 가는 ‘고통의 길’과 ‘그 길을 통해 얻는 지혜’가 ‘과거에 안주하여 창조성을 상실한 사회를 새로운 깨달음의 영역과 깊이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한 자들의 ‘영적 위기와 깨달음’ 속에서는 ‘비역사적 요인이 지배적 역할’ 을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지역 전통의 이미지’가 그 전통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 분출되는 ‘어떤 충격적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에 불과하단다.

 

다시 말하면 관습이나 관행, 윤리나 제도, 상식 등 사회 구조를 이루는 견고함에 균열을 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샤먼은 성직자들과 같이 ‘사회의 보수적 측면을 대변’ 하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순종과 경외의 태도’ 를 보이지 않는다. ‘자기 충족적이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지닌다고 한다. ‘신의 분노에도 개의치 않는 바벨탑의 건설자’ 라 저자는 정의하고 있다.

 

‘바벨탑의 건설자’ 라는 것은 신에게 저항하고 아니 저항하는데 그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너머 신에게 의존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는 나 스스로 쌓아올리고 스스로 검증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신은 그에게 굴종의 대상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 회유의 대상 정도일 것이다.

 

저자가 샤먼의 이런 독립성, 독자성, 일탈성 즉 진보적 이탈 성향만을 두둔하고 지지하느냐면 또 그건 아니다. 그와 동시에 집단의식이랄까 보수성향이랄까가 하는 제 역할의 중요성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 이어서 계속됩니다

사냥꾼들의 세상에서 `마르가`를 거치며 드러나는 `처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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