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는 왜 후진하는가 - 반 글로벌 사회 정치 문화
이만희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몇몇 부분에서는 일본의 장점을 두둔하기도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공유되는 문제 내지는 일본을 뒤따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외한다면 편파적인 일본 비난이라고 본다. 


한국의 '빨리빨리' 성향을 옹호하며 '제3장 일본의 반 글로벌 사회문화'의 첫번째 대단원, '기업가 정신의 쇠퇴'에서 일본의 책임강조(성공의 보상은 미미하며 실패에 책임은 모두 전가하는 문화), 징계 처분(일본 대학의 흔한 징계처분 사례를 든다), 상벌 논리(상 보다는 벌을 우선한다며 지적)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성공의 보상이 미미하다는 말은 아예 능력에 따른 보상이 없다기 보다는 저자가 받아들이기에 남다른 능력을 보인 이에 대한 처우가 미흡하다는 것일 것이다. 이후 저자가 일본의 연공 서열제를 비판하는 장에서 일본인들이 능력주의를 선호하지 않는 근거를 제시하는데 난 그에 상당히 수긍이 간다. 특히나 도대체 프로젝트의 기획과 진행과 마케팅과 그 모두의 이전에 승인을 결정한 이 중 누가 가장 능력 발휘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저자는 아마도 이에 대해 자신 나름의 고견이 있을듯 한데 나로선 일본의 선택이 옳다고 본다. 하나의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와 진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실제 진행하는 것도 진행 이후 마케팅에 대한 것도 애초 그 결과를 충분히 계산하고 승인하는 것도 모두 유기적인 것이 아닌가 회사업무 문외한으로서 생각해 봤다. 물론 최초 창안한 이의 발상이 있어야 일은 진행되고 결실을 가져 올 것이다. 그러니 업무의 성과가 크다면 그 상여혜택은 기여도와 중요도에 따라 고르게 분배하면 될 것이고 아마도 일본은 그것을 선택한 모양이다. 그러니 '보상은 미미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능력위주의 기업은 그럼 어느 분야 한 팀이나 특정 개인에게만 상여금이 지급되는 것인가? 업무가 단 한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특정 업무 수행만이 전체 결과에 기여도가 압도적일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실패에 대해 결정권자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 커다란 부담이 되어 잠재적 실패에서 제기되는 책임을 회피하려 '합의형 의사 결정'을 한다며 그로 인해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도 많다는 저자의 말이 나로서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책임 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겨진 관행이라며' 자신의 일본인 지인이 일본에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푸념을 들었던 것을 논하는데 그건 그 개인의 감상이라고 본다. 그런 푸념하는 사람이 책임 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함께 의사 결정을 함께 한 누구나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란 인식을 했을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한 검증을 거듭 거친다는 것은 다양한 변수들을 짚어 보며 기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은 실제 비용이 투자 되어 제품 생산이나 프로그램이 실행 되고나서야 시행착오를 거칠 때 일게 될 손실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회의 통해 예측 가능한 변수를 최대한 제거한다면 제품 생산 후에야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검증한 후 개선하는 것 보다는 비용낭비가 다소 적지 않을까 싶다. 회의에 허비 되는 시간 낭비는 현대의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긴급 다중 화상회의 소집 등으로, 회의를 위해 모든 결정권자들이 특정한 시간에 회의 할 때만 중요 사안이 무언지 알게 되는 폐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 낭비를 최소화 하되 1차적으로 기획을 진행하려 승인하기 전 다양한 변수 고려 등의 검증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이나 입법 사법 어디서나 검증을 확실히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를 두고 한국에서도 주먹구구식 처리라는 말이 있지 않나? 더구나 그 이전 한국의 '빨리빨리' 성향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저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정신인 것인가? 그래서 한국인들이 맞이한 것이 쇼핑이나 하려고 들른 백화점은 무너지고, 안심하고 아니 안심이니 뭐니 할 것도 없이 그저 일상적으로 운전하고 지나가던 다리가 붕괴되고, MT라면서 간 스키장의 건물이 붕괴되는 현실이다. 일본인들이 매뉴얼 대로만 한다고 통수라 볼 수 없다는 거다. 한국은 매뉴얼 대로 해도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하고 매뉴얼 대로 승객 부터 살리고 봐야 할 선장과 운항 관리진이 승객에게 매뉴얼을 따라 기다리라며 지들만 탈출하고 승객 거의 전원을 수장 시켜 버리는 나라다. 지하철에서의 방화로도 사람이 죽어 나가야 하지 않나? 그들의 죽음은 매뉴얼만 지키던 피해자들의 융통성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매뉴얼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는 또 제대로 된 매뉴얼도 하나 못만든 관리자들과 결정권자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쯤에서 도대체 저자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일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저 효율성을 내세우며 "빨리빨리 처리 진행해서 속전속결로 결과를 가져오자. 근데 그 결과가 또 남다르게 고수익을 창출하는 우연을 가져다 주면 그것을 능력이라 하는 거다" 이런 관점으로 기업가 정신을 논하는 것인건가?


이 '기업가 정신의 쇠퇴'를 논하는 단원에서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으려 2007년 4월 "소니는 왜 삼성에게 뒤처지는가?"라는 TV대담의 사례를 들었다. 대담에서 소니가 삼성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원인을 의사결정 시간과 상품화에 이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소니가 삼성의 3배 이상이라더라고 저자는 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인 TV디자이너가 소니에서 삼성으로 이직한 이유도 소니에서는 상품화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 의욕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정도라면 물론 지나친 것이다. 검증도 충분해야 할테지만 기획과 승인, 제품개발과 제품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진행과정에 돌입하는데 경쟁사의 3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누군가 사실을 호도할 의도로 과장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긴급 다중 화상회의 등을 일상화하여 회의에 이르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간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꼼꼼함을 느려터진 것으로 철두철미한 것을 둔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폄하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다고 정신승리가 된다면 그럴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대학의 징계처분을 두고 일본이 융통성이 없다는 식의 평가에는 아주 많이 반대하고 싶다. 일본의 대학에서 징계를 남발한다는 투로 저자가 예를 든 사례 세가지가 있다. 그 중 첫째는 일본 한 대학의 축제 준비 위원회의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던 대학생이 컴퓨터를 저가에 인터넷거래로 구매했다가 영수증을 확보하지 못해 공금유용의 부정행위에 해당한다며 징계 받은 사례이다. 저자는 분명 이 사례를 들며 일본은 어떤 거래든 반드시 영수증을 주고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인터넷 거래업체는 영세한 곳으로 네트워크에 더이상 접속할 수 없어 그 대학생이 영수증 입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봐주란 투인데... 어떤 거래든 반드시 영수증을 주고 받는다는 나라에서 영수증이 제공되지 않은 거래라면 뭔가 문제 있는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노력했지만 거래 후 잠적하고 영수증 하나 제공 받을 수 없는 거래처라면 더더군다나 의심이 가지 않는가? 억측이라 한다해도 영수증이 어떤 거래에서든 필수인 나라에서 영수증이 제공 되지 않았으며 거래 후 잠적하는 거래처와는 재개점 한다고 해도 재거래 하고 싶을리 없을듯 하다. 공금유용으로 정학 처분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장물취득으로 의심을 산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도 의심 받을만한 빌미는 충분히 준 것이라고 본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사례는 허가서 없이는 아르바이트가 불가능하며 유흥업소와 도박장 등 아르바이트는 허용하지 않는 일본에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적발되어 정학처분을 받은 대학생 둘의 사례다. 한국인 대학생이 유흥업소 청소 알바를 하다가 정학 받은 사례와 중국 조선족 여대생이 유흥업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학 받은 두 사례를 저자는 일본이 융통성이 없다는 투로 언급하고 있다. 이건 좀 저자의 관점이 난감한 지경이다. 허가서 없이는 아르바이트가 불가능하다고 앞서 말했듯 유학생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재류 자격 외 활동 허가서'만 받으면 주 28시간 이내에서 아르바이트가 허용된다고 한다. 이 시대에 외국유학을 결심한 대학생이 해당 국가의 그런 법률 적용을 몰라서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작 검색 몇번이나 유학 소개업체 또는 유학 관련 매체들을 통해 충분히 일본의 국가적 법률 허용 범위 등을 알아 보지 않았을까? '재류 자격 외 활동 허가서'를 받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일반 알바 보다 두배 이상의 시급을 주는 유흥업소 취업이기에 불법임을 알면서도 감행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자는 그들이 취업한 업소 경영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며 그들은 경찰서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연결되어 있으니 안심하라며 유혹해 취업시키고서 막상 사건이 터지면 발뺌하거나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러나 저러나 한국인들이 남의 나라까지 가서 그 지랄들인 것을 두고 남의 나라 법률 탓을 하며 반글로벌적이니 매도하고 기업가 정신의 쇠퇴 단원에서 언급하고 있는 거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외국인 취업이 용이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자국민의 취업 기회를 충분히 열어 두고자하는 그 나라의 정책이다. 이게 비난할 꺼리가 되는 것인가? 일본은 가뜩이나 구인율(취업희망자 1명을 두고 경쟁하는 기업이 몇 개인가를 보여주는 비율)이 1 이상(2015년 11월 일본의 구인율은 1.2)인 나라이다. 이런 국가에서 법률적으로 외국인 취업을 제한 하는 것은 기업을 이윤추구의 대상임에도 명백하겠지만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는 한 요소라 자리매김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인성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 값싼 외국인 취업자 보다는 내 나라 국민을 취업 시킬 것이라는 국가적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외국인은 무조건 취업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원칙에 따른 절차를 통해 취업이 가능하지 않은가? 


남의 나라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짓을 그 나라 가서 할 수 없다고 딴지 거는 내용을 학자적 허세로 포장해서 자기 논리 펼치는데 은근 슬쩍 끼워넣는 경우가 있을지는 미처 예상 못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시대엔 법적 미성년자라는 방패 뒤에 숨어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는 고지능의 범죄성향을 띤 청소년들도 즐비하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 사례 부터 원조교제에 자발적이며 주도적으로 뛰어들거나 그 보다 악질적으로 가출 청소년들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하고 성매매 비용을 갈취하는 청소년들도 있으며 게다가 그렇게 원조교제를 강요하다가 피해 청소년들의 장기밀매까지 시도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범죄 후 알게 되었거나 주위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어 자신이 형법 적용대상이 아닌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인 것을 악용해 동일 범죄를 지속하거나 강력범죄임을 명백히 인식한 상태에서 범죄를 자기주도적으로 행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아이들이 더이상 아이가 아닌 것이다. 몸은 아이지만 현대가 이미 조선시대와는 차원이 다르게 다양한 사회 경험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다각도로 도덕성, 인성의 검증을 거치는 자연적 과정이 아이들을 원칙도 선택안 중의 하나라는 인식으로 도덕과 법률과 내적 원칙 마저 큐빅퍼즐 갖고 놀듯 놀아버리는 야릇한 지성인으로 길러내고 만 것이다. 


이런 시대에 원칙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사회에는 지켜야 할 법과 각 조직 마다 준수해야 할 규범이 있음을 대학 부터 실감하도록 안배한 일본의 제도가 과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청소년들의 범죄성향이 높아지는 양상이나 도덕과 원칙에 회의를 품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지성과 이기주의만 강화되는 현실에는, 공감능력을 향상 시키고 감성 자체를 함양 하도록 심리학과 심리치료 전반을 교육과정(초중고 대학까지) 전체에 반영하는 교육체계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두번째 대단원 '재량권 없는 조직 사회'를 보면 비난과 옹호가 두서없이 등장한다. 이 단원에서의 저자의 논리는 "하부 조직원에게 재량권을 주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적극적으로 권한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조직 구성원은 조직의 부조리한 행정 절차 등으로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노골적으로 반발하지 말고, 잘못된 정책을 탓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니 집회나 시위 같은 국민의식 낮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주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태도를 보여 민주주의를 진일보 시켜라" 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번째 대단원의 첫째는 '전후 관료 리더십의 효율성'으로 일본은 1980년대 초까지 권위주의적 개발주의모델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다는 어느 서양교수의 학설을 전하며 시작된다.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은 정책결정 및 집행이 국민의 동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명하달식으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이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자들의 정보능력 및 현실 파악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당시에는 관료의 우월한 능력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1950~1980년대 관료는 자원 동원 능력, 규제 능력, 민간 부문(기업)과의 협동을 이끌어내는 네트워킹 능력, 그리고 행정 지도 능력등을 통해 민간 부문을 지도 하면서 전후 부흥을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다만 민간부문이 취약한 개발도상국 시기 정부가 민간 부문의 성장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터' 기능을 맡았다 해도 민간이 홀로서기 연습, 즉 기업가 정신을 배워야 할 시점에는 정부의 규제는 기업가 정신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당연히 20세기 중엽까지는 고학력자들 그러니까 당시 엘리트 계층들은 권력의 축을 구성하는 구성원으로 많이들 밀집했을 것이고 각계각층에서 특권층을 형성한 각 조직의 결정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연, 학연, 혈연 등으로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그것이 적폐 취급을 받지만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그런 인적 네트워크가 상당히 효율적인 국가 내 행정, 입법, 사법, 각 기관들 그리고 민간 부문과의 효율적 연대와 운용을 보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학력자가 현대와 비교해 소수였을 것이기에 전문화된 지식을 습득하여 적용 가능한 전문적 식견을 지니고 실천할 이들이 관료체제를 구성했을 것이다. 이런 관료들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각계각층이 인적 네트워크를 유효하게 적용하여 효율적이면서 통합적인 발전을 이룩해 왔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지방이 고루 혜택을 누렸던 상황도 분명 있었을테고 말이다. 물론 각국 국민들이 그 인적 네트워크란 것 때문에 부조리한 현실도 숱하게 겪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 이룩한 발전 보다 이러한 폐해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과거의 단점들을 개선해야 하는 새시대 새로운 세대의 사명일 것이기에 자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젠 그 시절에나 효율적이었을 방식들을 비판하는 것은 시대 흐름상 당연할 일일 것이다. 이 시대에도 인적 네트워크가 존중되기만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시대착오적인 사고 방식이 분명하다. 인맥은 아시아에선 불가피한 문화적 특성이라며 개인 능력차를 간과하고 업무 진행과 개인의 성취 또 공공의 이익, 이렇게 단 세가지 측면에서만 보아도 비효율적이기만한 구태를 답습하고 있어선 안될 일이지 않은가? 이런 폐해는 비난 받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빠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료체제의 양식을 한국에서도 예를 들고 있다. 한국이 IMF 충격을 맞기 직전, 대기업들은 능력 이상으로 소위 '문어발식 확장'을 꾀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차입 경영에 돌입했다면서 정부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도산 위험이 없다는 발상으로 사태를 키웠다고 한다. 규제 완화가 경쟁을 활성화해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낳는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허나 나로선 정부 주도의 규제라는 것을 관료체제의 불필요한 유습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의 논리를 더 전한 후 이 두번째 대단원의 마무리에 말하려 한다.


두번째 대단원의 둘째는 '관료 리더십의 한계'를 논한다. 경제의 최고조 부흥기인 1980년대 초부터 조세 감면 및 중점 투자 등의 산업정책이 효용성을 잃었으며 더이상 관료 리더십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버블 경제 및 그 붕괴가 관료 능력을 불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면서... 그래서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에서 '고객 만족형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고 한다. 지지 기반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특정 고객을 만족시키는 모델로 전환해 정경유착과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농업 같은) 등의 특정 고객을 배려하는 국가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기영합주의(populism)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고객 만족형 국가 경영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대기업과 유착해 법인세 감면, 지방 공공사업 발주 요구, 농업 부문의 구조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영은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2014년 일본 공공 부채는 GDP의 235%에 달하며 비교 대상을 들어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비교 대상은 한국으로 한국의 공공 부채는 2014년 GDP의 64.5%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일본이 하위 조직원에게 재량권이 없고 상명하달식 조직 구조의 폐단으로 저런 상황을 맞이 했다고 치자. 그리 가정한다면 저자가 재량권을 부여하고 인정해 주는 국가로, 일본에 대해 비교 대상 삼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는 일본과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기영합주의까지 치닫는 공약 남발은 한국에서도 하루 이틀 일어난 상황이 아니며 정경유착은 대한민국의 고질적 문제여 왔다. 법인세 감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금의 주요 대기업 지원 등을 지속, 쌀값 상승을 약속하여 표를 얻고서 당선 후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 산업 생산을 위한 전력비용은 대대적인 감세를 혜택을 주고 OECD국가들 중 민간 전기료가 싸다(민간 전력 소비비율이 타국가들(대개 30% 이상) 민간전력소비비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민간전력소비(13%)를 산업전력 소비까지 전체 소비와 함께 평균을 산출해 민간소비 전력비용이 싸다는 억지를 쓰며 누진세 적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정부다) 고 호도하며 민간 전기료에 누진세를 적용해 기업들 생산 전력비용을 충당하는 어이없는 행태 마저 이어지고 있다. 또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쳐 놓고서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느냐던 뇌가 그녀 자신의 피부 만큼이나 아기 피부 같은 분도 계신 나라 사람이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격이다. 


저자는 거듭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 구조는 조직 생명력을 말살 시킨다며 '어떤 조직이건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이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구조기능주의(strutural functionalism)를 언급한다. 이렇게 일본의 재량권 없는 하위조직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일본을 부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2010년 오끼나와 미군기지 재편을 위해 후텐마 미 공군기지를 '나고'시로 옮기기로 합의했을 당시 해당 주민들이 미군 철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사안으로 2012년 12월 자민당 정권으로 바뀌며 민주당 정권에서 기지 이전을 반대하던 오끼나와 지사가 기지 이전 협력의사를 밝히면서 다음 선거를 낙선했다고 한다. 새로 당선된 지사는 기지 이전을 승인했다가 해당 엔노코 지역 주민들 반발이 거세지자 승인 취소를 했다고 한다.


'일본은 내각 책임제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철저히 분권화 되어 있으며 이것이 지방 간 균형 발전을 낳는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와 동시에 '참으로 부러운 시스템'이라면서도 '그러나 안보문제에 까지 중앙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기회비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저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회비용을 이야기 하는데 정치라는 것이 국민을 이해 시키고 설득해서 개인과 공공 양측의 이익에 최대한 일치하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과정이 아닌가?

국민 개개인과 지역 소수 집단의 주장은 무시하며 진행하는 정책이라면 국민을 위한 결정이라는 것은 그저 자기 합리화일뿐이지 않은가? 설득하고 그래서 안되면 다른 부가 이익을 제안해서 회유하기라도 해야 할 일이다.

애초에 몇몇 기지 이전 유력지역을 동시에 제시하고서 각 지역민들이 서로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주고서 최종 선택지역민들이 납득할 만한 지역개발 등의 이점을 제안했다면 훨씬 더 수용하는 이들이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짚어야만 할 것은 저자가 거듭 일본을 비난하는 근거는 일본은 하위조직에게는 재량권이 없으며 상명하달식 권위주의로 팽배하다는 거였다. 허나 이 사례에서 보듯 저자는 분권화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개발이 고르게 되는 일본을 부럽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가 정책 결정에 이토록이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본이 무작정 재량권 없다며 비난 받을 국가가 아닌 것이다. 국민여론은 무시되고 중앙에서 통제 가능한 강제력만 앞세우는 한국 보다 못하다고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충분히 지방하위조직과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결론을 이 사례에서도 갖을 수 있었다. 적어도 한국 보다는 훨씬 더 하위조직과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국가일 것이다. 저자는 관점과 논리가 두서가 없는 것이 하위의 재량권을 논하다가도 업무진행 상황에서 다수는 상위의 권한과 진행 과정에 순응해야만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태를 언급할 때 저자의 관점이 이와 같이 느껴졌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재량권은 소수의 의견과 이익까지 반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 면면에서 충분히 깨닫게 되는 것은 저자가 거듭 언급하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 경쟁상황 하에서의 효율적 이윤창출을 이루는 것이 저자의 지상의 목표로 보이더라는 말이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재량권에는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 있는 압제 가능한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한 의지가 저자의 논리 전개 곧곧에서 느껴졌다.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재량권은 줘 봐라 하지만 소수의 의사 따위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무시되어야 당연하지 않은가? 이딴 논리가 이 책의 저변에서 흐르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저자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했어야 할 분이지 정치학 전공자는 아닌듯 하다.


그저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보아도 국민여론이 무시되고 결정권자의 추진력만이 효율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에너지 자원개발 투자와 4대강 사업의 경우와 같이 결정권자의 아집이 그의 결정으로 인한 되돌리기 어려울 손실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지속적인 세금낭비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결정권자의 독재적 업무추진이 효율적이라는 것 자체가 심각한 오류이다. 다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전제가 바탕인 편견이다.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합치되는 합리적 결론은 결코 아니다는 전제에서야 독재를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사람은 바보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소수라도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 감정적 의사만이 아니라 논리적 이해관계도 충분히 고려한 판단을 한다는 말이다. 국민정서, 해당 지역민의 정서, 공공의 이익과 함께 소수 집단의 이익도 고려한 결정을 타협점을 찾아내 이끌어낼 수 있는데에서 리더십이 드러나는 것이라 본다. 독재는 덩치 큰 아이가 자기 보다 작은 아이를 때리면서 괴롭히는 것, 원시인이 자기 보다 약한 생명을 짓밟으며 지가 원하는 대로 빼앗는 것,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통제하는 것 딱 그런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지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그것이 너희를 위한 것이다는 따위의 억지주장은 자기합리화 그 이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갑질이라 정의해야 옳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어이없는 의사결정 지연이나 긴급상황에서도 이해불가할 정도로 늦장 대응하는 부정적 사례를 재량권 없는 조직문화의 폐해로 언급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및 원전 사태'를 들어 이렇기 때문에 일본의 상명하달식 권위주의 체계가 비능률적이라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 사례의 전개를 보면 저자의 관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제 1원자력 발전소 사태가 발생하였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총 18,465명인 피해규모가 적지 않은 재난이었다. 헌데 인명피해가 이렇게 있기까지 한번 지나쳐간 자연재난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인데... 사실 이후 내용을 읽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의 피해에 늘 노출되어 있는 일본이 아닌가? 한반도로 오는 지진과 해일을 막아주는 자연산 방파제라는 우스개도 있을 지경인데 말이다. 그런데 자연재해 피해를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는게 순순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재난대응 매뉴얼이 완벽에 가깝도록 갖추어져 있고 모의 대피 대응 훈련 등을 거듭해 인명 피해가 있더라도 더 확대되지 않을 대비가 갖춰져 있었어야 정상인 것이지 않나? 재난 다발지역에서 이미 시행착오도 몇 천년 동안 숱하게 겪어봤을텐데 피해규모가 확산된 대응이라니 납득이 안되었다. 


어쨋건 3월 11일 발생한 이 재난에 3월 19일이 되어서야 피해지역 비상물자 공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사태의 원인이 재량권 없는 공무원들이 회의에만 1주일을 허비했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태가 하위조직의 재량권 없음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건 일본 내각(한국으로 치면 정부)에서 해당 피해지역에 임시가설을 건설하는데 8월 15일 오봉(한국으로 치면 추석)까지의 기한이 걸린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1만 8천 명하고도 몇 백명의 피해자가 속출한 지역이라면 내진 설계가 아무리 뛰어난 일본이라한들 건물 붕괴와 주거지 수몰 피해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경에 피해지역민들이 대피할 임시거처 건설에 5개월이나 필요하다고 말했다는게 선뜻 납득 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11년 7월 25일과 11월 6일에 마저 NHK는 미야기겐의 분노를 방송으로 전했다고 한다. 정부의 대응에 분노한 지역민들은 스스로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지원단체들에 도움을 호소했고 전국 각지의 비정부단체(NGO)로 부터 도움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 지원으로 나까야마미라이(中山未來)道 1.5km를 복구했다고 한다. 도대체 일본 같은 재난 다발지역에서 어쩌다 이런 늦장 대응을 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쨋건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일본인들이 정부의 늦장 대응에 대해 어떤 노골적 반발도 보이지 않았다며 한국에서라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책임을 떠넘겼을 거라고 일본 국민의식과 한국 국민의식을 평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진일보 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정치문화가 아닐 수 없다" 며 결론 지었다.


아마도 일본식 순응성과 한국식 비판의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 지경인 피해 상황에서도 정부에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 국민성과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비판하고 지적하고 대응해야 개선되는 것이지 닥치고 찌그러져서 바뀌기만을 고대한다고 변화가 찾아와 주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누구나와 모두가 그런 식으로 현실 수긍뿐인 조직에서는 혁신 내지는 개선이란 있을 수 없다. 때때로 혁신과 개선을 불러오는 외침은 과격할 때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 대단원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며 언급했던 "하부 조직원에게 재량권을 주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적극적으로 권한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조직 구성원은 조직의 부조리한 행정 절차 등으로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노골적으로 반발하지 말고, 잘못된 정책을 탓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니 집회나 시위 같은 국민의식 낮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주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태도를 보여 민주주의를 진일보 시켜라" 라는 것이 이번 대단원에서의 저자의 논리를 압축한 것이라던 말을 되짚어보아도 될 듯 싶다. 


일본의 재량권 없는 조직사회는 복지동안(伏地動眼)만을 강요한다며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를 언급하는데 적절한 사례 제시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2008년 미국 미시건주의 77세 여성이 도요타 산 캠리 자동차의 가속기 결함으로 사고사하며 국내외 고객들이 집단 소송이 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도요타가 가속기 이상을 인정하고 자발적 리콜을 결정하고 실행한 것은 무려 2011년 1월 21일이 되어서 였다. 전세계 700만대의 대규모 리콜이긴 했지만 상황 대처가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 도요타의 브랜드 이미지가 점진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손상되었을 것이지 않나? 게다가 미국 운수성에서 해당 자동차 기종의 기계적 이상을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이 2011년 2월 6일이라고 한다. 결국 해당 국가에서 자사제품의 결함을 조사하고 결과 발표 날짜가 임박해서야 리콜 결정을 한 것인데... 최악만 피했을 뿐이지 최악 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는 대응이었다. 


이런 경우가 거듭된다면 아직까지는 지명도 있는 일본산이라는 국가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없이 지속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40대 이상의 전세계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는 일본산에 대한 선호도와 충성도가 나름 지속 될 수 있겠지만 20~30대나 그 이하의 연령대에서는 기존 브랜드 이미지 보다는 저렴하면서 기능적으로도 손색만 없다면 특정국가나 특정기업 브랜드 이미지가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근간까지 중국산에 대한 편견이 중국산 브랜드 이미지 전체에 대한 기피성향을 띠게 했었다. 하지만 최근의 온라인 구매도를 보면 가격대비 기능면에서 (손색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월등한 중국산에 대한 구매력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기대 이상일 것이라 예측된다. 이 시대 소비자는 무조건적인 제품 충성도를 보이지 않는다. 가격과 기능, 디자인, 광고와 구매의 용이성 등등 다각도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대기업 제품이라고 경쟁력이 우위일 수 없다는 말이다. A/S나 제품불량에 대한 보상을 성가시다고 불성실한 대응을 했다간 애써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 망가지는 것도 시간 문제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제품 구매를 충성도에 맡기기도 하겠으나 자녀나 손주들의 선택을 신뢰하고 소비양상이 변화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흡한 대응 하나가 가져올 손실이 눈에 보이는 것 보다도 훨씬 더 커다랄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도요타 자동차 리콜사태에 대해 일본언론이 "경직된 조직문화가 리콜 사태를 키웠다"고 보도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만일 현지 법인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최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시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현지의 긴급 사안을 현지 최고 담당자가 결정하지 못한다면 분명 권한 위임이 실용적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하위 조직에 권한 위임이 어떤 형태로든 불가한 꽉 막힌 조직이라면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의 간소화와 신속한 의사결정 방식이라도 도입했어야 하지 않았나? 지진 등 재난에서도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에서 개선안이 없었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보고체계의 문제를 인식하게되었고, 해양경찰과 응급구조대와 각 긴급대처부서의 번호가 천차만별로 분할되어있던 긴급번호 체계를 간소화했으며, 여행선박 등의 안전 장비와 위기대처 매뉴얼에 대해 되돌아보며 국가 전체의 안전불감증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던 대한민국, 대구 지하철 참사가 터지고서야 지하철내 의자재질 등 화재시 연소되어도 유독개스가 방출되지 않도록 방화시스템을 개선한 대한민국을 돌아보니 남의 나라 문제 삼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저자 부터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스키장 건물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침몰 등을 목격했을 한국인임이 명백할텐데 남의 나라 지적을 하면서도 그런 언급 자체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망각이 금붕어급인 나라인 것이 위정자들이 특권층이나 지원하며 대다수 국민들에게 나라 비판하고 위정자들을 비난하는것도 제재할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 대단원은 '매너리즘에 갇힌 사회'라는 제목인데 한국 이야기가 아닌가? 딱히 일본만의 문제라 볼 수 없을 만치 한국 이야기다. 위기대응매뉴얼에 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되는데 저자가 비판하는 그 일본에서의 안전사고와 한국에서의 안전사고를 인구비례를 고려하지 않고 보더라도 한국이 더 빈번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아마도 그건 근거도 없이 하는 억측에 가깝긴 하지만 한국에서 39년 살아본 1인으로서 당연한 결론일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역대 재난사고 사례를 검색만 해도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다. 일본에서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테러 등 누군가 일으키는 의도적 사건의 경우는 있다해도 자연재해를 제외한 인적 재해랄 수 있을 사고가 과연 한국만큼 다발할 것인가 의문이다. 


이번 단원에서는 매너리즘에 대한 도전이라며 종신고용제도의 일본에서 비정규직이 38%에 육박하도록 일반화되면서야 내부고발자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 기간을 구성하는 한요소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기업을 보는 듯한 일본에서, 단점으로나 여길 비정규직이 조직 구조상의 누적된 단점을 개선할 국면의 전환점을 가져오는데 부분적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에서는 장단점을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일인가 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대단원은 종신고용제도와 연공서열제에 대한 비판이다. 종신고용제도는 앞서 논했듯 일본의 경우 2015년 2월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 중 38% 비중을 차지하는 터라 이미 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2013년 8월 기준으로 전체 고용자 중 22.4%가 비정규직이라 한다) 다만 저자의 논리는 기존의 고용된 직원들을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해고하려해도 일본 내각의 권고사항과 기업 브랜드 이미지 저하를 우려해 순조로운 해고가 어려운 관계로 되려 비정규직이 대량양산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종신고용제라는 장기고용관행에 대해 일본인들이 장점이라 여기는 것을 나열했던데 짧게 기록해 보겠다.


첫째, 고용안정으로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낳는다. 둘째 기업에 대한 충성심 즉, 애사심을 낳는다. 근로자들 간 '운명공동체적 의식'을 배양하여 일체감을 높인다. 셋째, 장기 고용을 통해 근로자 간 정보 교환, 공유, 축적이 가능하니 협조 관계(팀 워크), 신뢰 관계가 구축 되어 생산, 경영, 연구 개발 등에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넷째, 근로자의 기능 형성, 특히 기업 특수적 기능 형성을 촉진한다. (수시로 근로자가 교체되면 해당 분야에서 숙련된 경험자의 유지가 어렵다. 또 새로운 취업자에게 해당 업무 기능을 교육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거듭 소요된다는 단점이 크다.) 다섯째, 고용 안정은 실업 발생을 막아 사회적 대립, 긴장을 완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근로자의 소비 수요 감소를 막고 경기를 지탱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외에도 기업이 장기 고용으로 갖는 이점도 있는데 P127에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그건 건너 뛰고 위에 큰 글씨만 보더라도 기업의 장기 고용은 사회 안정적 역할을 충분히 함을 알 수 있다. 우선 다른 것을 다 스킵하고 보면 내수의 안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근로자들 생활의 안정을 지지해야만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말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경제학이 아닌 정치학을 전공하신 박사님께서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하며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논한다면 그래서 노동 유연성이 반드시 바탕해야 한다면 잠시만 기다리시라 말씀 드려야 겠다. 금새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적용되어 산업 노동자, 사무직 근로자, 행정 공무원, 법조인, 금융업 종사자, 서비스업 시간제 종사자 등등 현재 존재하는 직업군의 대다수가 실직자가 되는 초대량실업자 양산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테니 말이다.


노동 유연성은 저자가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정치학 전공자라면 현재는 일본의 문제를 지적하며 기업 경영 방식일뿐인 수익창출을 위한 효율성이나 논하고 있을 시절이 아니지 않은가? 초거대 국면 전환을 앞둔 이 시점에 절대 다수의 대중이 살아남을 방법이 무엇일지 살아남은 이들이 살아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방법은 무엇일지에 주목해야 하는게 아닌가? 


저서를 읽고 있자니 종신고용을 문제 삼으며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일본의 어떤 대졸자나 실업자라도 의지만 있으면 취업 할 수 있을' '구인율 1.2'인 일본의 상황에서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외침이 아닌가 싶기만 했다. 게다가 저서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취업을 원하면 언제든 취업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결코 취업의 의지를 갖지 않는 일본의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족들은 2012년에만 63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종신고용제가 사회문제일 수 없으며 노동 유연성이 기업에게 그렇게 절실한 사안이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저자가 제시한 2015년 9월 기준으로는 7.9%였었다는데 당시 최악인 상황이었다고 저서에서 언급 했다. 헌데 2016년 현재 2월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은 12.5%라고 한다. 청년 실업자 수 56만명인 실정이다. 약 1억2천7백만명 인구의 일본에서 63만명의 청년실업자 수와 5천 2백만명 인구의 대한민국 56만명의 청년 실업자 수가 누가 앞자리가 6이고 누가 앞자리가 5인지에 따라 갈릴 수위도 아니지 않은가? 청년 실업자 수를 나날이 신기록 갱신 중인 상황에 일본을 지적할 여유라니 일본인들이 알면 비웃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아베총리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무제한적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가 아베 총리의 의도와는 달리 내수를 확대 시키기는 커녕 민간의 부채 증가와 소득 격차 및 양극화를 확대하고 내수는 되려 위축 시켜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고 말이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또는 1%로 전락했다고 한다. 아베노믹스는 재정지출을 제2의 정책수단으로 규정했다는데 10년 간 200조엔의 재정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고령층의 소비 유도를 위해 각종 세제 혜택을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능력이나 의욕상실로 생활보호 대상자가 된 인구가 2014년 204만명이라고 한다. 국가의 전체 복지부담은 연간 4조엔이라는데 일본 국채 발행을 부추기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 바로 복지 비용의 증가라 한다. 2013년 가을 일본 신주쿠의 한 NEET족에 대한 정부 복지비용 지출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현금 비현금 지급액이 연간 400만엔을 넘었다고 한다. (일본의 대졸 신입 사원 초임이 20만엔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노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라고 한다. 일본의 노후 연금은 한국과 달리 젊은 세대가 지불한 연금으로 노인세대가 혜택을 누리는 방식이라는데 인구대비로 보면 젊은 근로 가능자들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형국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의 결혼 기피, 낮은 출산율(부부 당 1.4명)로 인구 감소는 불가피하며 연금고갈은 시간 문제라고 한다.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제도에서 출산율이 감소하니 1명의 근로가능 세대가 여러명의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조리한 구조가 되어 버리는 거다. 게다가 취업을 거부하는 세대 또한 늘고 있고... 


특정계층 맞춤형 정책, 양극화, 고령화, 실업률, 정부와 기관 그리고 가계의 부채 증가, 복지부담 상승, 재정지출 확대, 군사적 불안정성 증대... 일본 이야기인지 한국 이야기인지 모를 수준이다.


사회 근간은 흔들리고 있고 이와중에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적용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초대량 실업자를 양산할 시기를 앞두고 경제대공황과 지역권별로 대대적 무력 충돌과 인공인지 자연적인 것인지 재해들이 넘쳐나고, 전염성 질병 전파까지 겹쳐 사망자 수 추산 불가 상태에 이른다면 아마도 우리는 소설 속에 있는 걸 것이다.


무한에너지원이 공개되고 식량자원의 대량 생산 기술력을 확보한다고 해도 또 유전자 조작 등으로 식량 확보와 공급이 차원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 기술력으로 질병치료가 획기적이 되어 복지부담이 준다고 해도 근로 활동에 투입되지 않을 비생산적 인구의 복지부담을 떠안아야 할 초특권층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들에 대응해 우리가 할 수 있을 선택은 무얼까? 


싸우던가? 그냥 죽던가? 다른 별이나 다른 차원으로 떠나던가? 시간을 되돌려 이전 시대로 가서 살던가? 소규모 부족 생활을 구현하며 자급자족하던가?


그나마 성공 가능성 있는 선택은 세번째 아니면 다섯번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