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SIC 시리즈 3
슬라보예 지젝.레나타 살레츨 외 엮음, 라깡정신분석연구회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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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읽으며 느낀 것은 본서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라도 지니고서 들어서야 할 전문서라는 것입니다. 대중들을 위한 입문서라고는 절대 볼 수 없을 저작입니다. 저는 제가 난독증이 도진 줄 알았습니다. 2009~2011년 즈음까지 난독증 (진단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스스로 자각하기에 심각한 난독증이었다 느끼는 것이지요. 책을 읽기는 커녕 들여다 보고 있지도 못했으니까요) 증세를 느꼈었는데 마치 그때 같아진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라깡의 정신분석학에서의 용어들은 하나의 암호 수준이었습니다. 암호해독관의 통역이 없이는 이해불가인 경우랄까요? 이를테면 "거시기가 지금 거시기해서 거시기하기가 거시기하니까 거시기가 거시기하면 내가 거시기할게!" 이 말을 "남편이 퇴근해서 지금 통화하기가 불편하니까 남편이 샤워하거나 잠들면 내가 바로 전화할께!"라는 외도하는 여성이 불륜남과 통화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려면 통화할 당시의 배경지식 이전에 '거시기'란 표현이 다양한 어의를 지닐 수 있음을 우선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을듯 합니다. 

타대상이란 말은 뭔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타는 '상징 질서를 지칭하며 상징 질서의 총체적 거미줄, 성문화되지 않은 암시적 규칙의 난해한 망도 포함'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애초에 라깡 씨가 용어를 정의할 때 이는 대타(le grand Autre, 영어로 big Other)란 하나의 용어를 다의적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었다 싶었습니다. 상징이 이해와 오해를 넘나들며 교류되고 치환되는 체계에 대한 용어, 오해의 여지를 묵살(무시)한 '상징의 모호한 교류(치환)'를 이르는 용어, 암묵적 관행을 지칭하는 용어 등으로 세분화해서 개개의 용어로 정의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신분석이란 실적용 의학용어를 철학적 용어 마냥, 함의로써 해석할 여지를 둔다는건 (대타 이외의 다른 용어상에서는) 실제 환자를 처음 진단한 의사나 심리상담가의 진단서를 독해할 타 의사나 상담사들 간에, 다소 이론(異論)이 난무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으니 말입니다.

대타자, 소타자, 빗금친 주체, 주이상스, I와 O가 결합한듯한 기호, $◇I와 O가 결합한 기호 옆에 ⒜... 이런 기호들로도 정신분석 용어를 삼는 것이 라깡 씨 스타일이더군요. 이래서는 독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제가 독서를 포기해서 그렇지 그이후 장을 펼쳐보니 이후에도 이해 불가와 판독 불가의 용어들은 난무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체로서 우리가 가짜(postiche)를 쓰는 방법인 'I와 O의 결합 기호'가 될 수 있고 가짜(postiche)에서 놀고 거세된 남성 안에서 A를 체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소문자 파이(phi), 즉 'O에 빗금을 친 기호'⒳로 기입할 수 있다」

이 말이 당최 뭔 말인지 판독 가능한 날이 오려면 아마도 여러 날을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몰두해야 할테지요.
앞으로 본서를 읽기 위해 라깡의 정신분석학의 핵심개념을 설명한 저서들, 입문서에 해당하는 라깡의 정신분석학 저작들, 라깡의 정신분석 용어 사전을 읽어볼 작정입니다. 꽤 여러 날을 몰두한 이후에 본서에 도전해야 암호문의 집대성 같은 본서를 이해 이전에, 독서라도 할  여지가 있을듯 합니다.


그나마 정신승리 할 수 있을 여지라면 '라깡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신경증적 증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보시는 분들도 약간은 이 증상을 공유하리라는 가정에서 친밀감을 느낍니다.' 라는 역자 이수연님의 서문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건 신경증이 없어서야!" 라고 정신승리하며 미소 짓다가 어느 순간 본서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씩 일렁이고 있음을 깨닫고서 정색하게 되었습니다. <성화>라는 본서의 목록을 보고서 신경증적 증상이 이는 분들이 있다면 입문서들 부터 차분히 정독하고나서 본서에 뛰어들라 당부드립니다. 아니면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서 형사역의 송강호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의심대상자 역의 박해일씨 눈을 쳐다보며 비내리는 기차길에서 읊조리던 그 대사를 되뇌이게 될지 모릅니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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