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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 해학 - 본성에서 우러나는 유쾌한 웃음 ㅣ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6월
평점 :
1권에서 한국의 미학에서 언급한 한국 문화의 특징을 저자는 접화 接和라고 하였다. 그리고서 한국 미의식을 신명, 해학, 소박, 평온으로 분류하여 1권에서는 신명을 다루었다. 2권인 본서에서는 두 번째인 해학을 다루는 데 보통 풍자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해학의 정의를 저자는 징벌과 포용을 함께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문화 접화를 강압적 행위인 굴복시키는 행위와 다르게 서로 어우러지며 하나되는 것으로 설명하며 이는 전쟁이나 싸움이 아닌 놀이로써 주지시키고 있다.
서로 즐기며 함께하는 것이 놀이이니 서로를 죽이려 하고 파괴하고 쓰러뜨린다면 이는 이미 놀이의 상태를 벗어난 것이다. 접화는 어디까지나 놀이의 경지인 것이다. 이를 고구려 귀면 문양과 백제의 귀문전, 통일 신라의 귀면와를 중국의 짐승문과 도철문, 일본의 귀면와, 인도의 키르티무카 문양과 비교하며 중국의 문양이 무서움을 근간으로 하고 일본 문양이 신경질적이며 날카로움을 특색으로 할 때 한국의 문양은 무서움과 친근함을 동시에 주는 것으로 해학의 요소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장승도 이러한 해학을 담고 있고 그리스 조각상의 아르카익 미소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리스의 미술에서는 이것이 정형화되어 창에 찔리는 그림에서도 아르카익 미소가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며 정형화된 도식인 서양의 그것과 한국 미술에서 그려진 미소는 달라 한국 장승들은 웃고 있더라도 다 지역적으로 다른 양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교 미술에서도 차이가 드러나는 데 한국에서 사천왕들은 무서움과 친근함이 동시에 표현된 반면 중국의 사천왕은 근엄, 위엄, 매서움으로 표현되고 일본의 사천왕들은 매섭고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서양 로코코 미술에서는 유럽 귀족들의 환락과 그에 뒤따르는 공허가 표현되었는 데 비해 한국의 민화에서는 민중들의 일상에서의 해학이 담겨있고 그 가운데서도 신윤복의 그림에는 사회적 금기와 긴장을 다루어 같은 에로티시즘이라도 한국의 그것은 다르다고 한다. 귀족의 일상을 다룬 것과 민중이 귀족의 금기를 웃어넘기는 것을 다룬 바는 분명 다른 빛깔로 비추어진다.
민중의 두려움을 막아주는 부적과 같은 전래인 한국의 처용과 중국의 종규도 색깔이 엄연히 다른데 처용은 징벌보다는 포용으로서 귀신 두려움을 샀고 종규는 임금의 배려에 대해 갚음으로서 공포로 작용해 귀신을 살벌하게 물리치는 전승이 있다. 중국에도 은혜 갚음이라는 은유가 담겨있지만 그 갚음의 양식이 다른 대상에 대한 처참한 살해로 이어지는 것과 한국의 처용처럼 죄지은 대상을 포용함으로써 귀신도 감복하게 하는 바는 엄연히 다른 게 아닌가 싶다.
호랑이 그림도 중국의 그것과는 다르게 익살맞은 모습인 한국화는 무섭다는 개념을 모르는 민족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그림에서 호랑이의 수염을 물어당기는 까치를 그리고 있는 것을, 까치로 상징된 민중이 호랑이로 상징된 폭정을 일삼는 탐관오리를 징벌하는 은유가 담겨있다며 해학의 하나로 해석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의 요구로 한국에 관왕묘가 설치되고 관우의 그림 등 삼국지의 일화들을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는 데 이에 모두 익살맞고 캐리커처와도 같은 그림들이 동원되어 한국의 해학이 담기기도 했다. 한국화에서 자연도 이러한 유희적 모습으로 탈바꿈되기도 했고 이러한 해학은 근현대 미술로 이어졌다고 한다.
사실 놀이 형식이 경쟁에서도 느껴지는 게 한국의 그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경쟁과 놀이를 일체화시키거나 경쟁에 놀이의 요소를 담으려는 노력이었다고 보이기도 한다. 경쟁 당사자인 본인들은 긴장감이 더 컸을지도 모르지만 관객(시청자)들은 그 경쟁의 양식에서 출연자들이 즐기기를 바랬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많은 요소들을 전쟁이 아니라 놀이로만 보기에는 파괴되고 되돌릴 수 없이 되는 경우들도 없지 않다. 자주 언급한 카라 멤버 충원을 위한 방송이었던 베이비카라의 소진 양의 경우도 그렇고 말이다. 또 다른 사례는 스포츠계의 성폭력 이야기들과 같은 경우나 선수 선발 비리 같은 경우들처럼 사회에서는 접화의 양식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경우들도 많아 이런 일들에 대한 풍자는 해학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지 않나 싶다. 해학은 기본적으로 악의가 느껴지지 않거나 완화될 여지가 있는 은유나 풍자의 대상에 한정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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