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 -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들의 역사
이준호 지음 / 유월서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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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 생긴다거나 역사를 통해 사람과 삶을 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흔히 접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개 그 폭과 깊이가 헤아리기 힘든 역사의 면면은 다가서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자신이 절실히 느끼는 삶의 주제와 닿는 역사는 무엇인지 평소 헤아려 보며 사는 분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개 부와 경제, 전쟁 또는 지리라는 주제로 많은 분이 대중 역사서를 찾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에게 와닿는 역사의 주제는 무엇일까? 지금과 같이 다음 팬데믹을 우려하고 각지의 전쟁이 확전될까를 염려하며 경제 불안이 가중되는 게 걱정인 시대라면 생존이 아닐까?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생각이 잦은 분들에게는 경제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 그리고 말 그대로의 생존 자체가 화두가 될 수도 있을 시절이다. 그런 까닭에 본인 역시도 [생존자들]이라는 본서의 출간과 함께 다른 미사여구를 고려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 책에 이끌림을 느꼈다.

 

본서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이 겪은 전쟁의 참상과 그들의 생존기는 처연하기도 무겁기도 했으나 전쟁이 무언지 그리고 전쟁이 그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독일의 점령으로 900일간을 살육과 폭력, 죽음의 공포에 놓였던 레닌그라드 시민들과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1시간여의 클래식 음악 연주를 방송한 소련의 선택 그리고 굶주림으로 연주 연습 도중 연주자들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이어지는 데도 연주를 감행한 연주자들의 역사는 처연함과 장엄함 그리고 안타까운 가운데 희망이 움트는 듯한 환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군이 독일의 각지를 점령하게 되었을 때 소련 군인들이 보여준 집단 강간이라는 복수의 모습은 그들 소련군과 독일군의 행태가 오러랩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망과 절망으로 이르게 했다. 본서 내용을 벗어나 더 나아가 보자면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 강점기하의 일본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사건,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 실험 등도 인간에 대한 실망과 절망을 하기에 충분한 예시들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원해서 잠입했던 폴란드군인 비톨트 필레츠키의 사례나 독일군의 수용소인 폴란드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저항하고 탈출한 알렉산드르 페체르스키의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이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도 한다는 인간 승리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종전 후 폴란드의 이념 갈등으로 같은 수용소 출신의 폴란드 수상에게 사형당하는 비톨트 필레츠키의 말로 그리고 소련군의 독일 각지 점령시 독일 민간인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야만과 침탈 그리고 종전 14년 후 피해 여성의 고발 회고록에 대한 당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생의 허무함과 부조리 그리고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함선이 침몰하는 속에서도 승선원들과 망망대해에서 상어 떼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찰스 맥베이 함장이 생존했다는 이유로 거쳐야 했던 억울하게 책임을 모두 전가 당한 판결 역시 사람과 삶에 대한 착잡함과 비애를 갖게 했다.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야만과 폭력과 인권 유린을 감당하다 못해 일본군이 식인을 하기 위해 마구 살육하는 사건들 마저 감당하고도 살아남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일본과의 우방으로서 관계마저 책임을 다했다. 여기서 인간 정신의 승리로 마무리 되나 싶었으나 다시 독일군의 고문 전문가이자 살육가인 클라우스 바르비는 유대인들을 선별해 살인하는 수용소로 보내기 위해 유대인 어린이들이 있는 고아원까지 급습했다고 한다. 유대인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강간하기까지 하며 전방위적으로 그 자신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이 인물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하게 하는 건 그의 행위만이 아니다. 종전 후 그런 그를 임용하고 국제재판소에서 전쟁범죄로 그를 검거하려 하자 그를 도피하도록 도운 미국 정부는 한층 더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악마도 이용하고 악마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것 그게 인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서는 생존이란 화두만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역사란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인간 스스로에게 다양한 정서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잘못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는 말들은 많이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만 살아봐도 인간이란 같은 잘못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교훈과 정서적 동요를 다시 또다시 새겨야 할 일이다. 반복이 끝나기를 다짐하면서 말이다. 개인으로서는 무력한 것이 전쟁이라 해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새겨야 한다. 우리에게 그칠 힘이 갖춰지는 날까지. 그런 의미에서 읽고 새길 가치가 큰 저작이라 생각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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