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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 인간 - 단순한 회복을 넘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회복탄력성의 힘
알리아 보질로바 지음, 손영인 옮김 / FIKA(피카) / 2024년 11월
평점 :
본서는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책이리라 짐작하고 읽게 되었다.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건 책의 소개 카피인 ‘단순한 회복을 넘어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회복탄력성의 힘’이라는 문구도 오해에 한 몫을 했지 않나 싶다. 독서 후 저자가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Resilience 즉, 회복탄력성으로 주로 번역되는 ‘회복력’이지 외상 후 성장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나눈 장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인식, 소속감, 호기심, 추진력을 회복력의 주요 구성 요소로 보고 있다. 이들은 에디스 시로의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에서도 언급되는 외상 후 성장에서도 중요히 다루는 요소들이지만, 저자의 서술 전체에서는 외상 후 성장을 다루고 있다는 감상보다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해 과제를 수행해내는 힘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자신이 뉴질랜드 특수부대에 장교로 근무하며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에서 빠르게 회복하여 과제를 완수하는 과정을 보며 심리학자로서 강력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하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보인다. 가장 인상적이던 사례가 가장 친한 친구와 대화 중이던 상태에서 적이 난입해 친구인 다른 병사를 죽이고 그 적도 치명상을 입었는데 친구가 죽는 걸 바로 눈 앞에서 감당한 병사가 그 상황에서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그 적을 치료했다는 내용이다. 이 군인은 이후 강력한 회복탄력성을 보이며 다음 업무들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회복력이라는 것은 이렇게 트라우마 상태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가 다시 회복하며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로 성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성장이나 성숙이 아니라 업무 수행에 영향을 주는 진행력 다시 말해 일종의 추진력인 것이다. 일상적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것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회복력과 외상 후 성장의 차이가 와닿지 않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다면 어느 날 자기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여성의 집에 여러 범죄자들이 들이닥쳐 이 여성에게 처참한 폭력을 사용하며 윤간하고 나간 상황이라고 치자. 그 일이 있은 직후 여성이 넋나간 듯 있다가 욕실로 가 씼고 나와 바로 출근을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하는 건 회복력이자 억압이랄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겪고 난 직후 여성이 삶의 의미를 잃고 괴로워하며 사람들과 만나는 자체를 두려워하며 세상을 떠나버렸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여성의 사연을 접하고 이렇게 있지 말자 나만큼 고통스럽고 나처럼 쓰러진 여성들을 위해 힘을 내자며 성폭력 피해 여성단체에서 피해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이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사회가 피해자들을 2차 가해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어떤 제도적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리고 힘을 다한다면 이건 외상 후 성장이다. 회복력이 있는 이는 강해 보이지만 기존의 위험을 드러나지 않게 미뤄두거나 살짝 보강해 대응한다. 외상 후 성장을 이룬 사람은 기존의 가치관, 세계관의 탈바꿈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리모델링 정도가 회복력이라면 허물고 축대와 골조부터 새로 지어올리는 것이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물론 외상 후 성장에 이르는 것도 주제에 약간은 담고 있지만 빠르게 일상적 상태로 돌아오고 성과를 내는 데에 주력해 서술하고 있다. 세상이 전쟁터라면 부서져 괴로워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줄 입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괴로움으로 가득찬 나날도 거치는 것이 인생이다. 아프다고 자각하고 아프다고 소리칠 순간이 주어지면 손실이라는 식의 해석도 가능한 회복력 저작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기는 다소 난해하지 않나 싶다.
본서의 내용은 일상의 소소한 스트레스일 때는 적용할 만하다. 그러나 완전히 부서져 세상을 버리고 싶은 순간에 적용하기는 난감하다. 이 책대로 하자면 그런 붕괴와 파괴의 순간에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만이 작용해 아주 오래 정신적 타격이 지연되며 장기 트라우마 상태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상의 소소한 괴로움 정도가 있는 스몰 트라우마인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매뉴얼이 될 수는 있어도 트라우마로 당장 모든 게 무너진 사람에게는 권할 만하지 않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