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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
짐 터커 지음, 박인수 옮김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드라마인 신혜선의 [이번 생도 잘 부탁해]나 마크 윌버그 주연의 영화 [인피니트]를 보면 자신의 전생들을 모두 기억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전생의 자신에 능력들을 모두 구현해낼 수 있어 다방면에서 실력과 경험치가 출중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전생에 전생에 전생 무수한 전생들 속에서 자신의 인연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난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신혜선이 연기한 반지음을 보다가 문득 아련히 생각하게 됐다. 무수한 전생에서 나를 사랑했던 이가 그 전생들을 다 기억하고 태어나 있다면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 이가 정말 있다면 난 말하고 싶었다. 어서 날 찾아와 달라고 아직도 난 널 기다리고 있다고.
이런 상상이나 상념에 빠지게 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에 우리가 빠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후세계와 환생에 대한 원형적인 하나의 상을 우리 내면에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서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는 그런 공상 같은, 인간이 가진 원형 중 환생에 관한 부분을 다룬 저작이다. 본서의 저자 짐 터커는 이안 스티븐슨이라는 환생과 전생의 기억 연구에 개척자이신 분의 제자로 버지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및 신경행동과학과 부교수이자 인지연구 소장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이었던 짐 터커는 이 분야에 대해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저작을 읽고 관심과 의문을 가지게 되어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연로하셔서 1990년대 은퇴하시고 짐 터커 박사는 본서를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그간 연구와 저작들을 인용하기도 하며 2005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2007년 작고하셨다)
본서의 소개 카피들은 전생 기억에 관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본서에 대하여 ‘과학적인 연구’라고 평가하는데, 전생의 기억에 대한 주제라고 하지만 무속인이나 심령가의 막연한 뜬구름 잡는 추측이나 가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연구다 보니 가설과 검증에 있어 체계적이고 치밀하려 노력했다고 생각된다. 본서의 독자들 가운데 자신이 상식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분들 중 일부는 왜 검증이 더 쉬울 현재보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의 연구로 저술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의혹이 언뜻 스쳐갔으나 의문이 금세 해소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인 현재는 컴퓨터, 스마트폰, 무엇보다 SNS등이 발전해있다. 검증이 쉬운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기록을 누구나 엿볼 수 있는 시대이기에 거짓이나 조작이 더 순조로울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타인의 기록을 쉽게 엿볼 수 없는 과거 사례의 연구가 더 신뢰할 만할 수 있다 생각된다.
본서에서 전생 기억을 이야기하는 아기들과 아동들은, 자신의 가족 사이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경우와 지인의 자녀(태아)였는데 다시 태어났다는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자신의 전생에 부모라거나 형제라거나 배우자라거나 자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아이들은 그들과 자신 사이의 사소한 이야기들부터 형이었던 전생의 자신이 동생에게 다른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몰래 특정 기종의 권총을 준 둘만의 비밀까지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안 가서 죽게 된 여성은 얼마 후 다시 태어나 자라 6살 아이가 되었는데, 자신의 전생의 아기였던 11살 아이에게 보이는 그 아이의 절절한 모성애를 어떻게 거짓이고 연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살인 엄마가 11살인 딸이 병들자 안절부절 못하고 애태우는 심정을 어찌 조작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또 환생한 후 자신의 전생 부인에게 돌아가 결혼한 남아의 이야기도 있다. 물론 자라고 나서 결혼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전생의 자신을 죽인 이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공격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얀마에서 태어난 전생의 일본군 군인이었던 여아가 보여주는 군에 대한 집착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여아가 전생에 자신이 남자였던 걸 기억하고 톰보이로 자라나며 남성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례도 있다. 전생의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상세한지 아기가 전생의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나 손녀만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차만 있는 사진에서 어느 차가 전생의 자신 차인지를 알아보고 가족들도 꺼내보지 않던 할아버지의 유년시절 친구들과 찍은 학급 사진에서 누가 전생의 자신인지 명확히 짚어내는 수준이다. 이 시절에는 타인의 인스타그램, X, 페이스북 등을 통해 타인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라지만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서술하는 모든 연구는 1950년대의 사례부터 1980년 이전까지의 사례다. 생면부지의 타인의 사생활을 깊이 알 가능성이 없는 시대였다는 말이다. 게다가 연구자들은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와 그 가족이 이익을 목적으로 사실을 조작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전적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본서에 사례로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전생에 살해당할 때 갖게 된 상처의 위치와 같은 위치에 모반을 지닌 채 태어나거나 전생에 신체적 특징과 같은 모반을 지닌 채 태어난 아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 아이들은 다 전생 기억을 주장했는데 확인해 보면 이 아이들이 자신의 전생이라고 주장하는 사망자들의 생전 신체적 특징과 일치했다. 우연이라 보기 쉽지 않은 경우들이다. 전생과 신체적 특징을 공유한 사례들에 대해 저자는 최면을 건 상태에서 차가운 동전을 뜨거운 무언가로 인식하도록 하고 신체에 닿았을 때 화상을 입는 경우들을 예로 들기도 하며 심리적인 각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모반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심리적 각인이 현생의 몸에 모반이라는 변화를 가져오는 근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예로 들며, 뇌가 손상을 입어도 인격이 변화하는 데 뇌가 형성되기도 전에 전생이 있었으며 그걸 기억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며 비판하는 이들에 대하여, 저자는 텔레비전을 설치하면 방송이 나오며 텔레비전을 분해했다가 재조립해도 또 갓 생산된 부품으로 조립해도 방송은 나온다고 반박한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의 관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본서는 단순하게 봐도 흥미를 끄는 주제지만 흥미만으로 끝나지 않고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의문과 관심 그리고 영혼과 우주와 세상의 다차원 구조에 관한 의문에까지 이끈다. 공자께서는 귀신이나 현실적이지 않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배격했고 부처님께서도 무아라시며 나라는 것은 매순간 변화하는 것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현실 그 이상을 바라기도 하고 윤회 전생하는 나는 무엇인가 의문을 품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때론 비현실이 때론 비일상적인 의문이 현실과 일상을 살게 해주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비일상적이기만 한 본서도 읽고 사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