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집트 사자의 서
서규석 엮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평점 :
본서의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한 분으로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출간한 책들이 인류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전공만큼이나 인류학과 신화학 등에 대한 궁금증이 남달랐던 분이 아닌가 싶다. 본서는 저자분이 [이집트 사자의 서]를 국내 최초 출간할 목적으로 사자의 서에 대한 고대부터의 여러 텍스트와 다양한 루트에서 자료를 수집해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티벳 사자의 서]와 [티벳 사자의 여행 안내서]를 읽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는 자체가 명상과 영적 여정을 그리는 것이구나 판단했던 이유가 크다. [이집트 사자의 서] 또한 영적 성장과 영적 평정을 위한 안내서이리라 믿고 선택했다. 이 책이 [티벳 사자의 서]와 차별되는 점이라면 영적 성장이나 영적 성취의 방향이 아니라 주술이랄까 마법 또는 종교 의례를 통한 부활의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던 체계를 기록한 것이라는 거다.
[사자의 서]의 이집트어 원어 발음은 ‘레우 누 페르 엠 후르’라고 하는데 뜻은 ‘낮에 부활하는 장’ 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부활하는 장’이라고 한다. 태양이나 낮은 ‘라’ 또는 ‘레’라고 하는 최고 신에 하나의 측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출과 부활을 동일시하며 영생의 염원을 담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자의 서]는 도굴꾼들에 의해서는 [키탑 알 마이이트]라고 불렸고 이는 ‘죽은 자가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하는 책’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 책이 초기 이집트 연구 학자들에게 주목받고 이집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영어권 학자들은 이 책을 [book of the dead, chapter coming forth by day]라 표현했다고 한다. [사자의 서]로 불리운 계기는 렙시우스라는 학자가 이 텍스트에서 기원전 2010년경 중왕국 초기인 11왕조의 멘투호텝 파라오의 관구문을 해석하면서 [사자의 서 17장]을 ‘내세로부터 무수히 많은 날들의 낮에 출현하는 장’ 즉 부활의 장이라 명명했기 때문이다. 또 아우팡크의 주문을 ‘사자가 내세로부터 창조되어 현세로 인도되는 부활의 장’으로 명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는 앞서 말했듯 영적 성장이나 영적 성취보다는 죽을 때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는 법이 다뤄진 책이고 신들의 가호와 판결 앞에 선 영혼의 입장이 담겨진 책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집트의 영혼과 육신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게 먼저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영혼을 카(Ka)와 쿠(Khu) 그리고 바(Ba)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카’는 영에 해당하고 ‘쿠’는 혼에 해당한다. 사람의 일생과 함께하는 것이 ‘카’이고 이것이 죽은 후에는 묘에 남아있다고 이집트인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카’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모든 사물에 깃들어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영이자 정령인 것이 ‘카’인 것이다.
‘쿠’는 인간의 육체 내에 머물기는 하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육신에서 빠져나와 여행을 하고 여러 대상을 만나며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사람이 영혼과의 만남 같은 기이한 꿈을 꾸는 것은 ‘쿠’의 경험이 꿈으로 드러나서라고 한다.
‘바’에 대해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몸 밖으로 빠져나와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체내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묘지의 여신으로부터 식물과 음식을 제공받아 생존하다가 바가 다시 육신과 결합하면 부활하는 것으로 이집트인들은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시신이 썩지 않고 보존되어야 미래에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해부학과 미라를 만드는 기술이 이집트에서 고대부터 발전해온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신을 보존하고 ‘카’와 ‘바’를 묘에서 유지하다가 [사자의 서]에 담긴 주술적 마법적 종교적 의례를 통해 신의 가호로 부활한다는 신앙이 몇천 년의 긴 세대를 거치며 체계화되고 기록되어 [이집트 사자의 서]를 이룬 것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를 통해 명상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신화에 관한 관심과 분석심리학적 해석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될 만한 저작이기는 하다고 생각된다. 죽음과 영계가 궁금해서 읽겠다는 분들과 명상서로서 역할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신화적 종교 의례적 지식을 전하는 책으로서는 제 역할을 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