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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평점 :
본서는 무아에 대해, 나라는 존재적 정의가 실체가 없다는 데 대하여 심리학적이고 분석적으로 파고드는 책이리라 기대하고 선택한 책이다. 저자가 심리학자이면서 뇌과학자이기도 해서 더욱 이런 천착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분석적이기보다는 몇 가지 의제를 정하고 그에 파고든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자기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지으며 ‘서사’를 갖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자기(자아)를 서사적 연결성을 갖게 된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접근을 기억에서부터 찾는데 인간의 기억은 영상 짤이나 동영상 짤처럼 파편적으로 보고 이러한 파편들을 서사를 갖도록 편집하면서 자기가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파편적인 기억들은 서사를 갖기 위해서 선별되는데 일관된 서사와 관련 없는 기억들은 잊혀지는 과정을 갖는다. 말 그대로 선별, 삭제, 편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편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과거가 생겨나고, 현재라는 순간에 그러한 편집을 통한 과거로 자신을 인식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 또한 과거를 기반해서 짐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사적 자아’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일관된 서사를 갖기 위해서 압축된 과거에 선별을 가하고, 빈칸에는 임의로 조작된 기억을 넣기도 하며, 현재의 자신을 그를 통해 정의하며 미래로 확장해 나가는 게 자아라는 것이다. 결국 자아는 단일한 구성이 아니라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가 각기 다르며 시기별로 거듭 분화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몇 편이나 샛길로 새는 듯한 서술을 하기도 하는데 모두 다음 단락에서는 주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인간이 갖는 공감 능력을 뇌과학적으로 서술하기도 하는데, 그 단락을 읽으며 이건 웬 삼천포인가 생각했으나, 마지막 장에 가까워서 자기 서사를 재창조하는 과정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장이 왜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자기 즉 자아는 서사를 통해 구성되는 것일 뿐이며, 이 서사의 근거는 희미한 것으로 자기 서사를 새로이 구축하며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아가 근거가 희미하다는 것은, 책 중반에서 자기와 타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의 속성으로 인해, 자기 경계도 자아도 희미하다(희미하다는 표현은 나의 감상으로 남기는 것이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라는 경계가 타자와 명확히 나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받아들졌다.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라고 믿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것이라면 외부와 나의 관계는 완벽히 분리되어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이해되는 장이었다. 이렇게 뒤범벅인 자아를 또 애초에 명확하게 구성되고 고정되어 있다고 보기 힘든 자아를, 이야기를 공감하고 이야기를 자기로 인식하는 속성을 통해 재구축하는 것도 꺼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괴로운 자아상을 새로운 서사(새로운 해석으로 만들어내는 자아상)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다만 본서에서 옥의 티는 음모론에 대한 대목이었는데 저자가 음모론을 언급하며 예를 든 [계획된 전염병]이라는 저작물은 [플랜데믹]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저자의 집필 시기와는 달리 [플랜데믹]이라는 책과 영상물에서 언급된 주장들이 모두 사실이었음이 밝혀진 현재를 생각할 때, 저자의 주장이 이 책에 수록됨으로 인해 본 저작의 수준을 반감시키는 옥의 티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에서 20세기에 흑인에게 매독균을 주입해 매독에 걸리게 하고는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며 실험해왔다는 음모론이 결국 사실로 밝혀졌으며, 20세기 중반의 MK울트라라는 대중에 대한 최면 통제가 사실로 밝혀진 마당에, 음모론이란 이름만 붙이면 거짓이라는 논리가 가당치 않다고 생각된다. 코로나19와 백신 음모론이라는 미명하에 가짜뉴스로 폄하되던 주장들이 바이든 정권하에서 현 정권의 주장과 미국 청문회와 유럽 청문회 등을 통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지 않은가 말이다. 코로나19는 자연 전파라고 주장하며 중국 우한 연구소 유출설에 대해 강경하게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여론을 억압하던 트럼프 정권이었지만, 바이든 정권 중기부터는 자연 전파가 아니라 우한 연구소 유출설이 사실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또 최근 청문회를 통해 중국 우한 연구소에 미국 CDC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연구의 지원금을 지원해왔으며 인간에게 전염되기 쉽도록 바이러스를 변이시키는 기능획득 연구에도 지원금을 지원한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그보다 이전에는 백신 제조사로부터 후원금을 얼마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백신 보급에 앞장서 온 파우치 소장은 법적으로 액수를 밝힐 이유가 없다면서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당시 화상 청문회를 종결지었다. 유럽 청문회와 미국 청문회에 각각 화이자사 이사가 소환되어 화이자사가 이미 백신의 치명률이 코로나19 치명률의 30배도 넘는 3%인 걸 알면서도 대대적으로 유통 보급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음모론이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몰이해와 선입견에서 나오는 가짜뉴스인지 아니면 대중의 알 권리와 눈을 가리려는 회피와 기만의 밈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 음모론의 장만 제외하면 본서는 읽어볼 만한 저작이기도 하다. 다만 [‘나’라는 착각]이라는 제목이 불교철학의 무아론과 ‘같은 주제’에 관한 심층적 분석으로서 저술되었으리라는 기대가 충만한 분들이라면 다소 실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심리학과 뇌과학 이전에 자아를 기억과 그 해석으로 보는 저자의 정의를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자아에 대한 좀 더 넓고 포괄적이면서 깊은 분석이 전제되지는 않았기에 다소 큰 아쉬움은 남는 책이다. 그렇지만 읽을 만한 책인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