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은 없다 - 중동의 불씨
카나드연구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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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다소의 오해로 접하게 되었다. 유일신 자체를 부정하고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이성으로 타파하는 책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유대교, 기독교, 이슴람교가 믿는 신이 유일신이 아니라는 데서 이성적 사유의 단계를 그친 책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갖는 논리적 모순을 근거로 신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기보다 기독교가 믿는 신은 유일신이 아니며 악령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와 유사한 주장은 [성서의 뿌리] 시리즈를 통해 민희식 님이 거듭 야훼는 악마다라고 주장하던 것에서도 보였다. 이런 주장들에는 분명 그들 나름의 근거는 있지만 기독교 측에서도 반론의 여지는 충분하다. ‘상위 의식의 존재, 초월자의 계획을 우리의 이성만으로 가늠할 수 있겠느냐고 반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불완전해 보이는 것도 초월자의 완전한 계획의 과도기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반론은 충분히 수긍의 여지가 있는 반론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목표 완수를 위한 단계 중 과도기의 하나에서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끝내 완벽히 목표를 완수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저자의 저작을 읽으며 그간 내가 품어왔던 의문과 닿는 대목들도 있고 미쳐 사려하지 못했던 대목들도 있었기에 그에 대해 리뷰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증거 1]이라는 장에서 [우상 숭배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데 완전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숭배따위에 연연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숭배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기록한다며 그 자체에서 모순성이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로 해서 저자가 야훼는 불완전한 존재로 지역신이며 전쟁신일 뿐이며 인간을 자신의 영예와 유희를 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민이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다는 자체도 보편적인 사랑 창조주로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가져야 하는 존재이면서도 차별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류 전체의 창조주가 아니라 지역신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오랜 역사를 떠돌며 버림받았다. 애초에 전지전능한 신이었다면 왜 하나님을 버릴 민족을 선택했으며 그런 불완전함을 신적 능력으로 완전하게 바꿔놓을 수 없냐며 이는 기독교의 신이 불완전하고 인간으로부터 추앙만 받고자 하는 욕심만 내세우는 악령이기 때문이란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증거 2 원죄론의 허구성]을 보면 아비는 그 자식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으며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24:16의 말씀을 근거로 원죄라는 것이 이어져 왔다는 데 대하여 이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원래 죄라는 것은 사회공동체에서 규제적인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구성적인 원죄는 성립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원죄론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나로서도 의문이었다가 아직 기독교인이던 시절에 나름의 답을 얻었는데 간단 명료히 저의만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원죄를 지었다며 하나님으로부터 낙원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인간 문명의 모든 바가 발전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볼 때 모순적인 원죄론이지만 죄를 지었다는 처벌에서부터 인류 문명의 시작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인간의 눈으로 불완전해 보이는 것이라도 완전한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는 논리에 가닿았다. 원죄론이 없다고 나는 믿기에 예수님의 삶과 죽음도 구원의 측면이 아니라 아담 카드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전한 인간의 역량을 다 구현해낸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과 한계를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믿었다.-

어찌 되었든 저자는 원죄론을 BC 6~7세기 오르페우스교에서 유래한 것을 유대민족과 기독교가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전면 부정하고 있다.

 

[증거3 구원론의 허구성]을 보면 이미 원죄론을 부정하고 있는 관계로 당연히 원죄로부터의 구원인 기독교의 구원론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가 대속하는 죽음을 맞이했다지만 그의 죽음 이후 인간이 낙원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죄에서 벗어났다고 할만한 어떤 특이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믿음이라는 자충수를 두어 예수의 구원 능력에 한계만을 보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라며 하나님과 같다는 예수가 구원 능력에 한계를 갖는다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자력타력이라는 개념처럼 상위 존재의 능력에 수혜를 받는다 해도 자신의 노력도 더해져 자유의지가 영향력을 얼마간 행사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은가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저자처럼 기독교 논리를 따라가면서 비판하는 바와 다름없는 기독교적 논리 수긍이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증거 5 천국의 허구성] 저자는 낮은 단계의 인간 세상을 만들고 높은 단계의 천국을 만들어 낮은 단계에서 무언가를 완수해야만 일부만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 논리에 이의를 제기한다. 보편성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완전하게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을 완전한 존재로 변모시키는 것도 아니고 차별적인 구제를 하는 데 대하여 인류 전체를 창조했다는 하나님이 보편성을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종말도 심판도 없다고 주장한다.

 

[증거 6 하나님의 실수와 예수의 한계]에서는 이미 원죄론의 허구성에 대하여 저자가 주장하며 펼친 인간의 원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죄라는 논리를 펼친다. 예수의 사랑도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사랑이라고 거짓 사랑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신의 상이 배치되는 것을 근거로 세계복음화의 모순으로 지적한다. 구약을 근거하자면 예수는 이단의 왕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증거 7][증거 8]은 기독교의 죄악사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령과 은혜가 하나의 미끼로서 하나님과 예수에게 영광을 돌리고 인간을 가지고 노는 미끼 그 이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와 일신교 전체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상당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도 전반적인 기독교 논리를 룰로 인정하며 비판하는 것으로 놀이에 룰이 필요하듯 놀이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기독교의 믿음 놀이에 반대편에 있는 저자의 반론 놀이라고 할까?

 

신이 없다는 주장도 아니고 신앙에 대한 논리적 타파도 아니라 기독교 논리를 따라 반론하며 하나님이 아니라 악령이고 잡신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정도이다. 이 책은 아마 종교를 전면 비판하는 분들이 선택하기에도 애매하고 기독교인들이 종교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 전반을 알고 싶다는 취지에서 선택하기에도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 기독교 비판서 전반에 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실만 할지 모르겠다.

 

지식과감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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