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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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하기 위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다섯 감각과 그 대상과 사유와 그 대상]인 십이처는 불교만이 아니라 어느 세계에서든 인간에게는 세상을 인식하는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감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토록 절대적이지만, 비교 대상이 될 가상의 경우(인간과는 다를지도 모를 외계인의 감각 영역)를 가정한다거나 동물들이나 곤충들의 감각과 비교한다면, 과연 우리의 감각은 세상을 인식하는 절대적인 도구이기만 한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동물들의 가청영역과 인간의 가청영역의 차이는 우리의 감각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해 주고 박쥐가 세상을 보는 방식, 돌고래나 코끼리의 소통방식은 우리의 감각은 세상의 부분만을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도 만든다. 하물며 예전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백열전등의 필라멘트에 전기가 교차하는 소리를 듣지만, 성인은 들을 수 없다는 것에서도 동일한 사람에게서도 감각의 한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감각에 관한 최신 연구로는, 내가 파란색을 눈으로 보고 뇌에서 접수되는 주파수 대역과 다른 사람들이 파란색을 보는 주파수 영역이 모두 다른 양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내가 파란색을 보고 뇌에 접수되는 주파수가 있고 보라색을 보고 뇌에 접수되는 주파수가 있다면 다른 사람은 나와 똑같이 파란색을 보면서도 뇌에 접수되는 주파수가 나의 경우에서는 보라색을 볼 때의 주파수로 뇌에서 접수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의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가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서로 수긍하고 있다지만 서로가 인식하는 세계는 전혀 다른 양상일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담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철학적 화두였지만 이제는 과학까지도 대중을 그런 화두에 들어서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경험하는 공감의 세계도 분명 있기는 하다, 그것이 현실 세계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동시에 똑같은 루시드 드림을 꾸고 그 꿈속에서의 사소한 하나하나의 체험들까지 공유하는 경우는 자아초월 심리학자들이 흔히 보고 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 킹스 컬리지에서는 DMT라는 마약을 이용해 다수에 피험자들을 통한 이세계 경험을 유도해서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의 기록이 모이면서 이들이 경험하는 세계의 지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이미 거대한 한 세계의 지도가 거의 다 완성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공유하는 감각이나 인식은 뭐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일기도 하는 실제상황의 이야기다.

 

이런 의문과 호기심이 본서에 관한 관심이 일어나게 했고 도서관 도서 목록에 있는 이 책을 놓치지 않게 했다. 본서에서는 다양한 감각 이상과 해당 감각의 체계와 원리를 설명하며 어떤 질병이나 상태가 이상 현상을 불러오는지 뇌과학적이며 생물학적으로 분석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몰입하게 하는 것은 과학적인 원리 이전에 인간의 감각이 확고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표준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후각수용체 유전자 이상부터 일차 후각피질 이상까지 어느 영역에서의 다른 이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 명백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일반적이라 정의하는 경우와 다른 냄새를 맡는 경우 또 다른 맛을 느끼는 경우가 오히려 보편인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시체꽃에서 우리가 바닐라 향이라고 느끼는 향기를 맡고 홍어회에서 딸기향이 느껴지는 세계라면. 또 땀 냄새가 코코아 향이 난다면. 반면에 아기에서 비린내가 나고 샤넬 NO. 5에서 방귀 냄새가 나는 세계라면. 우리가 과연 그 세계의 사람과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을까? 초미녀에게 청소할 시기가 다된 정화조 냄새가 나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가 참아주려 해도 그 세계에서 방문한 방문자가 있다면 방문자인 그녀 자신이 우리 세계의 악취에 이미 우울증에 걸려 버릴 것이다.

 

세상이 도는 현기증으로 걷지도 못하고, 디디는 걸음마다 발이 늘 불타고 있다면, 맛 나는 무엇도 구토가 일게 하는 맛이 나고, 보고 있는 무엇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루라도 견딜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와 공유하는 세계가 동일한 세계라는 걸 확신할 수 없다 해도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감각이 우리 스스로에게 괴롭지 않을 때 살아갈 수 있을 여력이 있을 것이다. 공유할 수 없는 세계라 해도 괴롭지 않는 것이 그보다 우선하는 바탕이 아닌가 싶다. 본서에서 오감 각각과 균형 감각 등에 대한 이상 감각을 하나하나 예를 들다가, 이 모든 감각 이상이, 우리가 보통이라고 하는 상태가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통과 괴로움을 불러오는 상태는 아니어야 한다는 감상을 불러올 때쯤, 공감각의 예를 든다. 본서의 영문 제목과도 같은 들리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는 단어들의 맛을 느끼는 단어의 맛을 보는 남자의 사례나 모든 발음 자체가 시각화되고 음가의 선율 하나하나가 색채로 감각되는 여성의 사례는 우리에게 감각이란 것이 확고하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도 했다.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라거나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우주 인식의 기준인 감각이 이토록 유동적이고 비고정적인 것인가 하는 감상과 그럼에도 감각이 없다면 우리는 세계를 어찌 분별하며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동시에 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다채로운 감각 이상의 경우가 해당 증상자 낱낱의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각 감각이 이루어지는 체계와 이상 증상의 원리를 밝혀주기도 하는데 한 명 한 명의 사례와 함께 다가와 제법 밀접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원제가 감각의 거짓말보다는 더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제목으로 독자에게 선보이기보다 문제의식을 지닌 책처럼 제목을 정하다 보니 대중성이 다소 떨어진 경향은 있지만 진지한 문제의식만큼이나 재미도 있는 책이다. 감각과 감정이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자각하는 일진일 테니 스스로가 궁금한 대다수에 사람들이 감각이나 감정에서부터 알음알이를 시작하고 싶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행이 실천이라면 이론은 감각과 감정을 알아가는 데서 시작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 분들께서 읽어 보실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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