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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평점 :
이 책을 출간 이후 눈여겨보기는 했었는데 독서 우선순위에 크게 있지는 않았던 책이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다. 무아에 대한 관점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때가 있어서 자아에 대하여 논하는 이 책에 다소 주목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는 공학을 전공한 과학석사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며 뉴사이언티스트라는 과학지의 부편집장 출신의 과학 저술 프로그램의 초빙 에디터라고 한다.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본서처럼 자아에 대해 고찰하며 돌아보는 철학, 심리학, 정신의학, 뇌과학, 신경과학 등에 대한 저술에 특화된 인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본서는 자신 또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죽었다고 여기는 ‘코타르 증후군’으로 시작해 자기서사에 대한 붕괴가 커나가는 ‘알츠하이머병’, 자신의 신체에 대해 거부감과 적대감이 커가는 ‘신체통합정체성장애’, 무엇이 자기이며 이곳은 어디인지 의문을 품게 되는 ‘조현병’, 자신이 낯설어지는 ‘이인증’, 자기와 세계가 단절되는 ‘자폐스펙트럼’,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자신의 경험이 불확실해지는 ‘유체이탈’이나 ‘도플갱어’, (수행시에 자극받는) 뇌의 순환 체계에 과도한 자극이 이루어져 신비체험과 유사한 경험을 하는 ‘황홀경 간질’ 등을 통해 자아란 무엇인지 궁구해보는 과정을 갖는다.
이 여정에 심리학, 정신의학, 뇌과학, 신경과학 등이 동원되는 건 예상도 되었고 책 소개글을 보며 이미 알고도 있었지만, 철학이 언뜻언뜻 비춰질 때면 다소 의아하기도 했고 철학에 관심이 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저작에서 철학은 그냥 미미한 향기만 스쳐 갔다) 몸과 나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연결 지어지며 나를 구성하는데 자기에 대한 서사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게 낯선 부분은 아니었지만 이름도 부위도 모르는 뇌 각부의 이름과 기능이 나열되며 자아를 논하는 것보다 몸과 나, 나의 이야기와 나를 연결 짓는데 더 의아해하는 자신을 보며 참 멍해지기도 했다. 뇌의 부위와 기능을 연결 짓고 그 기능을 하게 되는 작용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부위에서 그 기능이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부여 이상은 할 수 없지 않나? 왜 그런 기능을 하는지 궁극적인 어떻게에 대해 우리는 답할 수 없고 앞으로도 긴 시간 답하지 못할 것이다.
답변되지 않은 대답을 통해 우리는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본서가 의문을 제시하는 자체에서 의의를 찾아야지 대답 비슷한 것에 근접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철학이 언급된 게 의아했었는데 다시 보니 철학이 좀 더 제대로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확언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에 철학에 대해 나름의 진지함을 갖고 접근해 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이게 본서를 읽고 나서 든 가장 깊은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