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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리딩 - 두뇌로 읽는 속독법, 개정판
김영철 지음 / 비전플러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브레인 리딩]이란 이 책은 중학 시절 [4차원 속독법]이란 제목으로 만났었던 바로 그 책이다. 사실 당시 [4차원 속독법]을 읽고 한 차례 연습해 본 이후 독서 시간이 배 가까이 늘었고 그 여파가 한창 갔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중학 시절까지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어쩌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저절로 속독법을 체득하게 된 것인지 300 몇십 페이지 정도 되던 당시의 [영웅문] 시리즈 각 권을 권당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읽는 것이 평소 독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 빠른 독서를 원하게 되어서 속독 책을 찾다가 [4차원 속독법]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읽어 보고 시행하게 되었으나, 이미 문장을 덩어리로 읽던 긍정적인 습관이 오히려 속독법을 익히며 한 글자씩 읽는 방식으로 바뀌자 되려 속독이 아닌 서독, 만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그 이후의 모든 독서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책과는 상관 없지만) 어느 시절에는 난독증까지 왔었던 적이 있었기에 다시 어느 정도 속도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는 만족하기도 했다.
다만 속독법에 대한 인상만큼은 [4차원 속독법]이 강렬하게 각인시켜 준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독서 시행 조항(?)이라고 해야 할 ‘누가복음 17장 24절’의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라는 구절과 속독법을 익히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의식의 빛을 활용하는 속독법, 무의식을 이용하는 속독법이라니 당시에는 너무도 혁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게 [4차원 속독법]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혁신적인 속독법이자 무의식을 활용하는 법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다시 속독법을 익히자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4차원 속독법]이었다. 하지만 요즘 출간되어 나온 ‘개정 22판’째인 [4차원 속독법]은 가격대가 무리다 싶어 가성비 높아 보이는 다른 속독법 책[신개념 속독법]을 읽어 보기도 했다. 일본 속독가가 비판하는 한국의 ‘시독법’이란 건 아마도 [4차원 속독법]을 가르키는 것 같았지만 내게 선입관이 좋게 새겨진 이 책을 꼭 다시 읽게 될 것 같았다.
‘개정 22판’째인 이 책의 구간본을 돌아보다 ‘개정 17판’의 [브레인 리딩]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헌책을 지르고 한동안 소장만 하다가 오늘 읽어 봤다. 연습용 챕터가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다 보니 독서할 문장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빠르게 읽게 되었다. 연습도 요구사항에 맞춰 규정대로 다 마쳤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책은 아니다.
개정판으로 다시 읽으며 느낀 건 간간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자신의 속독 방식을 이해시키기는 했지만 구간본 보다는 종교적인 뉘앙스가 다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과거에 저자가 인용하던 ‘누가복음 17장 24절’의 구절은 등장하지도 않아 무의식에 암시하는 방식의 본서 서술이 취향에도 맞았다. 그렇다고 기독교적 색채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과거보다는 한결 대중적인 면을 고려해서 개정하지 않았나 싶었다. 구간본에 서술된, 불상에 보이는 부처님의 영양상태가 좋아 보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더 공감하게 되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간증이 없어서 다행스럽게도 여겨졌다. 이번 책에도 마지막 부록 장에서 간증을 하고 있기는 하다.
나로서는 크리스찬이다가 중학 시절 [불교의 체계적 이해]라는 책을 읽고 불교야말로 진짜 진리이구나 생각하게 된 사람으로서 저자의 간증이 참 연약한 논리와 공감 불가한 과정을 통한 신앙으로의 들어섬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쨋건 종교적 색채를 너무 지나치게 내세워 [4차원 속독법]과 [브레인 리딩]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돌아서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할 내용이 종교 색채로 인해 배격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자가 계발한 이 속독법을 통해 유익을 경험한 이들이 연령을 떠나 참 많은 것으로 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를 바란다. 나 또한 익숙해지기까지 노력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