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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평점 :
글쎄, 어렸을 때는 이런 류의 책에 있는 그대로 혹했을텐데
세월의 때를 타서 그런지 책이 말하고 있는 통찰과는
다른 것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스님들의 두파가 고양이 때문에 싸우고 있자 스승이신 스님이
"무슨 말이든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고양이를 살려주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베어죽이겠다" 하고는
스님들이 말이 없자 고양이를 두동강내버린 내용도...
"당신 스승의 가르침은 무엇이요?"하고 묻자
행자스님이 스승이 하듯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는 내용을
듣자 그 스승이 제자인 그 스님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너무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달마 스님 앞에서 혜가스님이 가르침을 청하다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른 유명한 일화는 알고 있지만
그건 가르침에 목마른 한사람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면
위의 두 경우는 스님들의 이해의 깊이를 알기 위해 그런 것과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으라는 가르침이었다는 건데
깨달음이라는 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이토록 잔인해도 되는 것일까 싶었다.
둘다 실화를 올린 것이고 그저 하나의 은유만이 아니기에
소름끼쳤다. 이 세계가 진짜로 실제가 아니라면
가능할 행동들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진제와 속제의 차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변명이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전체 4부 중 1부의 내용들만 읽었는데 여기까지는
모든 건 마음 하나로 귀결되는 내용의 화두들이 등장했고
모두 어렵지 않았으나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가 좀 어려웠다.
그저 화두를 읊는 것 만으로 존재적 차원의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린시절 새로운 걸 깨달을 때 들던 그 신선한 느낌이 일어 좋았다.
다만 실화 속 스님들의 잔혹함이 좀 많이 거슬렸다.
트라우마를 치료해 주는 과정이 아니라 거대 트라우마를 만드는
과정 같아 깨달음이 무어라고 그렇게까지 잔인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장까지 다 읽으면 이런 거북함이 사라질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