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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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이 희곡을 사랑이야기로 결론 짓고 있던데 아마도 결말이 그렇다는 것을 주목케하는 의도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결론은 사랑이야기로 끝맺어지는듯 하지만 그것도 화자의 공허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소리 높인 것으로 봐야 할거다. 


시작은 콘트라바스의 예찬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거듭 악기의 가격과 물가 상승을 언급하는 화자의 세속성이 바로 드러난다. 그리고 지나가며 이야기 하듯 그의 짝사랑의 대상 사라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바스 연주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바스를 병든 삼촌처럼 관심을 끌려는 관심병자로 몰아간다. 그는 바스를 엉덩이 늘어진 노파로 상징하기도 하며 자신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기술자라고 자학한다. 그와 바스는 이미 하나이고 그의 콘트라바스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자기성찰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학의 하나로만 보인다. 


바스를 여자로 가정하거나 또 사라를 상상하며 사라를 안고서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듯한 장면은 그의 외로움이 극적으로 묘사된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넋두리로 드러나는 그의 일상과 그의 내면은 공허가 엿보이고 극도로 외롭고 극히 불안정한 것만 같다. 콘트라바스의 예술적 가치와 휴대하거나 거치하기 어려운 속성은 사람의 영혼과 자아의 속성을 드러내려 묘사된듯 싶다. 여성과 사랑을 나누려할 때 바스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화자의 말은 언제 어느 순간이던 자기를 성찰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적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장이 차가울 때면 한참을 체온으로 콘트라바스를 데워주어야 한다는 것도 우리의 내면에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하는듯 하다. 그에게 바스는 이렇게 사랑의 대상, 예찬의 대상, 자기애의 상징, 또 걸림돌이기도 하다.


 콘트라바스와 그는 하나로서 인식되며 인간의 공허, 고독, 불안정함을 상징하고 있다. 반면 그는 세속적이면서 콘트라바스 같은 베이스적인 역할이 아니라 세상의 주류가 되고 싶어하는 깊은 열망도 지니고 있다. 사라라는 그의 짝사랑의 대상은 주류와 잘도 영합하는 속물적인 여성인데 화자의 아니마를 상징하고 있다.


연주자로서의 자부심과 그의 음악적 소양들로도 그의 공허는 메워지지 않는다. 그에게 그 모든 것은 허약한 지반이 덮고 있는 공동 위에 선 것과 다름없는 정도의 영향력만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메마른 일상과 영혼을 구원할 한줄기 빛은 사라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사라에 대해 언급한 일화들로는 사라도 빛이라기 보다는 그저 속물적인 여성일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저명인사들이 모이는 공연장에서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는 과연 그 이벤트를 실행할까? 그 이벤트로 사라의 관심을 살 수 있을까?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그녀가 과연 그의 공허를 끝내줄 진정한 빛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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