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구원하지 않는다
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어젯 밤엔 <깊은 강>을 읽고 레비나스를 떠올렸는 데, 잠들 기 전에는 아리송했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좀 알겠다. 언제가 <소피의 선택>을 읽고 썼던 무력감과 구원서사에 관한 페이퍼(링크:https://blog.aladin.co.kr/jyang0202/12799417) 가 있는 데, 그 이야기와 일맥 상통한다. 2차 대전 혹은 전쟁 이후에 남자 작가, 철학가, 사상가들이 천착한 어떤 인간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파고 파고 또 파내려간 심오함이 도달하는 지점에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내면이든 세계의 무엇이든 ‘모성적인 어떤 느낌’을 설명에 섞는 데 —나의 고통은 그들의 고통과는 다르므로 윤리적 비아냥은 할 생각이 없다— 여기에 그것이 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한, 메일 바디가 경험(체험)한, 고통에 대한 어떤 안도가 있나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난 그런 안도/구원을 구할 수가 없으니 이 지점에서 차라리 한나 아렌트(끝까지 안도하지 않기를 주문한)에 관심이 생겨버린다.

2.
이소베, 누마다, 기구치, 심지어 오쓰까지… 이 소설에서 엔도 슈사쿠가 그린 남성 인물들 모두에 나는 이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독서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쓴 미쓰코에 대해 (그가 뭘 그리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았는 데)선 딱 절반 정도만 이해했고 이입했다(추후에 <깊은 강> 읽은 여자 독자들의 이입량이 궁금하다). 그리고 이소베의 아내에 대해선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이소베의 아내는 이소베의 판타지거나 엔도 슈사쿠의 판타지다. 그러므로 엔도 슈사쿠는 ‘남자’ 작가다.
쫌 더 성급한 일반화로 가볼까? 슈사쿠가 내세운 인물중 가장 깨달은 자에 가까운(?) 오쓰는 남자고, 그를 시험하며 온갖 위악을 떠는(그 역시 슈사쿠의 내면이겠지만) 인물 미쓰코는 여자다. 일본 전후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여, 왜 그렇게 캐릭터를 할당했나요?


3.
인물들이 ‘인도’까지 가서 만난 뒤 인상 깊게 소회하는 소설에 등장하는 (하, 독을 견디며 젖이 쪼그라들어 말라붙은 상태로도 젖을 물리는ㅋㅋㅋㅋ)수난의 여신은, 그 모든 고통과 기아아와 죽음을 ‘견디는’ 메타포다. 나는 여기서 읅ㅋ했다. 으어어, 참으로 인류는 고통을 견디는 주체에 여신을 할당(?)하기를 즐기는 도다(자, 이 지점은 읽고 있는 <가부장제의 창조>를 마저 다 읽고 까는 것으로 하겠다.) 그러므로 차라리 천형 앞에 모두를 위해 대신 고통 받는 주체로 젊은 남자인 예수를 할당한 기독교가 양심(?)있게 느껴져버리는 나다(ㅋㅋ).

고통받은 동아시아 남자는 예수를 양파로 바꾸어 부르지만 나 역시 무엇으로 바꿔 불러도 상관 없다. 내게도 이 지독한 삶을 견딜 신이 필요하고, 양파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나만의 내면이 필요하다. 고통의 경험 앞에서 그것의 의미를 희구하는 각자들 만이 발견해 낼 수 있는 태도, 방법, 반응이 있는 것 같다. <깊은 강>은 그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를 구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의미라고 잠정적으로 부르고 있는 데, 그 의미의 결론으로써의 어떤 삶/죽음이 있다고 하면 오쓰의 경우 혹은 엔도 슈사쿠의 경우는 품위있게 느껴진다.


4. 공쟝쟝의 경우.


천착, 나는 뭔가를 찾고 있다. 그게 뭘까.

공허함?
나는 공허하지 않다. 삶 자체가 허무하긴 하지만 미쓰코가 느끼는 무료함에 가까운 공허는 잘 모르는 감정이다.

빈 곳?
나는 비어있지 않다. 내가 허덕이는 것은 없음보다는 차라리 압도적인 있음에 훨씬 가깝다. 당연 나의 내면에도 어떤 진공처럼 빈 공간이 분명있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그것이 비어져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비어져 있는 곳이 아니다. (그것이 채워지리라 기대하지 않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살지 않는다) 채우고 싶다거나 충족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들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걸 쓴다. 그럼 그걸 채우지 않아도 재밌게 살 수 있다.

의미?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까운데, 꽉꽉 들어차 있는 삶을 눈앞에 두고 의미에 몰두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의미로 의미가 없다. 덧붙여 자신의 의미부여가 너무도 심오한 나머지 다른 인간의 생산/재생산에 기대면서 안착(?)해버리거나 초극(!)해 버리는 브루주아적/남성적(동서양막론하고) 무의식…은… 그 맹점이 현재 인류에게 너무 치명적이기 때문에… 와따시는 다른 독자들처럼 그저 심오한 인간애에 감격해서 별 다섯을 줄 수가 절대 없는 것이다.

2차 대전같은 거대한 것을 겪지 않은 나 역시도 (그러나 꼭 그런 거대한 걸 겪어야지 거대한 사유를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통 이후에 삶을 재건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천착하는 혹은 천착해야 할 주제일지도 모르겠다고. 어제 그런 생각을 했다. 각자의 재건 방식이 있겠지만 그것은 내게 신의 존재나 구원은 아니다. 굳건한 물적 토대(피부에 와닿는 것…)와 현실 인식(고통은 현실로 부터 달아나려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에 근거한 어떤 삶의 태도이고 실천인 데… 아,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으므로 표현이 쉽지가 않다. 그냥 막연히 아렌트… 푸코… 뇌과학… 읽으면…? 이러고 있다.

사실 몇 년 동안 일기를 쓰면서 난 그것이 ‘언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더란다(이 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은 언어는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비교적 싸다) 재료일 뿐, 내가 살고 싶은 현실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5.
운동을 가야하기 때문에 글을 성급히 마무리 짓자.
‘제2의 성(여성)’인 내 안에 있는 *신*은 ‘고통받는 주체’이기도 전에 먼저 ‘타자’로서 체험된다. 그것이 나의 분열이고, 허덕임의 기원이며, 어쩌면 글쓰기를 일으키는 역량—크리스테바는 이러한 글쓰기가 곧 사랑의 활동이라고 했다. 아, 크리스테바 읽고 싶어ㅠㅠ—이다.
고통이 고통인지도 몰랐던… 내가 분명히 있고, 온전한(온전할 수 있을까?) 자아감의 회복 이후에야 나의 *신*은 정말 ‘신’ 처럼 경험되는 것일지도🤔.

엔도 슈사쿠는 혹은 오쓰는 자신 안에 있는 신을 그렇게 경험하고 살아보려고 했을 테다.
나 역시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내 안에 있는 *신*을.

덧1, 이소베의 아내는 환생하고 싶지 않았다에 내 손톱을 걸지. 만약 환생한 세상이 2010년대의 한국이라면 페미물 꼭 먹으세요. 환생하고 싶지 않아지실 거에요.
덧2, 그러므로 여기까지가 일본 문학의 성취이자 한계인가? 그렇다면 몇 년 전 내가 일본 남자 소설가들의 작품을 다시는 안 읽고 싶다고 했던 이유는 분명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치자면 인류가 생산한 숱한 고전은 9할 이상이 남자들의 작품이므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상황인데. 즐겨지지 않음에 내 훌륭함이 있는 것이지. 풉.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6-24 12: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의 리뷰도 수긍이 가고 새파랑님의 리뷰도 수긍이 갔으니 이건 결국 직접 읽어봐야 알겠네요. 저는 어느쪽일까요? 제가 궁금해서 다음주 도서관 갈때 이 책 들고 오는걸로... ㅎㅎ

다락방 2022-06-24 13:17   좋아요 4 | URL
저는 바람돌이 님의 리뷰도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이 책 사놨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감상할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일단 <침묵>이 너무 좋았습니다. 후훗.

공쟝쟝 2022-06-24 17:45   좋아요 2 | URL
헤헤! 사실 좋은 책인 데, 너무 좋다는 리뷰 일색이라 관종(?)돋아서 먼저 까고 시작한 게 좀 있습니다. 아무리 잘써도 남자 작가는 앞으로 별 다섯 안 주겠다는 것이 (푸코 제외 ㅋㅋㅋ 그는 게이....?) 저의 나름 결심이었...는 데.... 사실 뭐 그래도 정말 좋은 책은 별 다섯 주겠지만.... 아무튼 ............. 저도 참 헤르만 헤세 좋아하는 데, 헤르만 헤세 책 읽다보면 딱 정떨어지는 지점이 있거든요. ㅋㅋㅋ <깊은 강>도 정이 딱 떨어지는 지점이 딱 와버렸는 데.. 나중에 회복해주지 않을까? 하면서 꾹 참고 읽었는 데.... 음......... 서양남이 아닌 동양남의 결론이군. 하면서 끝났어요....

청아 2022-06-24 13: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별 3개인데 수준높은 리뷰 인걸요?!! (저는 별3개의 경우 거의 안쓰는데ㅋㅋㅋㅋ일단 던져버림ㅋ)저도 어떤 작품들을 읽을때 걸리는 것들이 있는데(여성학 공부하며 더더욱)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앞으로도 더 그럴것 같아요! 너무 좋은 면! 엔도 슈사쿠는 계속 읽어보려고 하는데 <깊은 강>을 읽고 쟝쟝님의 리뷰를 다시 보렵니다.^^*

공쟝쟝 2022-06-24 17:47   좋아요 1 | URL
저는 별을 아예 안다는 책들도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간을 버렸는데 굳이..... 달아야 하는가? 그러다가 아 이건 좀 까서 알려야겠다 하면 복수의 마음으로 별 둘 별 하나 ㅋㅋㅋㅋㅋㅋ 전 상반기 알라디너들의 원픽인 듯한 <침묵>까지만 읽고 패스하렵니다. 침묵은 마음이 소란할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2-06-24 15:2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깊은 강>에서 레비나스 어리둥절..ㅋㅋㅋㅋㅋ
남성 작가들이 쓴 여성 캐릭터 한계점 많지요. 그럼에도 저는 작품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가 하다 보면, 결국 엔도 슈사쿠 작품은 그런 면은 그냥 넘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냥 넘길 수 없는 작가도 있습니다...대표적인 예 하루키)

공쟝쟝 2022-06-24 18:27   좋아요 3 | URL
제가 <깊은 강>이 아니라 <침묵>을 먼저 만났더라면, 혹은 여러분들의 극찬이 없는 채로 이 책을 만났더라면 (아... 그러면 안 읽었을 거 같아.. 극찬 안했으면 안읽었습니다 백퍼 ㅋㅋㅋㅋ) 또 모르겠습니다..? 근데 기대 높아서 읽기 시작했는 데 계속 ‘그런 면‘을 넘길 수 없는 지점을 참다가 중간에 살짝 오 좋은데? 이러다가.. 결국..... 딱 술맛 떨어져버린 부분이 나왔어요.
갑자기 레비나스 등장시킨 것은... 그가 홀로코스트 이후를 천착한 철학가이고 그의 철학에 대해 제가 잔뜩 기대하면서 읽다가 딱 술맛 떨어지는 부분이 나와서 화딱지났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ㅋㅋㅋ 그 지점이 두 거장에게 정확히 공명해서!! 그렇습니다.
이이들의 철학과 문학에서 제가 간과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 현 세대의 몫이 있고(이들은 전후 세대로서의 몫을 다했습니다), 그들의 천착의 깊이가 얕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다른 프레임을 제시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해결책인 것처럼 붙잡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져여...그렇다면 칭찬하기 전에 후진 부분 먼저 짚어줘야한다 생각합니다. 전 좀 급한게... 인류멸망은....이미 임박하지 않았나요?..
일단 제가 심오함과 깊에 비해 이이들이 인류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ㅋㅋㅋㅋ 그들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1번이고, 근본은 이분들이 남자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게 큽니다.ㅋㅋㅋㅋㅋㅋ 암튼 거장님들아, 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ㅋㅋㅋ 도태된거예여... 2022년에 맞는 걸 읽고 싶다, 나는.
물론 해결책은 하나가 아닐 것이고, 그것이 문학일지 철학일지 페미니즘일지 저는 잘 모르겠는 데요 ㅋㅋㅋ 일단 ‘천착‘할겁니다.

p.s. 전 이 책에서 하루키의 씨앗ㅋㅋㅋ을 느껴버린 것이죠... 한남이 아닌 일본남 감성이랄까...?

새파랑 2022-06-24 17: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밝고 자기애(?)가 풍부한 공쟝쟝님에겐 어울리지 않은 소설이었나 봅니다~!! 저는 그 환생을 바라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는데 😅
공쟝쟝님이 찾는건

양꼬치에 칭따오? ㅋ

공쟝쟝 2022-06-24 18:25   좋아요 2 | URL
아니요. 저는 누구보다 고통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ㅋㅋ 그건 자기애가 풍부해서가 아니랍니다~ㅋㅋㅋ
이소베는 그렇게까지 사랑할 가치가 없는 남자입니다. 썩 사랑할 능력을 계발한 것 같아보이지 않는 그와 다시 사랑하기 위해 환생까지 불사하신다니요. 일단 저는 환생이 있다면 가능하면 안하고 싶고요 ㅋㅋㅋㅋ (이 한생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만약에 환생하고 싶으셨다면 다른 삶을 좀 살아보고 싶으셨던 거라고 생각할렵니다.
사실 뭐 별 셋은 너무 서운해 마세요. 정치적인 입장(?)이 큽니다 ㅋㅋㅋ 일본 전후 문학의 거장! 이신데, 너무 거장이라서.. 후대들이 ㅜㅜ 따라서 쓰나봅니다... 자꼬 여성에 고통을 할당하고 자기 고통의 구원을 여자한테서 찾아.... 그러니까 일본이 도태하지... 아 일본아..

공쟝쟝 2022-06-24 17: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오해마세요~ 저에게 별 셋은 훌륭한 책입니다 ㅋㅋㅋ
별 둘 부터 복수(? 시간 조금 아까워 내 시간내놔라!)입니다 ㅋㅋㅋㅋㅋ
별 다섯은 나 자신에게 특별한 책이 될 것 같아서 아끼다 보니 ㅋㅋㅋ 아무나 줄 수 없어서ㅋㅋㅋㅋㅋㅋ
대충~ 별 넷이 별 다섯 별셋이 별넷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아놔~~ 이 책 좋은 책임 ㅋㅋㅋ

라파엘 2022-06-24 18:35   좋아요 3 | URL
저는 인내와 희생을 동반하는 사랑을 모성이나 인간애가 아닌 신성으로 접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의미 있게 다가왔는데, 충분히 쟝님처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니까, 이렇게 책을 같이 읽고 대화하는 건 정말 흥미롭고 좋네요 ㅎㅎ

공쟝쟝 2022-06-24 18:46   좋아요 3 | URL
네! 정확하게 짚어주셨어요. 인내와 희생을 동반하는 사랑을 여성에게 주되게 할당하는 것이 인류의 오천년 문화인데, 그것을 짚기 위해서 여성을 은유로 메타포로 한번 더 가져다 써봤자 인류의 절반의 절반은 그걸 숭배/혐오 하는 데 쓸겁니다. 숭배 혐오 하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당해온 입장이고 그런 사회안에서 인내와 희생을 질문없이 수행해온 저로서는 오독이라는 혐의를 받더라도 ㅋㅋㅋ 왜 다른 언어와 서사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하여야 겠다 싶었습니다 ㅋㅋㅋ 사실 알라딘 전체 리뷰들을 좀 살펴보니까 (동양남 찬양 ㅋㅋ) 더 밸이 꼴렸던 게 큽니다 ㅋㅋㅋ

라파엘 2022-06-24 20:44   좋아요 3 | URL
글에서 간혹 과격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보니 쟝님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좀 더 생각해보면 쟝님을 이해할 수 있어요. 쟝님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늘 공부하며 꾸준히 읽고 쓰는 멋진 공천착!!! 😃

공쟝쟝 2022-06-24 20:54   좋아요 3 | URL
네 이념적 과격성(?)은 저의 성향입니다. 모든 걸 걷어낸 추상화가 가지는 비약의 약점을 알면서도 그걸 상정해야 현실의 진부함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페미도 파이어스톤 이런 사람 좋아함ㅋㅋㅋ) 표현의 과격성은 전략입니다. 광고도 어그로 끄는데요, 모… 건강한 호기심을 가진 건강한 인격들은 제 과격한 언어 사용을 찌푸리고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
다만 극강 이상주의자인 저는 현실주의자 친구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며,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낭비할 시간적 에너지는 없습니다. 왜냐, 책읽고 글쓰고 북플하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앗, 그리고 쓰는 저는 이렇지만 말하는 저는 좀 다릅니다…ㅋㅋㅋ

공쟝쟝 2022-06-24 22:57   좋아요 3 | URL
라파엘님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기분나쁘지 않았습니다. 인간 이하의 고통을 당하는 일본 군인에게 충분히 이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저는 일단 급한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과 인내와 희생을 활용하는 치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충분히 당했습니다(제가 만든 고통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슈사쿠는 오쓰를 가져와 고통의 밑바닥이길 자처하며 신성으로 인내와 희생의 윤리를 설파합니다. 그것은 선택한 삶이고 그렇기에 어떤 품위를 간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선택할 권한이 없이 애시당초 고통받이처럼 사용되고 양육되는 인간이 아닌 여자들이 있습니다. (한때 인류는 노예같은 것을 거느렸다고 하더라고요) 여성의 인내와 희생은 천연자원이지요. 그녀들은 전쟁에 참여할 자격도 없지만, 인내와 희생을 거부할 재간도 없습니다. 환생까지 당해서(?) 누군가의 재생산을 돕고, 사랑해드려야 하고, 안도감을 제공해야합니다. 그걸 정말 그녀들이 원했을까요?
저는 이 소설이 (혹은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걸 묻지 않는 다고 봤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아직 하나도 이야기 되지 않았습니다.

라파엘 2022-06-25 00:05   좋아요 3 | URL
소설에 대한 해석이나 감상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쟝님의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 인내와 희생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숭고한 사랑이 아니라 단지 억압이고 폭력일 뿐이지요...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을 쟝님이 해주어서 진심으로 좋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2-06-25 00:19   좋아요 3 | URL
텍스트가 현실과 만나서 콘텍스트가 되는 지점, 거기서 논쟁이 되고 다른 생각을 소통하면서 자기를 수정하는 걸 푸코가 저자의 일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맞나?ㅋㅋㅋ 암튼 그랫던거 같습니다) 텍스트 내적인 감상은 사실 저나 라님이나 많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끝까지 열린 태도로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2-06-27 12:01   좋아요 2 | URL
저는 별 3개 있으면 일단 걸르는데...
각자 기준이 달라서,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공쟝쟝 2022-06-27 13:0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아 그렇군요… ㅜ_ㅡ 저는 분류쟁이라서…. 흑흑 이렇게 해놔야할 거 같아요. 별점 인플레를 극복하고 별 다섯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별 반개를 달라고 알라딘에게 요구한지 어언 몇년… 뭐 안바뀔 거 같으니 ㅋㅋㅋ )

독서괭 2022-06-27 1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점 남성 작가들 작품이 거슬립니다 ㅠㅠ 하... 몇년전에 <설국> 읽고 막 깐 적 있는데, 얼마전 첨 읽어본 필립로스도 넘 별로였고.. 지금 읽는 자우메 카브레는 아직까진 좋아요!
나중에 엔도 슈샤쿠 읽게 되면 <침묵>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공쟝쟝 2022-06-27 13:1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제 그게 시작되면 여자 작가들이 쓴 로맨스도 못보는 경지에 이르른다? ㅋㅋㅋㅋㅋㅋ 조심하세요 ㅋㅋㅋㅋ
일전에 제게 페미니즘의 언어가 없었을 때는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어여. 저는 데미안을 11번 읽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헤세..ㅋㅋㅋㅋ) 지금 읽고 있는 가부장제의 창조에도 나오지만 언어와 역사에 대한 해석권이 남성들에게 있었으니 기록은 글씨는 그들의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 세상에 나온지도 얼마 안됐지만, 여성들이 급여를 받는 일을 하기 시작한지는 더 얼마 안됐고요, 거기에 글자를 가지고 글을 쓴 여자들은 너무 소수였다 생각합니다. 예전에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은 남자들의 글자들을 배우고 남자들이 평가하는 글을 썼겠지만요… 저는 아닙니다. 일단 전 엘리트 아니고 소수 아니거덩여… (앞으로 굳이 남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요? 신자유주의 덕에 여자들도 다 돈버는데 ㅋㅋㅋ)
저는 제 글을 남자들 보라고 쓰지 않고 여자들 보라고 씁니다. 인간 본연의 깊은 심연의 밑바닥과 전후 문학의 거장의 치밀한 사유를 여자라서 못배워서 이해 못해서 별을 깐게 아니고… 거기까지만이 ‘인간’으로 퉁쳐지던 20세기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ㅋㅋㅋ 소중하게 별을 깎습니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응?)

단발머리 2022-07-02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아.... 여기는 진짜 무슨 방이에요. 넘나 고급지다. 근데 글도 어려운데 댓글들도 어려워ㅠㅠㅠ 흐미 ㅠㅠㅠㅠ
전 <깊은 강> 읽고 오실게요. 이제 막 푸코의 <푸른 강> 건넜는데, 이번주 내내 비왔는데... 물로만 채워지네요. 물, 파랑색, 강....

공쟝쟝 2022-07-02 23:34   좋아요 0 | URL
제 사주에 물이 많으면 좋다네요 ㅋㅋㅋㅋ 역시 물이죠 ㅋㅋㅋ 물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