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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막는 제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경영학 수업을 듣다보면 맨 먼저 배우게 되는 용어가 있는데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다. 익숙한 개념인 기회비용은 넘어가고, 매몰비용은 간단히 말해 ‘이미 발생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합리적 투자자는 발생한 매몰비용을 향후의 투자에 포함하지 않은채 의사결정을 하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은 그닥 합리적이지 않다. 매몰비용에는 지금까지 투자한 것에 대해 아까워하는 이른바 ‘본전심리’가 뒤따른다. 그리하여 비합리적인 우리들은 본전이라도 되찾아보고자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매몰비용의 오류’ 되시겠다.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 합격 못할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고시공부, 제 때 손절하지 못해 물을 탔음에도 계속해서 물을 타고있는 주식(혹은 코인🥲)……. 그게 무엇이 되었든(투자, 직장, 관계…) 여기저기 ‘존버’를 외치는 너도 나도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어쩌면 희망을 가진 모든 인간은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오류’가 아닌 그냥 인간 본성…?
이렇게 적었지만 나는 ‘손절’을 잘 못하는 축에 속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오랫동안 그랬다. 투하한 에너지와 마음이 아까워서도 있겠지만 무엇이 ‘손해’인지 잘 알지 못해 더 그랬다. 이런 나에게 최근 아주 손절을 잘하는 분야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책’이다.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패스.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도 많고, 좋은 책만 읽기에도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별로인 책을 읽을 수록 대기 중인 다른 책을 읽을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지금 읽기엔 아니다 싶은 책은 읽은 게 아까워도 바로바로 덮어버리게 되었다. 일찍이 책처럼 인간을 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라고 생각하지만 별로 후회되지 않는 걸 보니 난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보다.
소설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는 ‘손절’이라는 개념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가 젊음을 갈아넣어 사들인 불하지는 수시로 침범하는 바닷물 때문에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바다를 막는 제방이라는 근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사람들을 동원해 실행에 옮긴다. 당연히 제방은 무너진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틈만나면 빚을내 다시 제방을 쌓을 궁리를 한다. 그 사이 자라난 아들 조제프와 딸 쉬잔은 그런 엄마를 지겨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삶을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여겼다. 어떤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이 후회없는 선택이 되도록 더 열렬히 에너지를 쓰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확고히 믿었다. 후회없는 선택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 이런 태도야 말로 ‘손절’ 따위는 모르는 만용이라는 걸, 될 때 까지 판돈을 쏟아 붓는 일종의 도박심리라는 걸 그땐 잘 몰랐다. 세상은 뭔가를 정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정진하고 매진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No pain no gain,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따위의 말들은 참고 견디기를 부추겼다. 누가 살짝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리면서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고, 선택은 책임지는 것과 관계 없는 일이라고, 대부분의 선택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고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그걸 몰라서 참 좋은 젊음을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했다.
선택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허우적 대다 겨우겨우 빠져나와 보니 알것도 같다. 잘못된 선택보다 더 잘못된 것은 잘못된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는 걸. 지금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어떤 선택의 의미가 내 안에서 자꾸 커지고 비대해진다면, 그것은 매우 경계해야할 ‘본전 심리’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 선택이 잘못된 것 이라고 인정하는 습관을 들일필요가 있다. 그보다 앞서 삶을 선택으로 바라보는 습관적인 관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있는 것들 중에 고르는 것도 아닐뿐 더러, 고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좋은/옳은/괜찮은/건강한 선택에 집착하게 되고, 이를 증명하려 할수록 삶은 더 구렁텅이에 빠지게 마련이다.
“(355)어느 길로 다가가든 결국 어머니의 가장 고통스럽고 생생한 곳을 건드렸다. 이제 더는 어머니에게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실패들은 엉킨 그물처럼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도 긴밀하게 이어져 어느 하나를 건들면 무조건 다른 것이 다 따라왔고, 매번 어머니를 절망에 빠뜨렸다.”
사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들은 안다. 그가 지금 자신을 갈아 넣으며 매몰비용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이 사랑하는 가까운 이들의 자멸을 말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실패가 치명적일까봐 걱정되어서라기보다는 그 기획의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동조자 혹은 원인제공자. 어쩌지 못해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인생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변해버린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의 몰락을 차라리 기다리게 되는 경지에 이르고 만다. 모두 함께 결국 무너질 제방을 쌓는 것. 그것은 가족에 대한 은유인가? 쉬잔과 조제프 역시 아집으로 점철된 엄마의 기획을 말리지 못한다. 그것이 엄마를 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고마는 남매의 이야기는 완고한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모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선택과 매몰비용의 오류에 관한 이야기로 소설을 읽어볼까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이 책은 경제ㆍ재테크 분야에 꽂혀있는 ‘똑똑한 투자 안내서’가 아닌 ‘문학’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이라는 엄마의 투자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그녀의 인생이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145) 더는 어머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삶을 무한히 사랑했고, 삶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치유 불가능한 희망이 지금의 어머니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바로 그 희망에 절망했다. 그 희망이 어머니를 마멸시키고 부서뜨리고 발가벗겼다. 그나마 희망을 내려놓고 쉬게 해 주던 잠도, 어쩌면 죽음까지도 그 희망을 넘어서지 못했다.”
‘치유 불가능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실패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단순하면 안되지.
무엇보다도 삶은 투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