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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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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와 엄마의 관계가 궁금해서 읽었는데, 기억에 진하게 남은 것은 뒤라스 편이다. 소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읽으면서 느꼈던 ‘압도적인 엄마’가 실제 뒤라스 삶에서의 어떤 모습였는지 형체를 갖게 되니 마르그리트의 글쓰기가 아프게 느껴졌다. “(14) 글쓰기는 유일하게 어머니보다 힘이 센 것이었어요.”


편애하는 엄마, 아빠를 열렬히 사랑하는 엄마, 사랑받고 싶어하는 엄마.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 (이 책의 소피 카르캥에 따르면) 그런 엄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뒤라스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아들을 낳고 난 후부터라고 한다. 나는 평생 엄마가 당하기만 하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서 말 하다 종종 얻어맞거나 유교적 풍이 강한 가족 내부의 공공의 적이 되곤 했는데, 페미니즘을 읽으면서는 엄마야말로 권력에 대한 열망이 엄청난 사람이었구나 한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내게 엄마는 피해자의 얼굴을 한 폭군 같았다. 어쩌면 나도 그런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일기를 썼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제 막 겨우 엄마를 미워하면서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엄마는 몸이 너무 아팠다. 미워하지도 못하게 아픈 엄마가 너무 밉다고 일기를 쓰면서, 돌이켜보면 엄마는 항상 그랬다고 나, 일기 썼었나? 


뒤라스는 글쓰기를 가리켜 “(14)글쓰기는 현실 옆에 놓인, 실선과 나란히 가는 점선 같은 삶”이라고 했다. 점선 같은 삶(일기쓰기)이 생겨나고, 엄마에게 하지 못한, 엄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나 역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뭐 그런 원망을 쓰면서 난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또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다시는 엄마처럼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 다짐, 또 다짐. 돌이켜보면 나는 관계가 아닌 권력 자체를 더 욕망할 줄 아는 똑똑한 아이였고, 이런 구조로 짜여진 세상에서 내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관계에 몰두했던 것 같기도 해. 이 역시 사후적 해석이고 글을 쓰면서 정의하는 나 자신일 뿐. 쓴다는 것이, 내가 나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이. 어떤 힘을 갖게 된다는 것 역시도. 그것까지도.   


“(94)*글쓰기는 늘 복수에서 비롯돼요.* 글 쓰는 행위 뒤편에는 매번 하나의 재판이 있기 마련이죠. 모두가 이런 식으로 글을 써요. 그래서 묵은 셈을 청산하려는 거예요. 그러고는 물론 책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하죠.” 문학 작품에 대한 탁월한 정의가 아닌가! *‘방향을 튼다’는 말은 독자를, 타인을 고려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불행의 비밀 더미에서 빠져나와 보편적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문체, 형식, 감정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복수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내 글쓰기 때문에 와 닿았고, 음 이 말도. 


“(96) 글쓰기는 대개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요구하기 마련이니까. 뒤라스가 털어놓았듯이 “글을 쓰면 사람들과 멀어진다.” 


결국 끄덕... 끄덕해버리게 되는 것을 보면. 푸하하. 나는. 또 이렇게 나를 뒤라스의 반열에 올려놓고 마는 것인가라고 쓰다가 다른 자아가 올라온다. 아, 이 짓도 이젠 못하겠다. 드디어.... 내 독후감이 타인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건가 봉가...🥲🥲🤦‍♀️🤦‍♀️🤷‍♀️🤷‍♀️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읽기 시작했... . 


글을 쓴다는 자의식이 생기면 확실히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 정확히 말하면 주변을 구성하던 사람들이 별로 필요가 없어진다. 고 보는 게 더 맞는 말. 그리고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시청역 광장에서 돌담길로 진입하는 길쯤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떠나온 사람이 향수병을 앓으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결국 본질이 변해버렸음을 깨닫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뿌리내려 살고 싶다는 욕망을 항상 가지고 있기도 해요. 그게 나의 미련한 지점인 것 같아요. 알면서도 자꾸 정착하고 싶은. 


언니는 사람들은 오고 가며 관계는 흔적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자유이며 뿌리내리지 않는 것이 세상이 넓다는 것이 그게 좋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성, 역시 그게 좋지 않니? 


음. 가능성과 불안. 그 사이에서. 나는 그런 걸 써온 것 같기도 하다고.  


“(134) 그건 이 작가가 자신의 특이한 유년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 보편적인 유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타인의 위협, 가난의 지긋지긋함, 폭군 오빠의 몸서리나는 횡포, 불의가 행사하는 폭력...... (중략) 그러나 뒤라스의 작품들에서 무엇보다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추방과 유배라는 주제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이별을 경험하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내면에 버림받는 데 대한 강렬한 두려움을 품게 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 유배 감정, 떠나간 것에 대한 향수, 인도차이나에 대한 그리움을 가장 잘 표현해낸 작가이다. 또 고향, 자신이 몸담았던 대지와의 이별을 뒤라스보다 더 강렬하게 그려낸 작가가 누가 있을까.* 뒤라스에게 그 이별은 말하자면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중략) 떠남은 본원적, 보편적 의미를 띤다. 이 보편적 분리 앞에서 인간은 영원히 고통스럽다. 아이가 겪는 어머니와의 분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뒤라스가 자신의 글에 흘려 넣은 떠나고 싶고 떠나지 못하는 양가적인 마음에 대해서. 그 압도적임과 차마 어찌할 수밖에 없는 지긋지긋한 사랑과 몰이해와 이별에 대해서. 나는 단 한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이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글 쓰는 딸들> 이 책에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의 엄마들과 그녀들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꼭 껴안고 싶었던 근사한 장면은 바로 아래 문장이다.❤️🙈 


“(17) 마르그리트는 시몬을 만나고, 시몬은 콜레트의 작품을 읽는다. 콜레트는 침대에서 라디오방송을 통해 뒤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보부아르에게 헌정 받은 <제2의 성>을 훑어본다. 이런 연결을 통해 나는 여성의 연대를 환기하고 싶다.”


여성이 어머니에 대해서 품는 감정에 대한 글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서* 혹은 남성이 남성 자기 자신에 관해서 쓴 5천 년 치에 글에 비하면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콜레트는 시도가 없었다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며 시몬이 콜레트를 읽듯 아니 에르노는 시몬과 뒤라스를 읽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여자들의 글을 읽는다. 아들 작가들이 쓰는 병약하게 죽어가는 소녀, 혹은 영원히 불쌍한 어머니, 아니면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창녀들 말고. (물론 그렇지 않은 글들도 많지만ㅋㅋㅋㅋ 이런 글들이 대부분 아닝교. 남자 작가들이여, 그래도 잘 쓰면 읽는다. 잘쓰도록 하여라!) 딸들이 쓴 압도적인 엄마. 아들만 사랑하는 엄마. 사마귀 같은 엄마. 기생충 같은 엄마. 나를 조종하는 엄마. 내가 보호해야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내 엄마니까 사랑하지만 결국 그런 엄마가 *될까 봐* 글을 써야만 하는 그녀들의 글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273) 시몬은 자신이 어머니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에 운다. 벌써 어머니가 그리워서 운다. 어머니는 신념의 화신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한 시대의 희생자이기에 운다. 자신이 글을 통해 어머니에게 고통을 가했다는걸. 시몬이 출간한 책들로 인해 어머니가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는 걸 알기에 운다. 성인이 되면 어느 순간 부모 곁을 떠나기 마련이고, 그런 다음에는 부모가 자식 곁을 떠나는 게 자연의 이치라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시몬은 어머니를 버렸기 때문에 운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드디어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어머니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 딸을 때리고, 딸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을 떠나 돌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뒤라스에게 모성은 늘 어떤 배반이다.
❤️뒤라스의 엄마 - P129

그런 식의 경직된 교육, 도덕을 내세워 육체의 약동에 철저히 재갈을 물리는 교육을 받게 되면, 몸의 감각은 미처 꽃피기도 전에 말살당한다. 시몬은 아주 명석한 아이지만, 자기 안의 세계를 해독하는 솜씨는 형편없다.
❤️보부아르의 엄마 - P221

이 글 속에서 미시가 읽어낸 건 콜레트가 글쓰기를 시작한 아이 때부터 30년 넘게 써온 것은 바로 콜레트 자신의 독립선언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말은 그가 여전히 어머니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콜레트의 엄마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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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4-29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공쟝쟝 2023-04-30 10:54   좋아요 1 | URL
배시시-------! 오래 고민했다고 합니다.

물감 2023-04-29 2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침 읽은 <루시>와 쟝쟝님이 넘나 겹쳐서 소름..........

저도 별다섯개만 주는 인간들한테 빡쳐서 비평을 쓰기 시작했으니,
글쓰기는 복수에서 비롯되는 게 맞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4-30 10:55   좋아요 1 | URL
킨케이드의 루시입니까? ㅋㅋㅋㅋ
저는 물감님의 올곧은(?) 심지있는(?) 별두개 비평에 감명 받아 친구 신청했어요!
(내용에 동의는 안하더라도 자세는 인정함)

2023-04-30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먼지 2023-04-30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님 이 페이퍼 진짜 너무 좋아요.. 이 소름 돋게 똑똑한 성장캐 같으니!!! 두 번 세 번 읽으려고요ㅠㅠ

공쟝쟝 2023-04-30 12:47   좋아요 3 | URL
그녀들이 쓴 엄마들이 또 모두 내 엄마… 모녀 사이의 지독한 감정의 골은 모자 사이의 그것 보다 더 많이 읽히고 쓰여질 필요가 있죠. ‘이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해야 한다.’라는 희진 샘의 문장이 갑자기 생각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