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80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삼십 분을 온전히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8주간 세 번씩, 24번 뛰면 될 것을 미련하게도 80번이나 뛴 것은 내가 그만큼 달리기에 서툰 사람이라는 뜻이고, 작년 여름부터 서너 번 도전했다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만큼은 언제나 꼴등이었다. 달리기를 하고 싶었던 적? 없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달리는 게 싫어 헬스장도 등록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강화되는 덕에 요가를 갈 수 없었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만 잊기엔 더 이상 청년이 아니었다. 안 좋은 것을 하면 몸은 안 좋아졌고, 좋은 것을 하면 몸이 확실히 좋아졌다. 더 이상 젊은 몸이 아니라는 증거였지만 나란 인간에겐 그게 좋은 편이다. 아무리 자신을 해치는 선택을 해도 그게 뭔지 모르는 건강한 몸은 대체로 당연해서 젊은 시절 난 몸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가 고장의 신호를 여기저기서 보내오기 전까지.
다행스럽게도 젊음과 건강이 빠져나가는 것을 다소 이른 이십 대 후반에 느꼈다. 그 후로 몸 혹사를 그만둔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했다(기보다는 운동에 돈을 꾸준히 썼다). 운동으로 체력이 좀 생기면 술도 더 잘 마실 수 있었고, 일도 기운내서 할 수 있었고, 덜 지친 몸으로 돌아와 영화 한 편 -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렇게 운동이 가져다주는 선순환을 조금은 맛본 터라 운동없이 과로만 있는 코로나19의 시간은 너무도 괴로웠다.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카페인과 니코틴으로 각성상태를 유지하기를 반년이 지나니 몸에서 또다시 고장 신호를 보내왔다. 7월이 넘도록 코로나19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극한에 달할 때쯤, 퇴사 대신 달리기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었고, 운동화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런데이라는 어플을 깔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영화 <아워 바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달리기 뽐뿌가 왔냐면, 전..ㅎㅕ.... (달리기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잃을 뻔). 한 가지 교훈은 있었다. 달린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변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겁나 힘들었다. 그런데 그거라도 하니 살 것 같았다. 확실한 건 달리기보다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18~9) 야행성 러너야 말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임을 이내 깨달았다. 밤의 뜀박질은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위안을 품에 안겼다. 달리는 이유라면 수십 가지도 댈 수 있지만 그중 가장 뾰족한 건 내 안의 자존감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일상에서 숱한 파도를 겪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 순간 무척 작고 초라해진 내 모습과 조우한다. 스트레스야 어떻게든 잊거나 풀면 그만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소멸하는 기분마저 들 때면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굴렀다.
심야의 뜀박질은 그때마다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렸다. 뛰는 순간만큼은 근육부터 호흡까지 몸의 변화에만 집중하며 생각을 비워냈다. 멘탈에 놓는 모르핀 주사처럼, 도무지 떨치지 못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달릴 때는 잠시나마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 목표로 했던 거리를 어렵사리 완주해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자존감의 회복은 위대한 성과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성취가 금 간 마음의 빈틈을 메우고, 그런 성취들이 모여 단단한 삶의 방파제가 되어준다. 짧은 거리라 할지라도, 혹은 빠른 속도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세운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할 때면 어김없이 자기애를 손에 쥐었다. - <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
어떻게든 부여잡아야 하는 자기애의 몸부림. 검색 및 지인 추천으로 런데이 어플을 설치한 건 신의 한 수 였다. 1분 달리고 2분 걷기부터 시작해 끝끝내 30분을 달리게 만들어버리는 이 앱은 나이스 한 목소리의 청년이 뛰는 내내 계속해서 “좋아요~” “정말 훌륭합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칭찬을 해준다. 쪽팔리지만 고마워서 두 번 정도 울었다. 원래 이 나이 먹으면 누구한테 칭찬받는 경험이 별로 없어져서 상업용 칭찬에도 마음이 녹고 막 그런다. ㅋㅋㅋㅋㅋㅋ 난 대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아주 의존적으로 달렸다. 새 신발을 사거나 새 옷을 사진 않았지만, 뛰라면 뛰고 멈추지 말라면 죽을 것 같아도 멈추지 않았고 30미터 앞을 보라면 30미터 앞을 보고 막 그랬다.
달리기가 몸에 좀 붙을라 치면 야근 폭풍이 몰아치는 탓에 보름 뛰고 한 달 쉬고를 몇 번 반복했다. 주말에 조금 뛰는 것 말고는 도저히 루틴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할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뛰기를 반복했다(24번을 80번 뛰게 된 사연). 영원히 8주 차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마스크를 쓰고 요가를 할 자신은 없었고, 내 달리기는 5분 언저리에서 멈춰 있었으므로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 번에는 정말 다 달릴 거고, 목표는 삼십 분을 뛰는 거야. 맘을 잡으려고 책도 한 권 읽었다. 우리의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달리기>였다. ‘페이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LSD, 하프 마라톤 등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어 졌냐고? 전혀. 지금도 저~언혀. 다만 작가님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나에게 맞는 루틴과 밤/낮 달리기 스타일 등을 좀 찾을 수 있었고… 스마트 워치를 사고 싶은 뽐뿌에 맞서 싸워 이겼다.🙄
겨우내 달리기를 쉬었으므로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오로지 30분을 쉬지 않고 뛰어보고 싶었다. 1분 조차 수월하게 뛰지 못하는 내게 30분은 30만 광년처럼 멀게 느껴졌고, 30분 달리기가 가능한 고성능 심장과 다리가 생기는 건 굉장히 근사한 일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유튜브에서는 드라마틱한 몸의 변화를 간증하는 영상들이 즐비했고, 나도 달리기를 통한 체중감량의 소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거짓말이다. 중간에 살짝 다이어트 욕심이 돋아서 저녁 식사를 샐러드로 일주일 먹어봤는 데, 인생이 우울해져서 그만뒀다.
대신 맥주 보상을 조금씩 해주었다. 매일은 아니고 2회 성공 후 1회 맥주 정도?? 그리고 석 달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삼십 분을 달릴 수 있게 된 지금 저의 체중은요.... (두구두구두구///) -1kg 되시겠습니다!!!!! (너 이 씨.. 맥주 새끼..)
“(263) 달리기의 이상함은 한 번 한 것은 그것이 실현되었다는 것 이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달리기를 하고 나서 뭐가 변했냐면, 요로케~요로케~ 되었답니다^^쨘!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도 않을까?라고 달리면서 몇 번 생각했었는 데,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변한 게 없다. 1킬로그램의 체중감량을 성과로 제시하기에는 달릴 때 얼마나 힘들었냐면 막 숨이 가빠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온몸이 천 근 만 근, 땀이 줄줄, 마스크는 얼굴에 엉겨 붙고, 중간에 무릎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병원 가고 엉?!...!!!!!! 그 고생해서 1 킬로그램…… 장난해? 그 힘듦을 근력운동에 투자했으면 살이 더 빠졌을 것이다… 워… 이처럼 1분도 못 뛰어서 헥헥 대던 사람이 30분을 뛸 수 있게 된 것 말고는 정말 레알 아무것도 변한 게 없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냥 나는 30분을 달려보고 싶었고. 달렸고, 잘 못 달리면 반복해서 달렸고, 🏃🏻♀️🏃🏻♀️🏃🏻♀️🏃🏻♀️
그렇게 조금씩 달릴 수 있는 분을 늘려서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3분을 못 뛰던 내가 30분 동안 달린다.
그리고.
그게 다다. (씨익)
“(10) 달리기 위해서는 빨리 걷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걷기에서 두 발은 지면에 머문다. 두 발은 피할 수 없는 중력을 번갈아 흡수한다. 문제는 한 발 한 발 체계적으로 지면을 탐색하는 것이다. 반면 달리는 사람은 이 중력의 법칙과 작별한다. 그에게는 두 발이 더 이상 지면에 놓이지 않는 짧은 순간이 존재한다. 그때 그는 어떤 시간과 공간에 놓일까? 무중력의 섬광과 같은 아주 짧은 순간, 지상의 존재 조건 바깥으로의 탈출, 지상에서의 삶의 괄호 치기.
달리기와 함께 두 발은 더 이상 지상의 축제에 머물지 않는다. 물론 두 발은 번갈아 차례로 지면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발은 걷기와 다른 것을 한다. 따라서 걷기와 달리기 사이에는 환원할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비록 양쪽 모두 육상이라는 같은 이름에 속하는 다른 종류의 운동일지라도 말이다. 두 발 중에 한 발을 지면에서 떼지 않는 한, 당신이 아무리 빨리 걷는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걷는 사람이다. 반면 당신의 두 발이 더 이상 지면에 머물지 않는 순간, 당신은 달리기 상태에 있고, 당신은 다른 차원으로, 걷기의 경험이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모험 속으로 진입한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
걷기와 달리기는 다르다. 다른 경험이다. 이어폰 속 런데이 청년은 “힘들어서 걷기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리더라도 달려야 한다”라고 했다. 처음에 난 그 말이 뭔 말인가 했다. 걸을 때 팔을 앞뒤로 더 거세게 흔들라는 걸까? 걷는 것보다 느리게 달리라니? 걷는 것을 더 빨리 하는 것과 달리기는 무어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내 뇌는 내 몸에 다른 명령을 내렸다. 나는 런데이가 시키는 대로 분명히 걷기보다 느린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무엇이? 책을 읽다가 알았다. “두 발이 지면에 놓이지 않는 짧은 순간”이 달리기의 순간에는 있었다. 아하.
중력에서 벗어나 보려 하는 그 순간이 내 심장을 이렇게 뛰게 하는 걸까. 쿵쿵. 처음에 달릴 때 내가 가장 크게 인식하는 것은 심장의 존재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호흡기의 존재감, 무릎의 존재감, (PMS때는) 가슴의 존재감, 골반의 존재감, 장경인대 - 대퇴근막장근의 존재감 (아팠던 곳들 쓰고 있다...)
요즘 가장 강하게 느끼는 존재감은 어찌저찌 다시 돌아와서 호흡기의 존재감. 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호흡량이 많아진 건지, 서울의 공기는 여름에 더 안 좋아지는 건지 달리고 난 후에 목이 칼칼해서 이제는 무릎 때문이 아니라 목 때문에라도 하루~이틀 씩 달리기를 걸러야 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런데이 청년도 오버하지 말고 일주일에 세 번씩 달리라고 했었다(말 안 듣고 매일매일 달렸다가 인대 부어서 병원 신세를 지고 보름 동안 못 달리게 되기도 했음...). 과유불급. 이젠 좀 지키자, 하루 걸러 하루. 하루 걸러 하루.
하루 나온 김에 하루키 책 이야기를 하자면(ㅋㅋㅋ 자연스러웠어!!), 이 엄청 유명하고 표지가 부담스러븐 책은 달리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던 11월부터 읽다가 말았다가 30분을 뛰는 러너가 된 것을 스스로 자축하기 직전에 다시 읽었다. 허허. 하루키는 작가 데뷔 후에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가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러너라는 정체성에 대한 애정과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과 장거리 달리기를 한다는 것의 닮은 점 등을 꽤 즐겁게 읽었다. 듣던대로, 명성답게 확실히 스타일 있는 아재였다...
“(116)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키 소설이라곤 딱 한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에세이가 소설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읽다 보니 그에 대한 없던 애정이 생겼다(모두 가진 중년 남성이라고 생각하며 재수 없어했던 것도 사실). 소설가로서도 러너로서도 퍽 훌륭한 태도로 살아가는 어르신이지 싶어서 소설도 흔쾌히 읽어주마 싶었다. 참, 그 야구 보다가 불현듯 소설 쓰고 싶어진 썰도 바로 이 책에 나온다. ㅋㅋㅋ 고작 일 킬로그램의 감량 외엔 달라진 게 없는 줄 알았는 데, 책 읽다가 하루키와 나 사이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61) 그래서 나는 스포츠 종목으로, 거의 망설임 없이 혹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담배를 끊었다. 매일 달리게 되면, 담배를 끊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물론 금연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달리기를 매일 계속할 수는 없다. ‘더 달리고 싶다’는 자연스런 욕구는 금연을 계속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는 것은 이전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그렇다!!! 나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끊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끊었냐면, 끊은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끊어져 있다. 아마 4월 중순쯤으로 기억하는 데. 일기를 찾아보니,
“(21/4/16) 쉬지 않고 5분을 뛸 수 있게 되었다. 놀랍다. 여전히 무리를 하지는 않지만 (무리하면 하기 싫어질까봐)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올려보라던 OOO 말이 생각나서 겁 안 먹고 내리 높였더니... 정말로 뛰어졌다. 그치만 5분에서 15분으로 바로바로 늘릴 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겁먹게 되어 암튼 이번 주는 5분 뛴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저녁 하늘이 핑크 핑크 너무 근사해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의 코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트랙을 도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는 데, 어제도 그렇고 인조잔디 한가운데 누워서 땀 흘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은... 엄청나게... 쾌감이다.. 행복...!!! 처음으로 잘 달리고 싶어서 담배를 끊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런데이 아저씨가 담배는 스트레스 때문에 피우는데 달리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가셔서 자연스럽게 끊게 된다고 하였는 데, 너무 맞는 말인 거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담배 -> 스트레스 때문에 피움 -> 백수, 스트레스 요인 없음 -> 달리기 할 때 호흡 딸림 -> 끊을까? 생각해봄 -> 피우러 나가는 게 더 귀찮음 -> 사러 나가는 건 더더 귀찮음 -> 안 삼 -> 끊음 -> 달릴 때 호흡이 좋아짐 -> 스트레스 풀림 -> 담배생각 안남
10년 흡연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진 않겠지? 스트레스받으면 다시 피울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일단락된 것으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금연을 마음먹을 때는 항상 금연을 마음먹으면서 담배를 생각했고, 얼떨결에 금연 중인 지금은 그냥 아예 담배 생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드링킹>작가, 캐럴라인 냅 언니... 전 알콜을 끊을 수는 없었답니다?... (대신 담배를...)
“(225) 달리기는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부상과 더불어, 신체 안에 고통을 느끼면서 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어깨, 허리의 고통, 무릎 통증, 근육통 등등.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반해서 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그렇다면, 1킬로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신체와 더불어 달린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30분을 달리기 전 보다, 나는 건강해졌을까? 글쎄. 여전히 근육은 없고, 뱃살은 있고, 되려 안 하던 달리기 때문에 삐걱대는 무릎과 담배를 피울 때 보다 더 기분 나쁜 칼칼한 목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체력이 더 좋아졌을 수 있긴 한데, 막상 일을 안 하니까 체감 못하고 있다. 그럼 정신이 더 건강해졌나?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담배 중독에서 달리기 중독으로 중독된 종목이 변했을 뿐 뭔가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는 같을 지도...?
음...
음...
....
그런데 오늘도 분명히 달릴 것 같다.
왜지?... 런데이 앱도 다 했고... 30분 달리기의 목표도 이뤘는 데... (목표를 이룬 자의 허망함)
지금 생각나는 것은. 죽을 것처럼 힘든 데 머리 위로 떨어지던 벚꽃이 아름다웠던 거랑, 땀 흘리고 난 뒤에 부는 미적지근한 바람이랑, 달리는 내 속도를 따라서 천천히 바뀌던 거리의 풍경들, 인조 잔디운동장에 벌렁 드러누웠을 때의 하늘. 그리고 뭔가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로운 느낌. 이 느낌은 러너스 하인(runner’s high)가 뭐시깽인가하는 경험은 아직 아니다. 그냥 너무 힘드니까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 나는 뛸 때마나 겁나 힘들기만 했다. 단 하루도 안 힘든 적이 없었다....
지난주부터 런데이 청년🤖이 너무 잘했으니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자기를 추천하라고 했다. ㅋㅋㅋ 나에게 생애에 없었던 달리기라는 힘든 시련을 겪게 해 준 그의 부탁에 따라 알라딘 마을 친구들에게 자랑과 추천을 해본다. 솔직히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
추천사 : 석 달 달려도 살 안 빠진다. 스트레칭 충분히 안 해주고 좋다고 맨날 달리면 무릎 등에 부상 생긴다. 힘들다. 걍 힘들다. 뿌듯함? 힘든 거에 비하면 진짜 조금 있다. 하루키가 달린다고 합디다. 그리고 하루키 본인도 추천하진 않... 던데요?
오늘의 창밖은 축축해 보인다. 역시 달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삼십 분을 달릴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하면 된다. 할 수 없는 건 안 하면 되고. 근데 겨우 할 수 있어진 것을 다시 할 수 없어지 게 만드는 건, 다른 할 수 있는 게 생겼을 때 아닐까? 달릴 이유가 없지만 안 달릴 이유도 별로 없고, 안 달리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 달리는 게 좋을 것 같고, 더군다나 내가 달리는 코스는 축축한 날씨에 특별한 흙냄새를 뿜어내고, 그 냄새를 맡는 것이 나쁘지 않았고. 오늘은 축축하고. 어찌저찌 나는 달릴 수 있게 되어버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