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작가의 두 부모는 모두 작가였다. (그것도 출판! 작가였다.)
그덕에 넘치도록 많은 책과 함께 유년기 대부분을 보낸다.
어린 시절 책을 가지고 블럭 싾기 놀이를 했고,
이들 가족의 취미는 레스토랑 메뉴판과 신문에서 오탈자 찾기,
함께 퀴즈쇼를 맞추고, 새로운 단어를 발견 하는 것 등이다.
글로 쓰여진 거라면 통신판매 카달로그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이 사람은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의 삶에 매순간 중요한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책 이야기이자 그녀의 삶이야기 이다.
도무지 이사람 인생에서 책과 떨어진 순간이 있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침대위에서 번갈라 가며 낭독하다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재우며 외할머니가 남기신 구닥다리 책을 뒤적이고,
책의 배경이 된 장소를 여행하며 독서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내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그 분들의 서재를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이 저자의 책에 대한 관점은 구구절절 동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녀가 나처럼 책에 밑줄긋기, 메모, 접기를 해대는 것에 대해 책의 학대자가 아니라, 관대하게도 '육체적 사랑'이라고 표현해 주는 순간 그녀가 무척 좋아졌다.
그녀가 침실에서 남편과의 호메로스 낭독에 대해 '결혼은 장거리 경주이며, 낭독은 이따금씩 탈진하는 경주자들의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조제된 낭만적인 게토레이'(188쪽)라고 표현한 대목을 읽자 그 어느때 보다 결혼을 해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 말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걸 즐기는데 지금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자는 형편이다. (요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정말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호메로스를 들으면서 잔다지 않는가!!!
또한 최근에 열하일기 소장본, 미학의 역사 등 두껍고 비싼 책들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나의 기운을 돋우는 글귀도 있다. 그녀의 대학시절 보던 펭귄 문고는 '산냄새를 풍기며 먼지 구름으로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반면, 예순 여덟 먹은 그녀의 <돈은 지혜롭게 책은 어리석게> 장정은 여전히 견고하게, '여전히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203쪽) 있단다. 물론 그녀는 경제적인 이유로 그리하여 헌책방을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지만... 그 부분만 생략해버리면 얼추 내가 저 책들을 사는 충분한 변명거리가 될 듯 하다. 내 새끼들은 틀림 없이 저 책들을 읽고 싶어할테니까 말이다. 그럼그럼그럼
현재 내가 소유한 그녀의 책은 여기저기 귀퉁이가 접힌채 나의 사랑스런 눈길을 받으며 옆에 놓여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이 책을 뜨겁게 사랑하는 가족의 유쾌한 에세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살 더먹는 이 연말 연시 괜스레 울적해지는 당신에게도 권한다. 나를 믿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