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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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살던 시골집 뒷마당에는 안 쓰는 가구들이나 농기구들을 쌓아두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집 뒤편에 있어서 항상 그늘이 지고 눅눅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그곳에 물건 하나를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물건을 들었을 때 바닥에는 온갖 벌레들과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둡고 습하며, 심지어 물건으로 인해 잠시 비치는 햇볕까지 차단된 곳에는 어린 나이의 내가 생각도 못한 끔찍한 벌레들이 우굴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들었던 물건을 다시 그 자리에 내던져 놓고 도망 나왔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이런 어둡고 습한 곳을 열어봐야 할 때가 있다. 그곳에 온갖 끔찍한 것들이 우굴댈지라도, 결국에는 그곳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계속해서 그렇게 어둡고 습하고, 벌레들이 우굴거리는 끔찍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곳을 열고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열어젖히고, 그곳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영원히 끔찍하고 추악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열어젖힌 책이 있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기록인 [콜럼바인]이라는 책이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에릭과 딜런 이라는 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가 되어,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충격과 공포를 준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과 주변 주민들, 더 나아가 미국 시민 전체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기억하기 싫은 사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역사전 사건을 분석하듯이 이 사건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릭과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사건의 진행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거의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이런 끔찍한 사건과 이 사건의 여파를 감정이나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한 체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 방법 때문에 독자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해 읽는 내내 더욱더 오싹한 공포를 느낀다. 특히 사건의 진행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페이지는 넘기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너무나 치밀하고 현장성 있는 묘사로 인해 마치 내가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에릭이 어마어마한 살육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담담히 피해자들을 따라다니며 총기를 난사하는 과정,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과정, 엉성하고 혼란한 대응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더 늘어나는 사망자들과 중상자들이 늘어가는 과정 등은 읽는 동안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을 거의 3일 동안 읽었는데, 읽는 내내 밤마다 묘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에릭과 딜런을 만나서 그들이 저지를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무기력하게 목격하면서 꿈을 깨었다. 아마 이 사건을 접한 미국인들이 겪는 공포와 무력감의 일부분을 내가 꿈으로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콜롬바인 사건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 특히 이 사건을 주도한 에릭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저지르려고 준비했던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에릭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최소 500-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이 희생되는 대형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심판의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콜럼바인 역시 그렇게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에릭은 웹에서 찾은 [무정부주의자의 요리책]을 보고 최소한 일곱 개의 대형 폭탄을 설계했다. 그는 높이 45센티미터, 직경 30센티미터의 불룩한 흰색 프로판탱크를 골랐다. 이 정도면 고성능 폭발가스를 7.5킬로그램이나 담을 수 있었다. 1번 폭탄은 기폭장치로 에어로졸 캔을 사용했고, 둥근 금속 벨이 위에 달린 구식 알람시계와 선으로 연결했다. 첫 단계는 이 폭탄을 학교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에릭의 집 근처 공원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 수백 명이 능히 죽겠지만, 실은 돌과 나무를 날려 버리기 위함이었다. 진짜 공격은 그 이후였다. 미끼용 폭탄으로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킨 다음에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맥베이의 기록을 두 배, 세배 경신할 생각이었다. 피해 규모를 '수백 명' '500-600명' '최소 400명'등 다양하게 추정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던 무기의 위력에 생각하면 사실 이 정도도 적게 잡은 수치였다." (P 64)

"2부는 총격 시간이다. 재밌는 시간이 딜 것이다. 딜런은 인트라텍 TEC-DC9과 산탄총으로 사냥하기로 했다. 에릭은 하이포인트 9밀리미터 카빈 라이플과 산탄총을 골랐다. 그들은 옷자락 안에 숨기기 좋게 산탄총의 총신을 잘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휴대용 폭발물인 파이프 폭탄과 이산화탄소 폭탄을 넣었고, 일대일 격투가 벌어질 것에 대비해서 화염병과 소름 끼치게 생긴 칼도 여러 자루 챙겼다. 탄약고 폭발물 대부분을 끈으로 묶어 몸에 부착할 수 있도록 보병용 멜빵을 맸다. 그리고 배낭과 더블 백에 더 많은 무기들을 담아 가져갔다. 파이프 폭탄 공격을 신속하게 실행하려고 화약을 바른 띠를 팔뚝에 테이프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무기도 감추고 멋지게 보이려고 검은색 더스터 코트를 걸쳤다." (P66)

다행히 이들이 계획한 폭탄은 터지지 않고, 사건을 총기 난사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사건 자체는 너무 끔찍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후에 피해자의 부모나 가족의 입장에서 사망자나 피해자를 기다리는 심정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그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자녀나 가족이 두 명의 고등학생의 미친 놀이에 갈가리 찢겨서 시체로 건네졌을 때 부모나 가족들이 느꼈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책에는 그런 심정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날 것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공권력과 언론의 대응 방식이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지방경찰과 FBI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를 못했다. 범죄자가 몇 명인 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딜런이 자살하고 사건 발생 49분 만에 에릭까지 자살을 했는데도, 경찰은 엑릭이 자살한 후 3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사건이 종료된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고등학교 건물은 경찰에 의해 봉쇄가 되었고, 총을 맞은 피해자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거나 치명적인 부상이 악화되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심지어 죽은 시체들은 밤새 학교에 그대로 방치되었고, 가족들은 다음날까지 학교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범인을 찾는 과정 속에서도 엉뚱하게 에릭과 딜런의 범죄를 신고한 친구들을 공범으로 몰아 체포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의 동기를 찾지 못해 이들은 고스 족이나 신나치족, 마피아 같은 엉뚱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 현장에 갇힌 학생들과 무분별하게 통화하고 여러 가지 정제되지 않는 정보들을 보도함으로써 사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공권력의 무능력과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사건 수습은 더 늦어지고, 피해자들만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왜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기억인지를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의 성장과정에서부터 이미 범죄의 가능성은 노출되었고, 이들이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막을 기회가 있었다. 또한 대응 과정에서도 너무나 어리숙하고,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도 엉망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할 수 있는 미국의 총기 제도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 끔찍한 기억을 조금도 여과 없이 그대로 끄집어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3명이 죽은 콜롬바인 사건이 미국 사회에 그렇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면, 300명 이상이 죽은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을까.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인에게 그대로 생중계 되었다면, 한국인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그대로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이제 그만하자!'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하고 충격스러워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들출 때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끔찍한 벌레들이 튀어나오더라도 열어젖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건의 기억은 우리에게 영원히 어둡고 습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한편으로 읽는 내내 끔찍하고 몸서리를 쳤지만, 이런 끔찍하고 몸서리를 치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담히 책으로 펴낼 수 있는 저자와 미국 사회의 용기에 대해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으로 인해 이런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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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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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처럼 나도 어린 시절엔 학교를 가기를 싫어했다. 매일 반복되는 등하교가 너무나도 단순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순간에도 다른 공간은 그대로 있을까. 사실은 모든 것이 공허와 어둠이고 신이 내가 다니는 곳만 '세상'이라는 이미지의 그림을 펼쳐 놓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지나간 곳은 다시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등굣길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여전히 '존재'했었다. 그렇다고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이 내가 집으로 돌아올 줄을 알고 다시 집의 이미지를 준비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눈치가 있었기에 이런 내 생각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리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짐작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만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었다. 다행히 조금 나이가 들면서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존재하는 세상에 의심을 품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지 버클리'라는 아일랜드의 철학자였다. 버클리는 세상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무엇을 지각하고 있기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각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버클리는 세상은 신의 지각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클리에 의하면 우리는 결국 신의 관념 속에 지각되는 허상일까.

이제 어린 시절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는 것이 바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데 김대식 교수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잊혔던 예전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은 뇌과학 교수인 저자가 수많은 책을 읽고 느꼈던 느낌과 충격들이 적혀 있다. 저자 역시 사람과 세상에 실망하고 책 속에 묻혀 살았던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이 많은 질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저자가 자신의 책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 그 속에 속한 지구에 대해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도 출신의 영국 기자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그곳에 없었던 남자]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품고 있는 '고타르 증후군'환자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나'란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두개골을 열어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뇌'라는 1.5킬로그램짜리 고깃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어떻게 그 뇌는 '나'라는 자아를 가능하게 한다. 아니면 많은 뇌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아와 '나'는 뇌의 '착시 현상'일 뿐일까? "자아와 나는 착시"라는 주장을 하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P 107)



이 책에는 또 세상에 대해서 질문들도 있다. 과연 세상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처럼 세상은 가상현실이 아닐까. 실리콘밸리의 최고의 혁신가로 불리는 테슬라 사의 일론 머스크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상  현실이 아닌 진짜 세상에 살 확률은 10억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옥스퍼드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니클라스 브스트륌'으 주장을 언급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류는 많은 가상현실 컴퓨터를 돌리고 있고, 미래에는 이것이 더 완벽하게 구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의 그 완벽한 가상현실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이미 50년 전에 발표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란 책을 언급한다.

[픽션들]에서 주인공 마법사는 꿈속에서 한 인물을 창조해 낸다. 그리고 그 인물이 주인공의 꿈속의 허상인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나와 주변의 세계 역시 누군가의 꿈속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믿는 진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300]의 영화에서처럼 전체주의적인 스파르타는 영웅으로 묘사되고, 다문화주의적인 포용 정책을 사용했던 페르시아는 괴물의 집단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알렉산더를 통해 그리스 문화가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진리이기보다는 승자의 기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자칫 우리를 혼란케 하거나 허무주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질문들이 '나'를 만든다. 데카르트 역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보는 모든 세계가 악마가 만든 허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의심과 의식 속에서 그 의심 속에 존재하는 생각하는 자아인 '코기토'라는 끈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끈을 붙잡고 의심의 세계에서 나왔다. 우리가 꼭 데카르트와 똑같은 방법으로 의심의 세계를 빠져나올 필요는 없다. 스스로 나와 세계에 대한 의심을 품고, 질문을 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몸부림쳐 빠져나올 때만이 의심과 회의에서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점점 우리는 질문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신간 [호모 데우스]를 인용하며 미래의 인간은 데이터를 통해 신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신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나 세상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서글픈 신인가? 구글신에 의존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나중에 이렇게 진화할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가 참 단순해졌다. 각자 자신만이 믿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증거와 증언이 나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거짓이고 왜곡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아무런 의심도 질문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무서운 폭력으로 변해간다.

어린 시절 의심을 품고 학교를 등교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나는 내가 학교라는 세계 속에 갇혀 있을 때도 다른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내가 알고 경험하던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 있고, 그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밀란 쿤데라는 책은 다른 세상을 열어젖히는 커튼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다른 어떻게 접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내 세상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는 이 책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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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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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 뱃속에 있던 작은 생명 덩어리가 인간의 형체를 갖추어 가고, 이제는 제법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아이가 살아갈 험악한 세상으로 인해 조금은 걱정스럽다. 이 아이가 어떻게 이런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왔을까. 타인을 밟지 않고는 설 수 없는 세상에서, 괴물이 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왜 아직도 괴물이 되지 않고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누렸던 따스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어쩌면 그때의 따스함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따스함이 점점 사라지고 고갈되면 나도 괴물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더 절실해진다. 이 아이가 평생 동안 고갈되지 않고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부어 주고 싶은 마음에... 

손홍규 작가의 [다정한 편견]이란 산문집을 읽으며, 험악한 세상에서 괴물이 되지 않고 순수함을 간직하려고 몸부림치는 작가의 순수한 영혼을 느꼈다. 이 산문집은 원고지 4-5매 분량은 짧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짧은 글들에 하나같이 작가의 진솔함과 세상과 사람을 향한 따스함이 묻어 있다. 그리고 이런 따스함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가난한 집안과 때로는 무능해 보이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분들과 함께 했던 따스함이 작가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서, 세상과 사람을 따스하게 대하게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 그때 작가 안에 들어왔던 따스함이라는 덩어리가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아버지는 으레 반쯤 마신 뒤 설탕물 대접을 내게 건네주었는데 여태도 나는 그 달고 시원했던 그 설탕물맛을 잊지 못한다. 어느 날인가는 한번 부엌 천장에서 설탕을 끄집어내 물에 타 먹어보았으나 아버지가 건져주었던 것처럼 달기는커녕 밍밍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타락이 조금쯤은 스며들어야, 하루 동안의 노독의 흔적이 스며들어야 단맛이 난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러니까 정말 맞는 말이다. 달고 맛있는 물이야말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맛있다. 그저 설탕에 물을 탔을 뿐인데도." (P 31)

작가의 글에는 유독 어린 시절 어머니에 관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어머니의 빨래 이야기가 종종 언급된다. 손목이 시도록 방망이로 두들기며 빨래를 하는 모습, 그래서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어머니에게 쉽게 빨랫감을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굳이 아들의 빨랫감을 가져다가 깨끗이 빨아 문 앞에 개어 놓아 주셨다. 작가는 그 어머니의 사랑이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게 했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할수록 어머니는 힘겨웠으리라. 더 많은 힘을 들여 빨래를 했을 테니.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금언이 있다. 이 말은 거짓이다. 진실은 이렇다. 물이 탁해지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대신 그곳에 괴물이 산다. 괴물이 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저 금언을 이용하는 것이다. 괴물이 되면 되돌아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최선은 괴물이 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워지는 게 아니라, 타락의 속도를 늦출 용기를 지녀서 인간다워지는 존재니까." (P 69)

"우리는 탁하지 않아서 인간다워지는 게 아니라, 타락의 속도를 늦출 용기를 지녀서 인간다워지는 존재니까"라는 작가의 짧은 글 속에서 작가가 살아왔을 험악한 세상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도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작가의 영혼이 느껴진다. 이런 작가의 몸부림의 이 책의 후반부에 많이 등장한다. 그는 이 시대의 작가의 글쓰기를 날마다 유서를 쓰는 것에 비유한다.

"무례하고 오만한 지식인들 앞에 예술이 무릎을 꿇는 순간 자본주의의 지배는 공고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글은 다만 유서일 뿐이다. 지배계급이 연루된 범죄치고 언제 한 번이라도 샅샅이 전모가 밝혀진 적 있던가, 그러나 억압이 있은 곳에 저항도 있다. 나는 상업주의에 굴복한 작가들의 손에서 소설을 되찾아오기 위해 홀로 길을 떠난다.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아니 패배가 자명하다. 그들은 무척 유능한데다 수많은 지지자를 거느렸기 때문이다. 오늘도 책과 원고지를 앞에 둔 채 열렬히 읽고 쓴다. 작가에게 진실을 기대했던 어느 투명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날마다 유서를 쓴다." (P 145)

그럼에도 작가는 험악한 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사람을 따스하게 바라본다. 그 안에는 아직 괴물이 되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디 그 영혼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그 순수한 영혼이 묻어 나오는 글들이 얼어붙고 냉랭해진 독자들의 마음을 녹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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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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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경우는 몇 년째 베스트셀러에 머물고 있고, [용의자 X의 헌신]의 경우는 한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토리노 동계올림픽 관전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먼저는 [공허한 십자가]라는 책이다. 작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면서도, 사회성이 짖게 뭍어 있는 책이여서 매우 인상에 남았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만 들어도 이 책은 푸른색 표지가 떠올려진다.

다른 한 권의 비채에서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라는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관전했다면, 하루키는 시드니 올림픽을 관전하고 이 책을 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루키의 [시드니]라는 책과 비교가 되었다.

이 책은 주인공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것은 유메키치라는 고양이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 기르던 유메키치라는 고양이가 어느날 사람으로 변해 저자와 함께 동계올림픽을 관람한다는 조금 황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책이 유모있고,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유메키치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일본의 동계 스포츠의 장소를 돌아보며, 일본의 동계스포츠의 현황이나 역사를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처음 개최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이미 삿포르와 나가노의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개최했었다. 그리고 나가노에서는 금메달 6개를 따면서 동계 스포츠 종목이 인기를 얻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진 당시는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해 동계 스포츠 종목이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저자는 이런 일본의 현실과 저자만의 박식함과 재미있는 방법으로 동계 스포츠 종목들을 소개한다.

이 중 특히 저자의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견제로 인해 룰아 바뀌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 못하지만, 스키점프는 동계스포츠종목 중 일본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종목이다. 특히 저자를 비롯한 일본 사람들에게 '하라다 마사히코'는 단연 올림픽 영웅이다. 하라마 마시히코는 스키점프를 통해 오욕과 영광을 동시에 누렸다. 릴레함메르크 동계 올림픽 스키점프 단체전에서는 거의 1등이 확정된 경기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어이없는 실수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이어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다시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인의 뇌리에 깊숙히 기억되어 있는 당시의 릴레함메르크의 충격을 매우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직접 토리노로 가서 동계 올림픽을 관전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유독 이탈리아의 경기 시설에 대해서 투덜거리다. 토리노에서 경기장까지 200Km를 달려야 하는 곳도 있었고, 버스나 교통편이 너무 불편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행객이 가장 큰 불편을 겪는 화장실 문제에서는 무척 흥분을 한다. 너무나 리얼하게 구식 화장실에서의 충격적인 장면들을 묘사하기에 읽으면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었다. 아마 여행지에서 이런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당시 토리노에서 일본의 성적은 너무 부진했고, 유일한 희망은 안도 미키의 피겨스케이팅이었다. 당시에는 김연아나 아사다마오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여서 안도키미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 미국의 코헨이나 러시아의 슬루츠카야가 너무 뛰어났기에 금메달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모두들 실수를 하고 금메달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아라카와 시즈카가 차지하게 된다. 당시 토리노의 이변이었고, 토리노에서 일본이 딴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토리노에서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저자는 이것을 인정하기보다는 한 종목에 편향된 한국 동계스포츠를 은근히 비난한다. 반면 일본 동계스포츠는 비록 금은 하나밖에 따지 못했더라도 모든 종목에 골루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하는 말로 토리노 동계 올리픽을 정리한다. '참가하데 의의가 있다!', 글쎄 참가하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면 더 좋은 것 아닐까? 굳이 남의 나라 성적을 깍아 내릴 필요까지야... 그래도 한국 동계 스포츠가 한종목에 편향되어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의 흥미로운 토리노 동계올림픽 관전기였다. 뱅쿠버나 소치 올림픽의 관전기도 출간된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는 평창 올림픽 관전기도 출간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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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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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남자이면서도 넘치는 감성으로 인해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드라마의 슬픈 장면만 보면 눈물이 나고, 연애 장면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막처럼 감정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면 오히려 화가 나고, 가슴 뛰는 연애 장면을 보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무덤덤해진다. 벌써 갱년기인가? 요즘은 일부러 유행하는 웹드라마를 보며, 잠자는 연애세포를 깨우고 있다. 이미 결혼을 해서 연애세포는 깨울 필요가 없지만...

이런 나의 메마른 감성을 깨우는 책을 만났다.  고 장영희 교수의 영미 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신문에 연재하던 영미 시를 편집해서 출간한 책이다. 초판본은 2006년에 출간되었고, 저자는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이 책은 꾸준히 사랑을 받다가 이번에 비채에서 다시금 새롭게 출간하였다. 한편 한편의 시가 마치 살아서 마음을 두들기듯이 감성적이고, 무엇보다도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너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중 가장 음에 와 닿은 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잠자는 연애 세포를 깨우는 사랑에 관한 시이다. 그중 두 편의 시를 소개해 본다.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이라는 여성 영국 시인의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이란 시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다른 아무것도 아닌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녀의 미소와 외모와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
연민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마음으로도 사랑하지 마세요.
당신 위로 오래 받으면 우는 걸 잊고
그래서 당신 사랑까지 잃으면 어떡해요.
그저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있도록.

저자는 신체적 장애로 집에 감금된 경험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6살 연하의 젊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구애했다고 한다. 그녀가 이런 사랑의 구애를 받으면서 쓴 작품이 바로 이 시라고 한다. 얼마나 애절한가? '연민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마음으로도 사랑하지 마세요." 진정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시이다.

다른 한 편은 영국의 리 헌트라는 시인이 쓴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라는 시이다.

우리 만났을 때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
앉아 있던 의자에 벌떡 일어나 키스했다.
달콤한 순간들을 가져가기 좋아하는
시간, 너 도둑이여, 그것도 네 목록에 넣어라!
나를 가리켜 지치고 슬프다고 말해도 좋다.
건강과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고,
나 이체 점점 늙어간다고 말해도 좋다. 그렇지만,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는 것, 그건 꼭 기억해라.

아~~ 이 달달함과 애절함이 동시에 묻어 있는 감성이란...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서인지 자녀에 대한 시도 마음에 와 닿는다.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의 '당신의 아이들은'이란 시이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잇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은 그 집을
결코, 꿈속에서도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이란 뒷걸음쳐 가는 법이 없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이 묻어 있는 미국 시인이자 퓰리처상 수장 작가인 새러 티즈데일 '기도'라는 시를 소개한다.

나 죽어갈 때 말해주소서
채찍처럼 살 속을 파고들어도
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
그 아픔을 기쁘고 착한
미소로 받아들이려고 애섰다고,
심장이 찢어진다 해도
내 영혼 닿은 데까지 깊숙이
혼신을 다 바쳐 사랑했노라고,
삶을 살 자체로 사랑하며
모든 것에 곡조 부텨
아이들처럼 노래했노라고.

현대시의 난해하고도 자극적인 싯구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내 또래의 중년 남성에게 적극 추천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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