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남미였어 - 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를 나의 남아메리카
김동우 지음 / 지식공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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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남미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김창삼 교수의 세계여행기]이다.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여행기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책꽃이에 있던 몇 권짜리 전집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어린나이에도 저자가 남미를 여행하며 겪은 일화와 사진들을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래서 지금도 남미를 연상하면 괘죄죄한 모습에 남미 원주민과 함께 벽돌 집 앞에서 웃고 있는 김창삼 교수의 사진이 먼저 떠오른다.


두 번째는 젊은 시절에 보았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마돈나가 주연한 [에비타]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아르엔티나의 역사와 에바 페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 '돈 크라이 포미 아젠티나~'라고 노래하는 이 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는 최근에 읽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란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알게 되었고, 남미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또 남미를 기억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김동우라는 저자가 쓴 [걷다보니 남미였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남미여행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저자의 특유의 유모와 궁색?맞은 여행기가 꼭 어린시절에 읽었던 김창삼교수의 여행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남미의 여러 곳을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저자가 트래킹을 좋아해서 남미의 유명한 트래킹 코스와 산들을 걸은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저자가 황량하고 거친 산을 오르는 모습을 읽고 있는 동안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여행 코스 중 저자가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곳이 파타고니아라는 곳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세계 3대 트래킹 코스로 알고 있던 곳이며, 나에게도 꼭 걷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파타고니아가 하나의 트래킹 코스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7배나 넓은 광활한 얼음과 바람의 지역인 것을 알았다.

저자는 이 파타고니아 발릴로체라는 곳을 트래킹하기도 하고,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곳을 트래킹 하기도 한다.

광활한 산과 벌판을 트래킹하며 텐트에 자기도 하고, 걷센 바람을 맞으며 오르기도 한다.





저자는 남미 여행 중 여러 번 등산을 하는데 그 중 최고의 압권은 남미의 최고봉 아콩가구아를 등산한 것이다.

거이 2주가까이 계속되는 등산에서 결국 거센 바람으로 인해 중간에 등정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후회와 씁쓸한 마음에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고요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적을 베고 누웠다. 아콩가구아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장면마다 송곳 같은 후회가 합리화의 방패를 뚫고 가슴을 찔렀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내게 실패자란 낙인을 찍었다.

좀 더 용기를 내야했다. 과감하게 나 자신을 던져야 했다. 말로만 일생일대의 도전이 아니라 진짜 모든 것을 걸었어야 했다. 악천후는 핑계일 뿐이다. 산을 내려온다는 건 곧 육체의 편안함을 약속하는 행동이다. 불편과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 산 아내 평온함은 진짜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마지막까지 버틴 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한테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벗겨지고, 진물이 흘러도 정산에 서 보고 싶었다.

산을 내려오자 이런 불같은 의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마음의 중심은 갈기갈기 찢겨 누더기가 돼 있었다. 나 잣니에 대한 확신은 황량한 아콩가구아처럼 건조했다. 이런 비루한 자괴감은 나를 더 깊고 어두운 수령으로 빠드렸다. (P278)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 여행을 통해 누리고 있는 자유와 사색의 시간이 부러웠다.

그 자유와 사색의 시간을 누릴 수 없는 독자에게 책을 통해 그 시간을 선물해 주는 저자의 배려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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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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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복잡한 일들로 인해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다.

어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두통만 심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이 책을 집어 들고 어느 부분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에 빠져들었다.

소설이 아닌 여행기에 푹 빠져서 읽어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마치 내 눈 앞에 황량한 알타이의 벌판과 그 곳의 냄새, 그리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은 그 두통도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청년시절에 우연히 몽고를 알게 된 후 그 곳을 방문하려고 몇 번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무슨 일인지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결국 지금까지 나는 몽고를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남양주 수동에 있는 몽골문화촌만 몇 번 방문했다.

그 곳에 가면 항상 몽고문화공연을 보게 된다.

여러 가지 기예 공연도 있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며 몽골의 노래를 하는 공연이다.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광활한 몽고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내 조상이 몽고 사람이여서 내 속에 그런 DNA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마치 광활한 몽고 벌판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다른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보통 여행기는 그 나라의 유명 건축물이나 유적지 등을 방문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 배수아가 몽골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알타이 지방에서 갈잔 치낙이라는 투바 유목민과 함께 생활한 한 달 간의 기록이다.

몽골의 서쪽인 알타이 지방에서는 특별한 유적물도 없을 뿐더러 인간이 만든 문명화된 편의 시설도 없다.

단지 유르테라고 부르는 이동식 천막만이 있었고, 작가는 유럽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갈잔의 유르테에 머물렀다.

그러기에 이 여행기에는 특별한 건축물에 대한 감상이나, 커다란 사건에 대한 기록 등이 없다.

그냥 작가가 알타이 벌판에서 생활하고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뿐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이야기가 마치 읽는 사람을 그 알타이 벌판으로 끌고 가는 듯한 힘이 있다.


 그 곳에 서면 삶은 전설이었다. 나침반도 망원경도 없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어느 방향이러시아이며 어느 방향이 중국인지, 어느 방향이 울란바토르이며 어느 방향이 카라코롬인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영혼들이 떠나간 길을. 내 말은 발걸음이 느렸다. 일행이 타고 있는 말 중에서 가장 느렸다. 승마에 겁을 먹은 내가 갈타이에게 가장 느린 말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방을 돌아보니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비안개의 물방울 속에서 나는 홀로 터벅터벅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말과 함께 지상에서 홀로 살아 있는 존재, 홀로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였다. 향나무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하늘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으며 그곳의 산맥은 하늘이 내려앉은 길고 높은 등뼈였다. 길이 오르막으로 변할 때마다 늙고 지친 말은 비틀거렸고, 허덕거렸고, 강풍에 맞서기 위해서 안간힘을 썻으며, 문득문득 몸을 떨면서 비명 같은 외마디 울음을 내질렀다. 왜 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그런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마치 그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혼들을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 유령들에게 비명의 인사를 건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휘몰아치는 회색빛 바람 속에서 홀로 무서워하며 생각했다. (P143-4)

알타이의 풍경 묘사와 함께 그 곳에서 작가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소한 이야기가 매우 정겹다.

특히 그 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마리아'라고 부르는 오스트리아 여성 마리아와의 우정이 매우 재미있다.

마리아는 오페라를 좋아하고 여러 언어에 능통한 여성이지만, 알타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여성이다.

실제로 갈잔의 소개로 유목인 총각과 선?을 보기도 한다.

그녀는 마테차를 즐겨 마시는데 작가와 함께 마테자를 마시며 우정을 키운다.

그녀와의 일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작가와 함께 투바족의 미인대회에 참가하려다가 무산된 일이다.

갈잔의 농담으로 축제 때 미인대회에 나가라는 말을 사실로 알아듣고, 마리아와 작가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대회를 준비한다.

두 여성 모두 페미니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대회를 기대했던 것은 알타이에 대한 구애였을 것이다.

나중에 그것이 갈잔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던 것은 아마 짝사랑의 대상에게 거절 당한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여행기는 매우 진솔하다.

작가의 무용담이나 무언가를 향한 거창한 묘사가 없다.

매 순간 진솔하고, 진지하게 그 시간을 음미하게 한다.

책 속에 알타이의 황량한 벌판이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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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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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에서 항상 자유의 시간을 갈망했었다.

새벽에 등교해서 자정무렵에 하교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 시간만 끝나면 마음것 자유를 누리겠다고 생각했었다.

26개월을 묶여있던 군대생활에서도 제대만 하면 진정 자유로운 삶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1년 간의 휴가만 주어진다면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며 자유를 누리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 자유에 의해 당황하고 자유 이후에 주어질 시간에 두려워했었다.

마치 군대에서 첫 휴가를 복귀날을 두려워하며 보냈던 것처럼 그렇게 자유의 시간들을 허비했었다.

결국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자유의 시간을 마음 것 누린 한 여행가가 있다.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의 저자 '마이케 빈네무트'라는 50대의 독일 여성이다.

마이케는 독일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한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 50만 유로를 상금으로 받았다.

그는 우승하기 전에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1년 동안 12개 도시를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주어진 돈과 시간을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대단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유를 누리려면 돈과 시간보다 먼저 그 자유를 쟁취하고 누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사실 난, 올해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면 어찌나 겁이 났어. 그런데 시드니가 멋진 사다리를 놓아주었고 그것을 넘자 마음이 편해졌어. 처음엔 자유가 부담스러웠어 너나 나나 자유가 뭔지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지 상사, 부모, 가족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 결정하는 삶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생활한다는 것, 물론 불안하고 초초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신날 거야,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자유로운 손으로 걸으려면 제대로 훈련 해야 할 거야. 언제든지 붙잡을 수 있는 익숙한 난간도, 양옆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도 포기해야 할 테니까."

- 본문 중에서(P40)-

 


그렇다고 저자가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이케는 주어진 자유를 통하여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한다.

자신이 정말 맞게 살아온 걸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까?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인생을 조망하고 점검하려면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데 제겐 두 번의 기회가 있었죠, 작년 여름 50번째 생일과 지금 이 여행, 그러니까 일종의 인생 재고 목폭을 작성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가진 것, 내게 없는 것,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 기능 상실한 것, 버리고 싶은 것, 더 필요한 것, 한 마디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본문 중에서 (P114)-

 


마르케는 1년 동안 12개의 도시를 돌며 각각의 도시에서 12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그래서 이 책은 12개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코펜하겐에서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이다.

앞 날에 대한 불안과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10대 자신에게 따스한 충고를 보낸다.

 

"나는 현재 세계 여행 중이야. 열심히 노력하고 계획해서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건 아니야.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 내 인생의 다른 중요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어찌어찌 그렇게 되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어. 미래는 걱정하지마, 저절로 널 찾아올 테니까.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고 혼란스럽더라도 너는 잘해낼 거야. 의미 역시 저절로 생기니까. 나는 방금 자전거를 타고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무덤이 있는 아시스텐스 공동묘지를 지나왔어.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에 관해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했지.


인생은 순방향으로 살게 되고 역방향으로 이해된다.


그러니 그냥 기다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어떤 길을 가든, 지나고 되될아보면 모든 것이 옳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밝혀질거야.

- 본문 중에서(P217)-

 

 

 

또 이 글에 나와있는 가장 인상깊은 방문지는 샌프란시스코이다.

그녀는 원래 20대 초반에 존이라는 남성과 연애를 했었고, 한 동안 차를 타고 무전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여행의 경유지 중에 샌프란시스코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도중 그녀와 존은 크게 다투고 해어졌기에 그때 그녀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거이 30년만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며 여러 가지 회상에 잠긴다.

그녀의 글을 보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여행지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녀의 최악의 여행지는 인도의 뭄바이라는 도시였다.

그녀는 뭄바이의 북적거림과 가난, 그리고 계속해서 달라붙는 호객꾼들에게 견딜 수 없어 비명을 질러댄다.

 

"제발 절 좀 여기서 꺼내줘요. 더는 못 견디겠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하루도 더 뭄바이에 있고 싶지 않아요. '여행 블루스'도 이제 그만 추고 싶어요. 지금 절 만난다면 아마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전 완전히 지치고 예민해져서 계속 짜증만 나고 걸핏하면 화를 내요. 이게 다 인도 때문이예요."

- 본문 중에서(P77) -

 

 

 

그럼에도 그는 점점 도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따스한 시각으로 그 도시와 그 도시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장해 간다.


이 책을 읽으며 자유를 누리는 것, 그리고 그 자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번역이 시원찮으면 그 작품의 감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반면 이 책과 같이 저자의 통통튀는 글들과 색다른 표현들을 한국어로 멋지게 옮기는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은 독일어로 쓰여진 책임에도 훌륭한 번역으로 한국어로 쓰여진 것처럼 곳곳에 의성어와 감탄사, 비유등이 마치 한국사람의 말처럼 멋지게 표현되어 있다.

멋진 여행칼럼에, 멋진 번역이 좋은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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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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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 있다.

세상이 너무나 낯설고, 찾아오는 사건들이 너무나 차갑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던 날이 기억난다.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져서 넓은 운동장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 있던 순간을......

양초로 닦아 윤이나던 미끄러운 교실의 마루바닥을 밟던 낯설음을......

그 후 인생은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입었을 때 느끼는 그 낯설음이란......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님의 죽음 앞에 서 있을 때의 당혹함이란.......

하지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에 적응해 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발견한 그 몸부림으로......


한 여성이 이 낯선 세상과 아버지의 잃은 당혹감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친 기록이 여기 있다.

헬렌 맥도널드가 쓴 [메이블 이야기]이다.

'메이블'은 헬렌이 길들인 참매의 이름이다.

헬렌은 어느 날 갑자기 사진기자였던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당혹해 하고, 낯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교수직에도 흥미를 잃고, 직장도 관두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길들이고 싶었던 참매를 길들인다.


참매 보통 매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워낙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매를 길들이는데 실패한다.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인생에 대한 무력감을 참매를 길들이며 극복하려고 한다.

참매와 연결된 끈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같다.

그 끈이 끊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그 끈을 부여잡는다.

마치 아버지와의 끊어진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러나 헬렌이 정작 참매를 통해서 발견한 것은 참매 안에 있던 야생성에서 자신을 본 것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는 '메이블'의 야생성을 통해 헬렌은 자기 안에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을 본다.

그리고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간다.


헬렌이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함께 동행한 사람은 T. H. 화이트라는 사람이다.

화이트는 헬렌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헬렌의 동료도 아니다.

심지어 헬렌은 화이트를 만나본적도 없다.

화이트는 헬렌이 어린 시절 읽었던 [참매]라는 책을 쓴 헬렌의 전 세대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후에 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숲 속의 오두막집에서 '고스'라는 참매를 훈련시키며 생활한다.

그가 '고스'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는 서툴르지만 '고스'의 야생성을 인정하고 그 야생성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스'를 잃어버린다.


헬렌은 '메이블'을 길들이며 화이트가 '고스'를 길들이는 과정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둘은 함께 동행하며 '메이블'과 '고스'를 길들인다.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의 야생성에서 자신들의 야생성을 발견한다.

세상에 길들여지는 자신들을, 세상에 길들여 지지 않는 자신들을 본다.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는 자신을,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헬렌은 고스가 꿩과 토기를 사냥하는 장면에서 당혹스러워한다.

한편으로 고스가 짐승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한다.

그러나 곧 그는 죽음을 자연스러움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인다.


나는 매를 빤히 바라보고, 매는 죽은 꿩을 쥐고서 광적인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한다. 나는 놀란다. 어떤 감정을 기대햇는지 모르겠다. 피에 대한 굶주림? 잔인성?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산울타리 안을 휘젓고 다니느라 내 몸 전체가 가시에 끍힌 상처투성이고, 가슴속 어딘가가 아파 온다. 대기 중에 엷은 안개가 끼어 있다. 건조하다. 활석 같다. 나는 매를, 꿩을, 다시 매를 쳐다본다. 그러자 모든 게 바뀐다. 매는 폭력적인 죽음을 가하는 것을 그만둔다. 메이블은 아이가 된다. 그게 나를 속속들이 뒤흔든다. 메이블은 아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막 파악하기 시작한 어린 매. 자기가 뭘 해야 하는 존재인지 깨달은 아이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매를 위해, 메이블이 먹기 시작하자, 나는 쭈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본다. 찬찬히 살핀다. 깃털이 날려 산울타리 밑으로 떠다니다가 거미집과 가시 돋은 가지에 걸린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빛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 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 본문 중에서(P291-2) -

 

 

사냥을 마친 메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사냥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산 것을 죽이는 행위를 혐오한다. 거미를 밟는 것도 싫고, 파리를 살려 두다가 남의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그런데 이제 나는 피에 굶주린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게 납득되는 것은 내가 매와 동일한 눈으로 볼 때뿐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합당하다 싶었다. 머리 위를 나는 새들을 복 때면 고개를 돌린 채 갈망을 품은 눈으로 좇곤 했다.

                                                      - 중략 -

하지만 매가 동물을 잡을 때마다 그것은 나를 동물이라는 존재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로 끌고 같다. 그것은 거대한 퍼즐이었고, 반복해서 재연되었다. 심장은 어떻게 멈추는가. 매는 나무잎 더미 속에 엎드린 토끼를 여덟 개의 강한 발톱으로 낚아채 날개로 덮었다. 꼬리를 펼치고, 눈은 타오르며, 긴장과 야생적인 웅크린 자세 때문에 목덜리 깃털은 곧추섰다. 바로 그때 나는 팔을 뻗어 토끼의 뭉친 근육을 만졌고, 부드러운 황갈색 털이 난 토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거머쥐고 다른 손으로 뒷다리들을 힘껏 한 번, 두 번 당기면서 목을 부러뜨렸다. 토끼는 흐릿한 눈으로 한바탕 발버둥 쳤다. 나는 토끼의 눈을 아주 가만히 만지며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모든 것의 멈춤, 멈춤, 멈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내가 토끼를 죽이지 않으면 매가 타고 앉아서 먹기 시작할 터였다. 그렇게 먹히는 도중 어느 시점에서 토끼는 죽을 테고, 그것이 참매가 사냥감을 죽이는 방법이다. 매가 먹이를 먹는 도중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나는 사냥감들이 그런 고통에 시달리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사냥은 우리를 동물로 만들지만 동물의 죽음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매와 사냥감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자니, 책임감이 워낙 크게 느껴져 그것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대성당만한 한 크기로 부풀었다.

- 본문 중에서(P309-10)-

 

 

헬렌은 '메이블'이 사냥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 역시 세상에 적응해 간다.

또 '메이블'에게 죽임 당하는 사냥감을 보면서 죽음이란 것에 적응해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헬렌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이 곳곳에 묻어나와 읽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것처럼 세상에 길들여 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매일 만나는 낯설음과 당혹스러움......

죽음과 사건들.....

그 과정에 우리도 헬렌처럼, 화이트처럼,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처럼 낯설어하고 당혹스러워 한다.


이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헬렌에게 묶여 있던 '메이블'은 매 번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저 주인이라고 부르는 '헬렌'이란 여자와 계속 끈으로 연결 되어 있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이 끈을 끊고 날아가야 하나?'

실재로 이 책에는 '메이블'이 계속 야생성과 길들임 속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이블이 끝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도 메이블처럼 매일 고민을 한다.

낯선 세상과 당혹스러운 사건 앞에서, 야생성과 길들임 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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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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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전쟁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 적응하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구입해서 읽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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