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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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남자이면서도 넘치는 감성으로 인해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드라마의 슬픈 장면만 보면 눈물이 나고, 연애 장면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막처럼 감정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면 오히려 화가 나고, 가슴 뛰는 연애 장면을 보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무덤덤해진다. 벌써 갱년기인가? 요즘은 일부러 유행하는 웹드라마를 보며, 잠자는 연애세포를 깨우고 있다. 이미 결혼을 해서 연애세포는 깨울 필요가 없지만...

이런 나의 메마른 감성을 깨우는 책을 만났다.  고 장영희 교수의 영미 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신문에 연재하던 영미 시를 편집해서 출간한 책이다. 초판본은 2006년에 출간되었고, 저자는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이 책은 꾸준히 사랑을 받다가 이번에 비채에서 다시금 새롭게 출간하였다. 한편 한편의 시가 마치 살아서 마음을 두들기듯이 감성적이고, 무엇보다도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너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중 가장 음에 와 닿은 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잠자는 연애 세포를 깨우는 사랑에 관한 시이다. 그중 두 편의 시를 소개해 본다.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이라는 여성 영국 시인의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이란 시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다른 아무것도 아닌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녀의 미소와 외모와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
연민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마음으로도 사랑하지 마세요.
당신 위로 오래 받으면 우는 걸 잊고
그래서 당신 사랑까지 잃으면 어떡해요.
그저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있도록.

저자는 신체적 장애로 집에 감금된 경험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6살 연하의 젊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구애했다고 한다. 그녀가 이런 사랑의 구애를 받으면서 쓴 작품이 바로 이 시라고 한다. 얼마나 애절한가? '연민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마음으로도 사랑하지 마세요." 진정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시이다.

다른 한 편은 영국의 리 헌트라는 시인이 쓴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라는 시이다.

우리 만났을 때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
앉아 있던 의자에 벌떡 일어나 키스했다.
달콤한 순간들을 가져가기 좋아하는
시간, 너 도둑이여, 그것도 네 목록에 넣어라!
나를 가리켜 지치고 슬프다고 말해도 좋다.
건강과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고,
나 이체 점점 늙어간다고 말해도 좋다. 그렇지만,
제니가 내게 키스했다는 것, 그건 꼭 기억해라.

아~~ 이 달달함과 애절함이 동시에 묻어 있는 감성이란...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서인지 자녀에 대한 시도 마음에 와 닿는다.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의 '당신의 아이들은'이란 시이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잇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은 그 집을
결코, 꿈속에서도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이란 뒷걸음쳐 가는 법이 없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이 묻어 있는 미국 시인이자 퓰리처상 수장 작가인 새러 티즈데일 '기도'라는 시를 소개한다.

나 죽어갈 때 말해주소서
채찍처럼 살 속을 파고들어도
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
그 아픔을 기쁘고 착한
미소로 받아들이려고 애섰다고,
심장이 찢어진다 해도
내 영혼 닿은 데까지 깊숙이
혼신을 다 바쳐 사랑했노라고,
삶을 살 자체로 사랑하며
모든 것에 곡조 부텨
아이들처럼 노래했노라고.

현대시의 난해하고도 자극적인 싯구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내 또래의 중년 남성에게 적극 추천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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