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 거대한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을 표류한 두 남자 이야기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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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영상을 통해 심해의 환경을 보면 경탄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바다 깊은 곳, 그 광활하고 어둠의 세계를 대면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이런 두려움을 피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 이런 두려움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를 하고, 미지의 생물들을 만나기 위해 탐사를 한다.


이런 원시의 바다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은 오랜 동안 인류의 마음 속에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리워야단같은 바다괴물을 이야기하고, 세계의 많은 나라의 전설 속에서도 바다에서 나오는 괴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미지의 바다생물에 대한 도전과 광활한 바다에 대한 탐험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노르웨이 사람이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후고'에게서 그린란드 상어를 잡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래서 둘은 엉성한 준비(물론 그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와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일년 가까이를 노르웨이 피오르해안을 곳곳을 상어를 잡기 위해 헤매인다. 이 책은 바로 엉뚱한 두 남자가 상어를 잡기 위해 노력한 허접한 여행기이다.


두 남자가 상어를 잡기 위해 계획하고 낚시를 하는 과정은 허접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글로 남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노르웨이의 지역이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관련된 노르웨이의 전설 등은 절대로 허접하지 않다. 때로는 여행기나 탐험기라고 보기에는 심각한 인간의 존재와 세계에 대한 심오한 사색 등이 담겨져 있다.


어째서 저자는 무모하게 보이는 그린란드 상어를 잡자는 후고의 제안에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그것은 자신 안에 인류의 조상때부터 가지고 있던 바다의 미지에 생물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런 바다의 미지생물과 심해와 같이 인간의 영역에 벗어난 지역에 대한 동경이 담겨져 있다.


"육지의생활은가로로 펼쳐진다. 거의 모든 일이 땅에서 일어나고 높아봐야 나무 꼭대기 정도다. 새들은 높이 날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땅에서 보낸다. 반면 바다는 세로로 이루어졌다. 평균 슈심이 3.700미터에 달하낟. 수면에서 밑바닥까지 매 층마다 온갖 생물들이 산다. 땅에 있는 모든 생활공간이 바다에도 있다. 바닷속 풍경과 비교하면 우림을 비롯한 다른 모든 풍경은 시시하다." (P51)


"상어는 인기투표에서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판다, 고양이, 강아지, 돌고래, 새끼 침팬지가 상위에 있고, 상어는 맨 아래에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상어에게 공격을 받으면 우월한 과학기술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던 아주 오래전 메아리가 우리 안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몇 초간 통제력을 잃는다. 순간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된다. 사실 사람이 상어에게 잡아먹힐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기 차가운 심해에서 우글대는 생물에게 잡혀 살점을 모두 뜯어 먹힐까 겁낸다. 언젠가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물고기와 수많은 기어 다니는 동물들이 기다리는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서, 상상만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분해될 것이다." (P 302)


저자는 상어를 잡는 중간 중간에 노르웨이의 역사와 전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특히 바다괴물, 바다인간, 물개인간과 같은 다양한 전설이 언급되고,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위대한 노르웨이 학자인 올라우스 마구누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올라우스 마구누스는 노르웨이 해안의 수심이 아주 깊기 때문에 특히 이곳에 괴물들이 자주 출몰한다고 썻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먼 바다로 과감히 나갔다. 후고와 내가 상어를 잡는 곳에서 멀지 않은 로포텐의 남쪽 어딘가에 어쩌면 가장 기이한 괴물이 살지 모른다. 그것은 새빨간 바다뱀으로 길이가 최소한 60미터는 되는 거대한 괴물이다. 거대한 뱀이 큰 범선을 휘감고 남자 한 명을 입에 물고 있는 장면이 마그누수의 해양지도에 그려져 있다. (P170)"


이런 방대한 사색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후고의 1년 가까이 된 노력에도 그린란드 상어는 잡히지 않는다. 서서히 이들 사이에는 갈드이 생기고, 이 계획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의 프로젝트에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프로젝트는 구름이 반사되는 텅 빈 수면 위에서 진행된다. 물속에는 절벽과 암초가 있고 우리의 눈은 그곳을 볼 수 없다. 또한 괴물이라고 부르는 피조물이 바다 밑바닥 진흙에서 회오리를 일으킨다. - 중략 -  그러나 이 얼마나 어리석고 흉악한 프로젝트란 말인가!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혹은 두려움을 직면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가장 큰 사냥감을 잡으라고 부추기는 사냥 본능이 우리 안에 꿈틀대는 걸까? 넓은 바다에서, 야생에서 짜릿한 사냥을 즐기려는 걸까? 지금은 멸종되고 없는 매우삭 아직 인간을 잡아먹던 시절, 마타이로돈티네 호랑이가 실신한 인간을 동굴로 끌고 가 어둠 속에서 뜯어 먹던 시절, 그때의 괴물 신화가 우리 유전자 속에 잠복해 있는 걸까? 인간을 물속으로 낚아채 살점을 뜯어 먹는 악아와 싸우던 시절? 그러고 보니, 그린란드 상어의 회전 기술은 정말로 악어를 닮았다." (P 300)


결국 이 책 끝에서 주인공과 후고는 천신만고 끝에 그린란드 상어를 발견한다. 상어가 후고의 낚시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냥 걸렸을 뿐이다. 상어는 후고와 배를 끌고 가고, 위협을 느낀 후고는 결국 천신만고 끝에 온 기회를 칼로 끊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 후 이들이 다시 그린란드 상어를 잡으려고 시도했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둘은 노르웨이의 추운 북쪽 바다에서 그린란드 상어를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계속되는 전세폭등에, 월세나 활부, 직장상사나 주변 사람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우리에게 노르웨이 북쪽 해안에서 한가하게 상어를 잡고 있는 주인공과 후고의 이야기는 신선노름같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에 가슴이 뛰는 이유는 이런 미지의 세계와 생물에 대한 동경이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직접 상어를 잡으러 가지는 못하지만, 책을 통해서라도 답답한 마음에 조금의 위안을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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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의 글쓰기
이준기.박준이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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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마치 발가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책들에서 지적하는 잘못된 글쓰기의 방식이 대부분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으려 한다.


얼마 전 아시아 출판사에서 나온 이남희 작가의 [나의 첫 번째 글쓰기 시간]이란 책을 읽었다. 마치 초등학교때 내 글쓰기를 지도해 주었던 담임선생님이 생각이 나듯이 친철하고 차근차근하게 글쓰기의 방법을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조금은 초보적인 부분들이 많았기에 후속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비록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보통사람의 글쓰기]라는 책이 나왔다. 작가는 이준기작가로서 신문기자생활을 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제목은 [보통사람의 글쓰기]이지만, 솔직히 보통사람의 기준은 조금 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 하는 보통사람이란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통사람에게 맞는 글쓰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 방식의 가장 큰 강조점은 '구체적인 글쓰기'이다. 저자는 국어시간에 배웠던 포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을 적극 지지한다. 표현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몽뚱그려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이것을 생각을 조각내는 법이라고 말한다.


"쪼개고, 부수고, 나눠라. 구체적으로 글을 쓰려면 생각을 잘게 조각내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소년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문장을 보자. '불우하다'만으로 충분한가. '불우하다'라는 표현은 덩어리가 지나치게 크다. 불우한 가정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소년은 부모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짐승처럼 숨죽여 잠들곤 했다'처럼 '가정이 불우한 이유는 무엇인지', '얼마만큼 불우했는지', '소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불행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게 쪼개 생각하고, 문장에 정확히 옮겨 적어야 한다." (P14)


다른 하나는 '글자를 덜어내기'이다. 저자는 글을 쓸때 군더더기의 단어들을 덜어내고 최소한의 단어로 간략하면서도 의미가 통하게 쓰라고 권유한다.


"글은 덜어낼수록 좋아진다. 의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글은 짧을수록 좋다.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주어,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어, 습관적으로 쓰는 지시어나 최상급 표현이 글을 난삽하게 만든다. 독자가 알 필요가 없거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말들을 문장에서 걷어내면 글이 한결 깔끔해진다." (P34)


나의 글쓰기는 이 부분에서 특히 걸린다. 문장과 느낌을 강조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형용사나 부사, 최상급, 반복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문장에서 부사어는 별사탕과 같이 적게 쓸수록 좋다고 말한다.


"건빵에 든 별사탕은 몇 개 안 들어 있어서 별미다. 뻑뻑한 건빵을 먹다가 먹는 별사탕만큼 단 것도 없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별사탕 한봉지를 사 먹으면 막상 그 맛이 안 난다. 부사어는 문장의 별사탕이다. 적게 쓸수록 달다." (P36)



특히 저자는 문자에 맞는 아름다운 표현이나 미문 등을 강조한다. 솔직히(여기서 또 강조어를 사용했다 ㅠㅠ)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라는 말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잘 쓰는 표현인데 ㅠㅠ)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난이도가 있는 부분이라고나 할까. 저자가 시를 좋아해서인지 시를 많이 인용하는데 김영랑의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란 시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시인 김영랑은 '햇볕', '햇살', '햇빛'이라고 쓰지 않고 기어이 '햇발'이라 썼다. 흐르듯 구르는 '햇살'의 'ㄹ' 받침을 탐내면서도 '햇살'에 만족하지 않았다. 공기가 혀끝과 윗잇몬을 가볍게 쓸고 지나가는 'ㅅ'소리는 붙었던 입술이 가볍게 터지며 공기가 해방되는 'ㅂ'소리에 비하면 거칠고 날카롭다. 그래서 김영랑은 '햇살'이라고 쓰지 않고 기어이 '햇발'이라고 섰다. (P32)


보통사람으로써 이 정도 글쓰기 경지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저자는 또 미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대신 진정으로 정확한 글은 아름다운 글이라고 말을 한다.


"글 역시 숱한 오래를 받는다. 아름다운 문장은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미문을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글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미문의 의미 전달력을 의심한다. 그러나 미문과 명확한 문장은 충돌의 개념이 아니다. 잘 쓴 문장은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하다. 정확한 수사는 늘 명확함에 기여한다. 신형철과 이동진의 평론이 그렇다. 가장 정확하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진 글이다. 이런 글을 보고 '현란하다'거나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평하는 이는 문장의 정수를 모르는 사람이다."(P79)


그동안 국소설을 읽으면서도 너무나 현란한 미문들이 오히려 의미전달이 안되고, 모호한 개념으로 만드는 경우들이 많아 미문에 대해 호감을 가지지 않았었다. 특히 작년에 유명 작가의 표절사태 이후 언론에서 한국문단의 고질병을 '미문에 대한 집착'으로 보도하면서 미문에 대한 더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듣다보니 겉멋이 드는 미문이 아닌, 진정한 아름다움의 미문은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음이 푸르르다' 따위의 화려한 장식으로 눈속임하려는 작가는 대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글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미문이 아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글을 정확하게 쓰는 연습이다. 지울수록 의미가 선명해지는 수사들이 있다면 공들여 쓴 표현이라도 과감히 지워야 한다. 걷는 데 방해가 되는 레이스 장식은 과감히 떼 버려라. 글쓰기는 생각쓰기다.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옮길 수 있으면, 글은 저절로 아름다워진다.(P81)"


 

 

 

요사이 공개적인 서평을 자주 쓰다보니 진심이 담긴 구체적인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짐을 느낀다. 타인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일기장에 글을 쓸때는 글이 자유로우면서도 진심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여러 사람이 보는 글을 쓸 때는 그것이 쉽지가 않다. 거기에 여기저기 드러나는 문법적이 오류까지... 글쓰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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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걷다 - 당신은 아직 더 갈 수 있다, 니체가 들려주는 용기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이신철 옮김 / 케미스토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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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평생 초인을 꿈꾸었다.

사람들이 만든 가치관과 도덕관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드는 사람.

사람에 대한 연민,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에도 빠지지 않고 오직 강한 힘만을 추구하는 사람.

지나 온 세상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

그런 초인을 꿈꾸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런 초인이 되기를 간구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자신이 초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초인이기를 바랬지만, 자신은 실연으로 인해 자살을 꿈꾸고, 채찍지 달하는 말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추구하는 자신과 현실의 자신에서 오는 괴리감, 그것이 니체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생 동안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패했다고 해서 니체의 싸움이 가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기를 바라며, 그런 후에 몰락해 가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니체와 걷다]는 니체가 일생동안 여행하거나 휴향을 했던 곳을 멋진 사진과 그의 글귀가 함께 적혀져 있는 책이다. 사진 밑에는 그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공항과 교통편이 적혀져 있다. 니체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여행하며 니체의 사상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책이다.


책의 초반부가 주로 니체가 태어난 독일과 니체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병으로 인해 대학교수직을 관두고 요향차 방문한 스위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후반부에는 주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니체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시기는 니체의 사상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니체는 이탈리아 여행 중 루 살로메라는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거 거절을 당한다. 또한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을 이 시기에 쓴다.


이탈리아의 사진 중 단연코 눈에 띄는 사진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이다.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베네치아는 항구와 수로, 그리고 오래된 건물들이 아주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니체는 이곳에 있는 카페에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진 중 유난히 해가 지는 석양의 사진과 해가 뜨는 아침 사진이 많다. 하루가 사라지고, 다시 하루가 생성되는 징조인 노을처럼 니체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이미지가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유독 니체의 [아침놀]이란 책의 구절들이 많이 적혀져 있다.



어떤 일에 책임을 지려 하는가.

그보다 자기 꿈을 이루는 일에 책임을 지면 어떨까.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은 약한가.

아니면 용기가 충분하지 않은가.


꿈 이상으로 당신 자신인 것은 없으련만.

꿈의 실현이야말로 그대가 지닌 최대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침놀] 중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연설을 하는 장소이자, 니체가 자주 산책을 했다는 이탈리아의 산마르노 광장이다. 이 광장을 거닐며 니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책에는 차라투스트라와는 조금 상관없는 만남과 기다림에 대한 그의 책의 한구절이 적혀져 있다.


"연락도 없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태도와 약속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다리는 사이 상대방은

이런저런 좋지 않은 상상을 하게 되고, 걱정하며,

이어서는 불쾌해지고, 차츰 분개하게 된다.


요컨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나쁘게 만드는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치 우리나라 남해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탈리아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에즈라는 마을 사진이다. 니체는 이곳도 자주 방문해 산책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곳에는 니체가 걸었다는 '니체의 작은 길'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에즈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의 모습니다.


"이상을 버리지 말라.

자기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말라.

어딘가에서 이상과 꿈을 놓치면,

그걸 입에 올리는 다른 사람이나 젊음이를 비웃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마으이 시기와 질투에 물들어 흐려진다.

향상할 수 있는 힘과 극기심 역시 함께 버려지고 만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유럽의 골목 사진이다.

어쩜 그렇게 유럽의 골목들은 돌들로 대충 쌓은 것 같은데도 멋스러울까.

니체도 이런 골목길을 거닐었을까.


"과거에 매달리거나, 하찮은 인간과 비교하여 자신을 칭찬한다든지 하지 말라.

꿈을 즐겁게 말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든지,

그렇다고 그런 현 상황에 만족하여 머무른다든지 하지 말라.

끊임없이 전진하라.

좀 더 먼 곳으로, 좀 더 높은 곳을 지향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이탈리아의 또 다른 도시 나폴리의 항구이다.
 

 


이탈리아의 마조레 호수이다. 이탈리아에도 이렇게 멋진 호수가 있었다니...


 



이 책의 끝부분에는 이탈리아의 어느 오페라 극장의 내부 사진이 있다. 니체가 평생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바그너였을 것이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그가 추구하는 초인사상과 디오니소스적 향취를 느꼈다. 그는 바그너가 진정한 그리스 정신을 구현하는 음악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서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는 속물 근성을 발견하고 바그너와 결별한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바그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은 사람을 바라보다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니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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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아름답다 - 은퇴할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에게 띄우는 세 번째 지리산 통신
구영회 지음 / 나남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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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터에서 사람과의 관계에 지치고, 육체적인 고단함까지 겹쳐져서 하루 하루 견디기가 쉽지 않았었다. 무작정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지리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계획도, 순서도 없이, 지리산 둘레길의 한구간을 마음대로 정해서 걷고 싶은 만큼 걸었다. 한참을 걷고 나니 산 아래로 마을들이 보이며 절경이 펼쳐졌다. 그제서야 내가 세상에서 아웅다웅하는 문제들이 사실은 별것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있은 후 몇 해 동안 휴가때마다 지리산을 찾았다. 지리산 둘레길은 1한 코스씩 걸으며, 주변의 경치들이나 절경등을 구경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지리산을 다녀오면 마음에 무거운 짐들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꼈다.



구영회 작가의 [사라져 아름답다]라는 글을 읽으며 다시금 지리산의 추억이 생각났다. 구영회 작가는 나 역시 몇 번 이름을 들었을만큼 방송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저명인사이다. 30대부터 지리산을 들렀고, 은퇴 후에는 아예 지리산에 내려가 산지 7년이 되었다고 한다. 가끔 볼 일이 있어 서울에 들르지만 주로 생활하는 곳이 지리산이다. 그에게 있어서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서울 볼일을 마치고 산골에 되돌아올 때 남원 땅에서 멀리 지리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언제나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서는 느낌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다시 벗어나 '나 홀로 상태'로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기분이 든다." (P 221)


"지리산에 들어서면 아까 서울 집 대문에서 나를 배웅하던 가족들도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지고 안 보인다. 바로 어제 저녁 정답게 소주잔을 기울이던 서울의 벗들도 안 보인다. 나를 둘러싸고 주변 가까이 있던 지인들도 모조리 어디로 가고 이곳엔 없다. 그야말로 인간이라곤 나 하나뿐이다." (P222-4)



저자는 70이 넘은 나이에 지리산에서 세상을 돌아가는 것을 관조한다. 산 속에서 생활하다가 선거철에 읍내나 서울에 나와서 선거운동을 보면서 위로만 오르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인간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얼마만큼 힘겹게 올랐든지, 결국은 내려와야 하는 인생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지리산엔 봄이 왔고 정치판엔 대목이 왔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곳이기에 부질없는 호기심을 발동할 이유는 없지만, 내 인생의 이런저런 길목에서 인연을 맺은 낯익은 꽤 여려 명의 얼굴들이 국회의원 서거판에 보였다." (P29)


"이제 머지않아 이들 중 몇 사람은 목에 화환을 걸고 두 손을 높이 치켜들어 맹령히 손을 흔드는 뒤에 옷깃에 황금색 배지를 달고 거대한 돔 지붕 건물 앞마당에서 뒷자석 차문을 려고 내려 대히석 바닥을 저벅저벅 울리며 보란 듯이 걸어갈 것이다. - 중략 -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들의 식어 버린 관심에 머쓱해하면서 풀 죽은 모습으로 지푸라기를 찾다가 그마저 여의치 않게 되면, 마침내 평범한 군중들 사이로 썩여 들 것이다." (P32-3)"



저자는 바다로 흘러가 섬진강이란 이름을 버리고 이름없는 물이 되는 망덕포구에서, 쓸쓸이 떨어져 생을 마감하는 지리산 계곡의 벚꽃들에게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하나 둘씩 떠나가는 친구들의 장례식장에서 인생을 떠나감을 체험한다. 때로는 시끌벅적하게, 때로는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장소에서 저자는 결국 인생과 죽음은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의 것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당신과 내가 알고 있는 죽음이란 것은 그저 한낱 '해석'에 불과하다. 해석이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곁들여 지가 멋대로 단정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 친구의 마감이 외로웠을 것이라거나 빈소가 쓸쓸해 보인다는 나의 '해석'은 크게 빗나간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은 당신과 나에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일 뿐 '해석'이 섣불리 허용되지 않는 저 너무에 있다." (P189)


우리는 흔히 장례식에서 입구의 화환 숫자나 조문객의 숫자로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시각일뿐, 인생이나 죽음은 그런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저자의 글을 통해 깨닫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죽음은 해석 바깥의 세계일지도... 그럼에도 가끔은 내가 아는 사람이나, 나의 죽음이 너무 쓸쓸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고 70의 나이에 지리산에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이제 겨우 인생의 초반을 달리며 작은 문제로 아웅다웅하고 있는 내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저자의 글귀에서 잊고 있었던 인생의 다른 부분을 보게 된다.


지금 주어진 싸움이 전부인 것 같고, 이것에서 패하면 인생을 다 잃을 것 같은 절박함도 결국에는 지나가는 인생의 한 단면임을 저자의 글귀에서 깨닫게 된다. 글로는 이해되지만, 인생으로는 아직 그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없는 저자의 글들을 새기며, 다시금 지리산에서 여유로운 인생을 바라볼 그 휴식 시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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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걷다 - 당신은 아직 더 갈 수 있다, 니체가 들려주는 용기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이신철 옮김 / 케미스토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작년에 한 소설가를 좋아해서 그 소설가의 어린시절에 살았던 장소와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를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가 직접 뛰놀며 놀았던 장소와 그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들을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면서 마치 내가 그 작가의 삶과 소설 속으로 드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았던 장소를 알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내가 니체라는 철학자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니체는 위험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접하면서 니체는 내게 위험한 사상가가 아닌, 인간의 연민을 일으키는 사상가였다.


니체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를 반기독교적이고, 반문명적인 사상가로 보는 것이다. 특히 그의 사상이 히틀러와 나치즘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금기시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평가로서 니체를 새로운 시대를 연 초인적인 사상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흡모하고 그의 사상을 숭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니체는 한 인간으로서 만나야 할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환경이나, 성향에 대해 수긍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던 사상가였다. 그래서 삶이 찢기고 아플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니체의 삶과 그가 여행했던 지역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담은 이 책은 니체를 위대한 사상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처음 등장하는 장소는 니체가 태어나고 자랐던 독일 남동부의 나움부르크라는 마을이다. 한눈에 봐도 종교적인 색체가 짙게 나타난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성장과정을 아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양가 모두 오랜 기간 성직자였고, 니체의 아버지 역시 목사였다. 그래서 어린시절 사색적인 성격과 목사의 아들이란 배경으로 인해 많은 놀림을 당했고, 어쩌면 니체는 그렇게 연약한 자신을 싫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어린 시절로 인해 연약함에 대한 강한 경멸, 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생겼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추즉을 해 본다.



니체의 생가 사진이다. 저자는 생가 사진 위에 니체의 초기 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잘못된 평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자산이 생각하듯이,

바라는 대로

평가받는 일 따위

거의 없다

평판이나 평가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관심을 기울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젊은 시절 기독교 신앙을 잃고, 대신 당시 유행하던 진화론과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을 흠모하던 그는 군대에 입대한다. 그러나 말에서 떨어져 가슴 근육을 다쳤고, 이로 인해 제대를 한다. 결국 그는 흠모하던 군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반면 그의 지적인 재능은 이미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아 25세의 나이에 바절 대학의 교수로 인명된다.

바젤대학 사진은 너무나도 멋진 강가 옆에 오래된 고전양식의 건물들이 서 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저절로 공부가 될듯하다. 저자는 이 사진 옆에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얻고 싶다면,

말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꾸밀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진지한 행동만이

사람의 믿음에 호소한다."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어 성공의 가도를 누릴 수 있었지만,

대학교수가 된 후 얼마 후부터 그는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많은 여행을 다닌다.

그 중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바로 '스위스'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는 아름다운 스위스의 도시와 자연의 사진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스위스의 '루체른'이란 도시는 그가 자주 방문한 곳이다.

그가 존경과 흠모에 마지 않았던 '바그너'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초기 사상은 쇼펜하우워와 바그너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는 그가 추구하던 그리스 정신, 힘과 육체에 대한 찬미인 디오니소스를 발견하였다.



여행과 함께 지필을 하던 니체는 여류 음악가인 마틸데 트람페다하와 루 살로메와 같은 여성들과 교제한다.

그러나 모두 청혼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가장 존경하던 바그너에게도 인간적으로 실망에 교제를 단절한다.

이런 인간적인 상처와 건강의 악화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권력의 의지]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대작들을 집필한다.

이탈리아 라파로라는 도시는 바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집필한 장소이다.

니체의 나이 39세인 1883년에 이 곳에서 머물렀고,

이해 바그너가 죽었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초인을 추구하는 차라투스트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라팔로 오래된 성곽과 그 뒤에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저자는 니체의 [아침놀]이란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허물을 벗지 않은 뱀은 파멸한다.

인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낡은 생각의 허물을 언제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면,

머지않아 안쪽부터 섞기 시작해

성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고 만다.


언제나 새롭게 살아가려면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놀]




마지막으로 니체가 자주 방문해 산책했다는 스위스의 실바폴라나 호수의 사진이다.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럼녀 친구가 생긴다.

그러나 질투와 자부심은

우정을 망치기 때문에

부디 주의하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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