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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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특정한 시기나 장소에서 즐겨 들었던 음악이 있다. 그래서 그 시절이나 그 장소를 기억하면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기타를 치면서 돈 맥클레인이 부른 '빈센트'라는 곡을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난다. 물론 가사를 전부 외운 것은 아니고 앞의 '스타리 스타리 나잇~'하는 부분만... 뜻도 모르면서 무언가 고독하고 쓸쓸한 영감을 담고 있는 듯한 노랫말과 곡조에 마음이 끌렸던 기억이 난다. 젊었을 때는 당시 '접속'이나 '쉬리'라는 영화가 유행하면서, 영화 음악으로 쓰였던 'A love's concerto'라든지 'When i dream'라는 음악을 많이 들었다. 당시 친구들과 많이 놀러 가던 번화가 거리에 가면 음악을 파는 자판마다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가면 그 노래가 생각난다. 한참 운전을 배우면서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나 쇼팽의 '녹턴'을 많이 들었었다. 지금도 가을날 운전하다 보면 이 음악들이 떠오른다.

김정범 교수가 자신의 인생과 음악을 소개하는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라는 책을 읽다 보니 내 인생과 함께 한 이런 노래들도 떠올랐다. 이 책은 뮤지션이자 교수, 그리고 음악감독인 저자가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한 음악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 표지에서 보듯이 오래전부터 LP 음반이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들었던 음악을 추억과 함께 소개한다. 팝송, 클래식, 재즈, 가요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신이 즐겨 들었던 음악과 그 음악과 관련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처음 소개하는 음악은 유진 프리즌의 'Arms Around you'앨범이다. 저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새벽에 방송되던 '전영혁의 음악세계'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카세트테이프에 이 노래를 녹음하며 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금세 공감이 되었다. 특히 이 곡 주에 'Remembering You'라는 곡을 추천한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음반은 글렌 메데이로스의 'Not me' 음반이다. 저자는 이 음반을 소개할 때 소제목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라는 제목을 붙였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내가 고등학교 때 매우 인기를 끌던 가수였다. 그때는 방송마다 그의 음악인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라는 노래를 틀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부산에 거주하는 저자는 중앙동이라는 곳을 자주 산책하는데, 그때면 이 노래가 생각나고 옛 감성이 생각난다고 한다.

가요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음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노래는 초등학교 시절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가 들었다고 한다. 유재하의 '지난 날'이라는 음악을 들을 때,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누가 부르는 곡인지를 알려고 머리를 깎다 말고 일어났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이런 열정이 있었다니...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보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곡을 좋아하지만, 유재하의 곡은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곡은 이장희의 '안녕이란 두 글자'라는 노래이다. 내가 자라던 학창시절에는 기타 좀 친다는 사람 중에 이장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그가 이혼을 하고 그 아픔으로 절규하면서 부른 이 노래를 듣고 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에서 박기영이란 가수가 다시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모습을 보며 옛 기억이 나기도 했었다.

음악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은 조금 낯선 경험이었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곡들이 대부분 내가 모르는 곡들이 많았다. 물론 읽으면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야 '아~ 이 음악!'하고 생각나는 음악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음악을 통해 다시금 옛 추억을 많이 떠올리게 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읽는다면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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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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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의 그의 책에서 심적 인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의 심리도 에너지를 통해 움직이는데, 어느 순간 이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를 심적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잘 방출하면 훌륭한 학자나 작가가 되지만, 방출하지 못하고 쌓아두면 니체나 고흐같이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융이 말하는 심적 에너지가 철학자나 작가를 만드는 예민한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심적 에너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마 작가로서의 역량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마치 작가로서의 천형(天刑)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남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뛰어난 작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평생 고통 당하고 괴로워해야 할 테니까. 어쩌면 작가는 평생 자신 안의 자신과 처절히 싸우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영국 작가이자 평론가인 올리비아 랭의 [작가와 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뉴욕에서부터 시애틀까지 여행을 하면서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 테네시 윌리엄스, 헤밍웨이,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 존 베리먼과 같은 작가들의 삶의 장소를 방문하는 과정이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의 위대한 작가이면서도, 평생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치 작가와 술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작가와 술이지만, 원제는 [THE TRIP TO ECHO SPRING]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에코 스프링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 나오는 대사이다. 술주정뱅이 브릭이 아버지에게 훈계를 들은 후 그의 목발을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묻는다. '어딜 가려고?' 그러자 브릭이 대답한다. '에코 스프링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여기서 에코 스프링은 브링의 술장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에코 스프링을 위대한 작가들이 몸부림치며 도피하려 했던 공간으로 본다. 그들은 무엇에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어디로 도피하려 했을까?

 

이 책의 초반에서 중반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테네시 윌리엄스이다. 저자는 뉴욕에서 테네시 윌리엄스가 주로 활동했던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면서 그의 처절한 삶과 함께 그의 작품의 주옥같은 대사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술독에 빠져서 살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내면을 파헤친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유럽 여행 중에서 강렬한 불안증을 경험했던 그는 일평생 이 불안증에 시달려야 했다. 극작가로서 성공한 후에도 주위의 기대감에 의한 압박에 시달렸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술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술과 함께 호텔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내면을 그의 작품 [유리 동물원]에서 마술을 보고 온 톰이 누나에게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대사를 통해 설명한다.

"하지만 제일 신기했던 마술은 관 마술이었어, 마술사가 관에 들어간 뒤에 우리가 못을 박았는데 못을 한 개도 제거하지 않고도 그 마술사가 관에서 나오지 뭐야. 나한테 쓸모 있을 만한 마술이야. 이 비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게 해줄지도 모르니까." (P 73)

 

마이애미로 이동하면서는 존 치버와 헤밍웨이를 자주 언급한다. 저자는 존 치버에 대해서는 그가 두 개의 자아를 만들고, 끊임없이 중산층적인 미국인의 멋진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로서 명성이 없이 집안에만 있을 때도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양복을 입고 아파트를 나와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글을 섰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그의 어린 시절의 수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치버가 자신의 선배 작가인 피츠제럴드에게 공감을 느끼고, 그의 전기를 쓴 것도 이런 아픔을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남자는 자신의 태생에 대해 심한 수치심을 느꼈고, 치버의 경우엔 신체적으로 음낭이 움츠러드는 느낌마저 느꼈다. 피츠제럴드는 외가인 맥퀼란가를 1850년의 감자 기근을 겪은 가난한 아일랜드의 전형이라고 말했지만 맥퀼란 가는 신세계로 이주한 이후 열심히 일해서 중산층 상인으로 자리 잡으며 꽤 성공을 거두었다. 치버도 피츠제럴드도 모두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며 자랐다. 또 둘 다 운동을 잘 못했고 학교에서 최하위 빈곤층 학생에 드는 것을 의식하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반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이야기 짓기 재주가 탁월했다. (P 215)

마이애미의 키웨스트는 헤밍웨이가 10년 넘는 세월을 산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명작을 발표했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 이혼과 결혼 등의 과정에서 심한 우울증을 시달렸고, 그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술을 빠져 살았었다.

저자의 종착역은 레이먼드 카버의 고향인 워싱턴 주의 시애틀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처절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어린 시절 메리언과 결혼하고, 작가의 꿈을 꾸기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 그럼에도 그는 그는 현실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술에 빠져 산다.

"메리언 혼자만 전력을 다해 일했던 것은 아니다. 카버도 독학을 하고 식비를 벌면서 그 남는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 글을 쓰느라 아등바등 살며, 그 시절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 이런 궁핍한 환경이었다면 선뜻 이해가 간다. 술을 의지처나, 잠긴 문을 열어주는 열시처럼 여기며 시작했을 만도 하다가, 그의 아버지는 직장 생활을 지루함에서 탈피하고 생존의 압박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마셨다. 카버에게도 억눌러야 할 비통함이 있었다. 그는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비통함을 느꼈다.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여전히 잡역부로 일하며 머시 병원의 복도나 걸레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괴로울 만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H 가의 파이어사이드 라운지에 들어가 한잔하며 괴로움을 달래면서, 야간 근무 일인 보일러 제조공 일에 지장이 되는 것까지 감수하며 짐 덩어리 같은 자식들을 부양하며 또 하루를 시작할 마음을 다졌을 만도 하다." (P 386)

예전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읽으며 술에 빠져 스스로와 주변 사람을 파괴하는 인물들을 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작가의 삶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작품들의 인물이 이해가 된다. 이런 것을 해석학이라고 하지 않을까? 텍스트 뒤에 있는 더 거대한 텍스트를 읽으며, 비로소 그 텍스트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미국 작가들의 삶과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 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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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하우스 2017-03-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고민하고 잇엇는데 사서 봐야겟네요ㅎㅎ

가을벚꽃 2017-03-04 17:0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저도 술과 작가에 대한 가벼운 책인 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단 미국 현대작가들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서 깊이 있는 해설을 하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저자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구요...미국 현대작가들에게 관심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이네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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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나는 기억에 관한 영화나 책들을 좋아한다. 여러 번 영화화되기도 했었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스파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나 조작된 기억 속에서 진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SF 소설가인 필립 딕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들을 읽다 보면 과연 '나'란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를 정의할 때 어떤 재료로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 '나'라는 자아는 어떻게 형성되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수많은 경험들이 기억이라는 형태로 의식의 창고 속에 저장되고, 그 의식의 창고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 기억들을 해석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결국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내 의식의 창고 속에 있는 기억들이 아닐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을 통해 저자의 서재를 탐험하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고양이 빌딩이라고 불리는 저자의 거대한 서재를 저자의 안내를 받아 가며 구석구석 드려다 보면서, 마치 한 사람의 뇌 속에 존재하는 의식의 창고를 탐험하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 수많은 책들이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개인을 만든 재료가 아닐까?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그는 고양이 빌딩이라는 건물 속에 자신이 취재하거나 책을 저술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20만 권의 책들을 구석구석 배치해 두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새로운 손님에게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 주듯이 고양이 빌딩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서재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어떻게 자신의 손에 들어왔고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집주인인 저자를 따라다니면 책과 함께 저자의 인생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양이 빌딩에는 공간별로 주제에 맞게 책들이 배치되어 있기에 저자는 그 공간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게 설명할 때가 많다.

1층에는 주로 과학 분야의 책들이 많이 배치되었는데, 저자는 이 공간을 소개하면서 과학이나 생화학 분야에 대해 설명한다. 특이 요즘 인기가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매우 깊은 식견을 드러낸다. 작년에 알파고로 인해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따라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졌지만, 저자는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세포는 100억 단위인데, 이것은 컴퓨터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단지 컴퓨터는 빠른 계산만이 가능할 뿐이지, 인간의 사고를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과학자들도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연구가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대신 인간의 뇌와 기계적 장치를 연결하는 연구가 오히려 활발하다. 뇌와 연결되어 손상된 신체를 대체할 기계적 장치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책들과 함께 저자는 인간의 뇌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2층에서는 인문학 분야의 책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특히 저자는 이곳에서 가톨릭과 기독교에 대해서 깊은 식견을 가지고 설명한다. 저자는 성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서양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성경을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성경이 유럽 문화, 더 나아가 라틴 아메리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토착화되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 숭배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 기독교에는 마리아 숭배가 없었는데, 유럽 문화와 라틴 아메리카에 토착화되면서 그 지역에서 섬기던 여신, 또는 귀신들과 결합해서 마리아를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쁜 이야기일 테지만, 저자의 담담히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그 예로 라틴아메리카의 성모로 숭배되고 있는 멕시코의 테페야크 언덕의 성모가 사실은 멕시코 토착 종교의 토난친 이라는 신을 숭배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성모 마리아의 현현을 테페야크 언덕에서 보았던 것은, 심리의 심층에서 두신(토난친 신과 성모 마리아)이 오버랩되어 있던 것이 배경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그 둘이 융합되어, 말하자면 토난친이 성모마리아로 환생한 듯한 이미지의 전환이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것이 아닐까? (P154)

저자는 이런 종교적인 혼합이 단지 가톨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종교에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유력 종교가 충돌했을 때, 두 신이 사실은 동일한 신의 다른 모습이라고 보면서 두 종교를 합리화하는 현상을 습합(習合)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종교의 역사에 자주 나타납니다. 특히 일본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 불교의 부처는 실은 신도의 신이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보는 본지수적설에 의해, 혹은 부처임이 신도의 신이라는 형태를 취하셔서 아주 옛날부터 일본 땅에 독특한 방식으로 현현하셨다는 식으로, 불교와 신도를 일체화시킨 것도 그와 동일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P 155)

 

지하층에는 저자가 취재했던 중동과 이스라엘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다. 저자는 이곳에서 책들을 소개하며 직접 팔레스타인을 취재했던 자신의 경험 들려준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자의 입장에서 매우 균형 있고, 깊게 이야기한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은 어쨌거나 악한 것은 모두 상대 쪽이라는 자세로 서로 마구잡이 선전을 해왔습니다. 그런 상태로 취재해야 할 경우에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믿어서는 안 되고 쌍방의 주장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중동 문제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분쟁의 본질을 하고하기 위해서는 한쪽의 주장만이 아니라 상방의 주장을 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P333)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주장이나 논리가 매우 단순해지고 있음에 놀란다. 술자리에서 술기운에 자신의 주장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사람의 주장과 방송 등에서 나와서 이야기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 역시 너무나도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런 주장에 열광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단순해졌을까? 아마 독서를 멀리하면서 부터 일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책이란 다른 세상을 열어젖히는 커튼이라고 표현을 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상과 나와 다른 주장과 생각들을 접한다. 또한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책을 통해 그 심층부의 지식까지 알게 된다. 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사물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만약 책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할까? 방대한 서재만큼이나 그 책을 통해 얻은 다양하고 깊은 생각이 부러워지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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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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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치열한 삶을 꿈꾸었다. 세상에서 살면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잡고 평생 씨름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삶이 부담스럽다. 그냥 물 흐르듯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럼에도 아직도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열정과 몸부림이 부럽다.

[영혼의 무기]라는 방대한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바로 이 '치열함'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동안 써왔던 많은 양은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두께가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다. 내용 역시 단순한 삶에 대한 감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나 책에 대한 감상, 정치적인 이야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터뷰 내용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느낌을 한 편의 서평에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치열함'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되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바로 자신의 이 치열함을 이야기한다. 그는 스무 살 때 가졌던 세상을 향한 열정을 아직도 간직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회고한다.

"스무 살 무렵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삶의 해답에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근접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맹랑했던 것일까, 어리석었던 것일까. 그때로부터 자못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냉정한 결과는 비참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허망에 가깝다. 확실한 패배보다 오히려 더 괴로운 오리무중 속에서 나는 고정 중이다. - 중략- 나는 무턱대고 내 인생과 싸우듯 다만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본능에 기대어 이 산문들을 써 내려갔다. 때로는 멍하니 걷던 길 위에서의 작은 수첩 속 몇 줄이었고 대로는 하루 이틀을 꼬박 뜬 눈으로 버티는 고단한 몇 장이었으나 분명한 것은, 뜻밖에도 바로 그것이 맹랑하고도 어리석기 그지없는 내 인생이 세상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스무 살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직도 사막과 가시덤불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지만, 그때의 그와 오늘의 나는 죽음과 같은 안식에 눕기보다는 불구덩이 같은 생을 가로지르려 노력하기에 여전히 이렇게 한 사람이다." P 10-11

 

그의 치열함은 단순히 글쓰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 역시 편안한 길을 가기보다는 모두에게 돌을 맞는 중도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중도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고, 무능하거나 우유부단함으로 비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도야 말로

"우리의 습관 같은 선입견과는 완전 다르게, 사실 중도만큼 정치적으로 래디컬 한 입장도 없다. 극우와도 싸우고 극좌와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주의자는 그 어느 혁명가보다 치열하고 그 어느 애국자보다 중후하다. 흰옷에 떨어진 피보다 선명한 중도는 회색주의자가 아니다. 중도는 어설픈 화해를 거부하고 옳은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강력한 이성의 실현이다.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닌 너의 무관심은 중용이 아니라 한갓 중간이며 사랑할 때는 사랑하고 미워할 때는 미워하는 절도에 중용의 본질이 있노라고 철학자 우송 김태길 선생은 갈파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대한민국 안에서 좌에게 이용당하고 우에게 휘둘리고 있는 중도주의자 백범에게 아쉬웠던 것은 정당성도 의지도 아니었다. 오직 힘이었다. 실력 없는 중도는 그저 갈등하는 소수일 뿐이다." - P 159

이 얼마나 예리하고 날카로운 지적인가? 나 역시 정치적 중도를 표방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항상 보수와 진보에게 욕을 먹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항상 진리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일까? 극단은 결국 자신 외의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돌리고, 결국에는 끔직한 학살?을 꿈꾸는데도...

 

사랑에 대한 그의 메시지 역시 남다르다.

"사랑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부러 사랑을 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삶의 비밀에 한 발짝씩 접근할 수 있다. 그 비밀을 풀어낸다는 소리가 아니다. 불꽃에게 다가가듯 이 세계와 사랑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일 뿐, 와중에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사람마저도, 전부 불에 타 사라질 수도 있다. 사랑의 고통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회피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대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죽음이며 무엇이 이 세계란 말인가? 내가 사랑한다고 미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재에게서는 재의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다. 죽은 불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불꽃인가? 자, 이제 어쩔 작정인가?" P 376-7

글을 읽으면서 글 속에서 그 사람의 치열함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즐거움인가? 내가 살지 못한 그 치열함을 타인의 글로서나마 대신 맛볼 수 있으니... 스스로를 산문가도, 소설가도, 대설가도 아닌 이설가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지옥과 연옥의 국경선에 참오를 파고 전쟁을 기다리는 말단 병사와 같은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과연 그런 심정이란 어떤 심정일까? 비록 치열한 글 쓰는 삶은 살지 못했지만, 이응준 작가의 이설집을 통해 그런 삶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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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
박태식 지음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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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를 보는 스타일은 참 단순하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블록버스터 영화 위주로 본다. 그러다보니 정치나 인권, 복잡한 사상이나 미학 등이 담긴 영화는 잘 보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이런 영화편식으로 인해 좋은 영화들을 놓친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언급된다. 대부분 내가 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이 책은 27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한 챕터에 두편씩의 영화를 소개한다. 마치 토요일 오전에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에서 같은 주제의 영화 두 편을 연괂서 소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저자가 첫 번째로 소개하는 영화는 [한공주]와 [도희야]라는 영화이다. 두 편 모두 폭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약자들이다. 우리사회에는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오히려 죄인처럼 자신이 당한 피해를 숨겨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신상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오히려 그런 여성들이 세상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야 하는 상황들이 지금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여건이 변하면서 한공주 자신의 목소리도 슬금슬금 사리지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학교로 전학가야 했고, 후배 부탁으로 잠시 받아주기는 햇지만 재단의 눈치도 봐야 한다며서 공주를 학교에서 내보내는 교장의 입장까지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 심지어 '네가 꼬리를 쳐서 이런 일이 터진 게 아니냐'며 공주를 궁지로 모는 가해 남학생들의 부모와, 갈 곳 없이 도망치듯 거리로 내몰린 공주에게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경찰서장에 의해 공주의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P 21-2)



이 책의 제목은 [트래쉬]라는 영화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브라질의 쓰레기 마을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그 정치인의 부패를 덤는 청부업자가 나오고, 이에 대항하는 순수한 소년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정치인가 대항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수녕게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온갖 부패한 권력 가운데서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을 믿는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내가 본 영화들도 몇 편 소개하고 있다. 차이나타운, 국제시장, 변호인, 고지전이다. 저자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준다. 공감을 가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국제시장]이란 영화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이다. 원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싫어해서 이 영화를 끝내 보지않으려했다. 결국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펑평 운 영화이다. 그 뒤 이 영화가 기성세대에 대한 변명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펑펑 운 내 자신이 머쓱해지는 비평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이나 정치적 시각이 아닌 그냥 영화로 보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생 맏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햇던 무거운 짐을 가진 남자의 내면을 그냥 공감하면 안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한다.


"국제시장을 보면 눈물을 자아내는 요소가 한두 가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은 어떻게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동적인 장면을 곳곳에 배치하여 잠시도 눈물 샘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훌륭한 연출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시장이 불러 일으킨 효과가 단순히 '눈물 짜내기'에 그친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극구 부인하지만 세대간 분열을 부추기는 영화로 해석될 소지가 들어 있다.

  기성세대는 국제시장을 보며 '요즘 젊은 것들은 돼먹지를 못했어!'라는 넋두리를 늘어놓을 법하다. 특히 덕수와 여자의 아들과 며느리들이 부모에게 하는 짓을 보면 분명해진다. 어떻게 부모를 저렇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들이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배금주의, 과도한 교육열, 집단 이기주의, 기성세대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 .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게 기성세대의 잘못이지 어디 젊은 세대의 잘못인가? 과거는 그렇게 우리를 즐겁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든다." (P 140)



영화는 단순히 흥미를 위한 오락 수단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화에 담긴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그 영화의 시선들을 예리하게 파해친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특히 저자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매우 담맥하면서도 진솔하다. 어려운 영화기법이나, 멋져 보이는 전문용어들을 쓰지 않는다. 간단한 영화 줄거리와 감상,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러기에 읽는 이가 쉽게 공감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접하지 못한 좋은 영화들을 알 수 되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씩은 꼭 보고 싶은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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