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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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기에, 친구 집에 놀라가면 제일 먼저 책장을 구경했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과 비슷한 책들이 있으면,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책에 대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유명한 서평가인 조 퀴넌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의 책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스스로 애서가라고 말하는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전자책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것보다, 꼭 자기 책을 구입해서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 자기 이름을 적고, 때로는 줄을 치며, 정독을 해서 읽는다. 이런 독서의 경험을 통해 책의 저자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마치 가톨릭의 영성체와 같은 경험으로 비유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속 정체불명의 만찬실에서 작가와 사적으로 영성체를 나눈다.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자기는 솔 벨로가 아주 오래전부터 주위에서 얼쩡대던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자기에게 뭔가 한 수 가르쳐줄 수 있는 것 같아서 그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느끼는 기분이 딱 그렇다. -중략-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책을 통해 직접 그들에게 말을 건다고, 나아가 그들을 돌봐주고 치유해준다고 느낀다. 그들은 종종 작가가 성체를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P 38)"

그러기에 저자는 책을 한 권 한 권 소장하면서, 때로는 그 책을 반복적으로 읽는다. 저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로 인해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그 책을 가지고 못함을 아쉽게 느낀다.

"[보봐리 부인], [이방인], [네이티브 선], [러브드 원], [전쟁과 평화]를 10대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읽었던 판본 그대로 갖고 있지 않은 점은 애석하다. 이 책들의 일부는 본가에 남겨두고 왔는데 부모님이 갈라서는 바람에 전쟁 사상자 꼴이 났다. 이미 옛날에 없어진 책들이고 어떻게 처분됐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 책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책이란 그렇다. 그 책들들이 아직 내 수중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 책들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어떤 대목에 줄을 그었는지 확인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 시각이 변했는지 알고 싶어라. 여전히 그 책들이 나를 압도하는지 알고 싶어라. (P 45)"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청소년과 청년 때에 읽었던 책들을 바리바리 싸아들고 이사를 하다가, 결국 몇 년 전 이사하면서 많은 양을 버렸다. 그중에는 이제는 사라진 범우사 출판사의 세계문학들이 많이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등... 모두 새로운 출판사의 새책들을 가지고 있기에 짐만 된다고 생각하고 버렸었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그 책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저자의 글처럼 나도 그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무척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독서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에 나와있는 저자의 책 읽는 습관의 조금 괴팍하기까지 하다. 먼저 저자는 남이 자신에게 읽기 싫은 책을 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는 철저히 자신이 읽고 싶은 책만 읽고, 읽기 싫은 책은 손을 대지 않는다. 서평가라는 직업으로 인해 때로는 돈과 관련되어 읽기 싫은 책도 읽고 서평을 쓸 때가 있지만, 그 후에는 절대로 그 책을 손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이런 습관은 더 심해졌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신이 죽기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대략 계산하고, 그 안에서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읽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는 책에 대한 저자의 간절함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보험 통계상의 기대 수명까지 산다면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오래전에 계산해봤다. 그때 2,138권이라는 답이 나왔다. -중략 - 걸작 500권, 가벼운 구전 500권, 진짜 천재들의 간과된 작품 500권, 특이한 책 500권, 일급 쓰레기 138권을 읽을 시간이 원칙적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쓰레기는 너무 바보 같아서 읽고 있으면 심장이 뛰고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책이다. 이 유토피아적인 미래에 [하이호, 스티브라노!]에 내줄 시간은 없다. 진짜 프로의 손으로 빚어낸 순도 100퍼센트의 아둔함은 신명 날 수 있다. 엉성함은 그냥 엉성하다. (P 188)"

또 저자는 사립학교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이라는 든지, 양키스와 같은 특정 운동팀의 이름이 등장하는 책등은 철저하게 읽지 않는 조금 괴팍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데이비드 베니오프의 [도둑들의 도시]를 읽다가 이 책의 주인공이 나중에 양키스의 팬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덮고, 동네 도서관에 기증했다고까지 한다.

저자의 글처럼 이제는 점점 책을 읽어가는 사람들이 적어가고, 특히 종이책을 수집해가며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 책들이 주는 삶의 풍성함은 어떤 것으로 대치될 수가 없다. 저자는 그런 풍성함을 점점 읽어가는 세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신의 책과의 소중한 경험을 또 다른 자신의 책으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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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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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속에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단편 중에 [보트가 가는 곳]이란 작품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날 지구에 탁구공 모양만 한 셀 수 없는 우주선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땅에 지금 1미터 정도의 구멍을 수없이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그 구멍 속에 빠져서 죽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들이 몰아붙이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우주선들이 사람들의 뒤와 양옆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쪽 끝에 이르자 일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간다. 이런 혼란 중에 겨우 주인공만 살아남는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상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고, 소설로 남겼을까? 작가의 창작 세계가 궁금하던 참에 그의 창작의 비밀을 담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에는 김중혁 작가 자신의 사소한 글쓰기 습관이나 환경, 그리고 그의 창작의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집념,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해 끊임없는 갈등의 과정들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지. 현실이다. 소설을 쓰고 있을 때, 현실이라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가상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젯밤에 내가 만들어낸 소설 속 세계가 진짜 현실 같다. 늦은 밤까지 나는 소설 속 공간에서 실재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했다. 주인공을 잘못된 길로 보낸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그 길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 (P 41)

"소설은 잡식성 괴물이다. 소설을 쓰고 있을 때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소리,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소설의 먹잇감이 된다. 모든 걸 집어삼킴 소설은 소화되지 않는 먹잇감을 다시 내뱉는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소설을 쓰고 있을 때는 대단한 자료가 된다. 간절한 만큼 보이고, 잘 쓰고 싶은 만큼 많이 느낄 수 있다." (P 43)

그가 제시한 글쓰기의 팁도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 첫 문장 쓰기이다. 작가가 첫 문장 쓰기에서 권하는 격언은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완성할 수 없다. 최선의 문장을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래서 첫 문장은 그냥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수정하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할 수 없으므로, 모든 글쓰기의 첫 문장은 대충 쓰는 게 좋다. 어차피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면 아무 문장이나 쓰면 된다. 그래도 좀 나은 문장이 있지 않겠냐고?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위악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골라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게 첫 문장이다."

개인적으로도 무슨 글을 쓸 때면 항상 첫 문장 때문에 고심한다. 그런데 이제 나도 한번 막 써보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일단 쓰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또 기억에 남는 팀 중에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결국에 작가가 기억되는 것은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타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남과 같아지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의 내면에서 나오는 스타일을 만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작가의 스타일로 강조하는 것은 대화의 상상력이다. 소설의 인물을 그려보면서 그들이 실제로 대화할 것 같은 내용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소설이나 타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이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팁을 제공하면서도 결국은 글 쓰는 본인이 깨닫는 것을 써야 한다는 말을 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한데 끌어모았을 때, 그 교집합이 최고의 비법일까.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만 교집합에 남아 있겠지. 충고 따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문제집을 풀 때처럼, 작가들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작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자기만의 공식이 하나씩 생겨나고, 작가들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P 132)

이 책을 읽으면서 막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소설 쓰기를 포기한 적이 오래되어서 다시 소설을 쓰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러면 작가가 주는 이 풍성한 글쓰기 비법을 어디에다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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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3-2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고 막 쓸때 글이 잘 써지더군요ㅎㅎ

가을벚꽃 2018-03-21 20:21   좋아요 1 | URL
저도 최근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은 후 오히려 글이 더 잘 안 써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ㅎㅎ 글을 쓰며 여러 가지 규칙이나 방법을 생각하다보니 ㅠㅠ 자신의 스타일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최명기 지음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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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바른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부터도 성실하게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취직하는 것을 가장 안정적인 취업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한 칸 한 칸 집을 늘려가서 안정적인 노후를 만드는 것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이런 인생들이 성공한 인생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자로 정해진 것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인생의 모험을 하려는 사람들을 무모하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병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라는 책은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말하는 바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정해진 길로만 걸어가는 인생이 아닌, 다른 길도 걸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매번 인생을 계획하고 계획한 대로만 살다 보면, 결국 삶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게 된다고 말한다.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삶의 에너지를 부어 준다는 것이다.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는 아무리 핸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봐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위해 활발함과 적극성이라는 연료를 다시 채우고 액설러레이터를 밟는 방법부터 새로 배우자. 계획성, 참을성, 끈기, 조심성, 인내력과 같은 자기조절 브레이크를 신경 쓰기에 앞서 힘껏 달려야 한다.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 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차를 굴려 보자. (P 5)"

이렇게 이야기하면 저자가 마치 모험 예찬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이렇게 삶에서 무모한 선택을 이야기하는 것은 때로는 이것만이 삶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정말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비록 현실도피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눈 딱 감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현실을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괴로워서 죽고 싶어진다면, 적극적으로 현실을 외면하자.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눈 뜨고도 코가 베이는 세상이다. 무서운 호랑이의 이빨을 눈앞에 두고 언제 죽을지 몰라 공포에 떨고만 있으니, '이것 꿈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딴 생각에 빠지는 것이 낫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더 아득바득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는 조언들이 넘쳐난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꼭 해결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은 모든 일이 반드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는 순간들이 자주 닥쳐온다. 너무나 절망스러워서 '로또에 당첨되면 돈을 어디에 쓸까?' '유학을 간다면 어디 가 좋을까?' 같은 상상을 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밖에 할 도리가 없을 때도 있다. (P 50)"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많은 서적들이나 영화들을 인용하며 인생의 다양한 면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영화가 조엘 코엔 감독의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감옥의 죄수 셋이 탈출을 하는 영화이다. 그중 에버렛이란 죄수는 자신이 감옥에 오기 전 거액의 돈을 숨겨 두었다며 두 명을 꼬셔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숨겨 두었다던 거액의 돈은 거짓말이었고, 이들은 그 거짓말에 속아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말을 쫓다가 오히려 행운을 발견한다. 저자는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며 인생도 때로는 이와 같다고 말한다.

"큰 보물을 찾아봐, 자네들이 같이 사슬에 묶여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야. 혹시 자네들이 원하는 보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일단은 멀고도 어려운 길을 가야 해. 가는 동안 많은 것들을 보게 되고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겠지. 그 길이 얼마나 먼지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장애물들을 두려워하지 말게. 운명이 자네들에게 보상할 테니까. 가는 길이 굽이치고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따라가다 보면 결국 구원을 받게 될 거야. (P 52)"

모두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며 일한다.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젊은이들은 취업 준비나 일터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그렇게 밤늦게까지 정해진 바른 길만을 달려간다는 것이 꼭 정답인 인생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때로는 다른 곳에 눈도 돌리고, 다른 길을 가면서 마음도 새롭게 다짐하다 보면, 오히려 의외의 수확이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답답한 시간과 실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여유를 가지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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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 2017 제1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상순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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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다. 한때는 월간이나 계간으로 출간되는 문예지들을 꼬박 읽고, 그곳에서 있는 시들을 깊이 있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 수상작들을 더 주목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문예지마다 각종 상들이 있었고, 그 상에 수상한 시들이 실려 있었다.

제1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다시 옛 생각이 났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시도 시대를 따라 변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시들은 한 번 읽으면 그 의미가 금세 마음에서 느껴졌는데, 이 책에 실린 시 중에서는 몇 번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시들이 많아졌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변했던지, 시가 변했던지...

대상 작품은 박상순 시인의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이라는 시이다. 박상순 시인의 시는 처음 접해보는데, 읽는 내내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그렇다.

"월요일 밤에,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 화요일 저녁, 그의 멀쩡한 지붕이 무너지고, 그의 할머니가 쓰러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땅속에서 벌떡 일어나시고, 아버지는 죽은 오징어가 되시고, 어머니는 갑자기 포도밭이 되시고, 그의 구두는 비위 돌로 변하고, 그의 발목이 부러지고, 그의 손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무너지고, 갈비뼈가 무너지고, 심장이 멈추고, 목뼈가 부러졌다. 그녀의 무궁무진한 목소리를 가슴에 묻고, 그는 죽고 말았다." -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중에서

박상순 시인의 시 중에 특히 지명이 많이 언급된다. 이 시에는 '왕십리'라는 지명과 '모란'이라는 지명이 언급되는 시가 있다. 모두 지명과 관련되어 저자가 느꼈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겨울, 왕십리는 보았음.
가을날의 그녀가 목도리를 두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음.
언덕 아래 누워 있던
목 없는 겨울 아줌마의 어떤, 누구라고 들었음.
그녀에게 들었음.
그해 겨울, 그래도 왕십리는 왕십리.
목 없는 사람들이 몰려와
눈보라 골짜기에
가을밤을 하얗게 밀어 넣을 때에도
왕십리는 왕십리. 가을 왕십리." - [왕십리 올뎃] 중에서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납작한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최근에 시집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이 시집에 나오는 시인들의 이름이 대부분 낯설다. 그럼에도 반가운 이름이 있다. 이근화 시인이다. 이근화 시인은 시집보다는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산문집으로 먼저 알았다. 글 쓰는 이의 고통적인 숙명과 그 숙명에서 느끼는 보람 등을 이야기하고 있던 산문집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 실린 시인의 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벚꽃이 만발하고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들 거린다. 이건 너무 정교해. 사실이 아니야. 내가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느라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동안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 아저씨도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젊은이들도 구부정한 노인들도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든다. 잠시 멈춰서 허리를 뒤로 젖힌다. 유연하다 저 허리. 상상도 못할 일이야. 하늘과 벚꽃이 함께 담기는 순간 우리의 봄은 완성되는 것일까.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페이지가 이제 막 넘어간다.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발걸음을 총총 옮기며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건 너무 낡고 지루해. 우습게 반복되잖아. 내가 울지 않아도 이 세계는 넘친다. 내가 웃는다면 조금 더 시끄러워질 것이지만, 당신의 발가락을 빠는 상상만으로도 침은 고인다. 돈도 사랑도 성공도 없지만 샘솟는 침을 어찌하랴. 진지하고 솔직하기를 바랐지만 얼렁뚱땅 두루뭉실 흘러간 내 인생아. 약 15도 정도 허리를 젖히고 벚꽃을 바라볼 때 나는 어디로 가나. 어떻게 돌아오나. 왜 멈추나 주정차 단속 구간에서 경찰들도 빨간 봉을 든 채 벚꽃과 함께 흔들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멈춰선다. 호루라기 소리를 배경으로 팡팡 터지는 셔터들." - 이근화 시인의 [약 15도] 중에서

이 외에도 이 시집에는 김상혁, 김안, 김현, 이민하, 이영주, 이제니, 조연호 등의 시인의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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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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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어와 씨름하는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나이 때에는 초등학교 때 영어 조기교육이 없고, 대부분 중학교에서 처음 영어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고 거부감까지 생겼었다. 특히 내가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무조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게 하셨다. 뜻도 모르고, 무조건 외우면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매번 영어 수업시간에는 외우기 테스트가 있었고, 한 단어라도 틀리면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 당시 유행하던 미드를 보며 영어공부를 했지만, 오히려 미드만 좋아하게 되었던 슬픈 과거? 도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고등학교 때 자퇴를 했으면서도 영어 공부를 통해 미국의 버클리 대학까지 진학한 저자가 자신의 영어공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제목 역시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라는 조금은 자극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제목이다. 저자의 영어 공부 성공 방법은 바로 영화 보기이다.


 


저자 역시 고등학교 시절 영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쉬면서 다시금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다. 혼자 공부를 하는 저자가 택한 영어 공부 방법은 영어 영화 보기이다. 먼저 선택한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저자가 선택한 애니메이션 영화는 [라푼젤]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점차 영어가 들리게 되고 해석이 되었다. 그 후에 택한 영화가 [타이타닉]이다. 저자가 즐겨 보던 영화였지만, 막상 보니 애니메이션 발음과 많이 달라고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대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후 필리핀 어학연수를 거쳐 미국에 진학하고, 버클리에 편입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영화로 영어를 공부하는 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애니메이션부터 보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비교적 쉬운 영어 단어와 정확한 발음의 대사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화로 영어를 볼 때는 교재나 글을 보지 말고 영어 자체만을 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저자가 말리는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해 봤다. 그래서 구입한 교재 가격만 해도 엄청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 번째, 영화를 쭉 보기보다는 대사를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그 대사가 들리도록 하라는 것이다.
네 번째, 영화를 다 보고 그 대사를 따라 하기보다는, 들으면서 바로 따라 해 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일 꾸준히 영화를 보며 공부할 것을 권유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영화로 영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보다 더 값진 것은 영어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읽고 있기만 해도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쏟는다. 학창 시절 때 이런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가서 영어가 되지 않아, 주변 지인이 계속 통역을 해 준 일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노력해서 여행영어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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