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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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살던 시골집 뒷마당에는 안 쓰는 가구들이나 농기구들을 쌓아두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집 뒤편에 있어서 항상 그늘이 지고 눅눅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그곳에 물건 하나를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물건을 들었을 때 바닥에는 온갖 벌레들과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둡고 습하며, 심지어 물건으로 인해 잠시 비치는 햇볕까지 차단된 곳에는 어린 나이의 내가 생각도 못한 끔찍한 벌레들이 우굴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들었던 물건을 다시 그 자리에 내던져 놓고 도망 나왔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이런 어둡고 습한 곳을 열어봐야 할 때가 있다. 그곳에 온갖 끔찍한 것들이 우굴댈지라도, 결국에는 그곳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계속해서 그렇게 어둡고 습하고, 벌레들이 우굴거리는 끔찍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곳을 열고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열어젖히고, 그곳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영원히 끔찍하고 추악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열어젖힌 책이 있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기록인 [콜럼바인]이라는 책이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에릭과 딜런 이라는 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가 되어,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충격과 공포를 준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과 주변 주민들, 더 나아가 미국 시민 전체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기억하기 싫은 사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역사전 사건을 분석하듯이 이 사건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릭과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사건의 진행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거의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이런 끔찍한 사건과 이 사건의 여파를 감정이나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한 체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 방법 때문에 독자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해 읽는 내내 더욱더 오싹한 공포를 느낀다. 특히 사건의 진행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페이지는 넘기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너무나 치밀하고 현장성 있는 묘사로 인해 마치 내가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에릭이 어마어마한 살육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담담히 피해자들을 따라다니며 총기를 난사하는 과정,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과정, 엉성하고 혼란한 대응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더 늘어나는 사망자들과 중상자들이 늘어가는 과정 등은 읽는 동안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을 거의 3일 동안 읽었는데, 읽는 내내 밤마다 묘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에릭과 딜런을 만나서 그들이 저지를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무기력하게 목격하면서 꿈을 깨었다. 아마 이 사건을 접한 미국인들이 겪는 공포와 무력감의 일부분을 내가 꿈으로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콜롬바인 사건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 특히 이 사건을 주도한 에릭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저지르려고 준비했던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에릭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최소 500-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이 희생되는 대형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심판의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콜럼바인 역시 그렇게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에릭은 웹에서 찾은 [무정부주의자의 요리책]을 보고 최소한 일곱 개의 대형 폭탄을 설계했다. 그는 높이 45센티미터, 직경 30센티미터의 불룩한 흰색 프로판탱크를 골랐다. 이 정도면 고성능 폭발가스를 7.5킬로그램이나 담을 수 있었다. 1번 폭탄은 기폭장치로 에어로졸 캔을 사용했고, 둥근 금속 벨이 위에 달린 구식 알람시계와 선으로 연결했다. 첫 단계는 이 폭탄을 학교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에릭의 집 근처 공원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 수백 명이 능히 죽겠지만, 실은 돌과 나무를 날려 버리기 위함이었다. 진짜 공격은 그 이후였다. 미끼용 폭탄으로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킨 다음에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맥베이의 기록을 두 배, 세배 경신할 생각이었다. 피해 규모를 '수백 명' '500-600명' '최소 400명'등 다양하게 추정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던 무기의 위력에 생각하면 사실 이 정도도 적게 잡은 수치였다." (P 64)

"2부는 총격 시간이다. 재밌는 시간이 딜 것이다. 딜런은 인트라텍 TEC-DC9과 산탄총으로 사냥하기로 했다. 에릭은 하이포인트 9밀리미터 카빈 라이플과 산탄총을 골랐다. 그들은 옷자락 안에 숨기기 좋게 산탄총의 총신을 잘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휴대용 폭발물인 파이프 폭탄과 이산화탄소 폭탄을 넣었고, 일대일 격투가 벌어질 것에 대비해서 화염병과 소름 끼치게 생긴 칼도 여러 자루 챙겼다. 탄약고 폭발물 대부분을 끈으로 묶어 몸에 부착할 수 있도록 보병용 멜빵을 맸다. 그리고 배낭과 더블 백에 더 많은 무기들을 담아 가져갔다. 파이프 폭탄 공격을 신속하게 실행하려고 화약을 바른 띠를 팔뚝에 테이프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무기도 감추고 멋지게 보이려고 검은색 더스터 코트를 걸쳤다." (P66)

다행히 이들이 계획한 폭탄은 터지지 않고, 사건을 총기 난사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사건 자체는 너무 끔찍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후에 피해자의 부모나 가족의 입장에서 사망자나 피해자를 기다리는 심정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그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자녀나 가족이 두 명의 고등학생의 미친 놀이에 갈가리 찢겨서 시체로 건네졌을 때 부모나 가족들이 느꼈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책에는 그런 심정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날 것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공권력과 언론의 대응 방식이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지방경찰과 FBI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를 못했다. 범죄자가 몇 명인 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딜런이 자살하고 사건 발생 49분 만에 에릭까지 자살을 했는데도, 경찰은 엑릭이 자살한 후 3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사건이 종료된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고등학교 건물은 경찰에 의해 봉쇄가 되었고, 총을 맞은 피해자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거나 치명적인 부상이 악화되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심지어 죽은 시체들은 밤새 학교에 그대로 방치되었고, 가족들은 다음날까지 학교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범인을 찾는 과정 속에서도 엉뚱하게 에릭과 딜런의 범죄를 신고한 친구들을 공범으로 몰아 체포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의 동기를 찾지 못해 이들은 고스 족이나 신나치족, 마피아 같은 엉뚱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 현장에 갇힌 학생들과 무분별하게 통화하고 여러 가지 정제되지 않는 정보들을 보도함으로써 사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공권력의 무능력과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사건 수습은 더 늦어지고, 피해자들만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왜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기억인지를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의 성장과정에서부터 이미 범죄의 가능성은 노출되었고, 이들이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막을 기회가 있었다. 또한 대응 과정에서도 너무나 어리숙하고,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도 엉망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할 수 있는 미국의 총기 제도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 끔찍한 기억을 조금도 여과 없이 그대로 끄집어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3명이 죽은 콜롬바인 사건이 미국 사회에 그렇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면, 300명 이상이 죽은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을까.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인에게 그대로 생중계 되었다면, 한국인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그대로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이제 그만하자!'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하고 충격스러워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들출 때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끔찍한 벌레들이 튀어나오더라도 열어젖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건의 기억은 우리에게 영원히 어둡고 습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한편으로 읽는 내내 끔찍하고 몸서리를 쳤지만, 이런 끔찍하고 몸서리를 치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담히 책으로 펴낼 수 있는 저자와 미국 사회의 용기에 대해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으로 인해 이런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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