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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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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처럼 나도 어린 시절엔 학교를 가기를 싫어했다. 매일 반복되는 등하교가 너무나도 단순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순간에도 다른 공간은 그대로 있을까. 사실은 모든 것이 공허와 어둠이고 신이 내가 다니는 곳만 '세상'이라는 이미지의 그림을 펼쳐 놓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지나간 곳은 다시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등굣길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여전히 '존재'했었다. 그렇다고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이 내가 집으로 돌아올 줄을 알고 다시 집의 이미지를 준비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눈치가 있었기에 이런 내 생각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리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짐작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만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었다. 다행히 조금 나이가 들면서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존재하는 세상에 의심을 품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지 버클리'라는 아일랜드의 철학자였다. 버클리는 세상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무엇을 지각하고 있기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각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버클리는 세상은 신의 지각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클리에 의하면 우리는 결국 신의 관념 속에 지각되는 허상일까.
이제 어린 시절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는 것이 바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데 김대식 교수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잊혔던 예전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은 뇌과학 교수인 저자가 수많은 책을 읽고 느꼈던 느낌과 충격들이 적혀 있다. 저자 역시 사람과 세상에 실망하고 책 속에 묻혀 살았던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이 많은 질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저자가 자신의 책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 그 속에 속한 지구에 대해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도 출신의 영국 기자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그곳에 없었던 남자]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품고 있는 '고타르 증후군'환자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나'란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두개골을 열어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뇌'라는 1.5킬로그램짜리 고깃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어떻게 그 뇌는 '나'라는 자아를 가능하게 한다. 아니면 많은 뇌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아와 '나'는 뇌의 '착시 현상'일 뿐일까? "자아와 나는 착시"라는 주장을 하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P 107)
이 책에는 또 세상에 대해서 질문들도 있다. 과연 세상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처럼 세상은 가상현실이 아닐까. 실리콘밸리의 최고의 혁신가로 불리는 테슬라 사의 일론 머스크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상 현실이 아닌 진짜 세상에 살 확률은 10억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옥스퍼드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니클라스 브스트륌'으 주장을 언급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류는 많은 가상현실 컴퓨터를 돌리고 있고, 미래에는 이것이 더 완벽하게 구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의 그 완벽한 가상현실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이미 50년 전에 발표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란 책을 언급한다.
[픽션들]에서 주인공 마법사는 꿈속에서 한 인물을 창조해 낸다. 그리고 그 인물이 주인공의 꿈속의 허상인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나와 주변의 세계 역시 누군가의 꿈속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믿는 진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300]의 영화에서처럼 전체주의적인 스파르타는 영웅으로 묘사되고, 다문화주의적인 포용 정책을 사용했던 페르시아는 괴물의 집단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알렉산더를 통해 그리스 문화가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진리이기보다는 승자의 기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자칫 우리를 혼란케 하거나 허무주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질문들이 '나'를 만든다. 데카르트 역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보는 모든 세계가 악마가 만든 허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의심과 의식 속에서 그 의심 속에 존재하는 생각하는 자아인 '코기토'라는 끈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끈을 붙잡고 의심의 세계에서 나왔다. 우리가 꼭 데카르트와 똑같은 방법으로 의심의 세계를 빠져나올 필요는 없다. 스스로 나와 세계에 대한 의심을 품고, 질문을 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몸부림쳐 빠져나올 때만이 의심과 회의에서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점점 우리는 질문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신간 [호모 데우스]를 인용하며 미래의 인간은 데이터를 통해 신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신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나 세상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서글픈 신인가? 구글신에 의존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나중에 이렇게 진화할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가 참 단순해졌다. 각자 자신만이 믿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증거와 증언이 나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거짓이고 왜곡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아무런 의심도 질문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무서운 폭력으로 변해간다.
어린 시절 의심을 품고 학교를 등교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나는 내가 학교라는 세계 속에 갇혀 있을 때도 다른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내가 알고 경험하던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 있고, 그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밀란 쿤데라는 책은 다른 세상을 열어젖히는 커튼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다른 어떻게 접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내 세상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는 이 책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