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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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친구 사이의 우정의 의미는 다소 과격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다. 시골 다방의 통성냥을 잘근잘근 씹으며 롱코트 자락 휘날리며 쌍권총을 멋지게 쏘아대다 친구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홍콩 느와르와 조폭이 아니면 친구를 논하지 말아야할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연출한 조폭 영화 신드롬이 그것이다. 맹목적 헌신과 희생,  비극적 결말, 비참한 최후. 심하게 말하면 세기말적 관계가 친구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인간관계의 밀도가 점점 약해져가는 분위기에서 한번쯤 상상해 봄직한 일이지만 그 진정성에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얼마전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그 이유는 오해라기 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철없는 시절의 만남은 이해 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만남이기에 그 순수성이 침해받을 일 자체가 없다.  나이 들어서의 만남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오해라기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의 방향에 따라서 두가지 결론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는 하지만) 오해는 풀어나갈 길이라도 보이지만 나와 상충되는 부분을 이해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만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만남은 다소 맥빠진 만남일수도 있다. 극적인 사건도, 가슴시린 사랑도, 생과 죽음을 초월한 감동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함과 고즈넉함이랄까. 아무말 없이 바라보며 거문고 줄을 타는 이과 누군가 연주하는 거문고 자락에 담긴 의미를 가만가만 읊조리는 병풍속의 그림일수도 먼지 폴폴 나는 시골길 옆을 한자락씩 맡아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부분에서 만날듯한 어느 노부부의 그림일수도 있다. 거문고의 현은 서로 따로이 존재하지만 서로 공감할때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친구 사이의 우정도 그러한 것이라고 옛 선인들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대목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구절중의 하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로 나온 목사가 살아 생전 결코 이해할수 없었던 아들을 추모하며 던진 한마디이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수는 있습니다."  이 책도 조용히 그 구절을 거문고 자락에 태워 흘러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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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음.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
흐르는 강물처럼의 저 대사는 저도 무지 좋아라 한다는...

은비뫼 2007-04-1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베게에서 나온 책이군요. 궁금하네요. ^^
흐르는 강물처럼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7-04-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저도 궁금해요. 그 페이퍼도 그 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황인숙 시인이 출연하여 그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은비뫼님 / 돌베개.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권만으로도 그 출판사에 믿음이 가더군요. 좋은 책에게 햇살을 부여하는 출판사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