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들

- 이병률 -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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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던가요.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지처럼 접을수 없었다는 시인이.
유리창의 오래된 물자국처럼, 무늬들처럼, 밀어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군요.
시간이 지나니 알겠네요.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면 된다는 것을.
그냥 흔들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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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잉과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ㅜㅜ
누가 이렇게 심란한 페이퍼 올려달랬어요... 진짜 울고 싶잖아요...
어쨌거나 멋진 글이라 추천.

춤추는인생. 2007-04-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오늘 저랑 통하셨네요^^
이곳 서울은 비가와요. 아침에 빗방울맺힌 창문을 밀다 문득 이시가 생각나서
오전내내 읽고 또 읽었어요.
저도 오늘하루만큼은 마음껏 흔들리는 내자신을 그냥 그대로 봐줄참이예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까요.

잉크냄새 2007-04-2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심란하긴요, 그냥 읽던 시집에서 맘에 쏘옥 드는 시라서요.^^
춤인생님 / 그 페이퍼 저도 읽었어요. 봄비가 통하게 해주었나 보네요. 가끔은 그리 흔들려주는 것도 삶이 부러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