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 강원 주문진 ~ 부산 해운대 ( 500.19km)
남해안 : 경남 거제 해금강 ~ 전남 해남 땅끝 ( 404.24km)
서해안 : 전남 해남 땅끝 ~ 인천 소래포구 ( 629.19km)
---> 총 주행거리 : 1,533.62km ( 차량이동/선박이동 제외)
1) 1일차 (10/8일) : 강원 주문진 ~ 강원 동해항 ( 84.55km ) ㄱ) 주문진 출발 ~ 첫 패달을 밟으며 ㄴ) 심곡 앞바다의 파도 ~ 부서져라 부서져라 ㄷ) 심곡 금진간 해안도로 ( 일명 헌화로 ) ~ 수로부인을 유혹하던 노인의 노익장이 서리다 2) 2일차 (10/9일) : 강원 동해항 ~ 강원 원덕 ( 57.18km ) ㄱ) 숨을 깔딱이며 임원 고개에서 바라본 바다 ~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할 길
3) 3일차 (10/10일) : 강원 원덕 ~ 경북 울진 ( 32.08km ) ㄱ) 울진 연호 호수 연꽃 ~ 연꽃진 자리가 쓸쓸하다
4) 4일차 (10/11일) : 경북 울진 ~ 경북 영덕 창포리 ( 87.51km ) ㄱ) 망양 오징어 말리는 도로 ~ 바람에 실려오던 그 내음 ㄴ) 창포리 바다 축제 ~ 달맞이와 돼지고기의 만남. 축제 이름이 참~~ ㄷ) 아침을 맞는 창포리앞 갈매기섬 ~ 아침이 쉬 밝아오지 않음이 갈매기 너 때문이라. 5) 5일차 (10/12일) : 경북 영덕 창포리 ~ 경북 포항 호미곶 ( 84.86km ) ㄱ) 호미곶 바다위의 손 ~ 가장 아름다운 손은 그대의 손 ㄴ) 또 다른 손과 등대 ~ 움켜쥐려느냐? 버리려느냐? 6) 6일차 (10/13일) : 경북 포항 호미곶 ~ 경북 울산 장생포 ( 93.32km ) ㄱ) 장생포 고래 박물관 ~ 고래의 꿈은 화석이 되어가고
7) 7일차 (10/14일) : 경북 울산 장생포 ~ 부산 해운대 (60.69km ) ㄱ) 해운대 백사장 ~ 동해의 끝, 남해의 새로운 시작 ㄴ) 광안리 광안대교 ~ 달빛이 외롭다
8) 8일차 (10/15일) : 부산 해운대 ~ 경남 거제 해금강 ( 트럭 이동 -> 휴식 ) ㄱ) 해금강 바닷가 ~ 역시 인간은 작은 존재구나 ㄴ) 바닷가 집 ~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 ㄷ) 해금강 일출 ~ 저 섬 사이로 일출이 떠오른다네
9) 9일차 (10/16일) : 경남 거제 해금강 ~ 경남 거제 동상 ( 47.15km )
ㄱ) 유람선 선상위에서 바라본 등대섬 ~ 등대지기의 신상이 문득 궁금해지고 ㄴ) 등대섬과 갈매기 ~ 얼어붙은 달 그림자를 갈매기가 깨우고 ㄷ) 글썽이굴 ~ 불로초를 찾으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은 학사가 불로초는 안찾고 저기 절벽위에 시 한수를 남겼다는데
10) 10일차 (10/17일) : 경남 거제 동상 ~ 경남 사천 늑도 ( 93.15km ) ㄱ) 고성군 옛길 마을 ~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11) 11일차 (10/18일) : 경남 사천 늑도 ~ 전남 순천 ( 96.60km ) ㄱ) 남해 해안도로 ~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20여킬로에 달하는 해안도로. 이성복의 남해 금산이 멀지 않다.
12) 12일차 (10/19일) : 전남 순천 ~ 전남 강진 ( 106.65km )
ㄱ) 보성 녹차밭 ~ 몇년만의 해후이던가
13) 13일차 (10/20일) : 전남 강진 ~ 전남 해남 땅끝 ( 60.69km ) ㄱ) 다산 초당 가는길 ~ 어느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 노래했다. ㄴ) 땅끝 마을 ~ 드디어 땅끝에 서다. 14) 14일차 (10/21일) : 전남 해남 땅끝 ~ 전남 무안 ( 120.30km ) -> 휴식 (10/22일) ㄱ) 땅끝 마을 초입 ~ 여기에 서던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하리라.
15) 15일차 (10/23일) : 전남 무안 ~ 전북 부안 곰소항 ( 117.33km ) ㄱ) 법성포 굴비 ~ 요건 써비스! ㄴ) 곰소 염전 ~ 아, 해질녘의 염전처럼 우울한 풍경도 드물것이다.
16) 16일차 (10/24일) : 전북 부안 곰소항 ~ 전북 군산 ( 101.32km ) ㄱ) 채석강 ~ 수만년의 지층이 나를 기다리고 ㄴ) 변산 어느 고개 ~ 문득 고개를 돌리니 구비구비 고개를 넘어왔구나. 17) 17일차 (10/25일) : 전북 군산 ~ 충남 대천항 ( 69.27km ) ㄱ) 춘장대 바닷가 ~ 고생했다고 자전거를 쓰다듬어 주고 싶더라
18) 18일차 (10/26일) :충남 대천항~안면도(배 이동)~경기 평택 아산만 ( 122.94km) ㄱ) 대천항 여객선 일출 ~ 어제의 강풍이 잠잠해진 아침을 돋보이게 한다.
19) 19일차 (10/27일) : 경기 평택 아산만 ~ 인천 소래포구 ( 98.03km) ㄱ) 화성 매향리 갈대 ~ 저 갈대밭 뒤로 인간의 탐욕이 중장비를 굴리고 있음이라. ㄴ) 소래포구 ~ 91년 운항을 멈춘 3냥짜리 협궤열차옆에 자전거 잠들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일지는 모르지만 루쉰과 체게바라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둘 모두 의학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진정 치유해야할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임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임을 깨달은 순간 루쉰은 중국 사회의 암흑적 현실과 싸우는 문학가로, 체는 남미의 부조리와 싸우는 혁명가로의 길을 찾아 떠난 모습이 그렇다. 혁명의 진정성은 같았다. 아Q, 힘없고 가난한 최하층민이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전형적으로 비겁하고 비굴한 부류이다.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시대의 흐름에 표류하며 혁명당이 되고 혁명이 실패하자 살해당하는 허무한 인물이다. 아Q는 중국민중의 무지와 의식 결여에 절망하던 루쉰이 그들을 향해 뱉어낸 인물이다. 자아의식과 목적의식이 결여된, 그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민중에 의한 혁명의 허구와 허무에 절망하며 피 토하듯 그려낸 인물이다. 루쉰의 희망이 절박한 반면 민중의 희망은 그저 아득하고 막연할 뿐이니 그 간극에서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희망이 마치 땅위의 길과도 같다는 그의 글에서 살짝 절망이 엿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p < 378 >
우리는 인생을 두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p < 384 >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가만히 돌아보니 12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 세월을 같이 해오신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다보니 문득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IMF의 여파속에 천박한 자본주의를 대변하던 강자의 논리,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진창길을 통과하던 시기였지만 같이 울고 웃으며 지내온 여러분은 제 기억속에 저 싯귀처럼 오래도록 간직될 겁니다. 산다는 것은 때론 홀로 눈물자국 간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국수김이 창문을 뿌옇게 물들이는 그런 선술집에서 두런두런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가슴속 뜨겁게 따뜻한 국수를 먹는 것이기도 한가 봅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샤르트르가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칭송한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명언입니다. 의대생이던 그가 남미 오토바이 여행을 통하여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육체의 치유가 아닌 정신과 의식의 치유라는 깨달음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가로 거듭 태어납니다. 쿠바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아프리카의 콩고로, 남미의 볼리비아로 떠납니다. 그는 알고 있었을겁니다. 쿠바와 달리 콩고와 볼리비아의 혁명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그가 떠난 것은 그의 평생의 신념과 꺼지지 않고 남아있던 가슴속의 꿈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현재 계획상으로면 제가 체 게바라의 발길을 따라 남미를 돌고 오면 39살이 되어있을것 같습니다. 우연히도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사살된 체의 나이가 39살입니다. 그가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준 신념과 꿈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돌아올수 있었으면 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엽락분본(葉落糞本)" 어느덧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가 가득한 창가에서 풀벌레 소리 너머의 가을과 그 너머의 겨울을 상상해봅니다. 가끔 내것이 아닌 열망들에 휩싸여 괴로울때면 겨울벌판의 나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름날의 그 푸르른 신록을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떨구고 의연히 겨울을 나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곤 했습니다. "석과불식"은 씨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묻는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어려움이든 사회의 어려움이든 역경을 견디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을 희망과 꿈을 묻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엽락분본"은 잎사귀를 떨구어 뿌리를 거름한다는 뜻입니다. 올겨울에는 나를 둘러싼 거짓과 위선과 내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둘 발아래 떨어뜨려볼까 합니다. 그 희망이 있기에 가슴 떨리는 여행이 될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
회사 메일이 없어지기에 여기에 보관한다.
1. 출입국 심사대의 혼란
예전에 한번 페이퍼에 올랐던 인물인데, 여지껏 사람들을 만나면서 괴짜 행동이 가장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사람이다. 네트워크를 조사하며 컴퓨터 위치를 묻는 직원에게 책상 밑에 있다는 발언으로 좌중을 압도한 포스를 지닌 그다. 특히 소품 사용에 대단한 기지를 발휘하는데, 길거리를 지나다 우는 아이를 발견하면 플립형 핸드폰을 열고 오른쪽 눈에 갖다되며 "베지터"를 연발하는가 하면, 식당에서 숟가락 두개 만으로 완벽한 "울트라 맨"을 소화한다. 물론 애들은 더 울지만.
그런 대단한 기지와 재치와 배짱을 가진 그가 동남아 어느 곳으로 직원들과 여행을 갔다. 출입국 심사대를 가장 늦게 통과하는 그에게 출입국 심사직원이 물었다. 앞의 사람들과 일행이냐고. 영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직원은 "Group?" 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일행을 가르키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들리지 않는 말은 포기한 채 바디 랭위지에 충실하기 위해 손가락을 따라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았다. "이것들이 미쳤나? 왜 자꾸 돌라고 해." 하는 불만에 가득한 채. 일행이 데려가기 전까지 직원은 "Group?"를 여섯 번 정도 외쳤다고 한다.
2. 모스크바 테러의 숨은 진실
95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납치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런지. 간략히 설명하자면 연수중인 현대전자 직원 28명을 태운 버스를 붉은 광장에서 납치한 사건이다.
내가 아는 차장님도 그 당시 인질중의 한명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단체 관광의 습성이 그러하듯 붉은 광장에서 모자를 산 직원들은 대기중인 차에 올라타 서로 누가 싼 가격의 모자를 산것인지 대하여 떠들썩했고 한참의 논쟁끝에 차장님이 가장 유력한 후보에 올라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버스 뒷문으로 올라탄 괴한이 은행 강도들이 쓰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총을 들고 당당하게 걸어왔다. 상황을 인지못한 버스에서는 새로운 모자의 출현에 열광했고 유력한 1위 후보로서 불안감을 느낀 차장님은 가슴을 툭 밀며 지나가는 테러범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일갈했다고 한다. "야, 임마. 너 모자 얼마 주고 샀는데?"
인질로 잡혀있던 시간은 18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간동안 조금만 세게 때렸으면 테러범을 검거하여 영웅이 될수도 있던 기회를 가게 점원의 역활로 대치한 차장님은 혹여나 인질 사살이 있을 경우, "야, 아까 뒤통수 때린 넘 먼저 나와!" 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더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