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가만히 돌아보니 12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 세월을 같이 해오신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다보니 문득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IMF의 여파속에 천박한 자본주의를 대변하던 강자의 논리,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진창길을 통과하던 시기였지만 같이 울고 웃으며 지내온 여러분은 제 기억속에
저 싯귀처럼 오래도록 간직될 겁니다.
산다는 것은 때론 홀로 눈물자국 간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국수김이
창문을 뿌옇게 물들이는 그런 선술집에서 두런두런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가슴속 뜨겁게 따뜻한 국수를 먹는 것이기도 한가 봅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샤르트르가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칭송한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명언입니다. 의대생이던 그가 남미 오토바이 여행을 통하여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육체의 치유가 아닌 정신과 의식의 치유라는 깨달음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가로 거듭 태어납니다. 쿠바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아프리카의
콩고로, 남미의 볼리비아로 떠납니다. 그는 알고 있었을겁니다. 쿠바와 달리 콩고와
볼리비아의 혁명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그가 떠난 것은 그의 평생의 신념과 꺼지지
않고 남아있던 가슴속의 꿈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현재 계획상으로면 제가 체 게바라의 발길을 따라 남미를 돌고 오면 39살이 되어있을것
같습니다. 우연히도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사살된 체의 나이가 39살입니다. 그가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준 신념과 꿈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돌아올수 있었으면 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엽락분본(葉落糞本)"
어느덧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가 가득한 창가에서 풀벌레 소리 너머의
가을과 그 너머의 겨울을 상상해봅니다. 가끔 내것이 아닌 열망들에 휩싸여 괴로울때면
겨울벌판의 나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름날의 그 푸르른 신록을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떨구고 의연히 겨울을 나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곤 했습니다.
"석과불식"은 씨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묻는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어려움이든 사회의
어려움이든 역경을 견디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을
희망과 꿈을 묻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엽락분본"은 잎사귀를 떨구어 뿌리를 거름한다는 뜻입니다. 올겨울에는 나를 둘러싼
거짓과 위선과 내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둘 발아래 떨어뜨려볼까 합니다.
그 희망이 있기에 가슴 떨리는 여행이 될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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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메일이 없어지기에 여기에 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