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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금발머리를 가진 어떤 사내아이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인다면,
그리고 말을 건네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제게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
날 이토록 슬픔에 잠겨 있게 내버려 두지 마시고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편지를 써서 알려 주십시오...>
여우와의 대화에 워낙 주옥 같은 글들이 쓰여있다 보니 어린 왕자가 사막에 쓰러져 별로 돌아가고 난 후, 쌩텍쥐베리가 그를 다시 만나고픈 마음에 책 말미에 절절하게 쓴 이 편지를 잊고 산다. 어린 왕자만 남고 작가는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소설의 형태일 수도 있지만 어린 왕자의 소식만 기다리는 쌩텍쥐베리 입장에서는 가슴이 타 들어갈 일이다. 가슴 떨리며 몰래 남겨둔 연서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은 책 말미의 편지를 포착한 작가가 어느 섬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그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편지의 형태를 빌려 전개하고 있다. 답장은 어린 왕자의 별 B612에 우연히 도착한 써커스단에서 탈출한 호랑이로부터 시작된다. 호랑이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 사냥꾼을 찾기 위해 양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지구에 도착하기 전 여러 행성을 전전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지구별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드디어 작가를 만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어린 왕자의 플롯을 그대로 빌려와 사용하고 곳곳에 오마주 형태의 글이 숨어있어 점잖은 패러디 혹은 답장을 모방한 표절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답장을 받은 쌩텍쥐베리가 '이건 어린 왕자가 아니야' 라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머금은 금발머리 소년의 소식을 전해주는 친절을 베풀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또 다른 편지인 셈이다. 어여 우편함을 뒤져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