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 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청년은 노인이 되고 기억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우리는 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연장된 사건의 미세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 있다. 예감은 어긋나고, 하나의 사건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종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안다. 그제야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연장된 시간 때문이다. 수만 분의 1초로 분할된 느린 화면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유리잔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릴 것이다. -p51~52- 유리잔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따르면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계열 필수인 물리학이 F 학점인 스스로도 영 믿음이 가진 않지만 윗 문단에서 독서 건망증에 대한 합리적 변명과 상대성 이론을 함께 읽어냈다. 그러니까 삶에서 유리잔이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은 유리잔이 부딪히고 균열이 가고 산산조각이 나도록 늘어나는 그 시간 동안을 우리가 기어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어져 나가는 시간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당장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유리잔이 깨지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늘여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느끼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삶이 수동태냐 능동태냐의 차이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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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13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우리는 늘 오늘이라는 시간의 늘어남 속에서 있는 거였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시간에 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시간은 빠른 것이 아니였네요. ㅎㅎ

잉크냄새 2025-10-13 21:16   좋아요 1 | URL
시간의 늘어남을 오늘에 대입해보니 과거-현재-미래가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매듭짓지 못하면 불안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가 하나의 연장선을 과거-현재-미래 라는 단락으로 구분해 버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