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밀레니엄> 시리즈에 대한 찬사는 익히 들어왔지만, 어쩐지 선뜻 손이 가지 표지 때문에 미뤄오다가 이번에 새 옷을 입고 나왔기에 다시 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 한 번 읽어봐!' 하고 겁나게 물량공세를 하고 있는 책이라(주말에 서점에 나가보니 온통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광고 홍수였다) 슬쩍 반항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출판사에서 이렇게 밀고 있는 책인데 하는 마음과 이 책을 추천해준 많은 분들의 찬사에 힘입어 뒤늦게 밀레니엄 홀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원래 10부작으로 예정된 작품이지만, 현재 출간된 것은 총 3부인 <밀레니엄> 시리즈. 후속편을 기대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게도, <밀레니엄> 3부작을 탈고한 뒤 저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데뷔작이자 유고작인 <밀레니엄> 3부작. 하지만 그런 사연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독자를 유혹한다.

  얼마 전 <웃는 경관>으로 낯선 스웨덴 문학을 접한 바 있는데, <웃는 경관>에 비해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지역적인 색채가 덜 두드러진다. 물론 소설의 기반에는 스웨덴의 문화, 정치,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배경이 미국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단 전 세계적인 코드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스웨덴적인 요소를 찾으라면 영하 10도도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의 맹추위랄까?) <웃는 경관>은 분위기 자체는 조금 우중충한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사들의 캐릭터가 생기를 더했다면, 조각난 이야기가 하나의 것으로 모이는 것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분명 어두운 이야기인데도 그렇게 어두운 분위기로 풀어가지 않고 가벼운 터치로 그려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재계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재계의 거물 헨리크 방예르, 그는 매년 생일이면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압화(유리 액자에 꽃이 담긴 것)를 받는다. 수십 년 전, 갑작스럽게 실종된 종손녀 하리에트가 늘 헨리크에게 줬던 바로 그 생일선물. 평생을 증손녀의 행방에 대해 파헤쳤던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한 남자에게 마지막 배팅을 건다. 그가 바로 시사월간지 <밀레니엄>의 발행인이자 기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부패 재벌인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폭로 기사를 썼다가 고소를 당해 실형을 받게 된 그에게 헨리크는 만약 하리에트 사건의 진실을 밝혀준다면, 그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과 함께 베네르스트룀이 빠져나가지 못할 증거를 주겠다고 제시한다.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미카엘은 헨리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십수 년 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사실 1권의 중반까지는 꽤 지루한 전개가 이어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낯선 이름도 초반에 어려움을 겪는데 한몫을 한다. 하지만 일단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책장은 술술 넘어가기 시작한다. 미궁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가며 허점을 파고 들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나, 여기에 얽힌 인종주의와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부유하긴 하나 저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는 독자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죽어간 여자들에 대한 분노, 한 사람에 대한 편견에 대한 비판,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진실이라는 것의 정체 등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두 주인공 미카엘 블룸크비스크와 리스베트 살란데르다. 여자들의 호감을 쉽게 얻으며, 많은 여자와 사귀지만 깔끔한 마무리 때문에 잠자리로 인한 원한은 사지 않는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 미카엘과 작은 키에 깡마른 몸매, 몸 여기저기에 있는 문신 때문에 선뜻 남에게 호감을 사기 어려운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이지만 해킹 실력과 조사 능력만큼은 빼어난 리스베트. 나이도, 성격도, 직업도 너무나 다른 두 사람. 하리에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인연이 닿지 않았을지 모를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밀레니엄> 시리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들과 잠시 이별을 고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표지 때문에 망설였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어 2부를 읽기 시작했다. 연휴 동안 이불 속에 콕 쳐박혀서 <밀레니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곧 헤어질 것을 알고 있을 때 만남이 더 소중하듯, <밀레니엄> 시리즈도 끝내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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