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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평점 :
미미 여사의 에도 이야기는 늘 특별하다. 사실 에도 시대물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미 여사가 그려나가는 시대물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 독자에게 에도라는 낯선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등의 궁금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에도라는 시대적 배경은 낯설었을지 몰라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미미 여사의 에도 이야기는 복잡한 트릭이 없어도, 자극적이라거나 엄청난 배경이 있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따뜻한 이야기로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이번 이야기 <하루살이> 또한 그랬다.
<하루살이>는 연작소설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모두 깨알 같은 재미가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표제작인 <하루살이>를 위한 떡밥처럼 뿌려진다. 첫번째 작품인 <밥>에서는 마음의 병으로 드러누운 짱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어지는 <미움의 벌레>에서는 사키치와 오케이 부부의 신혼 초 알콩달콩한 생활과 거기에 갑작스럽게 드리워진 의심과 미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아이 잡아먹는 귀신>에서는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오로쿠가 마고하치라는 뱀 같은 남자에게 휘둘리던 중 아오이 마님의 도움으로 행복을 되찾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눈먼 사랑>에서는 오토쿠의 조림 가게 근처에 새로 등장한 오미네네 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군가 죽어나가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큰 계략이 있는 것도 아닌 소소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저 슬몃 미소 지으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슬쩍 그들의 어깨를 살짝 두들겨주고 끝날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진행되는 <하루살이>는 다르다. 앞의 네 편의 이야기가 기본 몸풀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하루살이>는 이 기본 동작을 응용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루살이>에는 이전에 <얼간이>를 읽으며 만난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얼간이라 불리는 헤이시로부터 시작해서 <얼간이> 때는 관리인으로 등장했지만 여기서는 본업인 정원사로 등장하는 사키치,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인기 만점의 조림 가게를 운영중인 오토쿠, 빼어난 외모에 영특함을 갖췄지만 아이다운 모습 또한 갖춰 미워할 수 없는 유미노스케, 한번 들은 이야기는 빠짐없이 기억하는 짱구, 그리고 <얼간이> 때 사건의 중심에 놓인 미나토 상회의 일원 등 <하루살이>는 <얼간이>의 연장선상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얼간이> 때는 첫 만남이라 다소 낯선 느낌이 있었다면, <하루살이>에서 다시 만난 등장인물들은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마냥 반가웠다. 특히 이번 권에서는 여전히 미모를 뽐내는 유미노스케와 아이와 어른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시작한 짱구, 이 두 꼬마의 매력 때문에 내내 엄마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욕심과 애증은 인간의 심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우리를 현혹시키고, 우리의 마음에 그늘을 만들어 우리를 무엇엔가 씐 것처럼 만든다. 결국 '아이 잡아먹는 귀신'도 '지나가는 마'도 우리 안의 어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품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루살이>를 읽고 나서 나쓰메 소세키의 <풀 베개> 첫 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살이>에서 느낀 게 바로 이것이었다. 때로는 비논리적이고, 때로는 비인간적인 삶처럼 보여도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역시 우리네 이웃에 있지 않을까. 정을 잃어가는 사회 속에서 미미 여사의 에도물에 정이 가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바쁜 나날 속에서 <하루살이>를 읽으며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미미 여사의 이어지는 에도 이야기. 또 한 번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