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밥


삼남매가 평상의
반상에 둘러앉아
볼이 미어져라
상추쌈을 우겨넣는 근경을
열댓 발치에서
묵묵히 바라다보며
오져해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큰 손 하나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어머니였다


조성국 / 슬그머니 / 실천문학사


 이등병 시절,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최전방 철책선이었다. 연대본부에서 다른 동기들은 다들 군용 포차나 육공트럭을 타고 자대로 떠났는데, 우리는 인솔장교와 함께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어딘가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비로소 포차를 타게 되는데, 인솔장교가 전방에는 한번 들어가면 전화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미리 전화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한 사람당 2통의 전화를 쓰게 해줬다. 물론 전화카드나 동전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동기들이 각각 부모님이나 여자친구 혹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집에 전화를 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아직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네 집으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부모님께 대신 전해달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삼켰다. 왠 여자애가 전화해서 내 소식을 전하면 그것으로 더 놀랄 양반들이었다. 그냥 전방으로 간다고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대대본부를 거치고, 중대 본부를 거쳐 다시 소초로 이동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소초에서는 앞으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진짜 고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에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도 있었지만, 왠지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처음 소초에 들어갔을때, 가장 고참은 부산 사람이었고, 그 바로 밑에 있던 고참이 광주사람이었다. 왕고인 부산 사람은 내가 들어가고 오래지 않아 제대했다. 나는 화기분대 기관총 탄약수로 들어갔는데, 화기분대장이 바로 두번째 왕고였던 광주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무척 잘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사람이 나와 마주치면 매일같이 했던 말이 바로 '낮밥문냐?' 였다. 난 전라도 사투리를 하나도 몰라서 '낮밥'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안그래도 어리버리하던 이등병시절, 천천히 또박또박 잘 말해줘도 긴장해서 두세번은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소리지른 후에야 비로소 고참이 무슨 말은 하는지 알아들었던 시기였다. 그가 내게 다가와 '낮밥문냐?'라고 말하는데, 도무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세번째였던가 네번째였던가 계속 내가 못알아듣자, 결국 그는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퍽 치고는 '낮밥 무긋냐고?'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낮밥'이 뭔지 몰랐던 나는 계속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숙인 나를 내버려둔채 그냥 가버렸고, 나중에 다른 고참이 '낮밥'이 점심이라고 말해주었다. 낮밥, 이 쉬운 말을 왜 못알아들었을까? 이 시를 읽는 순간 그 고참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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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2011-04-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고향이 경상도, 남편은 전라도거든요.
결혼해서 한동안은 시어머님 말씀을 남편이 통역해줘야만 알아들을 수 있었답니다.
15년을 훌쩍 넘긴 지금은 웬만한 사투리는 다 알아들어요..^^

근데 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통화를 하시면...서로 네~네~만 하시다 끊는답니다.
시어머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 말씀을 하나도 못알아 들으셨다더군요..ㅋ

저도 낮밥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요.
남편오면 물어봐야겠네요...^^

감은빛 2011-04-13 15:23   좋아요 0 | URL
사투리라는게 그래서 참 재밌는 것 같아요.
같은 나라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거 신기하죠.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조차 말예요.

낮밥이란 말 생각할수록 간단명료하고 좋은 것 같아요.
조기 시에서 '오져해한다는' 표현도 전라도 사투리더라구요.

책가방 2011-04-14 01:00   좋아요 0 | URL
(오지다)에 대한 일화도 있답니다.
경상도에서의 (오지다)는 (고소하다, 샘통이다)등의 뜻으로 쓰인답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의 (오지다)는 (든든하다, 알차다)등의 뜻으로 쓰이더군요.
첫아이 낳고 친정에 있을 때 시부모님이 오셨었는데...
그때 시어머님이 친정엄마께 "아들딸들이 많아서 오지겄소" 하셨다는...ㅋ
친정엄마는 당황해하시면서도 침착하게 "네~그렇지요" 하시더군요.
나중에 나를 통해, 나는 남편을 통해 그 (오지다)의 뜻을 알고나서는 오해가 풀렸답니다...^^

감은빛 2011-04-14 03:21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일화네요!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 잘 아는데요.
'오지다'는 그닥 좋은 뜻이 아니거든요.
어머님께서 무척 당황하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 신중하게 잘 대처하셨네요.

재미있는 사례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굿바이 2011-04-1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져해하고 있는데" 저 문장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

감은빛 2011-04-13 15:2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역시 사투리더라구요.
표현이 참 좋아요.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4-1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는 경상도 지방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동기며, 고참들 말을 대체 하나도 알아 듣기가 힘들더라고요. 사투리가 꽤 심한 동기의 얘기는 제대할 때까지 늘 반만 알아듣고, 대강 흘려 듣던 기억이 납니다.

10년만에 만났는데, 잘 풀려 있더라고요. 꽤 부럽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준비한 시간들이 꽤나 의미 있는 것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어떤 고참은 제게 괴롭혀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메일도 보내기도 했는데 감은빛님 페이퍼 보니 막 생각이 나네요 ㅎ

감은빛 2011-04-13 15:25   좋아요 0 | URL
군생활을 경상도에서 하셨군요.
저는 경상도 사람인데, 강원도에 있었어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시나봐요.
저는 군대와 관련된 사람은 모두 연락이 끊긴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따라쟁이 2011-04-1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점심 먹어야겠어요. 갑자기 막 배가 고파지네요

감은빛 2011-04-13 15:25   좋아요 0 | URL
뭐 맛난 거 드셨나요? ^^

2011-04-13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3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4-1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낮밥'이 점심이라, 저도 군대에서 주요 대사가 '잘 모르겠습니다.' 였는데 감은빛님도 비슷하셨군요. 저는 예전 커피숍 근무 시절에 나이든 손님들이 '엽차'를 달라고 하셔서 이게 도대체 무슨 차인가 메뉴판에도 없고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이 그냥 맹물이었다는 사실에 어찌나 황당하던지 ^^ 암튼 '낮밥'이 점심밥이라 단어가 멋지네요. 감은빛님의 군대 추억도 그렇구요. 아!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감은빛님은 글 잘 쓰시는게 확실합니다!

감은빛 2011-04-14 02:30   좋아요 0 | URL
네, 이등병때는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

'엽차'라는 단어 참 오랫만에 들어보네요.

축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제가 글을 잘 쓰는 건 아니구요.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영원한 청춘 2011-04-1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밥이라는 말은 저도 처음 듣네요. 엄마가 전라도 분이시지만 저희엄마도 모르시는듯.ㅋㅋ
감은빛님은 낮밥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렇게 군대시절을 떠올리겠네요.
멋진 글 잘 보고 가요~

감은빛 2011-04-14 02:32   좋아요 0 | URL
아마 전라도 중에서도 지역마다 단어나 뜻이 다르겠지요.
경상도도 그렇더라구요.
부산 바로 옆에 있는 김해는 부산말과 완전히 다른 억양과 단어를 쓰거든요.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4-1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전라도 며느리 돼서 '낮밥'이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낮밥과 더불어 '식은밥'도 생소했는데, 그건 충청도의 '찬밥'이란 걸 알아들었지만...ㅋㅋ
'오지다'는 말은 광주살이 20년 넘으니 저도 곧잘 씁니다.^^
그리고 전화 통하를 끝낼 때 '들어가라~'는 말,
처음엔 '들어가긴 어디로 들어가!' 하면서 웃었는데, 이제는 나도 쓴다는~~ ㅋㅋ

감은빛 2011-04-14 02:34   좋아요 0 | URL
'식은밥'이란 단어도 있군요.
'오지다' 조기 위에 책가방님께서 알려주신 사례가 굉장히 재밌네요.
경상도에서 '오지다'는 사실 좋지 않은 뜻이거든요.

'들어가라'는 말, 서울 사람들도 많이 쓰던데요.

양철나무꾼 2011-04-14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남편은요,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를 해서 평상시엔 전혀 못 느끼는데...
한번씩 부모님이랑 전화통화를 할때 보면 '오지게' 사투리를 써요.

이 '오지다'는 말은 연애 6년, 결혼16년 만에 깨친 것들이구요~^^

감은빛 2011-04-15 05:06   좋아요 0 | URL
저도 평소에는 사투리를 거의 안쓰지만,
(억양에는 살짝 남아있다고 하더라구요.)
가족들이나 고향친구들과 전화(혹은 대화)할 때는 '오지게' 쓰게 되던데요. ^^
 

꽉 막힌 도로를 쳐다보다가, 운전대에 이마를 기댄다. 라디오에선 교통정보와 함께 날씨정보가 나온다. 날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목소리의 여성 아나운서는 '비에 섞인 방사성 물질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만, 만약 걱정되신다면 안맞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표현이 약간 달랐을수도 있지만, 그런 뜻이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저건 저 예쁜 목소리의 아나운서 개인 의견이 아닐 것이다. 어딘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분으로부터 내려온 지침에 의해 작성된 문장일 것이다. 그걸 그저 읽었을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을 읽어버런 아나운서가 원망스럽다. 저게 대체 방송에서 읽을 문장인가? 이제는 방송이 그냥 장난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일본의 방사능 유출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체르노빌 수준의 위험상황이라고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사실을 은폐하고, 나중에 더 큰 사고가 터지면 뒤늦게 인정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건 무슨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고,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 그냥 걱정 말란다. 외국에선 특히 한국의 상황을 우려하고 걱정하고 있다는데, 이 나라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손놓고 있는 듯 하다. 

어제 내린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에 대해 며칠전부터 많은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학교에 '휴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은 자율적인 '휴교'를 허용했고, 일부 학교에서 단축수업이나 휴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로야구 경기는 모두 연기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는 차를 끌고 나와서, 도로는 평소에 비해 훨씬 더 복잡했다. 행여 비를 한방울이라도 맞을까봐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평소라면 그냥 맞고 다녔을 수준의 비에도, 모두 우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준 듯했다. 이렇듯 정부의 계속되는 '걱정말라'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상황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거짓 선전하는 시간과 돈으로, 정확한 오염수치와 규모 등의 실제 현황을 파악하는데 힘쓰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내놓는데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량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라거나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등의 표현이 아닌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으로 국민들에게 상황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어제 밤 방사성 비가 그치는 것과 동시에 황사가 날아들었다. 방사성 물질과 황사라는 무서운 위험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무섭다. 아니 내가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죽는게 무서운 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갈 큰 녀석과 아직 태어난지 일년이 채 안된 둘째 녀석이 이렇게 위험하고, 무책임한 세상을 살아갈 일이 무섭다. 어제 밤 아기를 재우다가 문득 녀석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젠장! 맨날 말로만 출산장려정책을 펼치겠다고 떠들면 뭐하나, 실제 부모들은 열악하기 짝이없는 육아정책과 무한경쟁을 장려하는 교육정책과 온갖 위험물질에 노출된 먹거리 문제와 다양한 환경문제, 부동산 문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를 비롯한 각종 생활문제, 그리고 지금처럼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아이를 갖기를 꺼린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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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1-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해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게 너무 미안해요.

감은빛 2011-04-11 13:01   좋아요 0 | URL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인 것 같아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1-04-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핵 운동이라는 게 사실 이 정도로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결과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결국 어떤 힘이 정말 이건 아닌 거다! 라고 징벌을 가하는 것 같아요. 왼쪽 두 권의 책은 읽어 보지 못했는데 찾아 봐야겠습니다. 저도 아이를 볼 때마다 괜히 눈물이 나요. 마스크 씌우고 놀이터에서도 예전처럼 신나게 못 놀리고 비 맞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이게 대체 뭐하는 쇼인가 싶어요.

감은빛 2011-04-11 13:09   좋아요 0 | URL
독일 시민들이 열심히 반핵운동을 펼치고,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힘을 쏟는 것도 옛날 체르노빌 사건때,
독일까지(동독지역) 방사능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옆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정부부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으니, 참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꿈꾸는섬 2011-04-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내린 방사능비는 정말 무섭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은 부모들의 마음인가봐요.
오늘은 황사까지......ㅠㅠ

감은빛 2011-04-11 13:11   좋아요 0 | URL
방사능 비에, 황사까지!
정말 무서워서 애들 나가놀게 하지도 못하겠어요!

cyrus 2011-04-0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일본이나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들에게 불신을 안겨주는 태도를 버리고
보다 더 실황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총리가 막연하게 방사능 비 맞아도 된다는 식의 발언도 삼가해주었면
좋겠구요,.. ^^;;

감은빛 2011-04-11 13:13   좋아요 0 | URL
저는 라디오에서 방사능 비 맞아도 별 문제없다는 식의 망언(!)을 듣고,
무지 열받았었어요. 그렇게 말한 사람 자신은 과연 비 맞았을까요?
자기 가족들, 자기 아이들에게 비 맞아도 된다고 말했을까요?
어떻게 그런 소릴 방송에서 지껄일 수 있는지 따져묻고 싶었어요.

차트랑 2011-04-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정부는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급적 회피하고 싶어하는 듯 보입니다. 마치 '일본의 방사능 문제가 국내의 원자력 문제로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 핵 폐기물 처리 문제로 국민들과 상당한 마찰을 빚었던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는 정부입니다. 몇년 전 경주시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기로 정부와 협의한 후 핵폐기물 처리장을 수용을 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핵 방사능으로부터 한국은 안전하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습니다. 그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발표를 한 것인지... 최근 일본 및 해외의 전문가들이 한반도가 방사능에서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고 발표하자 한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은 안전한 수치라고 정보를 전달합니다. 방사능의 수치상 비를 맞아도 될정도로 미약하다는 것이지요.
왜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에 국민은 신뢰를 줄수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 정부를 믿고 싶은데 실제로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의 발표를 국민이 믿지 못하는 현실은 비극입니다. 제발 국민들로하여금 정부를 믿도록 해주면 안되는 걸까요?

감은빛 2011-04-11 13:15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가 지금처럼
어이없는 태도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반도의 방사능 수치는 점점 더 심각해질텐데,
언제까지 정부가 지금처럼 손놓고 있을지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09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비입고 우산쓰고 마스크하고 입었던 옷은 폐기처분 하라는 메뉴얼을 어디서 봤습니다.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요?

그런데 말이죠, 경기도의 휴교령 그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더라구요.
그 휴교령으로 인하여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또 어떻게 방치되는걸까 싶어서 말이죠.

어제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한국원자력 기술원장이 나왔었거든요.
손석희 참 재치발랄햇었는데 말이죠~^^

감은빛 2011-04-11 13:17   좋아요 0 | URL
휴교령에 대한 그 의견은 저도 공감합니다.
애들만 쉬게하여 보호하면 뭐합니까?
정작 맞벌이하는 부모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으니,
애들이 그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닐지 알 수 없지요.

말씀들으니, 그 방송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다시듣기' 같은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4-1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그러하듯이 '걱정하지 말라'가 모든 해결의 열쇠처럼 말을 하는 국가와 거기서 일하는 놈팽이들을 보며 헐하며 혀를 찹니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인 우리가 확실한데 나라라는 추상적 개념에 개인이라는 현실적 개념이 자꾸 먹혀버리는 현실이 참 안타깝고 열 받기도 합니다. 방사능에 대한 것도 아무런 지식이 없다가 이번 사태와 더불어 하나씩 알게 되는데 무섭기는 참으로 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일이 발생되면 그때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는데 정치가라든가 이 놈의 국가에서 일하는 놈들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니 참 한심해요. 아! 열 받아 뭐 방법이 없을지...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까지 나실려고 하는 감은빛님의 마음은 참 멋있습니다. 저도 완전 공감해요.

감은빛 2011-04-11 13:19   좋아요 0 | URL
공감의 말씀! 고맙습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루쉰님의 의견에 백번 공감합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특히 요즘은 이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고 부끄럽습니다.
 

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 문학동네



2008년 어느날 그를 처음 만났다. 광우병 수입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살면서 가장 많은 시인들과 함께한 날이었다. 그 날은 <삶과 문학> 출판기념식이 동대문 어느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대부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가인 <삶과 문학> 동인들이 이십여명 모여서 식사를 하고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다같이 촛불집회 장소인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작가회의 소속의 다른 작가들과 합류했다. 행진대오가 행진을 마칠 즈음 작가들과 함께 동아일보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소설가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시인이었다.

그 날 윤희상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무척 겸손하고 점잖은 모습의 그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디론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내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처음부터 그는 다른 작가들과는 별로 말을 나누지 않고 옆에 있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몇 마디 말들로 나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점상연합회에서 나눠주는 순두부가 맛있다고 꼭 먹으라고 내 손을 잡아 끌고 가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매일 밤 촛불집회에 나와서 밤을 새고 아침 해장국을 먹고 출근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 보다 한참 선배뻘되보이는 어느 시인이 그에게 이제 그만 밤새고 집에서 가족들도 좀 돌봐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쌓아지던 순간에도 그가 최초로 신문 기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시를 썼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윤희상이라는 이름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와 나는 둘이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시를 써보라고 했다. 나는 뭐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성명서는 좀 써봤고 이런저런 잡다한 글들을 조금 써봤지만 과연 내가 시를 쓸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는 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시가 의외로 쉽다고 계속 나에게 시를 권했다. 왜 그랬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 저녁 촛불집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나에게 뭔가 말을 건넸던 것 같은데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인삿말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제서야 그의 시를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시집을 구입했다. 그의 시는 내가 그에대해 느꼈던 첫인상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상만물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워졌다! 이런 멋진 사람과 잠시나마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몹시 기뻤다. 시를 써보라는 그의 제안은 워낙 시에 대해 문외한이고, 또 시적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생각때문에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다른 글들을 꾸준히 써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글이 안써질때마다 그가 내게 들려준 말들이 생각난다. 한번 쓴 시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하루에도 여러번씩 고쳐쓴다고. 그렇게 수십번을 고쳐쓴 다음에야 시를 완성한다고. 하나의 시를 쓰는데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문득 소를 웃겨버린 그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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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얼마전 뵜던 '소와 함께 여행하는법'이 생각나네요.

저도 님이 시랑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고르는 센스도 그렇고, 언어를 극도로 응축시키는 힘도 그렇고 말이죠~
'가장best'인건 의도하지 않은 감동인데 말이죠~

윤희상님이 낯설어서...그만 주제 넘었습니다~^^

감은빛 2011-03-30 12:46   좋아요 0 | URL
아유! 주제넘다뇨? 무슨 말씀을!

윤희상 시인이 워낙 강하게 권하길래, 이후로 시를 좀 찾아 읽었는데,
저는 시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읽으려는 생각중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너무 곱네요. 담백하구요.
저두 소랑 함께 웃어버린 그런 시네요.
그런 분을 아시게 된 감은빛님이 부러워요. 진짜루
감은빛님이나 윤희상님 같은 분들과 막걸리 진하게 먹으며 하루 거나하게 떠드는
그런 저녁이 소원이었거든요. ^^ 저야 항상 전산 하는 친구들과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들만 해대서, 걸죽한 자리가 그립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감은빛님의 시도 볼 수 있는건가요? 그럼 전 시인을 알게되는거네요? 와!

감은빛 2011-03-30 12:49   좋아요 0 | URL
저도 마녀고양이님과 함께 막걸리 진하게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고 싶네요! ^^

저는 시랑은 인연이 안되는 것 같아요.
시보다는 산문 쪽이 좀더 잘어울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꿈꾸는섬 2011-03-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희상님의 시를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소를 웃긴 꽃, 너무 좋으네요.

감은빛 2011-03-30 12:50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반딧불이 2011-03-3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와 시인을 함께 얻으셨군요.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에요. 감은빛님의 글도 시처럼 따듯해요.

감은빛 2011-03-30 12:51   좋아요 0 | URL
흔치않은 일이죠.
무척 소중한 만남이고, 감사한 인연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3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쓰신 글이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굳이 나눌것은 아니겠지만 시를 쓰시는 분들은 조용하고, 겸손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한편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속은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단단함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시인도 만나 얘기를 나누시는 감은빛님. 좀 부러워지려고 하네요 ^^

감은빛 2011-03-31 13:48   좋아요 0 | URL
문학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주변에 시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등단한 사람들, 등단 준비중인 사람들, 그냥 취미로 쓰는 사람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은,
나중에 워낙 다양한 시인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희석되었습니다.
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겠다 싶은 생각.

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바람결님 말씀처럼, 나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4-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쓴 시를 수 없이 고쳐쓰고 내보내기 까지 노고하는 것은 소의 되새김질처럼 느껴지네요. 씹으면 씹을수록 좋은 시가 나오나 봐요. 소도 여물을 자꾸 씹어 먹으면 건강에 좋듯이 말이죠. 리뷰를 쓸 때 급하게 나오는데로 써 버리는 경우가 전 많아요. 감은빛님의 글을 잃으면 저도 좀 되새김질을 하면서 써야하지 않을까란 사색을 해요. 후훗 원래 못 쓴다고 하는 분들이 더 잘 쓰던데..예전에 나 공부 안했어라고 시험날 말하던 친구가 시험 잘 보듯이 말이죠. ㅋㅋㅋ 시가 아니더라도 많이 많이 써주세요. 전 재밌게 읽고 있으니까요.

감은빛 2011-04-04 14:33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많이 생각하고, 되새김질 해본 글이 좋은 글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저도 늘 급하게 나오는대로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유가 없고,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밑천이 별로 없어서, 더 생각해보고 싶어도 나올게 없기도 하구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루쉰님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루쉰P 2011-04-04 23:13   좋아요 0 | URL
흠...그렇게 급하게 쓰시는데도 이런 좋은 글이 ㅋㅋㅋ 좀 만 생각하시면 시 쓸 수 있으실 듯 화이팅!!

따라쟁이 2011-04-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저를 미소짓게 하는 감은빛님.. 이라는 시를 써볼까요?
고운글입니다. ^^

감은빛 2011-04-05 13:13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야말로 늘 저에게 웃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9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소를 웃긴 꽃을 만나는군요. 윤희상 시인 님 참... 좋죠. 마침 저도 이 시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리뷰를찾다가 여기 잠시 앉아서 읽습니다.. 후후..

감은빛 2013-05-10 17: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한참 옛날 글에 댓글을 주셨네요.
덕분에 저도 잠시 옛글을 읽어봤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겸허해지는 순간

오월햇살


네 엄마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겁 많은 네 엄마의 불안을 주워 담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노래 못 부르는 것은 나를 닮지 말고
뽀얀 속살은 네 엄마를 닮았으면 하다가도
저어기
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이기보다는
예쁘다기보다는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네 엄마가 건강하기를
햇살처럼
들풀처럼 건강하기를
병원 복도를 동동거리는 동안
창 밖엔
오월 햇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 / 삶이 보이는 창 


시의 제목이 '오월 햇살'이다. 우리 둘째도 햇살이 따뜻한 오월에 태어났다. 첫째때 충분히 기다렸다가 병원에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병원에서 진통을 열시간이나 했던 기억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큰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집을 나섰다. 첫째도 같은 병원에서 낳았는데, 지금 집에서는 차로 이십여분 걸리는 거리다.(첫째때는 걸어서 이십여분 걸리는 곳에 살았다.)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을 향했다. 아내는 첫째때 아무 준비없이 산통을 겪으며,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탁틴맘'이란 곳에서 임산부 요가도 하고, 호흡법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미리 배워놓고,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 5년전에 비하면 제법 느긋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나는 주로 애를 챙겼다. 큰 애는 동생이 태어난다는 아주 중대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좁은 개인별 대기실에 짐을 풀고, 큰 애에게 동생이 나올 일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겉싸개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간호사가 집에서 갖고 오라고 했다. 5년 전에는 그 병원에서 겉싸개를 준비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챙겨오지 않았는데, 그새 방침이 바뀌어서 이제는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얼른 집에 다녀와달라고 했다. 큰 애를 그냥 둘 수 없어서 함께 데려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차가 조금 막혔다. 서두른다고 애를 썼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겉싸개와 한두가지 물품들을 찾아들고 집을 나서서, 택시를 잡으러 큰 길로 향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를 집으로 보낸 그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쯤 오고 계신가 물었다. 나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지 이제 겨우 한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분만이 시작되려 한다고, 서둘러 오라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큰 애를 어깨에 들쳐메고 뛰었다. 꼭 급할 때는 택시가 잘 안잡힌다. 서둘러야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볼텐데, 아빠가 도착해야 탯줄을 자를텐데, 아내가 힘들때 내가 손을 잡아줘야하는데, 빨리가야 할텐데. 자꾸만 속이 탔다. 겨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 짧게 설명을 드리고, 최대한 서둘러 주십사 부탁을 했다. 기사님은 택시만이 가능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달리셨다. 덕분에 약간 차가 밀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큰 애를 들쳐메고 뛰었다. 분만실로 달려가니 나에게 전화를 했던 간호사가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나올것 같다고 서둘러 수술가운 같은 옷을 입혀주었다. 큰 애 손을 잡고 들어가니, 이미 아기 머리가 반쯤 나온 것 같았다. 다 되었다고 원장선생님께서 아내를 다독이고 있었다. 재빨리 아내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곧 아기가 태어났다. 간호사가 아기를 아내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곧이어 나는 탯줄을 잘랐다. 큰 애는 분만실 입구쪽에 정신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아차! 급하게 서두르다보니, 큰 애에게 신경을 못썼다. 큰 애를 안아주고 동생이 태어난 일에 대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두번째는 좀 잘할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로 이번에도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진통을 오래겪지 않았고, 아내도 아기도 모두 건강했다. 하마터면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못볼뻔했지만(그래서 그 간호사는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고 엄청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것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 그리고 아래는 첫째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해 기록해놓은 글이다.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왔다. 

오늘은 아내가 열시간이 넘는 진통 후에 아이를 낳은 날이다. 즉 우리 아이의 생일이다! 아마도 예정일이 지났던 것 같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예정일에 진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진통이 오기 전 단계였다. 가진통으로부터 대략 이틀(아마도 워낙 정신이 없을때였기에 그런지 정확한 시간이 기억이 안난다!)쯤 지나서 진짜 진통이 왔다. 아내와 나는 여러차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다가, 아내가 이젠 가야한다고 확신하자 대충 짐을 싸들고 병원을 향했다.

마침 당시 우리 동네에 아기와 산모를 위해 작은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써주기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나야 그런 것 하나도 모르지만, 아내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병원이 곧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보통 사람 걸음으로 걸어서 대략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천천히 걸어서 갔다. 아내는 걷는 게 자연분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걸어가면서 우리는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장모님과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달려왔다. 진통이 심해지자 아내는 소리를 질러대며 내 손을, 팔을 그리고 내 머리칼(딱 한번)을 쥐어뜯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미리 무슨무슨 호흡법 등등을 배운다고 하던데, 아내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진통이 오면 그냥 소리를 질러대고 이를 앙다물고 그 고통에 맞섰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병원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와 아내의 친구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썼지만 아내는 홀로 죽을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이겨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 그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집에서 처음 진통을 느낀 지 열시간이 넘어섰다. 아내는 점점 더 빨라지는 진통에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제서야 간호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호흡법을 알려주고,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진통은 오래했지만 요령이 없어서 아직 자궁이 하나도 안열렸다고 했다. 간호원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호흡법을 알려주며 '아빠'가 함께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더 진통은 빨라졌고, 아내와 나와 아내의 친구는 아주 열심히 간호원이 알려준 호흡법을 따라했다. 아내는 여전히 아프긴하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호흡법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다시 간호원이 오더니 곧 분만이 시작될 것 같다고 분만실로 옮겼다. TV나 책에서 보면 분만할 때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초조해하면서 기다리던데, 나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이 병원은 남편이 곁에 있도록 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를 격려하기도 하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내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아내와 아이가 별 탈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거의 다 되었다고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의사 선생님이 재촉하고 격려하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아이가 이 세상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원은 아이가 나오자 아빠가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워낙 긴장하고 있던 터라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는데, 간호원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서 간신히 탯줄을 잘랐다. 간호원은 아이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잠시 아이를 간단히 씻겨서 깨끗한 배냇저고리에 감싸서 엄마에게 안겨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삼일 동안 아내와 나와 아이는 병실에 있었다. 다른 아빠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과 다음날 정도만 쉴 수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는 한 달동안 육아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잠을 자거나 젖을 빨거나 울거나 했다. 한 밤중에 깨서 울면 아내는 젖을 물렸고, 젖을 다 먹은 아이를 잠시 바람을 쐬주기 위해 내가 안고 나와서 병원 복도를 거닐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안고서 나는 어쩜 이리도 작을까 신기해하고 또 신기해했다. 아이에게 뱃속에서 목소리로만 들었던 아빠를 실제로 만난 소감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랑 함께 등산도 가고, 축구도 하고, 여행도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곳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크면 아빠와 함께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팔에 그리고 가슴에 그 조그만 아이를 안았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자, 아이의 생일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를 위해 꼭 기념해야 할 날이다! 마침 금요일이다! 일중독에서 하루쯤은 벗어나서 뭔가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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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24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아이 모두 탯줄을 직접 자르셨군요. 겁나서 못하겠다고 하는 아빠들도 많다던데.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그 아이 본인만 기억못할뿐, 아이 엄마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지요.
그 고통을 견디며 낳은 아이들이 벌써 자라 소리 지르며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어요.

감은빛 2011-03-28 13:04   좋아요 0 | URL
잊을 수 없는 날이지만, 해가 갈수록 사소한 일들은 자꾸 잊게되더라구요.
저는 애들이 태어난 당일 일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 이후 며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나요.

커가는 아이들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죠! 공감합니다!

첫눈 2011-03-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않고 실감나게 기록을 하시다니..
부인되시는 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눈물을 흘리실것 같네요.
보는 저도 마음이 뭉클할 정도에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에 가득 담겨있네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1-03-28 13:05   좋아요 0 | URL
이렇게라도 써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엇보다 아이의 출생순간을 기록하신 건 대단한데요.

그 아이에게 물려줘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그런 기록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없이 소중해지는 그런 글 같네요.

감은빛 2011-03-28 13: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들려줄 때 참고가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3-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결혼을 하지 못해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뭔가 따뜻하고 가슴이 벅차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네요.^^ 저도 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기분일지 참으로 기대가 만땅이에요. 그래도 다짐하는 건 아이들에게는 좀 인간다운 사람으로 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많아요.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감은빛 2011-03-28 13:07   좋아요 0 | URL
아이에게 자신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그냥 아이가 있는그대로의 아빠를 받아들일거예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둘째를 아직 낳지 못해서 이런 멋진 글을 남편에게 선물 받지 못했을까요?
아님, 울 아들은 꽃 피는 5월이 아닌 쓸쓸한 10월생이어서 그럴까요?
곡우님도 그렇고, 님도 그렇고...아내와 아이를 무한감동시키시는 분들인 듯~^^

감은빛 2011-03-28 13:10   좋아요 0 | URL
저희 첫째가 10월의 마지막 날 태어났어요.
절대 잊어버리지못할 생일이 되었죠.(이용의 노래와 함께~ ^^)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진통하면서 승질나서 신랑을 병실에서 쫒아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나저나, 첫째 아이가 동생의 분만을 보고 좀 놀랐겠는데요.
탯줄을 자르셨다니 멋지십니다. ^^ 어쩐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입니다.

감은빛님 페이퍼로 예전 그 순간을 되새겨보는데, 무서워서 두째는 꿈도 못 꾸겠어요. ㅋ
하두 고생하면서 낳아서 말이죠~

감은빛 2011-03-28 13:15   좋아요 0 | URL
병실에서 쫓겨난 아빠 이야기 굉장히 재밌을 것 같은데요. ^^
네, 첫째가 동생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미리 얘기도 많이 들려주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했는데,
역시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은 비교할 수가 없는 듯!

아내도 너무 힘들었다고, 절대 둘째는 안 낳을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첫째가 많이 자라버리니까,
다시 조그만 아기가 그리웠는지, 둘째를 갖기로 했죠. ^^
 

하나. 엎드려 절 받기


지난 주 나를 아주 화나게 했던 그 활동가 건(지난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일)으로 인해 금요일 저녁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 활동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오해하거나 착각해서 이러는 건가 싶어서 아내에게 상의를 했다.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내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 사람이 미쳤거나, 아주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라는 거였다.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들어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아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평소에 나와 말다툼을 할 때보면, 내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상대방을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건 나 혼자만 개인적으로 기분나빠하고 말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함께 사업을 진행해가고 있는 두 단위를 대표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그쪽 단체가 우리 회사를 무시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건물에서 일했었고, 몇 번인가 함께 술잔도 기울였던 사이다. 평소에는 전혀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작스레 이런 일로 연락을 하게 된 게 좀 미안했지만, 어쨌거나 해결책은 이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부분은 배경 설명을 하고, 현재의 내 기분과 우리 쪽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대표님께 보고하고, 대표 명의로 공식적으로 항의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주고받았던 몇 통의 메일 전문을 첨부했다.


토요일 오후 늦게 메일을 받은 국장님께 답장이 왔다. 일단 이런 상황이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고, 함께 활동했던 동지로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주시겠다고 했다.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국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사과를 하시면서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어쨌거나 결론은 명백하게 그 활동가의 잘못이라고 했다. 다만 그 활동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정리중이며, 여러 가지 정황상 곧바로 사과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이 대신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이해하고 마음을 풀어달라고 했다. 원래 문제가 되었던 건의 처리는 그쪽에서 곧 마무리하기로 했다.  

 

해당 활동가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모든 상황은 원만하게 해결이 된 듯 했다. 나로서도 더 이상 이 건을 문제 삼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곧 소주 한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둘. 열꽃은 피었다가 지고


지난 주 내내 고열에 시달렸던 아기는 금요일 오전부터 체온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온몸에 열꽃이 올라왔다. 이틀 전인 수요일에 의사선생님이 열이 내리면 열꽃이 필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딱 들어맞았다. 퇴근해서 아기를 안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주일동안 앓느라고, 살이 쏙 빠진데다가(흔히 말하듯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얼굴에 온통 울긋불긋 열꽃이 올라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한동안 녀석을 꼭 껴안고 서있었다. 아플 때는 잘 웃지도 않고, 장난도 안치던 녀석이 이제 좀 나아지긴 했는지, 예전처럼 잘 웃고,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보더니 갑자기 시를 읊으셨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열꽃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와 아내는 좀 당황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아기 얼굴에 핀 열꽃을 보고 그 유명한 시를 떠올리는 건 자유지만,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을 찾은 부모들에게 그 시를 읊는 건 좀 당황스럽다.


아기가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니까 절대 외출하면 안 된다고 해서, 주말을 집에 콕 박혀서 보냈다. 일요일 오후가 되니 열꽃이 많이 가라앉았다. 게다가 얼굴에 다시 살이 붙는 게 느껴졌다. 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니 포동포동 살이 붙은 아기가 나를 반기며 웃었다. 열꽃은 이제 완전히 다 나은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기와 장난을 치며 놀았다. 아기가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가야, 제발 아프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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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3-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저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라(다른 일도 못하고) 시원하게는 아니지만 이리 일단락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속상하시겠어요 --;;

아휴 아가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셨을까요?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1-03-22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모리님과 비슷한 성격이라, 이틀동안 다른 일도 못하고, 혼자 열받아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잘잘못을 따지고 나니, 억울함은 해소가 되네요.

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맙습니다!

낮에나온반달 2011-03-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다행입니다. 두 일 모두요.

저는 남자애만 둘인데요, 응급실행도 제법, 깁스도 제법, 그냥 병원 가는 일은 수없이 했지만 할 때마다 마음 아프긴 마찬가지더라구요.

휘모리님 말씀대로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 봅니다.


감은빛 2011-03-23 12:26   좋아요 0 | URL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에 비해서 가슴이 철렁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아마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그런 존재였겠죠!)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3-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잘잘못을 가려 마음이 풀리셨다니 다행이어요.
저는 잘못하고도 사과 안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응징하는 쪽입니다.
제가 순 오기라 이름값 좀 합니다.ㅋㅋ

아기가 아프면 정말 대신 아프고 말지, 차마 보기 어렵죠.
그렇게 한 고비 넘기면 쑤욱 자랐다는 걸 느끼지만, 너무 안스러운 일입니다.
고새 잘 먹어서 살이 올랐다니 한시름 놓이네요.

감은빛 2011-03-23 12: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름값 하실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1-03-2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기는 아프면 안되요.

그리고, 그리고, 저도. 소주한잔.. 막 이러고..;;;;
(이걸 무슨 특허같은걸 낼까봐요. 본문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댓글로...)

그나저나.. 아기는 이제 안아플거에요. 이번에 다 아프고 앞으론 안아플거에요.^^

감은빛 2011-03-23 12:29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 특허 내기 전에, 저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어요!
근데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왠지 보통 내공으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저에게도 비법을 좀 전수해주시면 안될까요? ^^
(소주한잔!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

pjy 2011-03-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의 요맘때 효도는 안 아프고 잘먹고 제때 자고 잘 싸는거죠^^; 이제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2:31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을 결혼전에 부모님께 들었을 때는 그냥 당연한 말이었지만,
부모 입장이 되어 몸으로 겪어보니, 정말 중요한 말이더라구요!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의 최고의 효도입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일이 다 잘 풀렸군요^^

감은빛 2011-03-23 13:0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루쉰P 2011-03-2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일도 같이 오고 좋은 일도 같이 오니 다행이네요. 또 무슨 일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신경 쓰며 사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싶네요. ^^ 화이팅!!

감은빛 2011-03-23 13:08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아무일도 안 생기면 오히려 재미없을테니까요.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3-2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엎드려 절받기 때론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엎드려서라도 절을 받아야 할 때는 이름 지어 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흐지부지 해버리면 그걸 사람 좋아 그냥 넘어간 걸로 아는 게 아니라,
흐리멍텅한 줄 알고 얕잡아 보더라구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이제 밤에 좀 주무실 수 있겠네요~^^

감은빛 2011-03-23 13:11   좋아요 0 | URL
제가 예전에 그런 취급을 종종 당했습니다.
예의상 혹은 인정상 조금 손해를 보고 지나가면,
사람을 아주 우숩게 여기거나, 얕잡아보는 것 같더라구요.
정말 이런 거 아주 싫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03-2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야, 아프지 마라, 아프더라도 더 건강해져라.
모든 부모들이 외는 주문이지요. 나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3:12   좋아요 0 | URL
네, 그 주문이 입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네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사이 2011-03-2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아기를 안고 안쓰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이라니..
갑자기 정호승 시인의 '아기의 손톱을 자르며'던가? 하는 시가 떠오르네요.
전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참 좋아요.
제 남편은 좀 무심한 타입이라.. ^^;;

일이 잘 해결되고 아기가 다시 건강해졌다니 참 다행이네요.
(아기가 열이 심할 때가 저는 가장 무서워요~~ 덜덜덜)

감은빛 2011-03-23 23:22   좋아요 0 | URL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네요.
덕분에 몰랐던 좋은 시를 감상했습니다.

그렇죠. 아기가 어릴 때는 열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39.9도였을 때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고 겁이 나기도 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겠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감정이 상하면 일도 그렇고 매끄럽지 못한데 현명하게 잘 대처하셨네요. 저도 다음에 써 먹어야겠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아린다는 말, 새록새록합니다.
태어난 아이의 검은 눈망울에서 전 여태 보지 못했던 걸 보곤합니다.
해서 요즘은 아이로부터 더 큰 공감을 배웁니다.

감은빛 2011-03-23 23:2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그와 사이가 나빠져도 상관없지만,
공식적으로 파트너 관계에 있는 단체와 회사가 관계가 나빠지면
곤란한 상황이어서, 여러가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아이로부터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첫눈 2011-03-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때문에, 아마도 의사선생님께서 시를 낭송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기가 많이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전에 회사일로 마음 상하셨던 일도 어느정도 해결 된 것 같아 그것도 다행입니다.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정리중 아닐까요? 그런식으로 일하면 주위에 친한사람 하나 남지 않을것 같거든요.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같았으면 찌질하게 굴었을듯...ㅋㅋ.

너무 다행입니다 ^^

감은빛 2011-03-23 23:29   좋아요 0 | URL
네, 첫눈님 말씀처럼 아기를 보고 좋은 뜻으로 시를 들려주신 거겠죠.
그렇지만 정말 의사선생님이 시를 읊는 순간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입으로만 웃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가지 일이 무사히 낙착되었네요. 낙착이란 말로 매듭짓기에는 그 과정에서의 감은빛님의 심려가 크셨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런 어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감은빛 2011-03-28 16:59   좋아요 0 | URL
네, 한동안 맘고생을 좀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때마다 슬기롭게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게 말처럼 잘 되지는 않더라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