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 문학동네



2008년 어느날 그를 처음 만났다. 광우병 수입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살면서 가장 많은 시인들과 함께한 날이었다. 그 날은 <삶과 문학> 출판기념식이 동대문 어느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대부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가인 <삶과 문학> 동인들이 이십여명 모여서 식사를 하고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다같이 촛불집회 장소인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작가회의 소속의 다른 작가들과 합류했다. 행진대오가 행진을 마칠 즈음 작가들과 함께 동아일보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소설가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시인이었다.

그 날 윤희상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무척 겸손하고 점잖은 모습의 그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디론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내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처음부터 그는 다른 작가들과는 별로 말을 나누지 않고 옆에 있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몇 마디 말들로 나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점상연합회에서 나눠주는 순두부가 맛있다고 꼭 먹으라고 내 손을 잡아 끌고 가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매일 밤 촛불집회에 나와서 밤을 새고 아침 해장국을 먹고 출근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 보다 한참 선배뻘되보이는 어느 시인이 그에게 이제 그만 밤새고 집에서 가족들도 좀 돌봐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쌓아지던 순간에도 그가 최초로 신문 기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시를 썼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윤희상이라는 이름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와 나는 둘이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시를 써보라고 했다. 나는 뭐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성명서는 좀 써봤고 이런저런 잡다한 글들을 조금 써봤지만 과연 내가 시를 쓸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는 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시가 의외로 쉽다고 계속 나에게 시를 권했다. 왜 그랬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 저녁 촛불집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나에게 뭔가 말을 건넸던 것 같은데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인삿말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제서야 그의 시를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시집을 구입했다. 그의 시는 내가 그에대해 느꼈던 첫인상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상만물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워졌다! 이런 멋진 사람과 잠시나마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몹시 기뻤다. 시를 써보라는 그의 제안은 워낙 시에 대해 문외한이고, 또 시적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생각때문에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다른 글들을 꾸준히 써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글이 안써질때마다 그가 내게 들려준 말들이 생각난다. 한번 쓴 시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하루에도 여러번씩 고쳐쓴다고. 그렇게 수십번을 고쳐쓴 다음에야 시를 완성한다고. 하나의 시를 쓰는데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문득 소를 웃겨버린 그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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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얼마전 뵜던 '소와 함께 여행하는법'이 생각나네요.

저도 님이 시랑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고르는 센스도 그렇고, 언어를 극도로 응축시키는 힘도 그렇고 말이죠~
'가장best'인건 의도하지 않은 감동인데 말이죠~

윤희상님이 낯설어서...그만 주제 넘었습니다~^^

감은빛 2011-03-30 12:46   좋아요 0 | URL
아유! 주제넘다뇨? 무슨 말씀을!

윤희상 시인이 워낙 강하게 권하길래, 이후로 시를 좀 찾아 읽었는데,
저는 시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읽으려는 생각중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너무 곱네요. 담백하구요.
저두 소랑 함께 웃어버린 그런 시네요.
그런 분을 아시게 된 감은빛님이 부러워요. 진짜루
감은빛님이나 윤희상님 같은 분들과 막걸리 진하게 먹으며 하루 거나하게 떠드는
그런 저녁이 소원이었거든요. ^^ 저야 항상 전산 하는 친구들과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들만 해대서, 걸죽한 자리가 그립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감은빛님의 시도 볼 수 있는건가요? 그럼 전 시인을 알게되는거네요? 와!

감은빛 2011-03-30 12:49   좋아요 0 | URL
저도 마녀고양이님과 함께 막걸리 진하게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고 싶네요! ^^

저는 시랑은 인연이 안되는 것 같아요.
시보다는 산문 쪽이 좀더 잘어울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꿈꾸는섬 2011-03-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희상님의 시를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소를 웃긴 꽃, 너무 좋으네요.

감은빛 2011-03-30 12:50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반딧불이 2011-03-3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와 시인을 함께 얻으셨군요.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에요. 감은빛님의 글도 시처럼 따듯해요.

감은빛 2011-03-30 12:51   좋아요 0 | URL
흔치않은 일이죠.
무척 소중한 만남이고, 감사한 인연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3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쓰신 글이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굳이 나눌것은 아니겠지만 시를 쓰시는 분들은 조용하고, 겸손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한편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속은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단단함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시인도 만나 얘기를 나누시는 감은빛님. 좀 부러워지려고 하네요 ^^

감은빛 2011-03-31 13:48   좋아요 0 | URL
문학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주변에 시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등단한 사람들, 등단 준비중인 사람들, 그냥 취미로 쓰는 사람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은,
나중에 워낙 다양한 시인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희석되었습니다.
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겠다 싶은 생각.

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바람결님 말씀처럼, 나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4-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쓴 시를 수 없이 고쳐쓰고 내보내기 까지 노고하는 것은 소의 되새김질처럼 느껴지네요. 씹으면 씹을수록 좋은 시가 나오나 봐요. 소도 여물을 자꾸 씹어 먹으면 건강에 좋듯이 말이죠. 리뷰를 쓸 때 급하게 나오는데로 써 버리는 경우가 전 많아요. 감은빛님의 글을 잃으면 저도 좀 되새김질을 하면서 써야하지 않을까란 사색을 해요. 후훗 원래 못 쓴다고 하는 분들이 더 잘 쓰던데..예전에 나 공부 안했어라고 시험날 말하던 친구가 시험 잘 보듯이 말이죠. ㅋㅋㅋ 시가 아니더라도 많이 많이 써주세요. 전 재밌게 읽고 있으니까요.

감은빛 2011-04-04 14:33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많이 생각하고, 되새김질 해본 글이 좋은 글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저도 늘 급하게 나오는대로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유가 없고,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밑천이 별로 없어서, 더 생각해보고 싶어도 나올게 없기도 하구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루쉰님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루쉰P 2011-04-04 23:13   좋아요 0 | URL
흠...그렇게 급하게 쓰시는데도 이런 좋은 글이 ㅋㅋㅋ 좀 만 생각하시면 시 쓸 수 있으실 듯 화이팅!!

따라쟁이 2011-04-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저를 미소짓게 하는 감은빛님.. 이라는 시를 써볼까요?
고운글입니다. ^^

감은빛 2011-04-05 13:13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야말로 늘 저에게 웃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9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소를 웃긴 꽃을 만나는군요. 윤희상 시인 님 참... 좋죠. 마침 저도 이 시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리뷰를찾다가 여기 잠시 앉아서 읽습니다.. 후후..

감은빛 2013-05-10 17: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한참 옛날 글에 댓글을 주셨네요.
덕분에 저도 잠시 옛글을 읽어봤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