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를 쳐다보다가, 운전대에 이마를 기댄다. 라디오에선 교통정보와 함께 날씨정보가 나온다. 날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목소리의 여성 아나운서는 '비에 섞인 방사성 물질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만, 만약 걱정되신다면 안맞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표현이 약간 달랐을수도 있지만, 그런 뜻이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저건 저 예쁜 목소리의 아나운서 개인 의견이 아닐 것이다. 어딘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분으로부터 내려온 지침에 의해 작성된 문장일 것이다. 그걸 그저 읽었을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을 읽어버런 아나운서가 원망스럽다. 저게 대체 방송에서 읽을 문장인가? 이제는 방송이 그냥 장난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일본의 방사능 유출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체르노빌 수준의 위험상황이라고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사실을 은폐하고, 나중에 더 큰 사고가 터지면 뒤늦게 인정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건 무슨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고,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 그냥 걱정 말란다. 외국에선 특히 한국의 상황을 우려하고 걱정하고 있다는데, 이 나라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손놓고 있는 듯 하다. 

어제 내린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에 대해 며칠전부터 많은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학교에 '휴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은 자율적인 '휴교'를 허용했고, 일부 학교에서 단축수업이나 휴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로야구 경기는 모두 연기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는 차를 끌고 나와서, 도로는 평소에 비해 훨씬 더 복잡했다. 행여 비를 한방울이라도 맞을까봐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평소라면 그냥 맞고 다녔을 수준의 비에도, 모두 우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준 듯했다. 이렇듯 정부의 계속되는 '걱정말라'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상황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거짓 선전하는 시간과 돈으로, 정확한 오염수치와 규모 등의 실제 현황을 파악하는데 힘쓰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내놓는데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량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라거나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등의 표현이 아닌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으로 국민들에게 상황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어제 밤 방사성 비가 그치는 것과 동시에 황사가 날아들었다. 방사성 물질과 황사라는 무서운 위험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무섭다. 아니 내가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죽는게 무서운 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갈 큰 녀석과 아직 태어난지 일년이 채 안된 둘째 녀석이 이렇게 위험하고, 무책임한 세상을 살아갈 일이 무섭다. 어제 밤 아기를 재우다가 문득 녀석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젠장! 맨날 말로만 출산장려정책을 펼치겠다고 떠들면 뭐하나, 실제 부모들은 열악하기 짝이없는 육아정책과 무한경쟁을 장려하는 교육정책과 온갖 위험물질에 노출된 먹거리 문제와 다양한 환경문제, 부동산 문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를 비롯한 각종 생활문제, 그리고 지금처럼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아이를 갖기를 꺼린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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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1-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해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게 너무 미안해요.

감은빛 2011-04-11 13:01   좋아요 0 | URL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인 것 같아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1-04-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핵 운동이라는 게 사실 이 정도로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결과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결국 어떤 힘이 정말 이건 아닌 거다! 라고 징벌을 가하는 것 같아요. 왼쪽 두 권의 책은 읽어 보지 못했는데 찾아 봐야겠습니다. 저도 아이를 볼 때마다 괜히 눈물이 나요. 마스크 씌우고 놀이터에서도 예전처럼 신나게 못 놀리고 비 맞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이게 대체 뭐하는 쇼인가 싶어요.

감은빛 2011-04-11 13:09   좋아요 0 | URL
독일 시민들이 열심히 반핵운동을 펼치고,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힘을 쏟는 것도 옛날 체르노빌 사건때,
독일까지(동독지역) 방사능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옆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정부부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으니, 참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꿈꾸는섬 2011-04-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내린 방사능비는 정말 무섭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은 부모들의 마음인가봐요.
오늘은 황사까지......ㅠㅠ

감은빛 2011-04-11 13:11   좋아요 0 | URL
방사능 비에, 황사까지!
정말 무서워서 애들 나가놀게 하지도 못하겠어요!

cyrus 2011-04-0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일본이나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들에게 불신을 안겨주는 태도를 버리고
보다 더 실황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총리가 막연하게 방사능 비 맞아도 된다는 식의 발언도 삼가해주었면
좋겠구요,.. ^^;;

감은빛 2011-04-11 13:13   좋아요 0 | URL
저는 라디오에서 방사능 비 맞아도 별 문제없다는 식의 망언(!)을 듣고,
무지 열받았었어요. 그렇게 말한 사람 자신은 과연 비 맞았을까요?
자기 가족들, 자기 아이들에게 비 맞아도 된다고 말했을까요?
어떻게 그런 소릴 방송에서 지껄일 수 있는지 따져묻고 싶었어요.

차트랑 2011-04-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정부는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급적 회피하고 싶어하는 듯 보입니다. 마치 '일본의 방사능 문제가 국내의 원자력 문제로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 핵 폐기물 처리 문제로 국민들과 상당한 마찰을 빚었던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는 정부입니다. 몇년 전 경주시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기로 정부와 협의한 후 핵폐기물 처리장을 수용을 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핵 방사능으로부터 한국은 안전하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습니다. 그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발표를 한 것인지... 최근 일본 및 해외의 전문가들이 한반도가 방사능에서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고 발표하자 한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은 안전한 수치라고 정보를 전달합니다. 방사능의 수치상 비를 맞아도 될정도로 미약하다는 것이지요.
왜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에 국민은 신뢰를 줄수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 정부를 믿고 싶은데 실제로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의 발표를 국민이 믿지 못하는 현실은 비극입니다. 제발 국민들로하여금 정부를 믿도록 해주면 안되는 걸까요?

감은빛 2011-04-11 13:15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가 지금처럼
어이없는 태도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반도의 방사능 수치는 점점 더 심각해질텐데,
언제까지 정부가 지금처럼 손놓고 있을지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09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비입고 우산쓰고 마스크하고 입었던 옷은 폐기처분 하라는 메뉴얼을 어디서 봤습니다.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요?

그런데 말이죠, 경기도의 휴교령 그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더라구요.
그 휴교령으로 인하여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또 어떻게 방치되는걸까 싶어서 말이죠.

어제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한국원자력 기술원장이 나왔었거든요.
손석희 참 재치발랄햇었는데 말이죠~^^

감은빛 2011-04-11 13:17   좋아요 0 | URL
휴교령에 대한 그 의견은 저도 공감합니다.
애들만 쉬게하여 보호하면 뭐합니까?
정작 맞벌이하는 부모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으니,
애들이 그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닐지 알 수 없지요.

말씀들으니, 그 방송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다시듣기' 같은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4-1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그러하듯이 '걱정하지 말라'가 모든 해결의 열쇠처럼 말을 하는 국가와 거기서 일하는 놈팽이들을 보며 헐하며 혀를 찹니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인 우리가 확실한데 나라라는 추상적 개념에 개인이라는 현실적 개념이 자꾸 먹혀버리는 현실이 참 안타깝고 열 받기도 합니다. 방사능에 대한 것도 아무런 지식이 없다가 이번 사태와 더불어 하나씩 알게 되는데 무섭기는 참으로 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일이 발생되면 그때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는데 정치가라든가 이 놈의 국가에서 일하는 놈들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니 참 한심해요. 아! 열 받아 뭐 방법이 없을지...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까지 나실려고 하는 감은빛님의 마음은 참 멋있습니다. 저도 완전 공감해요.

감은빛 2011-04-11 13:19   좋아요 0 | URL
공감의 말씀! 고맙습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루쉰님의 의견에 백번 공감합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특히 요즘은 이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