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쓸 때마다 그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그저 가볍게 두드리는 별 것 아닌 글 하나라고 해도 그렇다. 중국 영화 [먼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영화 [만약에 우리]에 대한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라고 고민을 해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해야 할 말이 그리 많지도 않은 묘한 영화였다. 어찌보면 원작에 충실한 영화이고, 한국 상황에 맞게 잘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중국 원작과 달리 전형적인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걸 지난 번 글에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이라고 표현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표현은 좀 많이 과했다. 내용은 익숙한데 전혀 같은 영화 같지 않고, 한국식으로 잘 바꿨다는 점은 리메이크를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작의 그 처연하고 아련한 느낌을 이 영화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다. 그 지점에서 나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영화라고 본다.


류뤄잉 감독의 영화 [먼훗날 우리]에 대한 글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읽으러 가기: 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


[먼훗날 우리]를 보고 쓴 글의 제목을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이라고 썼었더라. 그런데 이 글도 똑같은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만약에' 라는 상상은 잔인하고 부질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같은 제목을 다시 쓸 수는 없어서 조금 바꿨다. 


원작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린젠칭도 그리고 이 영화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이은호도 모두 현재 시점에서 팡샤오샤오와 한정원을 향해 만약에 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정원도 아니라고 답한다. 원작에서는 이 부분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면서 계속 내 젊은 시절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떠올렸었다. 이 장면 덕분에 너무 감정적으로 흔들려 이런 저런 글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 놓았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장면에서 그렇게 슬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이 만약에 라는 질문이 가진 특유의 성질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이어지는 두 남녀 주인공의 연기는 그 이상 더 감정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처음에 한번 보았을 때는 그걸 두 배우의 연기 탓으로 돌렸다. 확실히 한정원 역의 문가영의 연기는 뭔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구교환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괜찮았지만, 문가영 과의 합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원작의 저우동위와 징보란의 연기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잘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암튼 처음에는 연기 때문에 그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감정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이 장면을 다시 찬찬히 돌려보고, 그리고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찾아본 후로 생각을 바꿨다. 이 우리나라 영화가 원작의 내용들을 충실히 잘 따라가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 미묘하게 감정선이 다른데, 이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훨씬 더 진지하고 절박한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화면의 구성이나 풍경도 원작 쪽이 훨씬 더 스산하고 쓸쓸했다. 


그리고 이건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과 현재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의 린젠칭과 한국영화의 이은호는 둘 모두 직접 만든 게임이 잘 풀려서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태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좀 다르다.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잘 몰라서 린젠칭이 얼마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은호는 정말 전형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 주인공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샤오샤오는 예측하기 어려운 통통 튀는 매력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속이 깊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에 비해 한정원은 현실적인 인물인 점만 보이고 다른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정원은 건축가가 되어서 은호에게 명함을 내민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샤오샤오는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하게 직업을 밝히지도 않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지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고 젠칭이 데려다 준 집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정원은 그렇지 않다.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자신이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직접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의 차이가 그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감정선을 다르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의 해당 장면을 몇 번씩 돌려보다가 처음 원작을 봤을 때는 캐치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샤오샤오가 마치 젠칭의 내연녀 처럼 보일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샤오샤오가 젠칭의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두 사람이 렌터카를 빌려서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다. 젠칭은 자신의 성공이 샤오샤오 덕분이었음을 밝히며 샤오샤오에게 '최우수 전 여친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샤오샤오는 그 말에 크게 웃으며 언제나 자신의 전 남친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말한다. 영화의 내용으로 보면 젠칭의 성공은 확실히 샤오샤오 덕분이다. 그리고 샤오샤오는 그 전 연애에서도 불행했고, 젠칭과도 결국 행복하지 못했고, 이후로 10년 동안의 연애 역시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어쨌든 '최우수 전 여친상' 이라니! 이런 개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재미있기도 하면서 단번에 샤오샤오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원작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절박하게 여러 상황들을 보여준다면, 한국 영화에서는 매번 그 절박함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샤오샤오와 젠칭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젠칭은 베이징에서 집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걸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나온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남성을 만나 그 꿈을 이루려고 한다. 절박하다. 왜냐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베이징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원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정원은 보육원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고시원에 잘 살고 있다. 고시원과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암튼 샤오샤오 만큼의 절박함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정원이 은호의 방에 들어가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샤오샤오는 아예 자신의 방을 빼고 남자친구와 동거하다가 남자친구와 갑자기 헤어지면서 갈 곳이 없어서 젠칭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원은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고시원에 방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 방에 겨우 한 뼘도 안되는 햇빛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은호를 찾아와 동거를 시작한다. 저번 글에서도 이런 설정이 현실적이지 않고 남성 판타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썼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녀가 유별한 상황에서 그렇게 손쉽게 여성이 남자 혼자 사는 작은 방에 들어갈 수 있나?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도? 이번 영화에서 정원은 좀 더 어이가 없었다. 샤오샤오는 정말 잘 곳이 없었지만, 정원은 여전히 고시원이 있었다. 그런데 햇볕을 이유로 사귀지도 않는 남자 방에 들어간다고? 이게 현실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젠칭의 방은 정말 좁다. 도데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잘 알기 어렵게 복잡하게 작은 방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집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 정말 당시에 아니 심지어 지금도 베이징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은호의 방은 넓고 쾌적하다. 책상과 침대 외에도 공간이 넓다. 고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서울에 그렇게 괜찮은 방을 제공해 줄 수 있나? 아무리 2008년 이었다고 해도 저 정도 방이면 월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 물론 언덕길에 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가는 장면으로 보아 교통이 편리한 좋은 동네는 아니고, 방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닌 것은 맞다. 다만 젠칭에 비하면 은호가 덜 절박하게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한국 영화는 여러 모로 계속 평이하고 무난한 느낌을 받는다.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대는 춘절이다. 류뤄잉 감독이 자신의 소설 [춘절 귀가]라는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시작하는 장면도 춘절에 고향인 야오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춘절 연휴가 끝나는 무렵 고향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둘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은 양력 1월 1일 새해이기는 하지만, 계절로는 겨울이다. 그러니까 흔히 연말연시라고 부르는 시기에서 음력 설인 춘절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간대로 계속 반복된다. 한국 영화에서는 여름이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시기가 여름 휴가 시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현재 시점인 2024년 여름에 베트남 호치민에서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바꾼 것이다. 이 선택은 꽤나 괜찮은 것 같다. 흑백으로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꽤나 세련된 정장을 입은 정원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관객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원작처럼 과거는 컬러 화면으로, 현재는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의 현재 시점 장면은 원작에 비해서는 분량이 제법 줄어들었다. 


과거 상황의 첫 장면은 버스 정류장이다. 원작에서 열차 풍경이 독특하고 좋았는데, 버스 장면은 좀 너무 뻔한 느낌이었다. 저 위에 링크를 걸어 놓은, 원작을 보고 쓴 글에서 과거 서울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상황을 길게 썼었다. 설연휴에 였고 폭설이 내려 버스를 17시간이나 탔었다. 하필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옆 자리(창가 자리)에 앉아 있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었던 기억이었다. 이 영화에서 은호와 정원이 서울에서 고흥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하필 서로 옆 자리였다. 은호는 자신의 자리였던 창가 자리를 엉겁결에 정원에게 양보하는데, 이 부분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한 눈에 호감을 갖게 된 여성이라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손쉽게 양보를 할까? 은호가 정원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정원은 빨간 우산을 펼쳐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빨간 우산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문가영의 표정이 마츠 다카코와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이 영화는 과거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현재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나머지 주요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도 남자친구의 외도를 깨닫고 12월 말일에서 1월 1일 새해로 넘어가는 밤 술을 진탕 마시고 놀다가 눈이 맞은 것으로 똑같다.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이 호텔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남성이 딸의 전화를 받고 영상통화를 방안 곳곳을 보여주는 장면도 똑같다. 과거 시점의 마지막, 여성이 남성을 떠나는 장면, 남성이 여성을 따라갔다가 전철을 따라 타지 않고 결국 헤어지는 장면도 똑같다.


원작에서 훨씬 큰 비중을 가졌던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이 이 영화에서 많이 축소된 점은 좀 아쉽다. 원작이 춘절이라는 시간 배경에서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 즉 연로한 아버지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여자 주인공도 아주 잘 따르는 것으로, 그러니까 젠칭과의 사랑과는 별개로 젠칭의 아버지와의 인간관계라 형성되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의 정원은 은호의 아버지와 그 정도로 교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의 감동을 가져오려면 그 감동으로 연결해 줄 두 사람의 이야기도 따라서 만들었어야 했다.


음, 이래저래 주저리 주저리 영황에 대해 많이 떠들었다. 리메이크로서 나쁘지 않았다. 꽤나 괜찮은 지점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를 원작이 훨씬 더 잘 살린 것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즉, 계속 원작과 비교하다 보니 더 아쉬웠던 것이다. 비교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았으리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여러가지 아쉬움 중에서도 한정원 역의 배우 문가영에게 아쉬움도 있다. 저우동위와 비교해 연기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아쉬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몇몇 장면들은 더 많이 돌려봤다. 그리고 원작을 다시 한 번 봤다. 쭉 이어서 보지는 않았고, 중간에 조금씩 건너 뛰면서 보기는 했지만, 저 위에서 강조했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여러차례 돌려서 보고 또 보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 영화 덕분에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본 것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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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10-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끝의 문장이 인상적입니다.ㅋㅋ 배우 구교환은 디피~ 라는 영화에서 좋게 봤어요.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최우수 전 여친상‘, 은 제가 봐도 재밌네요. 자기가 뭔데 평가하고 심사해?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네요.ㅋㅋ
원작과 비교해 보는 것 흥미로워 보입니다. 저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래서 감은빛 님처럼 꼭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사랑, 인연, 그리고 첫사랑


지난 주에 했던 SF모임은 역대 최고의 흥행을 이뤘다. 일단 3개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참석자 수가 많지 않았던 경험을 극복하고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이 모두 다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하고(그래봐야 몇 명 되지도 않지만 ㅠㅠ) 그 다음으로 참석자 대부분이 이 책이 참 좋았다는 것을 고백하듯 이야기를 나눈 점이 정말 좋았다. 한동안 소원했던 이 모임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자 내가 제안한 방법, 미리 공유 문서에 나누고 싶은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적어 달라고 한 것이 꽤 괜찮은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기록으로 남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오늘 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나는 책 모임에서 주제나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연결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혹은 연상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던, 만화나 웹툰이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던 상관없이 그로 인해 확장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고 여기고 또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꽤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소설 [우리를 아십니까]를 두고 연결되는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이 딱 없었다. 조금 더 고민하거나 조금 더 확장하면 연결되는 작품들이 없을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나도 여유가 없어서 조금 고민하다 그만 비워두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모임을 앞둔 시점에 뭐라도 하나는 적어야 할텐데, 계속 생각나는 작품들이 조금씩 애매하다는 생각에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 게다가 작중 두 사람은 첫사랑이었을텐데, 첫사랑을 그려낸 작품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순간 번뜩하고 뭔가를 떠올렸다. 바로 내 첫사랑. 그 달콤하고도 쓰린 기억을 담았던 단편 소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1996년으로 가야 한다. 학생회 활동과 학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던 시절. 대학교 2학년은 사실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음에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욕심이 많았던 나는 빨갱이 운동권으로서 학생운동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회와 동아리 활동도 하느라 정말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물론 곧 군대를 갈 에정이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으로 거의 자포자기와 가까운 마음이기는 했다. 그런 와중에 동아리 후배 하나가 본인이 동아리를 잘 지키고 있을테니, 군대에 잘 다녀오라는 얘길 하면서 자신이 동아리 소식지를 만들테니, 나에게 단편 소설 하나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입대를 위해 부산을 떠나는 바로 전날까지 단편소설을 하나 썼다.


그 시절엔 피씨도 타자기도 없어서 나는 공책에 손으로 직접 글을 써서 소설을 적었었다. 나는 꽤 유명한 악필이라 이 글씨를 과연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다만, 그 후배도 나 못지않은 악필이라 생각해서 그 녀석은 알아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앞두고 소설을 써나갔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세히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 첫사랑은 묘하게도 신경숙 소설가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제목과 형식을 신경숙의 소설들에서 차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창작이라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고 어렵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나는 생전 처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더 많이 흔들렸고, 당시 짝사랑했던 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많이 괴로웠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 지켜야 하는 법. 나는 입대하기 바로 전 날 이 소설을 완성했고 두꺼운 공책 한 권을 후배에게 넘기고 열차에 올랐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들은 소식은 그 후배가 결국은 제대로 동아리를 운영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버렸고, 준비했던 소식지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는 거였다. 뭐,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렇게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휴가를 나와서 한참 후배들과 만났을 때 묘한 상황을 겪었다. 그때 나는 아마 상병 말호봉 정도, 곧 병장이 될 것이고, 병장이 되고 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군생활 자체를 경멸하면서도 이왕이면 잘 해야 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본능 때문에 포상휴가도 제법 받았었는데, 그 날도 포상 휴가를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동아리 선후배들 자리에 낄 수 있었고 별 말 없이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물어본 한 후배가 깜짝 놀라며 자기 옆 친구에세 호들갑을 떨며 내 이름을 강조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동아리를 책임지고 소식지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던 후배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적해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주고 갔던 그 공책을 두 세명의 여성 후배들에게 던져 주고 타자를 쳐서 문서 파일로 만들라고 지시 했었다고, 그리고 그 지시를 받아서 순진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를 억지로 타이핑 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가 만났던 후배들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았다. 내 소설은 첫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것인데 당연히 100퍼센트 경험은 아니고 허구의 이야기이다. 아직 어렸던 여성 후배들은 내 소설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 처럼 받아들였고, 나를 마치 비련의 주인공처럼 대하며 자신들이 내 소설을 열심히 타이핑 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입대하기 바로 전 날까지 공책에 써서 넘겼던 소설이었기에 나에게 복사본은 없었다. 다만 정말 긴 시간 고심해서 썼기에 전반적인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우연히 만난 후배들이 자신들이 타이핑한 문서, 결국 소식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첫 사랑의 기억을 소설로 남긴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소설의 작품성이나 내용은 절대로 다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지만.


암튼, 나는 그 두번째 단편에서 연결되는 작품을 내가 썼던 단편 소설을 언급했다. 그때는 시간에 쫓겨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썼고,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 읽은 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편 소설이기는 하니까 그게 뭔 문제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에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자 모임 구성원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설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던가. 아무도 모르는 소설을 제목과 내용만 던지고 그렇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내가 쓰긴 했지만, 발행된 적이 없는 어쩌면 그럴 가치조차 없는 글이었기에 언급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암튼 나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글을 썼는지, 입대를 앞둔 어린 청년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는지를 전달하며 달랬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저번에 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상황에 처한 꿈을 꾸었지만 반대 성별인 여성이 되어 보는 꿈을 꾼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을 썼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며칠 후에 거짓말처럼 여성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좀 신기했다. 꿈에서 나는 꽤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현실의 나는 외모로는 정말 볼품없는 늙은 남성일 뿐인데, 꿈 속의 나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꿈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서 꿈 속에서의 내 삶도 그리 평탄치 않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 꿈은 확실히 신기했다. 꿈을 한창 꾸는 과정에 중간에 깨달았는데,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내가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이게 꿈이라고 깨달은 시점이었고, 이후로는 그 전과 달리 좀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하는 순간 그게 꿈이란 걸 깨달은 것이고, 그게 꿈에서 깨어나는 흐름으로 넘어갈 확률을 높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대학 시절 꽤 긴 시간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너무나도 소심해서 아주 오래 좋아하고도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꿈 속의 나는 너무 대담하게 그 시절 그 여성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꿈이구나. 현실은 절대 그랬을 리 없으니. 그리고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나를 거절했고,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비록 꿈 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멍청하고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나 같은 인간을 누가 어찌 좋아할 거라고 그렇게 바보처럼 고백을 한 단 말인가. 제발! 


딱 그 시점에서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며 꿈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정말 긴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한 편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30년 전 일이다. 이미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


원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건데,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올해 2월 4일 나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라는 작품에 대한 글을 썼었다. 내 소중한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소개해 주신 [後來] 라는 노래 덕분에 알게 된 류뤄잉 감독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실제로 본 것은 25년 연말이었다. 아주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두 번을 더 보고 류뤄잉의 노래를 수백번 들으며 곱씹고 또 곱씹어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리메이크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아니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원작 영화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을 보고 다시 꼭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를 봤는데 실망이 컸다. 어쩌면 기대가 큰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작인 중국영화를 꽤나 좋아했으니까. 한국 영화는 정말 너무나도 그냥 한국 영화였다.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너무나도 젼형적인 한국 영화였다. 원작의 감흥이나 감동은 많이 사라졌다. 다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의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식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중국 이야기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 세대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들이 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시절의 그런 감성들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SF 모임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와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글을 쓸 생각이다. 다만 오늘은 그냥 그냥 그냥 멍하니 자판을 두드려 본다. 생각의 끝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첫 사랑의 그 분을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쁜 현실에서 내가 늘 놓치는 어떤 것들을 꿈에서라도 챙겨 가기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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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10-01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멍하니 자판을 두들겨도 이런 글이 나온다는거죠? 공을 많이 들인 그 글들은 기대를 갖고 기다리겠습니다. ^^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는 저도 전에 볼까하고 찜해뒀다가 저런 식으로 특정한 주제로 작가들이 각자 글을 쓰는 방식의 작품집이 저에게는 안 맞더라구요. 맞는 작가와 안 맞는 작가가 너무 뒤섞여 있어요. ㅎㅎ 하지만 감은빛님 글을 보니 이 책에 다시 호기심이 생기네요. ^^

감은빛 2026-10-03 18:07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두드렸던 새벽에 너무 피곤하고 졸렸는데,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어서 억지로 자판을 두드리며 버텼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바람돌이님.

그죠. 저렇게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들은 호불호가 명확하죠. 상대적으로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죠. 근데 저 책은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10-01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의 짝사랑이나 첫사랑이 완성형의 결말을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소식지에 실리지 못한 글의 내용이 더 궁금해지네요. ㅎㅎ

감은빛 2026-10-03 18:09   좋아요 0 | URL
네, 잉크냄새님. 당연히 제 첫사랑도 처참하게 실패했었죠. 달콤했던 기억과 쓰리고 아픈 기억을 담아 썼던 소설이었습니다. 궁금하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저 소설 문서 파일이 더이상 열리지 않더라구요. 아주 오래된 파일이라 그런 것인지, 뭔가 오류가 생긴 것인지. 저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열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chika 2026-10-02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몇개이상 혹은 감은빛님 소설에 대한 호기심 인원이 많으면 글 업로드 해주기... 뭐, 이런거 없을까요? ^^;;

감은빛 2026-10-03 18:11   좋아요 1 | URL
치카님. 요 바로 위에 잉크냄새님 댓글에 답글로 썼는데, 해당 소설은 파일이 열리지 않아서 저도 다시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 물론 소설의 완성도가 너무 처참해서 잘 열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ㅎㅎㅎㅎ
 

춤을 추고 싶지는 않지만......


한때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많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단체나 단위에서 책 모임이 있다면, 혹은 새로 생긴다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생명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인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독서모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시절에는 전성기는 지난 후여서 얘기를 들었던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예상했던 정도의 적극적인 활동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 모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었다. 만약 일정이 안 맞으면 늦더라도 꼭 뒤풀이는 가고 싶었었다. 그만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정말 좋았었다. 


독서모임을 거의 나가지 않게 된 건 녹색당을 탈당하면서였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만독(만만한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녹색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반민주적인 만행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후로 우리 지역에서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원들 20여명은 다같이 탈당했다. 그리고 만독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탈당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활동은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만독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모임을 주도하셨던 분들은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서모임이 많았던 시절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모임에 참여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막상 참여할 독서모임이 없어지고 나니 많이 허전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 분들께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는 했지만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첫 모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면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러다 예전에 만독을 주도하셨던 선배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분이 최근(그러니까 그 당시에) SF를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였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이시지만, 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들을 읽으셨고, 문학 쪽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 분이 SF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같이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그 선배님이 움직이니 드디어 첫 모임이 만들어졌다. 막상 모이고 나니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소모임을 어느 단위에 속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들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활동하는 단위가 달랐다. 이런 문제는 의외로 사람 마음을 건드려 불화의 씨를 퍼뜨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연합 소모임으로 만들자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다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 단위(협동조합 두 곳과 지역정당 한 곳)가 연합해서 만든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처음 몇 번의 모임은 정말 좋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고 함께 고생했었지만, 탈당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애정과 관심이 식을 수 밖에 없는 법. 늘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이 모임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첫 모임을 만든 구심점이 되어 주셨던 선배가 갑자기 "이젠 SF에 관심이 없어졌어." 라는 이유로 모임에 안 나오셨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바빴던 구성원들은 각자의 바쁨을 이유로 모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모임 날짜를 잡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 역시 계속 바빴기 때문에 한동안 이 모임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SF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다시 SF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다들 "그래. 모여야지. 모이면 너무 좋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일정 정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일단 투표창을 띄워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자. 일단 다시 모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SF 모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세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참가자들만 남았지만,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굴러갈 수 있다. 어렵게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다시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나는 SF 라는 장르를 한참 늦게 만났다. 아마 제일 먼저 접한 작가는 필립 케이 딕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SF 라는 장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라는 책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운동가로서 내가 가진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확인했고,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내 태도와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SF 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SF 읽기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이 책을 냈던 메이데이 출판사에 영업 담당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메이데이 출판사의 영업 업무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SF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번에 읽고 짧은 글을 쓰기도 했던 이 책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는 차별에 맞선 전세계적 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혁명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해방구가 된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즐겼다. 그래서 다시 저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이 집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나?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내 취향대로 책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찾아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주말에 짬이 나면 다시 찾아봐야지.


암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혁명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 혁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몸치라서 춤을 추지는 않겠지만, 노래라면 함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겠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억압을 깨부수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8월 말에는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훅 가을이 와버렸다. 이젠 반팔과 반바지가 안 어울리려나. 다시 긴팔, 긴바지 입는 것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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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10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2026년에 SF소설을 접하신 것이 다행이세요.한 15년전만 하더라도 SF소설 간행하는 출판사도 적었거니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기 십상이라 실제 서점에서 책 구하기기 매우 힘들었거든요.개인적으로 많은 SF소설을 수집했지만 일반 책방에서 거의 절판 상태라 구입하지 못하고 거의 전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기억이 나네요ㅜ.ㅜ

감은빛 2026-10-03 18:1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제 글을 잘못 이해하셨네요. 올해 SF 소설을 접한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제가 처음 필립 케이 딕 책들을 읽었던 것은 20년도 더 지난 옛날입니다. 그리고 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읽고 SF 소설에 흥미를 가진 것은 대략 16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또 저는 SF를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09-10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모임이든 구심점이 될 누군가와 그의 희생 없이는 오래 지속되기 힘든 모양입니다.
독서 모임이라는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입장에 그 경험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하네요.

감은빛 2026-10-03 18:16   좋아요 0 | URL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취미 모임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이 독서모임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지만, 해당 책에서 상상과 현실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꺼리들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또 너무 좋더라구요. 게다가 지금 이 SF 모임은 대부분 저와 아주 친하고 긴 시간 활동을 함께 해 온 좋은 동료들과 함께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께서도 그런 즐거운 경험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9-1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을 해 본 경험자로서 느낀 건데 구성원의 열정이 밑바탕 되어야 하더라고요.
열정과 신뢰, 가 중요해요. 같은 대목을 읽어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음은 독서 모임에서 얻는 큰 수확이었어요.^^

감은빛 2026-10-03 18: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페크님.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 차이가 흥미와 재미로 이어지는 것이죠. 한동안 모임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모인 거라서 더 모임 분위기가 좋아져서 정말 다행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피로


이번 주는 시작부터 너무 힘들었다. 낮에 배송할 때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가끔 미친듯이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옷이 다 젖어 버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짐을 옮길 때에는 우산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은 우비를 입고 일하기도 했는데, 우비를 입고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석이 다 젖어 버려서 내리고 탈 때마다 매번 우비를 입고 벗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번거로워서 나중에는 그냥 비를 맞고 일하고 있다. 암튼 이틀 동안 비를 맞아가며 일을 했고, 하필 그 기간에 매장 한 곳의 할인 행사가 있어서 배송 건수도 많았고, 물량도 많았다. 이런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이상 빌라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무거운 물건들 주문이 제법 들어온다. 배송 주문을 하시는 조합원들 중 고령인 분들이 많고, 본인이 무거운 상자들을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배송 주문을 하는 심리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번에 옮겨야 할 상자들이 너무 많고, 너무 무거우면 나도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상자 하나만 다음에 주문했어도 좋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7월 중순부터 약 1달 반 이상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폭염과 열대야의 영향이 크다. 내가 일하는 오후 시간에는 폭염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릴 수 밖에 없고,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피로를 회복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친구들 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매일 그럴 수는 또 없었기도 했고,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고 해도 남의 집을 떠돌아다니는 일이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기도 해서 결과적으로는 피로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밤에 조금 기온이 떨어져서 집에서 잘 수는 있지만, 이 낡은 빌라는 여전히 밤에도 덥다. 최근 몇 년을 생각해보면 9월 말까지는 그럴 것 같다.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의 수혜자는 누구?


오랜만에 최신 에너지 뉴스와 자료들을 좀 찾으려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지금 페이스북은 온통 용혜인 이야기 밖에 없었다. 이 정치인이 2차례나 위성정당에 참여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이고, 이렇게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 스스로를 진보정치인으로고 내세우는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그 이름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이번에 장관 후보를 수락하면서도 의원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데, 그야말로 기름을 덮어쓰고 불에 뛰어든 꼴이다. 내가 이 인간을 과소평가 했구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었구나. 그 정도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혜인에 대한 다양한 비판 중에 과거 언더 조직에서 있었던 활동들을 들춰내는 부분들도 있었다. 사실 운동판에 몸 담은 사람들이라면 기본소득당 이라는 정당 자쳬가 어떤 언더 조직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가면 같은 거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두 차례나 위성정당에 파견 나가서 국회의원이라는 엄청난 과실을 따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언더 조직에서 엄청난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보수 정당의 하수인을 자처해 국회의원이라는 더러운 과실을 챙긴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에 대해서 절대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용혜인 개인과 당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 일을 벌리는 상황은 정말 놀랍다. 그야말로 전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오늘 소위 말하는 진보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공동 성명을 냈다. 그 성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장관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사항을 적어놓았더라. 이걸 읽고 의문이 들었다. 이게 지금 대통령에게 요구할 사안인가? 지금 철회할 거라면 애초에 후보로 올리지 않았겠지. 사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위성장당이라는 편법의 최대 수혜자는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인 것 같지만, 아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이며, 이재명이라는 인간이다. 이재명은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하수인으로 부려 먹으면서 지금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간이다. 용혜인을 어울리지도 않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로 올린 것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향후 기본소득당을 더 충성스러운 하수인으로 부려 먹기 위해서다. 그런데 무슨 대통령에게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단 말인가? 애초에 녹색당 역시 과거에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려고 시도했다가 민주당의 외면을 받아 결국 의석을 얻지 못한 정당이다. 결과적으로 위성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실패했지만, 그들은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고 공식적인 결정을 내렸던 집단이다.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우연히 박권일 씨의 페북을 봤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페친께서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박원순', '조국', '위성정당'"이라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뢰도 99.99% 수준의 시험지임." 이 말을 읽자마자 정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컨 한때 존경했던 박래군 선배가 용혜인을 감싸고 도는 어이없는 글을 올린 것을 보며, 이 사람도 이젠 진보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위성정당으로 인한 논란은 긴 시간 다양한 곳에서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 건으로 벌어진 논쟁이었다. 결국 표결을 통해 위성정당에 참여한 두 정당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되면서 운동 진영 안에서도 위성정당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위성정당은 분명한 잘못이며, 해당 잘못을 저지른 정당과 인물에 대해서는 명확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흘러왔고, 그 결과가 이번 용혜인 사태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슈가 없어서 잠잠하지만, 여전히 고 박원순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 조국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이 진보라고 자처하는 꼴을 볼 수 있다. 만약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진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걸린거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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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3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해 집니다.

감은빛 2026-10-03 18:19   좋아요 0 | URL
저는 위성정당 따위에 참여한 약삭빠르고 비열한 인간들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염과 열대야

언제였던가? [뉴 노멀] 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여러 상황들을 그려내는 옴니버스식 영화였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 있어서 나중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최근의 나는 조금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뭔가 의미있는 일들에 잘 집중을 못하고 있다.

북플 앱에서 작년 오늘 쓴 글을 열여봤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에어컨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는 이야기였다. 벌써 몇 해째 여름마다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아직 혼자 사는데, 무더위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한 친구와 혼자 신축 빌라로 이사한 친구 등 친한 친구이며, 에어컨이 있는 사람들 집을 옮겨다니며 열대야와 폭염이 심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는 조금은 양상이 달랐다. 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태국으로 며칠 여행을 간다고 애들 엄마 집으로 와서 고양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이 더위에 힘들어하면 안 되니까 사람이 집에 없어도 에어컨을 늘 켜두고, 조금 높은 온도와 제습 운전을 설정해 두라고 요청 받았다. 생각해보니, 친한 친구이자 가끔 이삼년째 가끔씩 한 여름에 신세를 지곤 했던 지인도 고양이 때문에 에어컨을 끄지 않고 조금 높은 온도로 계속 켜두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전기 요금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인버터 형 에어컨과 전기요금 누진 요금제 개편 등으로 가능한 상황이었다. 암튼 한 편으로 이 열대야에 집에서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고,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데, 어느 집 고양이들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고양이들이 나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 살고 있구나. 나는 그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매달 양육비를 대주고 있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매일 누군가 나를 재워줄 지인과 친구를 찾아다니고 있구나.

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나는 또 어느 집으로 혹서기 대피를 가야할까 고민이었다. 정말 다행히 친한 친구 하나가 며칠간 자신의 집을 쓰라고 출입 정보 등을 알려줬다. 가족 모두가 약 10일 가량 일본 여행을 다녀온다고, 그 동안 집이 비니까 자기 방에서 생활하라고 제안했다. 아주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 집으로 이사하는 날 이삿짐 옮기는 걸 도와주기도 했던 친구이다. 그 친구는 이사짐 옮기는 걸 도왔던 사람을 집이 비는 동안 묵게 해주는 걸 부모님도 모두 승낙했다고 알려줬다. 평소 여름마다 내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아가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가족들 때문에 나를 돕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라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았다. 암튼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며칠 머물 예정이다.

정말 에어컨 없이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두려운 날씨다. 선풍기 정도로는 이 온도와 습도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매년 이런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이 땅에서 언제까지 에어컨 없이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마? 열대지방 국지성 폭우, 스콜?

기후위기 수업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한 것도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나라는 이제 아열대 기후에 가깝게 변해서 장마의 양상도 달라졌다고. 이젠 비가 와도 중부 지역, 남부 지역 이렇게 넓은 지역에 긴 시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특정한 지역에 강력한 폭우를 내리고는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고. 최근에 본 기상청 기후 예보관의 인터뷰에서는 비구름이 좁은 지역에서 생성되어 주위 기압의 영향으로 쉽게 움직이는 탓에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점 장마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내가 이런 장마의 양상을 설명한 단어 중 하나는 열대지방의 국지성 폭우인 스콜이었다. 정말 아주 짧은 시간 엄청난 폭우를 퍼붓고는 금방 떠나버리는 비를 몇 년째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도 한참 엄청난 폭우가 퍼붓길래 잠시, 거의 5분 가량 어느 건물 아래서 비를 피했는데, 미친듯이 퍼붓던 폭우가 약 5분이 지나자 그쳤던 기억이 있다.

최근 나는 낮에 배송 일을 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낮이었고 햇살이 강한 뜨거운 날씨였다.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이슬비 수준이었다. 그날은 배송 건수도 많았고, 장거리 이동이 대부분이라 서둘러 이동 중이었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햇빛이 쨍한데 비가 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저 멀리까지 시야가 닿는 곳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았다. 저 멀리에서는 비가 내리는 양상이 달랐다. 폭우였다. 아직 내가 머무는 곳엔 이슬비 수준의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왁 쏟아붓는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냥 감으로 느낀 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평소 매일 운전하면서 느끼는 거라 막 틀린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는데, 폭우가 저기 약 700미터 거리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약 400미터 거리로 다가오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익숙한 폭우의 소리가 들리는데, 아직 내 차가 있는 곳에는 조금씩만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폭우가 빠르게 다가와 내가 정차해 있는 교차로에 들이쳤다. 순식간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비가 쏟아졌고,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설정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폭우 때문에 약간 번져 보이는 시야 너머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걸 확인했다.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차를 움직였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도구도 폭우라는 자연 현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50킬로미터 제한 속도 도로에서 약 20킬로도 안되는 속도로 거북이처럼 움직이며 그 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비가 퍼붓는 소리가 달라졌다. 앞을 보니 점점 더 빠르게 비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또 비가 잦아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이런 것이 바로 열대지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국지성 폭우인 스콜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 본 기상청 소속의 한 기후학자는 스콜이랑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폭우의 양상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원인과 성격이 달라 스콜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말하더라.

고층 아파트와 엘리베이터

몇 차례 배송을 갔던 조합원 집은 47층에 있었다. 47층이라! 젊은 시절에 한창 막노동을 하며 아파트 공사장을 다녔던 때에 제일 높은 현장은 20층 언저리였다. 어쩌다 10층 이상 고층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아직 뼈대 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 때문에 고소공포증을 느끼곤 했었다. 그땐 그래도 20층 언저리가 가장 높은 아파트였는데, 이젠 50층 정도로 바뀌었구나. 궁금한 것은 엘리베이터 버튼이었다. 20층 정도까지는 지하4층 정도부터 꼭대기 층까지 모든 층의 버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당 층수를 찾아서 누르는 구조다. 하지만 이 건물 엘리베이터는 달랐다. 층수를 표기한 버튼이 아예 없었다. 디지털 키패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47이라는 숫자를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사히 배송을 마치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는 화면에서 영문 B와 숫자 2를 눌렀더니 다시 빠르게 하강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금은 겁이 날 정도였다. 처음엔 엄청 신기했는데, 몇 달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지기는 했다.

며칠 전에는 14층으로 배송을 갈 일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3층에서 공동현관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는 표시가 보이며 운행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든 상자는 제법 무거웠고, 올라갈 곳은 14층, 여기는 지하3층. 요즘 아파트는 별도로 L층이 존재하는 곳도 많다. 적어도 17층, 아니면 18층을 계단으로 올라야 할 상황이었다. 불가능했다. 이후에 배송할 곳들도 많은데, 여기서 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17층 이상을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냥 맨몸으로 가도 10층 이상은 체력적으로 힘들다. 아직 20대였던 시절에는 40킬로그램 짜리 쌀 가마를 메고 16층 가량 계단을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그때는 젊어서 별 생각 없이 당연히 계단을 그냥 올랐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조합원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 분은 상황을 이해하고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두고 가시면 나중에 엘리베이터 점검이 끝나고 찾아가시겠다고 했다. 나는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놓아둔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다음 배송지로 출발했다. 만약 이 건을 계단을 올라야 했다면 아마 그날 전체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교통사고 결과

저번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던 상황을 썼었다. 그날따라 지하주차장에서 직접 올라갈 통로가 없는 배송 건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는데, 하필 다음 매장에서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 왔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던 조합원과 어렵게 통화 연결이 되었는데, 그는 지하주차장에서는 직접 연결되는 통로는 없으니 지상으로 올라와서 해당 건물을 찾아오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내가 해당 아파트 단지를 여러차례 다녀봤는데, 지상으로는 차로 접근할 길이 없었다. 오직 지하주차장으로만 차량이 드나들도록 설계된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그 조합원은 그런 건 경비실에 문의하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일단 지하주차장을 나가려고 후진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뒤에 갑자기 없던 자동차가 있었고 접촉사고가 생겼다. 황당한 건 그 운전자의 태도였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듯 행동하며, 속도가 거의 없는 상태의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였음에도 자신과 동승자가 놀랐으니 병원을 가겠다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보험회사 담당자는 예전과 달리 이런 경우 병원 가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사고가 난 책임이 내 쪽에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경미한 접촉으로 병원을 간다는 것, 그것도 운전자와 동승자가 모두 가겠다는 것은 납득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웠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며칠 전에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상대측 과실도 일부 인정이 되었고, 상대방이 병원을 갔으나 딱히 사고로 인한 부상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너무 당연한 결과였는데, 결국 이렇게 된 상황 자체는 여전히 납득도 용납도 되지 않았다. 그 여성들은 도대체 뭘 믿고 병원을 가겠다고 했을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는 걸까? 참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아침 일찍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남의 집이라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꿈에서도 이런 저런 악몽들이 반복되며 새벽에 깨버린 후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차피 잠도 못 자는 상황이면 글이나 쓰자라고 생각해, 작고 불편한 폰 화면으로 이 글을 두드렸다. 오전 일정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오후에 운전할 때 졸릴까봐 걱정이다. 오늘은 커피를 좀 많이 마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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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28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여름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6-08-15 20:03   좋아요 0 | URL
다행히 더위가 한 풀 꺾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낮은 덥고 밤에도 열기가 남아 있어요. 한 3주 정도를 집에서 자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는데, 이젠 그래도 집에서 잠을 잘 정도는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