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들


#1 저장된 번호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2 어떤 반가움

   

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 


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


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 


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


#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


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 


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


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 


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4 스트레스와 담배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


#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


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 


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6-04-2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끊었지만 저도 한때는 지독히 담배를 좋아했던 애연가로서 ˝담배가 몸에만 좋다면!!!˝ 이라는 상상을 가끔 합니다.
담배맛을 아니까요.ㅎㅎ
 

아침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 오늘 할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오전엔 일정이 없었고, 오후엔 배송을 나가야 하고, 저녁엔 내가 주로 활동하는 조합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원래 어제가 회의 날짜였는데, 갑자기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남기셨고, 결국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즈음에 나도 솔직히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회의가 연기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주는 넘길 수 없다고 실무자인 사무국장이 전화를 돌렸는데, 결국 하루 뒤인 오늘로 회의 날짜가 잡혔다.

암튼 그래서 오후엔 일을 하고, 저녁엔 회의를 해야 할 상황인데, 아침은 비어 있으니 외국어 공부나 해야지 하고 한 이삼일 소홀했던 외국어 공부 앱들을 하나씩 차례로 열었다. 그렇게 서너개의 앱을 통해 외국어 서너개를 익히고 있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간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잠이 쏟아지다니! 잠이 너무 심하게 와서, 좀 그만 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잠이란 개념이 오지말라고 요청한다고 멈추는 건 아니기에, 그냥 수긍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더 자기로 마음 먹었다. 아, 그런데 이 잠이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자면 또 더 피곤해지는 것인지,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알람이 울리는데, 너무 너무 피곤함을 느꼈다.

오후

암튼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출근을 했고 차를 몰고 배송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3월에는 내가 가야할 매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그 순서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4월부터 매장 한 곳이 바뀌며 일이 꼬였다. 내가 기존 제일 먼저 가던 매장과 최근에 새로 가게 된 매장에 배송 주문 마감 시간이 같았다. 어디를 먼저 가더라도 늦게 방문하는 매장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다.

처음엔 기존에 먼저 갔던 매장을 먼저 갔다. 배송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경험이 쌓여서 상대적으로 빨리 배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모르는 법. 가끔 생각보다 이동 거리가 길거나, 차가 막히거나 하는 변수가 생겨 이 첫 매장 배송에서 시간을 좀 지체했더니, 다음 매장에서 몇 차례 불만이 제기 되었다. 배송이 너무 늦는다는 항의가 들었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 이후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한동안 줄었던 전체 배송건수가 확 늘었다. 무조건 일초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언제나 변수는 생길 수 밖에 없고, 늘 쫓기는 기분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그 이후로는 출발하면서 두 곳 매장의 배송 건수를 확인하고 매번 상황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있다. 처음엔 매장 담당 직원님과 점장님께 의견을 구했으나, 그들도 전체를 보는 정보가 없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암튼 이젠 매일 각 매장 배송건수를 물어보고 어디를 먼저 갈지 판단하게 되었다.


저녁

그날 총 배송 건수 숫자에 달라지지만, 매일 일을 마치고 나면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그렇다. 어쩌다 조금 일찍 일을 마치면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배송 건수가 줄어들면 나도 조합도 힘들어진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배송 건수가 너무 많아서 내가 정해진 기준보다 일을 더하는 경우, 너무 늦게 일이 끝나는 경우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삶이 이런걸. 앞으로 이런 날이 덜 생기길 바라는 수밖에.

저녁에 회의에 참석하러 가서 정말 좀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집중해야 회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칠 수 있으니 더 집중했다. 이미 피곤한 상태에서 더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월호 참사 기념일 하루 전

작년 오늘 쓴 글에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제주 4.3 사태를 비롯해 4월에 포진되어 있는 슬픈 기념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참 쉽지 않은 일이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이다.

작년에 서재에 쓴 글에 큰 아이와의 동네 데이트 이야기가 있어서 이이들에게 그 글을 공유했다. 큰 아이는 내 글이 몰입감이 좋고, 글이 좋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여러 차례 글을 공유했어도, 글에 대한 어떤 의견은 없다.

암튼 이제 곧 시간이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갈 예정이다. 오늘 이사회 회의를 했어도 일부러 뒤풀이를 가지는 않았는데, 일단 너무 힘들고 피곤했고, 둘째로 낮에 너무 더워서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는데, 해가 지고 나니 기온이 확 떨어져 너무 추워졌다. 물론 알고 있다. 이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뭐든 하나를 더 입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엔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일은 꼭 바람막이 잠바 하나 꼭 챙겨야지. 12시가 넘어 날이 바뀌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자야겠다. 내일도 참 길고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26-04-16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6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창과는 과연 기교만 배우는 곳일까?


지난 주에 아이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놀고 있는데,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는 큰 아이가 나에게 기사 하나를 공유하면서 어떤 나이 많은 작가가 문창과를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사 말미에 권혁웅 시인이 그 내용에 반박하는 인터뷰가 짧게 실렸는데, 역시 권혁웅 시인이 제대로 대응했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중학교 시절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예고를 선택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예고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했고, 지금은 3년째 대학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다. 시 공부는 오래 했지만, 소설은 거의 공부한 적이 없어서 황석영 작가가 누군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공유한 것은 조선일보 기사였다. 워낮 짧은 기사라 그 글만 보고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황석영 작가는 아마 무슨 강연에서 문창과 출신 소설가들을 비판했거나, 문창과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시 조선일보 답게 앞뒤 내용은 다 잘라먹고 그저 비판했다는 것만 툭 던져놓았다. 이런 류의 비판은 그 맥락이 가장 중요할텐데, 어떤 맥락에서 정확히 어떤 지점을 비판했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만, 조선일보 기자는 조선이라는 쓰레기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 답게 그런 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암튼 아이는 그저 비판했다는 내용만 보고 화가 난 것 같았고,권혁웅 시인이 자신들, 그러니까 문창과 재학생들 편을 들어줬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눌 수 있었자면 좋았겠지만, 집에 갈 시간이 가까운 시점에 아이가 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아이의 감정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자세한 내용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검색해보니 조선일보 기사와 달리 연합뉴스 기사에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가 말한 핵심은 이런 거라고 볼 수 있다. 문창과에서 공부하고 등단하는 소설가들을 보면 서사와 철학이 빠진 느낌이란 얘기였다. 문창과에서 글쓰기 기술은 잘 배웠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내용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이런 정도의 비판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정말 실제로 그런가? 문창과에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단지 글쓰기 기술만 가르치고, 다른 것들은 가르치지 않는가? 젊은 혹은 최근 등단한 소설가들이 정말 글쓰기 기술만 좋고, 서사와 철학이 부족한가? 


황석영 작가 본인의 발언을 보면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한 작가가 워낙 많아 문학상 본선에 올라오는 작품이 모두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들이 다 똑같다"면서 "이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고 기사에 나와 있다.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본인은 10년 넘게 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냥 "다 똑같다" 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창과 그러니까 문예창작과를 다녀보고 싶었었는데, 우리 학교에는 문창과가 없어서 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공부했었다. 확실히 국문과 공부로는 소설 쓰기 공부를 할 수 없었다.한창 소설 습작을 하던 무렵에는 다른 학교 문창과 학생들과 교류를 제법 했었다. 그들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느끼며, 나도 문창과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교류했던 문창과 재학생 한 사람 글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황석영 작가의 강연 전체를 다 듣지 않은 입장에서 그냥 "비판했다."는 사실만 갖고 더 떠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놀 2026-04-14 0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씨는 만나보기를 할 적에 문창과 이야기를 꽤 했습니다.
이 가운데 2007년치 한겨레 만나보기에서는 제법 찬찬히
‘왜 한국 문예창작과가 오히려 글쓰기를 망가뜨릴 수 있는가‘ 하고
풀어낸 대목이 있다고 느낍니다.
+
+
(황석영 씨 말씀)
“나이 든 사람의 노파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글을 어떻게 쓰는지, 실질적으로 배우고 싶다 해서 문예창작과를 많이 갑니다. 문창과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문창과를 증오하는 건 아니지만, 참 좋지는 않은 게 어느정도 비슷하고 무난하게 구성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아요. 이건 마치 미술대학에서 석고 데생을 많이 시켜서 비슷한 경향의 화가들을 양산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렇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표현으로 그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독특하게 자기 냄새가 나는 글이 필요합니다. 남과 달리 쓸 때 작가의 개성과 힘이 나타나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저는 창작의 기본 같은 건 한 두세 달 정도 자습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지금 창작론이니 하는 기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런 걸 한두 번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건 결코 예술가에게 좋지 않거든요. 광범위한 독서와 체험이 젊은 작가들에게 중요한데 그 둘이 다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드는 거죠. 그래서 젊은 작가들한테는 문학 이외의 다른 책들을 많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한창 젊을 때인데, 더구나 소설 쓰는 사람은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가 많다고 봅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도 심기일전 할 땐 현장에 가서 일하지 않습니까. 작가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거죠.

또 하나,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황석영이라든가 아무개라든가, 그동안 대중독자와 접촉했던 브랜드 있는 작가들 몇을 빼고 다른 작가들이 충분히 재능을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출판시장에서 기껏 5천부나 1만부 팔리다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면 일반 독자들은 그들을 다 놓쳐버린단 말이죠. 이걸 누가 제대로 소개하고 갈무리하고 정리해주고 할 것인가. 문학전문기자나 평론가들, 또는 문예지 편집진들 이런 사람들일 텐데, 이런 사람들 책임이 크다는 거죠. 가능성 있는 재능들을 발견해내고 독자에게 안내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0211513?sid=103

Comandante 2026-04-14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나아질 수 있는 재능을 기성상품화 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황석영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빗길 운전


맨 처음 매일 하루 4시간 배송 일을 제안 받았을 때는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꽤 오랜 시간 정기적인 수입이 없이 그때 그때 비정기적인 수입을 찾아 헤메는 일이 힘들었고, 그닥 성과도 좋지 않았다. 나는 매달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한데, 그 최소한의 수입을 제대로 벌어들이는 것이 어려워 진 상황이 벌어진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정말 얼마 되지도 않던 모아두었던 돈들을 다 소진했고, 그 다음엔 내가 여러 협동조합들에 출자했던 돈들을 차례로 돌려받았다. 그래도 긴 시간 여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적지 않은 출자금을 냈던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그때 그 출자금들이 없었다면 나는 최소한의 생계비가 없어서 파산했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며 그 출자금들도 다 까먹고 나서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때 도움을 받은 곳이 공동체 은행 '빈고'였다. 정말 이젠 더는 방법이 없구나. 희망을 잃었을 때 기적처럼 빈고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배송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 내가 참 멍청하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인복은 있구나.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운전을 오래 하기도 했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배송이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초기엔 좀 적응이 필요했지만, 한 2주 정도 매일 운전을 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그 와중에 주위에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일이 조금 힘들기는 해도,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그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았고, 그 경험이 또 나에게 쌓여서 새로운 이야기 꺼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경험이 다양하고 풍부해진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보니까.


그런데 어제 내가 일을 시작했던 오후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잠깐씩은 아주 많은 비가 퍼붓기도 했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내가 빗길 운전과 야간 운전을 조금 어려워했었다는 예전 기억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다. 눈이 나빠서 뭔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에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잘 안 보여서 못 썼다고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 그 당시 선생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 일부러 필기를 안 한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걸 빌미로 어머니께 촌지를 요구했었다고 아주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었다. 암튼 늘 눈이 나빠서 잘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명절마다 만나왔던 나를 아껴주셨던 오촌 당숙 두 분이 안경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분들은 당장 눈이 나빠도 너무 어려서부터 안경을 쓰면 오히려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 데리고 오라고 안경을 맞춰준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했었다고 한다. 사실 내 눈이 비정상적으로 나쁘다느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신체검사 결과로 알았었다. 그걸 6년 동안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던 거였다.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끼고 살았다. 드디어 칠판 글씨가 정상적으로 보였고, 조금만 거리가 멀어도 보기를 포기했던 많은 것들을 이젠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상이 선명하게 맺히지 않고 흐려보였던 증상도 훨씬 또렸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안경을 쓰고 살면서 크게 불편이 없었다. 가끔 안경 다리가 부러지거나, 안경 알이 깨지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몽골에서 일본 대학생들과 놀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던 때, 나 혼자 인천 공항에 내려서 서울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안경이 없는 상태의 나는 거의 시각장애인 수준이었다. 당장 공항 청사를 나와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번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번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날 안경을 다시 맞췄었다. 그날의 그 기억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안경이 없어서 세상이 흐려 보이고, 조금만 멀어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하는 악몽을 꾼다.


젊은 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 30대 후반 무렵부터 야간 운전을 하면 빛이 번져 보여서 운전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낮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밤에 운전을 하면 눈이 너무 피로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운전을 해보니,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로 빛이 너무 심하게 번져 보였다. 짧은 시간이라면 조심하며 운전할 수 있지만, 비 오는 날 장시간 운전은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이 배송 일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비가 왔다. 비가 내리면 도로와 바퀴 사이의 마찰계수가 줄어들어 미끄러질 확률이 높아지고 제동 거리가 늘어난다. 당연히 평소보다 조심 조심 운전을 해야 하지만, 내 경우엔 빛이 번져 보이는 문제가 겹쳤다. 아,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생각해서 이 배송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여겼는데, 세상에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 구나! 하고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경을 끼고 일을 하고 있고, 비가 온다고 운전을 못할 정도로 막 안 보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비 오는 명절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운전을 했던 기억 때문에 좀 과장해서 빗길 운전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이 일을 무조건 해야 하고, 그에 더해 추가로 일을 더 해야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할 수 있다. 빗길 운전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 아주 다행인 것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에 대한 습관은 확실히 뼈에 새겨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고 확신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직관


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짧은 순간 빠르게 선택을 해야 할 순간들이 있다. 요 직전에 말한 것처럼 운전은 습관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만약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 중에 갑자기 저 앞에 노란불이 들어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정답은 그 시점의 속력과 교차로까지 남은 거리에 달려 있다. 현재 속력이 너무 빨라 교차로까지 차를 정상적으로 세우기 어렵다면 차라리 속력을 더 높여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벗어나는 것이 정답일테고, 속력이 빠르기는 하지만,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충분히 멈출 수 있다면 멈추는 것이 정답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다행히도 긴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이라는 측면에서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지난 글에도 쓴 것처럼 아이들이 아기였던 시절부터 태우고 운전을 했기에 더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배송 일에 맞지 않는 운전 습관이란 생각을 했었다. 너무 느긋하고 편안하게 운전을 하는 것이다. 암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실시간으로 앞 차, 양쪽 옆 차, 뒷 차들까지 신경 쓰면서 그들의 속도와 방향을 머리 속으로 늘 계산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원활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없을지. 만약 앞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내가 어떻게 피해야 할지 등을 매 순간 머리 속으로 그리며 본능적으로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는 행위이다.


운전 중에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고 그 중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실시간으로 예측 가능한 거의 모든 변수를 계산하며 운전을 해도 갑자기 미친 놈이 미친 짓을 하는 곳이 도로라는 곳이다. 그런 경우 아주 짧은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그때 직관이 영향을 미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순수한 본능은 아닌 것 같고, 본능에 더해 아주 짧은 순간적인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두 차례 사고 날 뻔 한 장면들이 있었다. 하나는 차량이었는데, 내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깜빡이를 켜고 왼쪽 차선으로 이동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왼쪽 뒤에서 오고 있는 차량과 충분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리고 일단 왼쪽으로 진입한 이후엔 과감하게 들어갔는데, 문제는 뒷 차량이 들어오고 있는 나에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대로면 뒷차가 그대로 나를 들이받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나는 이미 왼쪽 차선으로 들어섰는데, 앞 차는 속력을 줄여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그 앞부터 신호 대기에 걸렸으리라. 만약 앞이 비어있다면 나도 속력을 높여 뒷 차가 돌진해도 안전할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하지만 앞 차가 멈춰 있으니 그건 기각. 그럼 이대로 뒷 꽁무니를 들이 받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급 가속해서 다시 원래 있던 오른쪽 차선으로 돌아나가야 하나? 그게 가능한 거리와 각도라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속력을 줄이며 왼쪽으로 옮겨 온 상황에서 아무리 급가속을 해도 적절한 속력으로 뒷 차를 피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주 짧은 순간에 판단한 것이다. 결국 정답은 뒷차가 들이받거나, 다행히 멈추거나 아니면 뒷 차가 나를 피해 옆 차선으로 옮겨가거나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 차는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원래 내가 있었던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 가면서 속력을 줄였다. 아마도 그는 뭔가 딴 짓을 하느라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한 건은 오토바이였는데, 거의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미리 깜빡이를 켜두고 충분히 주의를 줬다고 판단하고 들어갔는데,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다가왔다. 앞서의 차량 건과 차이는 나와 그들과의 거리다. 앞의 차량은 충분히 거리가 멀었고, 이번 오토바이는 좀 애매했다. 그래서 절반 이상 들어간 시점에서도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돌진하자 내 직관은 차를 다시 빼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속력을 줄이며 부드럽게 옆 차선으로 옮겨 가다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엑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고 빠르게 원래 차선을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돌진하더니 마치 곡예를 하듯이 앞에 멈춘 차량을 피해 속력을 줄이며 나에게서 먼 방향으로 다시 차선을 옮겼다. 


아, 어쩌면 방금 이 두 건은 정말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직관을 잘 설명하는 사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아주 짧은 순간 계산의 영역을 벗어난 순간적인 판단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꿈 이야기


어제는 사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그 전전날 밤에 태양광발전소 수익 분석 자료를 만드느라 새벽까지 일을 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었고, 그래서 엊그제 오후는 일하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 졸리는 것은 껌과 사탕 그리고 에너지 음료 등으로 해결했지만, 계속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로 지내는 것은 좀 겁이 났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평상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신경써서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 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나의 뇌가 피로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까 두려웠다. 정말 다행으로 엊그제는 세 곳의 매장에서 배송 건수가 평소보다 적었고, 이동 거리도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일을 잘 마치고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계산해보니 36시간 동안 잠을 약 1시간 남짓 밖에 못 잤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었고, 어제 점심무렵까지 약 12시간 가까이 잤다. 그리고 오후 출근을 하려니 비가 왔던 것이다.


어제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그 첫 번째는 초 장거리 배송이 한 건 추가 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난 시점에서 들었었다. 가끔 아주 먼 곳에서 배송 요청이 온다고. 배송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난감하고 힘든 일이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이 배송 건을 거절할 수 없는 거라고. 지금까지는 오전에 매장 간 배송을 맡아주시는 친한 형이 그 배송을 맡아 주셨다고 했다. 그 형이 언젠가는 그게 내 몫으로 옮겨갈 거라고 미리 알고 있으라고 했다. 이 건을 제외하면 다른 거의 모든 배송은 매장에서 아무리 멀어도 10분 거리를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건은 빨리 가도 25분이 넘는 거리다. 이것도 과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력을 줄이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기준 속도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달렸을 때 이야기다. 만약 정속을 지킨다면 그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원래라면 오늘도 오전에 그 형이 이 건을 처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여 그 형은 오늘 이 배송이 없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배송 요청이 와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던 점심 때, 그 형이 전화로 이 상황을 설명하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미리 경고해줬다.


두번째 요인은 최근 한동안 배송 건수가 좀 줄었다가 오늘 하필 비도 오고 장거리 배송도 있는 날에 배송 건수 자체도 늘었다는 점이었다. 뭐 이건 당장 오늘의 나는 힘들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생협에게 좋은 일이니 뭐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비가 오지 않고, 장거리 배송이 없었다면 그냥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 요인은 유난히 많은 물량과 무거운 짐들이었다. 오늘 아마도 생협에서 탄산수 할인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거의 없던 탄산수가 엄청 많았다. 그저 한 두 박스까지는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그 이상의 물량은 일단 보는 순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물리적으로 두 박스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탄산수 네 박스에 더해 다른 생활재 한 박스까지, 총 다섯 박스를 옮겨야 하는 배송 건수가 두 개나 있었다. 그 외에도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박스가 많았다. 시간이 생명인 배송에서 한 집에 짐을 두세번씩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택배 기사님들은 엘카나 카트 등을 활용한다. 우리 차에도 아주 작은 접이식 엘카가 실려 있다. 다만 이 물건이 고장이 나서 펼치려고 시도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 힘을 써야 하고, 그때마다 매번 욕설을 내뱉어야 한다는 점이다. 욕을 하기 싫어서라도 이 엘카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오늘은 이걸 여러 차례 쓸 수 밖에 없었다. 원래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작은 크기에 이 정도 효율을 내는 멋진 물건이 없었다고 칭찬을 했을텐데, 고장이 나서 매번 내 욕설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이 녀석도 기구한 운명이다. 


아, 맞다. 꿈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어제와 엊그제 이틀 연속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그 이야기에 몰입해버렸다. 그동안 이 서재에 꿈 이야기를 참 많이 썼다.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고, 꿈마다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꿈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꿈을 꾸지만 깨어났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꿈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자각몽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이 것이 꿈이라고 스스로 깨닫는, 즉, 자각하는 것을 자각몽이라고 한다.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자각몽을 자주 꾸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하나는 내가 반복해서 비슷한 패턴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는 점이다. 이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은데, 청소년기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정말 자주 꾸었다. 어른들은 그런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내 나이대에서 간신히 평균에 들거나, 아주 살짝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키가 컸다면 나는 벌써 2미터가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이와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비슷한 패턴의 꿈을 유난히 자주, 심한 경우에는 하루 밤에도 여러 차례 꾸기도 한다.


자정이 넘어가자마자 확인해봤는데,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고, 2019년에 쓴 글이었다. 묘하게도 그날 쓴 글에도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기분 나쁜 악몽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암튼 그 글에 언급한 것 중에 다시 군대 끌려가는 꿈 이야기가 있었다. 그랬다. 내가 자주 꾸는 패턴 중에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자주 꾸는 악몽은 독립운동가로 살다가 일제에 잡혀서 고문당하거나 아니면 잡히는 순간까지의 꿈이다. 앞서 언급한 군대 끌려가는 꿈도 정말 자주 꾸었다. 꼭 군대에 다시 끌려가면 전쟁이 났고, 어떤 경우엔 전쟁이 먼저 나고 군대에 끌려 가기도 했다. 민방위도 벌써 오래 전에 끝났는데 아직도 이런 꿈을 꾸고 있다니! 어떤 존재들, 이를테면 현실의 맹수나 비현실적인 괴물들에게 쫓기는 꿈도 정말 자주 꾸는 꿈이다. 앞에서 말한 독립운동가의 꿈에서는 매번 일본 제국주의 경찰에 쫓기는 장면이 포함된다. 또 다른 패턴은 뭔가 어떤 것을 혹은 어떤 존재를 찾아 끝없이, 하염없이 헤매다니는 꿈이다. 이외에도 많을텐데 그걸 어떤 패턴으로 정형화하기에 서로 겹치는 공통점들 때문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암튼 지금 언급한 몇 가지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거 이 서재에 꿈 이야기로 쓴 적이 있었다. 이런 꿈 이야기에 달리는 댓글들 중 가장 많은 것은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꿈 이야기를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따지는 듯한 느낌의 댓글도 있었고,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도 있었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도 몇 번 쓴 적이 있었는데, 내가 쓴 꿈 이야기의 대부분은 조금은 선명한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꿈에서 깬 시점에서 내 기억은 명확하게 선명한 조각들, 조금은 확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선명한 조각들, 불확실하지만 일정 부분 선명한 조각들, 선명하지 않은 조각들 그리고 흐릿한 조각들. 마지막으로 떠오를 듯 말듯 깜빡 깜빡 하는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큰 줄기나 흐름은 대체로 꿈의 내용을 담아 내지만, 아주 세부적인 부분들에서는 나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거였을 거야 라는 불완전한 확신도 섞여 있고, 가끔은 깜빡이는 부분들 중 추측으로 덧붙인 부분들도 있다. 아주 가끔은. 그러니까 나도 꿈 이야기를 옮길 때 완전히 모든 내용을 다 선명하게 떠올리며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옮기고, 세부사항에서는 조금은 비어있는 지점들도 있다는 이야기.


음, 짧게 쓰려던 글이 또 길어졌다. 내일 또 운전을 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자야지. 어제 저녁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참여한 회의에서 정말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고, 참여자들인 동네 선배들에게 진심이 담긴 환대를 받았다. 사실 그 회의에 너무 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얼른 자고 싶었다. 그런데 운영위원 중 한 분과 그 가족이 함께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부족한 인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아야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26-04-10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전을 많이 하신다 하니 신의 가호가 늘 감은빛님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늘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두시구요.
꿈 이야기 하셔서 하는 얘기인데, 저도 악몽을 꽤 많이 꾸는 편인데요. 저는 이상하게도 학교가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학교. 악몽을 꾸면 잠을 잘 못잤구나 생각하는 편인데 최근에 무슨 연구 결과를 보니 꿈이 선명해도 잠을 잘 자는 거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꿈을 심하게 꾼 날일수록 잠을 더 잘 잔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감은빛 2026-04-13 18:5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근에 제가 맡은 매장 한 곳이 변경되면서 배송 건수가 더 많아졌어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배송 건수가 많아져서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는데요.
아무리 급해도 안전이 제일 우선이라, 늘 조심해서 운전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저도 학교에 가는 악몽을 꾼 적이 있었네요.
자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정말 자주 꾸는 편인데요.
깨고 나면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4-10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 나쁜 상황이 촌지로 이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에 저에게도 트라우마인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버렸네요. ㅎㅎ 나중에 한 번 정리해봐야겠어요.

감은빛 2026-04-13 18:54   좋아요 0 | URL
괜히 제 글 때문에 잉크냄새님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카스피 2026-04-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작스레 눈이 안 좋아져서 감은빛 님의 상황에 십분 공감합니다.눈이 안좋은 사람들은 특히 밤눈이 어두워서 운전시 사고의 위험성이 큰데 일단 낮보다는 밫의 양이 적어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적은데다가 대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나 외곽길은 가로등이 적어 운전하기 많이 힘들지요.게다가 바까지 내리는 상황이라면 사고의 위험성은 대폭 늘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은빛님이 눈도 안 좋으신데 특히 야간 운행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 많은데 제일 좋은 것은 야간 운전을 피하시면 되지만 여러 사정상 힘드시다면 트럭의 전조등 교체를 권해 드립니다.일반적으로 택배 트럭의 경우 자가용과 달리 전조등이 아직까지도 LED가 아닌 누런 할로겐등이 많은데 이게 실제 광량이 LED에 비해 1/2~1/3정도라고 합니다.택배 회사 차량이고 할로겐 전등이라면 LED로 전조등 교체를 건의해 보시길 바랍니다.고거와 달리 법이 바뀌어서 인증 LED전구교체는 합법이라고 하니 안전을 위해서 필히 바꾸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어떤 중년 남성이 화를 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막 주위를 돌며 발을 굴러댔다.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주위를 돌다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하시라고요.˝
뭘 하라는 것인지 듣지 못했다. 그는 붉어진 큰 얼굴을 들이밀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계속 하시라고요. 어디 마음대로 계속 해보시라구요.˝
그는 목소리가 컸다. 그 큰 목소리로 바로 눈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귀가 아팠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눈빛.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가 누구인지, 왜 나에게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지 알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그가 소리 지르는 것을 참고 듣고 있어야 했다. 그는 다시 발을 구르고 주위를 돌았다. 또 소리를 질러댔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참 그를 바라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내 겉옷과 가방을 챙겨줬다. 그는 자상한 태도로 겉옷을 펼쳐 내 어깨에 둘러주었고, 내 눈을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가자.˝
체격이 크다고 느낀 여성이었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자 내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며 몸을 돌려주었다.
˝가자. OO으로 가는 거지?˝
목적지를 듣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남성을 신경쓰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등장한 이후 이 화내는 남성의 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그는 여전히 있는 힘껏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중인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만 누군가 일부러 볼륨을 줄여놓은 것처럼 작게 들렸다. 대신 속삭이듯 말하는 이 여성의 목소리는 또렸이 잘 들렸다.
˝가면서 OO 먹고 갈까? 배 고프지 않아?˝
이번에도 목적어를 듣지 못했다. 여전히 화를 내는 남성을 바라보는 중인데, 이 키가 큰 여성이 내 손을 잡더니 잡아끌었다.

어떤 큰 건물 복도를 끌려가듯 걸었다.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웅성웅성 떠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손을 잡은 여성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다. 앞서서 성큼 성큼 걷는데 따라잡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손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성이 저만치 앞으로 가 있었다. 나는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를 쫓아가려 했는데 그는 더 멀어졌다. 그 여성이 멀어지자 넓은 복도에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뭔가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쳐다보고 그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이 서있던 두 사람이 곁눈질로 나를 힐끗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들 중 한 여성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아주 짧은 순간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이고는 대화를 나누던 다른 여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여성도 일부러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고 눈꼬리와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여줬다. 이윽고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뭐라고 말을 하고는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입 모양으로는 아마 ˝밥 먹었어요? 우린 먼저 먹고 왔어. 맛있게 먹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를 스쳐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도 차례로 나에게 눈과 입으로만 웃는 표정을 짓고 뭐라고 짧게 말을 걸면서 스쳐지나갔다.

여러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을 건네고 휙 스치듯 지나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키가 큰 남성도 있었고 키가 작은 여성도 있었다. 그러다 붉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일부러 눈을 맞추며 억지 웃음을 짓지도 않았다. 어쩐지 그를 붙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막 나를 스쳐지나가는 찰나였는데 옷깃을 잡히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놀란듯 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 여기 있었어?˝
밝고 목소리였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붙잡혀 놀랐던 얼굴이 짧은 순간 반가운 표정으로 변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표정이 낯익다고 느꼈다.
˝어디가?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
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묻고 싶었는데,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눈짓과 손짓을 해서라도 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는 잠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 나 얼른 가봐야 해. 담에 봐.˝
그를 놓치면 안 될것 같아서 얼른 다시 그의 붉은 코트 소매를 붙들고 함께 가자고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응? 같이 갈거야? 그럼 우리 좀 서두를까? 나 지금 늦었거든.˝
그는 키가 작았음에도 걸음을 빨랐다. 소매를 붙든 내가 따라잡기 어려웠다. 열심히 따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붙들고 있던 소매를 놓쳤다. 빨간 코트의 여성도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졌다.

어딘지 모를 크고 넓은 복도에 남겨져 멍하니 서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면서 내 등을 툭 건드렸다.
˝여기 있었네.˝
돌아보니 다소 딱딱한 표정을 지은 여성이 서 있었다. 긴 머리에 정장을 입었다. 그는 다시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계속 여기 있을거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말도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응? 왜? 왜 말이 없어?˝
아까 키가 크고 체격이 큰 여성이 갑자기 사라지던 무렵부터 이게 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왜 특정한 사람들의 말만 들리고 다른 말들은 안 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라고 말을 하며 답답함을 전하고 싶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지.˝
그는 처음엔 다소 차가워보이는 얼굴로 표정이 바뀌지 않다가 갑자기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얼굴을 크게 찡그리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나도 몰라. 그러고 있으면 일이 해결이 돼?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는 짜증이 묻어나는 표정과 말투로 주먹을 쥐고 내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왜 그가 화가 났는지 몰랐지만, 나야말로 지금 화가 나고 짜증나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의 화를 풀어야 뭐든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사과했다.
˝미안해.˝
이번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내 사과를 듣고도 한동안 물끄러미 내 얼굴을 살폈다. 다시 처음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겨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 걸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근데 왜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왔지? 머리속이 복잡했다.

긴 머리의 여성은 다소 차가운 얼굴로 한참동안 가만히 내 얼굴을 살피다가 문득 포기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겠다. 일단 나랑 같이 돌아갈까?˝
함께 돌아가자는 제안에 이르러서야 그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고는 앞서 걸었다.
˝얼른 가자. 이미 늦었어.˝

사람들로 가득찬 넓고 큰 하얀 복도에서 그가 걸어가자 길이 열리듯 사람들이 비켜섰다. 그는 앞서 걸었고 나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빠르게 놀렸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문득 배경이 바뀌며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앞서 걷던 긴 머리의 여성이 고개만 돌려 나를 보며 뭔가 말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갈증

잠에서 깼을 때 바로 현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생생한 꿈을 꾸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인터넷에서 버퍼링에 시간이 걸리듯. 나는 이제 늙고 낡은 인간이라 성능이 떨어지는 피씨에 느려터진 인터넷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깨고 나서 생각해보니 마지막 꿈 바로 앞에 다른 꿈의 내용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막연한 이미지들과 조금은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리 속에 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 앞의 꿈에서는 어려진 아이들이 나왔다. 큰 아이는 대여섯살 시절의 모습이었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는 나에게 아이들이 더 있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그 꿈 속의 내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누군가 엄청 그리워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고, 누군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잊고 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전생이라 믿는 것, 윤회라고 믿는 것이 이렇게 반복되는 꿈 속의 인생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꿈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아보고, 어떤 꿈에서는 외국어에 유창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인물이 되어보고, 어떤 꿈에서는 어떤 무리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뭐가 뭔지 알 수없는 모호한 꿈들도 많고 상대적으로 명확한 상황인 경우도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는 그 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벌써 몇 겁의 인생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수많은 꿈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역할이 뒤섞인다.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친한 친구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윤회를 거듭하며 인연을 맺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꿈에서 만난 여성들은 모두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잠에서 깬 이후 고민을 해봐도 딱 현실의 어느 특정한 사람들과 이어지는 특징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그건 그 당시 꿈 속에서도 내가 아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이미지나 상징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꿈에서만이라도 뭐 하나라도 바라던 것을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아무리 실감나고 생생해도 그건 현실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다시 매트릭스 속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빨간약을 선택한 순간 다시 될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 아무리 물을 많이 들이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갈증이 느껴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6-04-09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짧은 소설 읽는 기분으로 이 글을 읽었네요. 꿈이지만 잘 다듬어서 소설로 써도 될거같은데요.
내년쯤이면 등단하시는거 아닙니까? ^^

감은빛 2026-04-10 00:42   좋아요 1 | URL
아유. 바람돌이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치 등단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약 26년 전에 신춘문예 준비했다가 포기한 후로 등단을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있습니다.
언젠가 죽기 전에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낼 기회를 만들고 싶기는 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잉크냄새 2026-04-09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 영하의 <단 한 번의 삶>에도 작가의 꿈 노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쓴 꿈 노트의 내용은 짧은 편인데도 ‘꿈을 어떻게 기억하고 글로 남기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 쓰시는 감은빛님의 꿈을 보자면 꿈을 기억하는 뇌 세포도 어딘가 다르게 작동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감은빛 2026-04-10 00:49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꿈을 기억하는 뇌 세포가 다르다는 생각은 신선한 접근이네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저도 이 글에 쓴 내용을 모두 그대로 기억한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 부분인 ‘갈증‘에 제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이미지들과 조금은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리 속에 떠다니는 느낌˝ 이라고 썼는데, 저는 그런 느낌으로 꿈을 기억합니다.

꿈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제가 글에 상세하게 쓴 꿈의 경우는 그 내용 대부분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미지들에서 가져온 것이고, 조금 기억이 희미한 경우에는 최대한 퍼즐을 짜맞추되 결국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비우거나 아니면 그럴듯한 추정으로 메우는 거죠.

마지막으로 기억이 날듯 말듯 그러나 결국 나지 않는 부분들은 대체로는 포기하고 그냥 비우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까지 추정으로 채우면 그건 되살리는 영역이 아니라 창작의 영역으로 가니까요.

chika 2026-04-10 17:07   좋아요 0 | URL
상담심리 공부한 친구가 꿈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세세한 내용이나 중간에 깼는데도 꿈이 이어진다거나 색깔꿈도 단일색 혹은 총천연색... 막 그런 꿈도 기억하게 되고 그렇기는 하더군요.
저는 최근에 비바람칠 때 차단기가 내려갔는데 전기공사를 크게 해야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빗물자국이 스며든 벽과 차단기옆으로 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ㅠㅠ

감은빛 2026-04-13 18:59   좋아요 0 | URL
치캬님, 상담심리 공부한 친구분이 계시군요.
꿈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 점점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각몽을 더 잘 꾸게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각몽을 자주 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꿈을 꾸다가 깬 후에 다시 잠들었는데, 꿈이 이어지는 경험도 종종 있었습니다.
확실히 어떤 스트레스 요인이 생기면 그 꿈을 꾸는 확률이 놓더라구요.
에휴!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