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열대야


열대야는 밤 최저 기온이 25도씨 이상인 날을 의미한다. 올해 서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열대야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나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너무 더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는 조금 나았으나, 다시 어제 밤에 더위로 인해 잠을 설쳤다. 장마 기간이라 습도는 엄청나게 높고, 낮에도 밤에도 더위가 이어지니 덥고 습한 기운 때문에 너무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한다. 


우리 나라는 다행히 늦은 장마로 상대적으로 덜 뜨거운 6월을 보냈지만, 그 사이에 유럽과 미국,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는 40도가 넘는 고온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유럽은 열돔이라는 기상현상 때문에 유럽 대부분이 불가마 속에 갇혀 있는 상황처럼 되어 버렸다. 프랑스가 44도, 그외 유럽 대부분이 40도를 넘겼고, 인도와 파키스탄 일부는 45도를 넘겼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덜 뜨거웠던 우리나라였지만, 그렇다고 덥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나는 6월 내내 더위에 시달렸다. 내가 오후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심지어 가장 더운 시간인 2시에서 6시까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잘 달궈진 차량 안은 그 무엇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뜨겁다. 내가 주로 운전하는 회사 차량은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한다. 오전에는 주로 매장간 재고 이동을 담당하는 사람, 나와 친한 선배가 이용하고, 그 선배가 일을 마치고 약 1시간 가량 후에 내가 이 차량을 몰고 출발한다. 원칙적으로 그와 내 근무 시간 사이 간격은 1시간이지만, 그는 평소에 늘 일을 일찍 마치는 편이라 실제로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 정도로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무실 근처는 늘 주정차 차량으로 혼잡하다. 근처 식당들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차량들과 그 근처 사무실에 출근한 이들의 차량들이 엉켜있다. 운이 좋아서 그늘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운이 나빠 땡볕에 주차된 상태라면, 그야말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날엔 일하는 4시간 내내 차량 내부 열기가 식지 않는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온 몸으로 땀을 줄줄 흘리며 운전을 할 수 밖에.


그래도 밤에는 기온이 조금 떨어져서 그 정도로 덥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살 수 있었는데. 이번 주말부터 그러니까 서울 기준으로는 아직 공식적인 열대야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는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제 9월 초까지는 매일 밤 잠을 자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엔 운전을 하는 일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 것이고, 그 피로는 계속 누적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새벽에 아마 4시쯤, 땀을 흘리다 잠에서 깨어 선풍기를 살폈다. 이미 최대 풍속으로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더 시원하게 잠을 잘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찬 물을 덮어 쓰고 돌아왔다. 아침 일찍 짐을 옮겨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운전도 해야 했다. 피로가 덜 풀린 상태도 집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일이 일찍 마쳐서 오후에 출근하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등산하듯 집으로 올라와 찬 물을 덮어 쓰고 알람을 여럿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워낙 피곤했던 덕분인지 곧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알람이 한참 울려서 깨보니 세 시간이 휙 지나있었다. 그냥 눈만 감았다가 바로 다시 뜬 것 같은 기분인데, 1초도 안 지난 것 같은 느낌인라 세상에게 아니 시간에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해서 일어나 간단히 씻고 움직이는데, 피로감은 여전했다. 하, 올 여름 에어컨 없이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접촉사고


19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따고 2005년쯤에 처음으로 접촉사고를 냈었다. 당시 일하던 시민단체 소유의 12인승 승합차를 몰고 가다가 아주 살짝 옆 차를 긁었다. 우리 차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옆 차에는 조금 스크래치가 생겼을 뿐이었는데, 그 차 운전자였던 중년의 아저씨는 나중에 병원에 드러누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엔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개인 차량도 아닌 일터의 차량이었기에, 일터 직속상관이었던 사무처장이 사고 처리를 맡아주었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크래치 정도라 적은 돈으로 합의를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병원까지 가겠다고 하자 결국 보험회사에 처리를 맡겼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보험회사 직원이 병원을 못가게 막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최근에 두 번째 접촉사고를 냈다. 이 배송 일을 맡은 지 약 3개월 만이다. 그날은 여러모로 일이 꼬인 듯한 느낌이었다. 첫번째 매장의 배송 건수는 아마 4건이었다.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여러차례 다녀왔던 곳이라 네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빠르게 배송을 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가보는 아파트를 향했다. 네비가 알려준 아파트 입구가 지하 주차장이길래 그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내를 살피며 내가 가야할 동을 찾기 시작했다. 배송 영수증에 적힌 주소는 202동이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에 202동에 대한 안내만 없었다. 201동도 있고, 203동도, 204동도 있는데, 202동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어딘가 있겠지. 층을 옮겨가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여기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총 3개 층이었다. B1부터 B3까지 모든 경로를 다 뒤지며 202호를 찾아다녔는데 없었다. 설마 아파트 입구가 없을 수가 있나? 내 실수였겠지. 나는 다시 3개 층을 차근차근 돌면서 202동을 찾아다녔다. 두번째 돌아봐도 없었다. 벌써 거의 10분 정도를 허비했다. 아쩔 수 없이 영수증에 적힌 번호를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 해당 조합원에게 202동 입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셔야 한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했다. 처음 들어왔던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두번째고 가야 할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따라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다는 소식을 전했다. 두번째 매장 담당자는 나에게 일찍 오라고 재촉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 평소보다 건수가 더 많으니 시간 배분을 잘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안그래도 이 마지막 배송 때문에 너무 어이없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얼른 이 건을 마치고 다음 매장으로 이동해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조합원의 전화가 왔다. 지하 주차장에는 202동으로 통하는 입구가 없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202동으로 갈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일단 주차장에서 나와서 상가 쪽으로 오면 무슨 부동산 근처에 1층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거기서 내리면 근처에서 202동이 보일거라는 설명을 했다. 내가 이 아파트로 배송을 온 것은 그날이 처음이지만, 3달동안 계속 지나다녔던 곳이라 해당 상가는 계속 보았었다. 이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큰 글이라 차를 세워둘 곳이 없다. 해당 상가에는 주차장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곧바로 202동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알려주지 않고 상가에서 1층으로 올라온 후에 눈으로 202동을 찾으라니! 이게 말이 되는 설명인가? 아니 상품을 주문하고 배송을 시켰으면, 배송 노동자가 상품을 집 앞까지 갖다 줄 수 있는 정보를 줘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려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202동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통로는 없나요? 그 조합원은 아까의 설명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말했다. 주문하신 물량이 많잖아요. 저는 지금 차량으로 이동 중입니다. 차를 주차할 곳이 필요하고, 주차한 곳에서 해당 동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곳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요. 그러자 그 조합원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으니, 필요하면 주차장 입구에 있는 경비에게 물어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큰 길에서 인도로 올라설 수 있는 공간이 두세개 정도 있었다. 차량이 인도로 진입하는 막기 위해 볼라드 라고 부르는 기둥들이 막고 있었지만, 차량을 그 볼라드 앞에 올려놓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얼른 거기 차를 올려두고 이 지긋지긋한 건을 마무리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후진 기어를 넣고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시에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밟자마자 차가 무언가에 부딪혔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나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사이드 미러를 살폈다. 내 뒤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아니 대체 언제 저 자리에 차가 있었지? 아니, 여기는 주차 공간도 아니고 그냥 통로인데, 왜 내 뒤에 저렇게 어정쩡한 방향으로 차가 서 있었던 거지? 아니 막 부딪혔을 당시엔 그저 저 자리에 왜 차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보니 우리 차 조수석 쪽 후미 범퍼가 상대방 운전석 쪽 문을 들이받아 문이 찌그러져 있었다. 상대 차량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성 두 명이 내렸다. 두 여성은 자신들이 바쁘다며 얼른 보험회사에 연락하라고 채근했다. 나는 왜 내 뒤에, 왜 하필 이 자리에 있었느냐 물었는데, 마치 못 들은 것처럼 답을 하지는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일단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엑셀을 밟았기 때문에 나는 저 차를 보지 못했다. 부딪히는 소리를 먼저 들었다. 엑셀을 밟고 거의 동시에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후진하면서 뒤를 살피지 않았으니 명백히 내 잘못이었다. 그건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단 사무국 상무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사무국에서는 얼른 번호를 찾지 못했다. 상무님은 나를 진정시키더니 사진을 잘 찍어두고, 서로 연락처 교환한 다음에 보험 접수하고 연락한다 전하고 상대를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다음 매장에 배송 건수가 많다고 전했더니, 나보고 보험 접수하고 마음 잘 가다듬고 천천히 출발하라고, 자신이 먼저 가서 절반 정도를 배송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고 나서 아까 사고 나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뒀던 자리에 차를 올려두고 손수레를 꺼내어 무거운 상자 두 개를 실었다. 전화로 설명 들었던 부동산을 찾아서 엘리베이터 위치를 찾았다. 차에서 한참을 먼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상가와 1층만 오가는 것이었다. 1층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아파트 건물이 여럿 보였다. 전화로 설명을 들었던 것과 달리 곧바로 202동을 찾을 수는 없었다. 손수레를 엘리베이터 근처에 세워두고 이 건물과 저 건물로 동 숫자가 보이는 곳까지 뛰어 다녔다. 한참 후에 겨우 202동을 찾았다. 건물이 낮았다. 복도로 들어서서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건물에는 1층과 2층 밖에 없었다. 무슨 아파트가 겨우 2층 높이라고? 그제서야 그 조합원이 '테라스 동'이 어쩌고 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떠올렸다. 아니 아무리 테라스 동인지 뭔지 그렇다고 해도, 그럼 자신들은 주차를 안 하나? 차가 없나? 설마 이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차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암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손수레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무거운 상자 두 개를 들고 일어서는데 허리가 휘청 했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1개 층이 유난히 높았다. 다른 동네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빌라 5층이나 6층에 배송을 자주 다니지만, 여기 1개 층이 그런 빌라 2개 층 이상 높이라고 느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량으로 돌아와 땀을 닦으며 아까 사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험 접수를 마쳤으니, 담당자가 연락할 거라고. 그러자 그 사람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을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상대 차량은 내 차 바로 뒤에 있었고, 후진을 하자마자 곧바로 부딪혔다. 거리도 없었고, 속력도 없었다. 내가 엑셀을 쎄게 밟았던 것도 아니고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시에 슬쩍 밟았을 뿐이다. 이 거리와 속도로 상대방이 다쳤다는 것은 그야 말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제서야 20년도 더 지난 사고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심지어 차량이 부딪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을 지나며 긁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병원을 가겠다는 인간이 있었다. 그제서야 상대방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니, 분명 상대방도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고가 나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몰상식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간 같지도 않은 어떤 존재로 변하는 구나. 성별도 나이도 아무 상관없구나.


두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보험회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차를 한적한 곳에 세워두고 한참 통화를 했다. 자세한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상대방이 병원에 간다고 통보한 사실도 전했다. 전화를 걸었던 보험회사 담당자는 자신은 대물 담당이라 대인 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대인 담당자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운전하는 중에 대인 담당자 전화가 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대화를 나눴다. 대인 담당자 말로는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상대방이 병원에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몇 가지 사례와 판례를 들먹이며 마치 짧은 강의를 하듯 나를 가르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제서야 왜 갑자기 그 차가 그 자리에 나타났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앞에 4칸의 주차구획이 있는 통로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4칸에는 모두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즉,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주차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다 근처에 있는 주차장 출구로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차는 왜 그 통로에, 그것도 하필이면 내 차 바로 뒤에 비스듬한 각도로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차를 돌리려고 이동하는 중에 내가 뒤를 보지 않고 차를 돌려서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차가 정차한 상태에서 내가 들이받았다면 내 과실 100퍼센트에 상대 과실은 0퍼센트이겠지만, 상대도 차를 돌리려고 움직이는 중이었다면 달라질 것이다. 상대 과실이 10이던 20이던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보험 담당자에게 이 가설을 설명했다. 나는 그 차량을 보지 못했지만, 그 차량의 위치와 각도가 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면서 아무래도 그 차 역시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 담당자는 우리 차에 후방 카메라가 있는지 질문했다. 카메라는 있었다. 그러나 시동을 걸 때마다 후방 카메라를 인식할 수 없다는 안내가 뜨는 것을 나는 매일 보았었다. 카메라는 있지만, 아마 찍힌 것을 없을 것 같다고 전하며 혹시 모르니 일을 마치고 찾아보겠다고 했다.


두 번째 매장에 도착하니 이미 상무님께서 절반 보다 조금 더 많이 실고 떠났다고 했다. 매장 담당자는 사고 이야기 들었다며 안 다쳤는지를 물었다. 나는 사람이 다칠 정도로 부딪히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얼른 짐을 실고 출발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일을 모두 마친 나는 카메라 메모리 칩을 꺼내어 사무실로 갔다. 살펴보니 역시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상무님 말씀으로는 메모리칩 자체가 망가진 것 같다고. 새 걸로 사서 끼우겠다고 했다.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우리측 카메라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상대측 전방 카메라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상대방 차량 역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 맞다며, 그래서 우리측 일방 과실이 아니라 쌍방 과실이 되었다고. 그럼에도 후방 주시를 하지 않았던 내 탓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 80, 상대 20으로 최종 조정했다고 전했다. 보험회사 담당자는 비록 8대2 이기는 하지만, 상대방도 과실이 생겼으니 우리 차도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나보고도 병원에 가시려면 가셔도 된다고 했다. 우리 차는 범퍼에 아주 살짝 칠이 벗겨질락 말락 하는 상태일 뿐 망가진 곳이 전혀 없고, 나 역시 다친 곳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다칠만한 사고가 아니었으니. 


20년 만에 낸 접촉사고였다. 그날 유난히 운이 따르지 않았었고, 하필 배송 건수가 많아 너무 마음이 급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내 실수는 명백했고,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이 맞았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언제나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살펴보고 출발해야지 라고 다짐을 하며 이 사고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상무님께서는 자신도 어이없는 사고를 여러 차례 냈었다고, 운전을 하다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라고 보험에 드는 것이고, 그러라고 범퍼라는 것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얼른 잊어버리라고 했다. 사실 이 배송 일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훨씬 더 조심하며 운전하는 편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계속 시간에 쫓기며 운전을 하다보니 점점 더 급하게, 덜 조심하며 운전하는 방식으로 습관이 바뀐 것이다. 사실 내가 배송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느긋하게 운전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기는 했다. 여기저기서 종종 마주치는 택배 기사들, 배달 기사들을 살펴보면 나보다 움직임이 훨씬 더 빨랐다. 분명 동시에 지하1층 엘리베이터에 내렸는데, 택배 기사는 순식간에 차를 몰고 저쪽으로 가고 없었고, 나는 겨우 시동을 걸고 네비를 열어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되 조심하고 무조건 주위를 살피고 출발하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일베 말투 논란


스타벅스 사태 이후로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일고 야구부를 향해 조롱을 한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 혐오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저런 조롱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그럴 수 있을까? 전두환과 그 일당들 같은 인간이 되지 못한 것들이 아니고서야 과연 사람의 목숨을 그리 함부로 조롱할 수 있을까? 새삼 일베라는 그 어떤 것이, 과연 그것이 그저 커뮤니티에 불과한 것인지 어떤 거대한 집단인 것인지, 그도 아니면 거대한 사회 현상인 것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느꼈다. 


우연히 본 뉴스타파에서 올림픽 경기장을 봉쇄하고 있는 시위대가 윤어게인 세력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을 접했다. 부정선거를 부르짓는 세력들이 중국의 지령을 받은 김대중 덕분에 노무현이 당선된 그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 부정선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정선거가 만연한데, 그 뒤에는 무슨 일루미나티인가 뭔가 하는 국가를 초월한 조직이 있고, 전시안이라는 문양이 그 상징이라는 이야기가 그 시위대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뉴스타파 기자가 접한 것은 그 수많은 시위대 중 일부일 뿐일 것이고, 그런 어이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아이돌이 일베 말투를 썼다는 것으로 각종 SNS 가 아주 시끄럽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는 어느 젊은 여성 아이돌이 "무섭노." 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그 여성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사람들은 그 말이 사투리가 맞다 아니다 그리고 일베 말투가 맞다 아니다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거기에 조국 같은 위선에 가득찬 정치인들이 끼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 연예인이 사용한 말이 실제 그 지역의 사투리가 맞는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나고 자랐던 부산 사투리에는 확실히 그런 표현은 없다. 내가 아는 한 부산 사투리에서 '노' 라는 어미는 내가 무서운 감정을 느낀다고 표현할 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무섭냐고 물을 때 쓰는 것도 아니다. 만약 앞에 '뭐가'가 붙어서 "뭐가 무섭노?" 라고 말한 것이라면 그건 맞는 말이다. '노' 라는 어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묻는 어미로 경상도 사투리에 아직 남아 있는 중세 국에의 흔적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밥 먹었나?" 라는 질문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지만, "뭐 먹었노?" 라는 질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는 질문이다. 일베 추종자들이 흔히 쓴다는 "심심하노.", "아프노." 와 같은 표현들은 부산 사투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사투리 표현으로 바꾼다면 "와? 심심하나?" 라고 묻는 질문이나, "어데가 아픈데?" 와 같은 질문으로 바꿀 수는 있겠다. 일베를 따르는 인간들이 흔히 쓰듯이 혼잣말 하듯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듯 하는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표현이며, 그들 집단 안에서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그들 바깥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항해 자신들을 구별하는 하나의 표식 같은 것이다. 크게 보면 나치 독일의 상징이나 일본 제국 상징 같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 연예인이 그 표현을 쓴 것 자체는 논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대응이 아닐 것이다. 그가 일베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행처럼 젊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는 그 말투를 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롱과 혐오 표현이 왜 나쁜 것인지를 사회적으로 공감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 이 표현이 왜 혐오 표현인지를 인지할 기회를 주는 것과 유행처럼 퍼뜨려 나갈 성격이 아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우리 아이들도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표현들을 자주 쓰는 것을 목격한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쓰는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그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유행이니 따라 쓰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젊은 사람들만 유행을 따라 이상하고 위험한 표현들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중년들도 입에 밴 위험하고 상식적이지 않는 표현들이 제법 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본 것은 어느 엘리트 체육인이 학부모 체육대회에 나가서 '민간인 학살'을 했다.'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는 거였다. 나는 누군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올바르지 않은 혹은 문제가 있는 표현들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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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모론자들의 주장하는 이야기는 사실 하나도 새겨 들을 것이 없지요.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할 적마다 흔히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문제는 이번 선관위 부실 선거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계속 자행된다는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오림픽 경기장 봉쇄 시위와 관련해서 일부 윤어게인 세력이나 음모론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순수하게 참정권을 박탈당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이들의 순수한 의도를 곡해하고 그들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결국 음모론자들의 세력만을 키우는 것이라고 여겨지네요

그리고 조국이 갑작스레 걸 그룹 ~노 발언을 혐오발언으로 매도하는 것은 참 뜬금없단 생각이 듭니다.개인적으로 일베의 ~노 발언은 어떻게 보면 유행이 한물 간 것으로 주변에서나 인터네상에서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물론 일베끼지 아작까지 사용할 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부의 사람들이 혐오 발언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굳이 ~노라는 것을 쓰지 않지요.그러면에 걸 그룹 아이들이 ~노라는 어투를 사용했다면 인터넷상에 난상 토론이 벌어지듯 경북의 사투리거나 아님 혐오 발언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는 거의 사장되 간는 느낌의 ~노 발언을 왜 조국이 뜬금없이 소환해서 다시 사람들한테 회자시키는 이유는 선거 탈락후 자신의 좁아진 정치 입지를 어떻게 든지 되살려 보려는 최후의 발악으로 느껴져서 한때 한국을 이끌 지도자중의 한명으로 여겨졌던 분의 처절한 추락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늑대사냥 - SF어워드 대상 수상작 포션 2
김성일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들 때까지만 해도 예전에 본 영화 [늑대사냥]의 원작 소설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목차를 보고 늑대, 할머니, 사냥꾼 이렇게 셋이 반복되는 걸 보고 그 영화의 원작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 영화에는 늑대도, 할머니도 사냥꾼도 등장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옛 이야기 빨간 모자의 변형인가? 싶었다. 그 이야기에서 빨간모자를 쏙 빼고 사냥꾼을 넣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첫 장인 늑대의 앞부분을 읽고 나서야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각 소제목은 해당 장의 시점 주인공을 의미한다. 늑대의 장에서는 늑대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할머니 장에서는 할머니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냥꾼 장만 살짝 애매한데, 이 인물은 다소 비밀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 인물을 만난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암튼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늑대, 할머니, 사냥꾼 이 순서로 세 등장인물이 번갈아 나타나 이야기를 펼친다. 순서가 한번도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이어진다.

정확히 이 대목이 이 소설의 참신한 부분이다. 세 화자가 정확히 그 순서를 지키며 번갈아 전면에 나오며 전체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간다는 점. 마치 세 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하면서 각자의 파트에 따라 전면에 그러니까 센터에 섰다가 다시 옆으로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또 이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은 주요 등장인물 셋이 모두 일반적인 이야기의 주인공과 다르다는 점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늑대다. 즉, 동물이다. 늑대의 시점에서 그러니까 늑대의 시야와 청각 그리고 후각과 촉각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동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거기에 개나 고양이가 아닌 늑대라는 점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 그럴듯하게 늑대의 시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늑대가 그냥 자연의 늑대가 아니고 만들어진 존재이며, 여러 도구를 통해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있기에 좀 더 편안하게 늑대의 시점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늑대가 생각한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전개였다.

이 늑대 파트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정유정의 소설 [28]을 떠올렸다. 그 소설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등장인물 중 동물이 나왔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맹견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뉴타운이 지어질 무렵 버려진 덩치가 큰 개들이 북한산 인근에 몰려다니는 유기견이 되어 야생화 되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빨간 눈이 특징인 인수공통 감염병이 퍼져가는 수도권 한 도시 이야기인 이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한 맹견의 존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소설의 주인공인 늑대를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일이 조금은 덜 낯선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와! 할아버지도 아니고 중년 여성도 아니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라니! 일반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개 남성이고, 가끔 여성이 주인공을 맡아도 젊거나 어린 여성이 맡는데, 할머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늑대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고, 할머니는 성별로도 나이로도 소수자이자 약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주인공인 사냥꾼은 베일에 쌓인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점이 늑대와 공통점이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수자라는 점에서는 할머니와 마찬가지다.

SF라는 틀 안에서 실존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가족, 인간다움, 존재 등 생각할 꺼리가 많은 소설이다. 늑대와 사냥꾼은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실존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할머니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라고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느낌이다. 암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돈과 권력 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비인간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면이 오히려
인간의 특징임을 잘 보여준다.

적절한 긴장감과 적절한 따뜻함이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만든 덕분에 한번도 쉬지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이 소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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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티, 왁뿌, 야르

아이들이 뭔가 말랑한 인형 같은 동그란 걸 손에 쥐고 조물락 거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냥 아이들 대화를 들으며 작은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요 녀석은 이제 사춘기를 지나갔으려나. 요즘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못 만난 아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큰 아이가 ‘밤티‘ 라는 단어를 쓰는 걸 들었다. 밤티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내가 아이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밤티가 무슨 뜻이야?˝ 큰 아이는 설명해주지 않고 계속 작은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큰 아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은 아이가 ‘왁뿌‘ 라는 단어를 썼다. 나는 이번에는 작은 아이를 향해 물었다. ˝왁뿌는 뭐야?˝ 대화는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이 서로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니?˝ 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아빠, 왁뿌 몰라요?왁뿌.˝ 라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만 저었다. 그러자 아이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액체괴물과 비슷한 것인데 액괴는 액체라 그 자체는 모양이 없지만, 이건 왁스를 굳혀서 고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걸 뿌시는 걸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요즘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액괴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갖고 노는 걸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해했는데, 왁뿌는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둘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었던 건데, 내가 그걸 이해해봐야 뭐 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둘이 떠들다가 이번에는 ‘야르‘ 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번에도 끼어들어 뜻을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그러고보니 밤티는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알려주지도 않았네. 대신 폰을 찾아서 검색했다. 밤티는 못생겼다 라는 뜻이고, 야르는 기분 좋다는 뜻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이상한 말들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려다가 남들이 다 쓰니까 따라 쓰는 거겠지 무슨 이유가 있겠나 싶어서 그만두었다.

요즘 매일 아이들이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걸 본다.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이 앱은 특정한 구성원들과 매 시간 약 2초짜리 짧은 영상을 공유한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엔 아이들 둘과 나 이렇게 3명이다. 아이들은 엄마와도 셋로그를 하니까 거기도 3명 방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매 시간 두 번씩 2초짜리 영상을 찍어야 하는 건가? 바쁘겠구나. 아니면 한번 찍은 걸 두 방에 공유하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방이 하나밖에 없고, 내 지인 중에 이 앱을 쓸만한 사람들은 모른다. 요즘은 언급하지 않지만, 나에게 이 앱을 깔아줬을 때 아이들 말에 의하면 애들 엄마는 이 셋로그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매 시간 이걸 올리지는 않는다. 평소엔 거의 생각하지 못하다가 가끔 쉬는 시간에 애들이 셋로그를 올렸다는 알림을 보고 나도 하나 찍어볼까 생각을 한다. 주로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회의를 하러 이동하거나 달리기를 하러 가면서 셋로그를 찍어 올린다. 아마 하루 24시간 중에 두세번 정도 올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은 주로 고양이를 찍는다. 큰 아이는 원래 본가(큰 아이 표현)에 있던 가장 덩치가 큰 고양이, 타로를 자기 자취방에 데려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학교와 알바 외에는 거의 타로를 찍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본인 셋로그가 아니라 타로 셋로그라고 써놓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에 있을 때는 태블릿과 교재 등을 찍기도 하고 밥이나 차를 찍기도 한다. 알바 가서도 일하는 중에 부지런히 찍어 올린다. 이 셋로그를 엄마 아빠랑 같이 하고 싶다고 한 건 큰 아이였다. 혼자 살면서 자기 생활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거의 매 시간 가장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건 주로 큰 아이다.

작은 아이도 자주 올린다. 집에 있을 때에는 주로 먹는 걸 찍어 올리고 가끔은 집에 있는 두 고양이, 차차와 먀오를 찍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하교 중에는 계단이나 바닥을 찍어 올린다.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에는 하기 싫다고 책상 위를 찍어 올린다. 요즘 부쩍 화장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가끔 화장한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나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일을 하다가 잠시 쉴 때 하늘이나 꽃을 찍는 편이다. 내가 일하며 이동하는 길에서 북한산이 잘 보인다. 가끔 북한산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 어릴 때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북한산을 올라가다가 도중에 내려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북한산을 보고 그 기억을 떠올려주기를 기대하고 올린다. 달리기를 할 때는 천변 꽃들을 주로 찍고 가끔 한강 풍경을 찍기도 한다. 회의나 일정 때문에 이동할 때는 예전에 아이들과 가곤 했던 가게들 간판을 찍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가끔 젊은 사람들이 이 셋로그를 찍는 걸 보기도 한다. 짧게 2초간 뭔가를 찍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셋로그를 찍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전철에 교복입은 여학생 세명이 탔는데 번갈아 셋로그를 찍는 모습을 봤다. 이 아이들은 셀카로 다같이 찍더라.

노동과 운동

약 이주 전부터 늘 몸이 피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의 나는 일과 운동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동네 헬스장에서는 약 40분 가량 운동을 한다. 먼저 2~3킬로미터 트레드밀을 달려서 워밍업을 하고, 바벨 운동을 한다. 여기는 바닥에 바벨을 두고 프리웨이트를 할 공간이 좀 애매하다 그래서 벤치프레스를 주로 한다. 우리 집에는 바벨은 있지만, 벤치가 없어서 10년 넘게 벤치프레스를 못하고 살았었다. 그동안 못했기 때문인지 그냥 벤치프레스만 해도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덤벨 운동을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한다. 마지막은 정리 운동으로 케틀벨을 한다. 스윙과 클린 앤 저크를 섞어서 하는 편이다. 스내치는 양손으로 할 수는 없어서 잘 안 하는 편이다. 암튼 이삼주 전부터 다시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하곤 한다. 일단 재미가 있으면 멈추지 못하니까. 그러면 기분 좋은 근육통 보다 조금 더 근육 피로가 더 강하게 느껴져 피로감이 심하게 들고 좀 오래간다. 거기에 주 2회 정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한번은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 사이를 그때 그때 컨디션에 따라 달리고 나머지 한번은 주로 7~8킬로미터를 가볍게 달린다. 달리기와 운동 모두 일을 마치고 저녁 회의들을 가기 전에 하는데, 일을 마치고 바로 하는 운동이나 달리기가 약간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 특히 달리기는 공복인 상태로 하다가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걸 느끼기도 했었다.

어제는 정말 힘든 하루였다. 오전에 매장간 재고 이동 일을 하는 형이 병원 때문에 하루 쉬어서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해야 했다. 근데 하필 일년에 두 번 하는 할인행사 날이라 재고 이동 품목이 많았고, 매장마다 급하다고 요청하는 건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오후 배송이 주로 하는 일이라서 각 매장간 이동 경로가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하나 실수가 있었다. 순간의 착각으로 가장 가까운 매장을 두고 조금 더 거리가 있는 매장으로 먼저 향했는데, 나중에 그 가장 가까운 매장 점장님께서 반쯤 장난으로 항의를 하셨다. 어제 아침 일을 시작하자마자 들렀던 매장이었고, 그 점장님은 자신이 아침식사로 드시던 샌드위치 반 조각을 기꺼이 내주셨었다. 그랬는데 중요한 품목 하나를 너무 늦게 갖다줬으니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다.

오후에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이미 오전에 일한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첫번째 매장으로 갔는데 배송이 10건이나 있었다. 거기에 매장 지원을 나온 사무국 활동가가 사무실로 한 건을 더 부탁했다. 이 매장에서 가장 건수가 많았던 횟수가 8건이었는데, 드디어 두 자리수를 갱신했다. 그리고 할인행사 때문에 집집마다 박스 수가 많았고, 또 무거웠다. 짐을 실으며, 이러다 두번째 매장은 어쩌나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매장에 팀장님이 나와 계셔서 그 얘기를 했더니 두번째 매장까지 할 수 없을 상황일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다른 배송 기사님을 임시로 구해 배치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고생이 많을 거라며 커피를 사주셨다. 안그래도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커피가 들어가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이 차 짐칸에 짐을 완전히 꽉 채운 것도 처음이었다. 마직막 열번째 집 박스들은 못 실을 뻔 했는데 테트리스 게임 하듯이 박스 모양에 맞춰 짐정리를 해서 겨우 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무국 활동가도 그 생각을 했는지, 테트리스를 잘 하셨다고 한 마디 했다. 열곳의 집 주소를 모두 네비게이션 앱에 입력하고 이동 동선을 머리 속에서 그렸다. 할인 행사 때문인지 처음 가보는 집들이 몇 곳 있었다.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을 보자마자 걱정이 들었다. 저번에 그 집에 갔다가 차를 돌려 내려오느라 엄청나게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경사가 무척 급한 오르막 골목이었다. 언덕 위가 좁아서 차를 돌릴 공간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후진으로 내려왔는데 언덕 경사가 급해서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중에 골목이 크게 한번 휘어 꺾이는데 이 각도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경사가 워낙 급해서 자꾸만 차가 아래로 밀렸다. 몇 차례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각도를 맞추려다가 옆으로 아주 작은 공간이 있는 걸 발견했다. 올라갈 때는 못 봤던 곳이었다. 거기로 진입하면 어떻게든 차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차가 좌우로 크게 기울었다. 진입로가 앞뒤로도 급경사에 좌우로도 경사가 급해서 마치 차가 뒤집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그 좁은 공간으로 올라섰는데, 생각보다 좁아서 차를 돌리기 위해 또 한참을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이게 지난 번에 겪었던 일이었다. 그때 무사히 내려와서 했던 생각은 그냥 골목 입구에 차를 대놓고 짐을 들고 올라가자 였다. 다시는 이 골목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지 않겠다 였다. 이번에는 이 차 짐칸이 꽉 차있어서 후진으로 내려오기는 더 어려울 것이 뻔했다. 손수레를 꺼내 무거운 박스 하나와 수박이 든 상자 하나를 실었다. 언덕 위로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경사가 급하기도 했고 길이 평탄하지 않아서 자꾸 바퀴가 걸렸다. 첫 배송부터 온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마침내 언덕을 거의 다 올라설 무렵 손수레가 뒤집히며 상자들이 바닥에 굴렀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얼른 수박부터 살폈다. 다행히 수박이 깨지지도 않았고, 상처도 없었다. 건물 입구는 아직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냥 상자 두 개를 힘으로 들고 가야했다. 그리고 계단. 이런 오래된 빌라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할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서 쌀을 비롯해 무거운 물품들을 주로 주문한다.

첫번째 집 배송을 마치고 이미 완전히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네번째 집에서는 무거운 상자가 3개였는데, 손수레가 워낙 작고 부실해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지 한 묶음을 다른 손으로 들어야 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다. 여기 배송을 마친 후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셔츠가 에어컨 바람에 잠시 마르다가 다시 짐을 옮기며 젖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열번째 집 배송을 마친 시점이 딱 거의 퇴근 시간이었다. 중간에 처음 가보는 집들 때문에 골목에서 좀 헤매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혹시 힘들면 먹으려고 챙겨왔던 에너지 바를 급하게 먹으며 잠시 쉬었던 시간이 채 오분도 되지 않았다. 사무국 활동가 자리에 마지막 짐을 배송하고 차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의 피로가 심했다. 대체로 수요일에는 아이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달리기를 했었다. 어제도 만약 조금이라도 일찍 마치면 달리기를 하려고 런닝복을 챙겼었다. 일찍 마치지도 않았고 너무 힘들어서 달리기는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회의에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 소통방에 상황을 설명하고 하루 빠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우리집도 꽤나 경사가 급한 언덕 위에 있고, 매번 귀가길은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하는데, 어제는 정말 너무 지쳐서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찬 물에 샤워를 하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배는 고팠지만, 뭔가 먹을 힘도 없었다. 그냥 잠들었다가 밤 10시쯤 깼다. 그제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 통증은 확실히 나아졌다. 다행이었다. 다음날인 오늘도 여전히 할인행사 중이라 또 얼마나 많은 무거운 상자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에 푹 잔 덕분에 다행히 피로감은 많이 가셨다. 여기저기 조금씩 근육통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상태다. 오늘 같은 중요한 행사날 대체 인력도 없는데 내가 아프다고 빠질 수는 없는 일이라, 더 최악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잠들었었다. 그래서 아침에 깨자마자 몸 여기저기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늘도 육체노동에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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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18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줄임말을 쓰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줄임말 수준이 아니라 동남아 어느 지역의 언어 같은 느낌이네요.

다락방 2026-06-18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티가 못생겼다는 뜻이었군요..

cyrus 2026-06-2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티가 촌스럽고, 엉성하다는 뜻도 있던데, 저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

인스타그램에 ‘왁뿌볼’을 만지고 노는 동영상이 뜨던데, 그거 한 번 보고 나니까 알고리즘이 왁뿌볼을 파는 가게를 알려주더군요. 사실, 다른 사람이 왁뿌볼을 만지작거리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요. 왁뿌볼이 부서질 때 나는 소리가 나름 듣기 좋습니다... ㅎㅎㅎ
 

두 번째 읽었다.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직은 청춘이라 생각했고, 아직은 남아있는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희망이나 꿈 같은 거랑은 좀 다른데,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느낌. 지금 나는 이 책의 주인공 제프가 1988년에 심장마비로 죽을 때의 나이 43세보다 7살이나 더 많은 50이다. 처음 읽었을 때 제프가 43세로 죽었다가 다시 18세로 돌아가 청춘을 다시 살아간다는 설정이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여겼다. 43세는 이미 저물어가는 황혼 같은 느낌이었다. 다 늙었다가 다시 젊어진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이 책을 썼던 80년대 중반과 지금은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지금 43세는 거의 청년 느낌이다. 이젠 사람들이 환갑을 따고 기념하지도 않는다. 환갑 정도도 이젠 청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주로 만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50대, 60대들이다. 나는 요즘도 어딜가던 막내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어제 늦은 오후에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중간에 한 서너시간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침인 걸 깨닫고 북플에 들어와 과거 오늘 쓴 글들을 살피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 표지가 보였다. 7년 전인 2019년 6월 7일, 강양구 기자가 이 책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나도 이 책이 생각나서 집에 가서 찾아 읽어야겠다고 그때 당시 생각나는 만큼만 쓴 글이었다. 43세의 가을에 갑자기 죽어서 18세의 봄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았는데, 다시 43세 가을에 또 죽고 또 18세가 되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삶이라는 건 기억이 났는데, 중반 이후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특히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다. 분명 예전에 엄청 흥미롭게 읽었는데, 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걸까 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얼른 집에 가서 이 책을 찾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썼던 글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찾아봐도 이 책이 없었다. 이틀 동안 열심히 책장을 뒤졌었다. 결국 포기하고 책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중고책도 없었다. 중고 알림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들엄마 집에서도 책장을 찾아봤었다. 거기도 이 책은 없었다.

중고책 알림이 온 것은 아마 올해 초였다. 외부에서 행사 진행을 맡고 있어서 알림이 온 것을 뒤늦게 봤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전화기를 열어 수백개의 알림들을 훑어보고 다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이 알라딘 알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건 누가 사버리기 전에 얼른 사야했다. 그렇게 이 책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빨리 읽고 싶어서 침대 옆에 놓아뒀고, 조금 시간이 날 때 앞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몇 주 연속으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도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바쁜 날들은 오래 이어졌고, 금방 읽으리라 생각했던 책에는 계속 손을 대시 못했다. 그리고 이 책 위에 다른 책들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제 이 책이 생각났다. 어디에 뒀더라? 침대 옆에 쌓인 책탑을 뒤져 금방 찾아냈다. 그리고 즐거운 독서를 시작했다.

제프가 처음 심장마비로 죽을 때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내인 린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직장도 그저 그랬다. 극심한 심장통증을 느끼고 다시 정신이 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 공간 낯선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18살의 몸으로 돌아가 에모리 대학 기숙사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그의 룸메이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제프는 이미 여러해 전에 자살한 친구 얼굴을 보고 유령을 본 것이거나 꿈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을 볼 생각을 하지는 못 하고 방을 나선 제프는 학교 건물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타고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로 가자고 하는데, 택시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다른 건물을 말하니 다행히 택시가 출발했다. 목적지인 중심가에 도착했는데, 제프가 살았던 80년대에 유명한 여러 건물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제서야 제프는 거울로 자신을 보는데, 대학 새내기인 젊은 자신으로 돌아와있었다. 그가 자신이 63년으로 돌아온 거라는 상황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특히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주디와의 관계에 적응하는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만약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을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진 기억을 이용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할 것이다. 제프는 그해 경마시합의 우승마를 기억해냈고, 마침 이변에 가깝게 누구도 예상못할 결과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장 자신이 모을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 돈을 모은다.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받은 낡은 차를 팔고, 수집해놓았던 음반이나 책들도 판다. 그래도 모자라서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돈을 빌린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다. 그 경마에서 큰 돈을 벌고, 나중에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도박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후 제프는 매번 다시 돌아올 때마다 경마와 야구에서 돈을 벌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아니 거의 평생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수준이라 미친듯이 펑펑 돈을 쓰고 살아도 아무 걱정이 없다. 이게 처음에는 약간 짜릿한 기분이 들지만, 다시 돌아올 때마다 이걸 활용하니까 나중에는 너무 편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지겹다고 느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다시 돌아오는 시간대가 늦어지면서 나중에는 가장 수익률이 좋은 63년의 경마와 야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런 경우에도 제프는 기억을 활용해서 언제나 너무 쉽게 돈을 번다.

돈 다음에 하고 싶은 건 과연 뭘까? 연애? 사랑? 어쩌면 첫사랑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제프도 맨 처음에 그랬을 것 같다. 다 늙은 중년에 거의 실패한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젊은 몸으로 돌아와 역시 젊고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만난 제프는 아주 오랜만에 큰 성적 흥분감을 느낀다. 그러나 여자친구인 주디의 기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그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후 주디를 떠나버린다. 앞에 썼듯이 쉽게 큰 돈을 번 제프는 아주 비싼 차를 사서 라스베가스로 간다. 카지노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젊은 몸으로 돌아와 더 커져버린 성욕을 만족시킨다. 대학 새내기였던 아직 10대인 주디와 달리 이 샬라라는 여성은 성숙하고 섹시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제프가 무었을 제안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프랑스 파리로 떠나 오래 머물기도 했고, 다시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샬라는 제프의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대신 값비싼 옷과 보석 등을 마음껏 사모았다. 이 대목에서 제프의 첫번째 회귀가 너무 쉽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화수분이라도 가진듯 돈을 써도 써도 아무 걱정이 없고, 누구라도 단번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성이 그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는 삶이라니! 아마 세상 남성들 모두 한번쯤은 해봤을 몽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제프는 문득 샬라에게서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생에서 아내였던 린다, 그리고 돌아와서 만났던 주디와 비교해 너무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살랴라는 여성이 정말 쿨하다고 느꼈던 것이 제프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이별을 통보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제프에게 이 이별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는 거액의 현금과 편도 항공권을 한 장 건넨다. 샬라는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닫는다. 제프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당시 두 사람은 어딘가 낯선 도시의 호텔에 있었는데, 샬라는 집에 있는 자신의 비싼 옷과 보석들에 대해 묻는다. 제프는 어딘가 정착한 후에 주소를 알려주면 다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에 더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스위트룸에 달아놓고 다 사라고 한다. 그러자 샬라는 옷을 벗으며 이 정도 거액이라면 마지막 섹스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제프는 샬라와 이별한 후에 어떤 날짜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린다와 자신이 처음 만난 날에 처음 만났던 장소로 찾아간다. 죽기 전 결혼생활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지금 자신은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니 린다에게 더없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는 제프가 자신이 부자라고 소개하는 말을 믿지 않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린다와 제프가 만나 서로 사랑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프는 첫 회귀에서는 돈은 챙겼지만, 사랑은 챙기지 못했다. 주디도 린다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돈 때문에 만난 샬라는 자신이 떠나보냈다. 그후 제프는 미국 최상류층 부자의 자녀인 다이앤 이란 여성을 만나 결혼한다. 다이앤은 너무 도도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성이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평생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 다이앤과 제프는 애초에 사랑할 수 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프는 다이앤이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에 희망을 걸었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결혼생활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이전 생에서 제프와 린다는 아이가 없었다. 린다가 자궁외 임신을 했다가 더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제프는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있었다면 이 결혼생활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후 다이앤은 그래천이라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다. 제프는 지극정성으로 그래천을 키웠다. 다이앤에게 줘야 할 사랑마저도 모두 딸에게로 향했다. 다이앤은 딸 보다는 자신의 일상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비록 결혼생활은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웠고 너무나도 잘 자라고 있는 그래천이 있어서 만족할만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43세의 가을.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던 그날. 제프는 건강을 챙겼다.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 했다. 절대 심장마비가 올 리 없는 몸이었지만, 제프는 불안했다. 의사에게 아무리 확인받아도 안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다시 심장마비가 왔다.

두번째로 젊은 몸으로 돌아왔을 때 제프는 설명할 수도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래천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자신이 그 삶에서 죽어버린 것이지만, 제프 입장에서는 딸이 자신보다 일찍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자신이 죽어버린 그 두번째 삶이 자신의 죽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그래천은 아빠를 잃은 슬픔에도 잘 살아가겠지. 이후 제프는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정관수술을 하고 여성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주디와의 사랑이 성공해 결혼한 인생에서 주디가 아이를 너무 원하자 두 사람은 입양을 선택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입양한 아이들을 아주 훌륭하게 잘 키웠지만, 다시 제프는 심장마비로 죽고 또 젊은 몸으로 되돌아와버렸다.

린다는 회귀 이전에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여서 제프가 회귀할 때마다 한번씩 연인으로 고려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주디는 제프가 돌아온 시점의 여자친구라 늘 연인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샬라는 제프가 다른 건 다 생각하지 않고 오직 마약과 육체 관계만 탐닉하는 시기에만 등장한다. 첫 회귀때 아주 인상적인 인연을 맺었다가 나중에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등장한다. 다이앤은 딱 그 첫 회귀에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에 진짜 여주인공이 아주 뒤늦게 등장한다. 패멀라 라는 여성은 이 이야기에서 두번째 등장하는 회귀자다. 제프가 인디언들이 살았던 산골에 은둔자로 살아가다가 원래 기억에는 없었던 영화를 보고 찾아낸 인연이다. 제프와 같이 1988년 가을에 심장마비로 죽어서 63년 봄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 제프가 18세로 돌아오듯, 패멀라는 14세로 돌아온다. 그래서 늘 초반에는 제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18세는 그래도 대학을 다니고 부모와 떨어져 살지만, 14세는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고 부모의 집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 두 사람은 처음 죽음을 맞았을 때 40대였고, 첫 회귀에서 25년을 살았으므로 두번째 회귀에서 이미 그들의 부모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세번째 회귀 이후엔 아마 부모가 어린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유대감을 쌓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 특별한 상황과 유대감이 애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88년에 같이 심장마비를 겪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 이후에 그들이 사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제프는 처음 생에서 린다와 아이가 없었고, 패멀라는 처음 생에서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제프가 두번째 회귀에서 느꼈던 그 속이 끊어지는 고통을 패머라는 처음 회귀에서부터 느꼈다는 것. 이점은 나중에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에필로그라고 붙어있는 아주 짧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과거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사람은 딱 세 명만 등장한다. 세번째 등장하는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비중도 거의 없다. 그럼 전세계에서 이런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딱 세명일까? 에필로그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딘가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이야기에 연결시키지는 않은 듯하다.

패멀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도 신화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윤회. 이 리플레이가 윤회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과거 특정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회귀가 반복하면서 점점 과거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기간이 짧아진다. 처음에는(그러니까 첫 회귀와 두번째 회귀에서 돌아오는 시점이) 겨우 몇 시간이지만, 두번째는 며칠이 되고, 세번째는 몇 달이 되는 식이다. 나중에는 그게 몇 년이 된다. 이렇게 회귀 기간이 짧아지는 설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결말까지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인데, 이 설정이 없었나면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작가가 글을 써나가다가 어떤 결말로 가야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을 시점에 여러 설정들을 고민하다가 이 설정을 취해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정을 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결말은 새드 엔딩이 아니라 해피 엔딩이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엔딩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여러 해를 기다렸던 입장에서는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기도 하다. 사실 패멀라의 등장 이후로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너무 변해버려서 당황스러운 측면도 있다.

패멀라의 등장 덕분에 더 흥미로운 장면은 딱 하나다. 왜 그런 건지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88년 가을에 패멀라가 제프보다 9분 늦게 죽는데, 다시 돌아오는 시점은 좀 많이 늦은 걸로 나온다. 그게 처음에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까 그 설정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긴 시간으로 차이가 벌어진다. 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세번째 회귀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후 제프는 과거로 돌아와 패멀라가 돌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중 두번째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제프는 돌아와서 패멀라를 기다리기 위해 패멀라가 다니는 대학 근처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하여 매일 패멀라의 동선을 얼쩡거렸다. 지금 개념으로는 스토킹이다. 패멀라가 아직 돌아오기 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패멀라 그러니까 아직은 최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제프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원래 패멀라가 친구들과 마약을 하고 시골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쪽에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젊은 남성이 자주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패멀라가 그 몸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과거 자주 다니던 술집에 있음을 깨닫고, 마약도 했음을 깨닫는데 그러다 저쪽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제프와 눈이 마주친다. 제프는 갑자기 패멀라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밝게 환영의 웃음을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이야기의 묘미를 절반도 다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웠다. 이 책은 60년대부터 80년대를 살았던 미국인이 읽어야 작가가 일부러 넣어놓은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사실들을 모두 이해하며 일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 4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잘 즐길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한국 사람인 나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수많은 과거 아이템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지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주와 도시 이름은 익숙하기도 하고 대략 위치도 생각났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명은 낯설고 어디 붙어있는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 이름 중에 겨우 서너개의 제목만 알아봤고, 수많은 노래 중에 겨우 두어개의 제목만 알아보고 곡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수많은 가수들 중에 겨우 열명 남짓의 이름만 알아봤다. 영화의 경우에는 그래도 다행히 훨씬 더 많이 알아봤다. 역사적 사건들과 정치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존 에프 케네디를 비롯한 유명한 인물들과 그에 얽힌 사건들은 당연히 알지만, 일년에도 여러번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까지 다 알수는 없었다. 작가가 방송 작가로 긴 시간 일하며 굵직한 사건들부터 작은 사건들까지 해마다 일어난 많은 사건들에 해박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잘 엮어 활용했지만, 나는 그걸 다 캐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나와 같은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번역자께서 여러 단어들에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리고 길게 역자주를 달아주셨는데, 이건 또 읽어가는 흐름에서 방해가 되니 아쉬웠다. 만약 시간이 많다면 이런 요소들까지 꼼꼼하게 챙겨가면서, 그래서 역자주를 잘 읽고 검색도 해보면서 읽으면 또 완전 다른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신론자이고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내 존재가 사라졌으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수 밖에. 윤회도 당연히 믿지 않고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내가 언젠가 죽고 나서 다시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은 한낱 인간의 인식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고, 아직 죽어보지도 않았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지.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종교라는 걸 믿는 것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일단 90년대는 60년대와 많이 달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라 제약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들면 내가 미친듯이 색욕을 불태워보고 싶어도 절대 샬라 같은 여성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경마나 야구 도박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아주 큰 흐름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을까? 후회가 되는 많은 일들을 바꾸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법.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실수들이 생기고 또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이다. 한가지 생각나는 건 학문 하나를 붙잡고 꾸준히 놓지 않고 파보고 싶다. 예를들어 어설프게 배우고 말았던 철학이나 사회학을 꾸준히 익혔다면 지금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놓고 막상 정말로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이번 인생처럼 어영부영 이리저리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면, 결국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분명 바쁘게 살기는 했는데, 지나고 보면 딱히 뭘 해놓은 것은 없는 그런 삶. 분명 그러리라 본다. 그러니 차라리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추신.
작중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을 부르는 단어가 사람마다 다르다. 제프는 재생이라고 했다. 이 단어가 제목인 리플레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패멀라는 회귀라고 썼던 것 같다. 이 표현은 원문에서 뭐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세번째 인물도 또 다른 표현을 썼었는데, 이건 좀 성격이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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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0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금 살아보고 싶은 바램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게 되겠죠. 제가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 보는 건 마흔이 넘어서야 살아보고 싶은 삶이 겨우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이유입니다. 돌아가도 또 상처투성이인 삶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첫 시작은 뭔가 구체적인 꿈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영화 [온다]를 먼저 봤다. 영화에 대한 평들을 읽다가 원작도 좋지만,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글을 보고 책을 구매했었다. 처음에 앞부분을 좀 읽다가 갑자기 바빠져서 멈췄는데, 그러고 몇 달을 손도 못 대고 지나버렸다. 최근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다섯시간? 대충 그 정도 걸려서 안 쉬고 한번에 다 읽었다.


이제는 영화의 세부 내용에 대한 기억이 살짝 희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영화를 떠올려보니 작가와 감독이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상영시간이 짧은 매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연결고리들과 세부 설정들을 잘 녹여내었고, 그러면서도 원작의 긴장감을 잘 살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아주 멋있게 연출한 클라이막스 장면은 원작과 완전히 달랐는데, 영화의 연출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의 해당 장면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영화가 너무 멋있었다. 원작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다.


이 소설은 가장 큰 장점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커다란 공포를 잘 나타낸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체 구성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의 서술자를 다르게 배치하여 해당 인물의 시선과 생각의 틀 안에서 전체 그림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런 구성은 잘못하면 매우 산만하면서도 전체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위험이 큰데, 각 부분에 아주 적절한 성격의 인물들을 잘 배치하여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장점은 극대화시켰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과연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니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놓아야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이다. 하나는 이 사건에 휘말리는 당사자,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두고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두번째는 피해자를 도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 다른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인 그 존재에 맞서는 대적자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에서 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작가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눈 이야기 중에서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를 각각 1부와 2부에 두어 일반적인 선택을 따랐지만, 3부의 서술자는 상황을 지켜보며 도와주지만, 그 존재에 맞설 힘은 없는 조력자로 선택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조력자도 큰 틀에서 대적자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고, 해결사 그룹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그 존재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는 것으로 나오고 그 단 한 명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인물들은 그저 조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아주 크게 성공했다고 보지만, 다른 인물이 세번째 부분의 서술자였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이야기의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었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는 주제를 떠올려보면 3부의 서술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효과적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영화를 보고 왔다. 소설의 재미를 영화가 잘 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웨이브 라는 OTT 에서 독점 제공하고 있다고 나왔다. 유튜브에도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웨이브를 딱 1달만 결제했다. 이거 보고 나서 웨이브 독점인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을 좀 봐야지 생각했다.


등장인물 이야기를 하려다가 소설의 구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네. 구조적인 측면에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은 선택을 했고, 영화는 영화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잘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줬고, 후반부의 절정 부분만 소설과 다르게 갔다. 앞서도 말했듯 이 부분은 시각적으로 멋진 장면을 보여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결말이 다소 아쉽다.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했는지 어떤지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엄청난 양의 피가 튀기는 장면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후에 각 등장인물의 상황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소설은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알려준다.


등장인물을 말하려면 일본 이름과 우리말 발음 이야기를 짧게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다하라 히데키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타하라 히데키였다. 일본어 히라가나 ''를 소설 번역가가 '다'로 쓴 것이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어를 2년째 배우고 있는 지금은 이 선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타' 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히가 마코토 역을 맡은 배우 고마츠 나나는 예전에는 계속 고마츠 라고 소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코마츠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고마츠 라고 읽어오다가 갑자기 코마츠 라고 읽으려니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히데키의 아내도 소설에서는 가나 라고 나온다. 하지만 일본어로 인물정보를 찾아보면 히라가나 '' 로 나온다. 일반적인 발음으로는 카나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일본어 발음이 우리나라 글자로 정확하게 타도 아니고 다도 아니다. 코도 아니고 고도 아니며, 카도 아니고 가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의 발음일텐데, 이걸 번역자와 편집자가 다와 가를 선택했다고 뭐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래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면 주인공이 되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1부의 서술자인 타하라 히데키부터 인물 이야기를 해보자. 히데키는 아주 전형적인 유부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수혜를 가장 잘 누리고 있는 일본 남성. 일본 영화나 소설에서는 남성들도 곧잘 요리를 하고 집안 일을 하던데, 이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자신이 육아 아빠라고 잘난 척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딸을 돌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자신이 멋지게 육아를 해내고 있다고 거짓 일상을 올린다. 마치 인스타그램 등 SNS 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거짓 삶을 전시하는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에서는 처음에 마치 이 인물이 정말 육아를 비롯한 집안 일을 잘 하고, 아내인 카나에게 잘 해주는 인물인 것처럼 나온다. 나중에 마치 반전처럼 사실은 얘가 빌런이었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싸한 느낌이 들도록 보여준다. 소설에 없는 이야기인 오프닝 장면의 어린 소녀가 히데키에게 너는 거짓말쟁이잖아 라고 말하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사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히데키의 삶은 거짓 투성이였다. 소설에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를 종종 다녔던 것으로 드러나고, 영화에서는 같은 회사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던 암시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카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 모두 히데키의 과시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치사가 다쳤을 때, 히데키는 구급차를 부르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블로그에는 자신이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고 적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신청했었다. 당시 내가 일했던 단체에서는 매우 선진적으로 남성 활동가에게 육아휴직 6개월을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상급자는 단체 사정을 설명하며, 무급이라고 했다. 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유급은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저 6개월이라는 기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활동가였던 내 급여는 너무 적었고, 아내가 버는 돈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출산 후 짧은 기간 몸을 회복한 후에 일을 했고, 내가 아기와 하루종일 지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잡지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해서 짧은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나는 환경 분야 활동가였기에 시중에 판매하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빨아서 썼다.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아기 볼래? 밭 맬래? 라고 물으면 당연히 밭 매러 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첫 아이였던 큰 아이와 지내는 하루 하루가 참 좋았다. 당시에 나도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곤 했던 블로그가 있었으나 온갖 집안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블로그를 쓸 여유는 없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단체에 복귀한 이후에도 나는 아내와 비슷한 비중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고,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 아내가 70이나 80 정도 했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30이나 20 정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 쌓여있는 천 기저귀들을 빨아서 삶아 놓고 잠들었고, 새벽에 아기가 깨서 울고 보채면 분유를 타서 먹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아내를 위해 뭐라도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체 집안일과 육아의 1/3 정도 간신히 했을 텐데, 동네에서는 마치 내가 혼자 아이를 다 키우는 것처럼 소문이 돌았다. 평일 중 이삼일 저녁에 내가 아이를 맡은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고, 행사를 다녔던 탓이다. 나는 아기를 업고 집회를 나갔고, 행진 도중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분유를 먹였고, 아기를 안은 채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쫓겨 다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육아와 가사노동에 동참해도 결국 그 힘든 일의 주체는 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동네에서 늘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우리 집이 이런 상태였는데, 히데키 처럼 말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카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히데키는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카나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건드리고, 현대인의 허세와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히데키는 게다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 마코토가 부인과 아이에게 잘 해야 그것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충고 했을때 미친듯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실은 거짓으로 육아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자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데키에게 그것이 오는 이유는 사실은 저주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그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진다. 히데키의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히데키의 할머니가 저주를 담은 부적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히데키의 집안에 들러붙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반 이후로 가면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가 또 다른 저주가 담긴 부적을 카나에게 사용한다.


즉,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은 가정 폭력과 가부장 제도의 모순 때문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보기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스페인 선교사들이 일본에 오면서 함께 온 부기맨 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원래 히데키의 할아버지기 살았던 시골 동네에서는 그것의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원래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가 이름을 말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타하라 카나는 고아였다. 가족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 나오는데, 결혼식 장면에서만 짧게 나올 뿐 전혀 비중이 없다. 차라리 원작처럼 그냥 고아로 설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왜 설정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암튼 카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히데키의 집안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데키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카나는 히데키의 거짓 인생에 질려하면서도 치사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어했다. 소설에서 카나는 딱히 흠잡을 곳 없는 인물이다. 2부에서 그것의 습격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다시 치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카나는 히데키 못지않은 빌런으로 나온다. 히데키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처럼 카나는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와 몸을 섞는다. 마코토가 치사를 돌보다가 그것의 습격을 받는 순간 카나는 그 교수와 함께 침대에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히데키의 죽음을 좋아하는 모습을 소설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치사에게도 화를 내며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카나도 죽여버린다. 영화에서 쿠로키 하루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3부의 서술자인 노자키 카즈히로는 아마 히데키와 비슷한 연배일 것으로 추측된다. 노자키가 마코토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찾아갔을 때 카나에게 자신이 히데키의 시골 친구라고 말하고, 마코토는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노자키는 오컬트 작가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소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꽤나 성실하게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무정자증이라 이혼을 한 것을 나오고 그래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전 여친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낙태를 강요한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 모두 현재 마코토에게는 아주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 기준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남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괜찮은 인물이며, 마지막에 그것의 습격에 맞서 싸워 살아남는 진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오카다 준이치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외모가 성격과 딱 들어맞는 모습으로 나온다.


히가 자매는 사와무리 이치 작가가 이후에도 다른 작품에서 계속 다루는 인물들로 작품 전체로 보면 비중이 많지 않지만, 그것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이들이 주인공을 맡았을 것이다. 알라딘에 보니 히가 자매 시리즈가 총 5개 있다고 나온다. 이 소설이 첫 등장 작품이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언니이자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무녀인 코토코는 아주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위험한 일을 해온 덕분에 온 몸에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흉터들을 갖고 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혼자 그것을 물리친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 영화에서는 백여명 가량의 조력자들을 소집하는데, 거기에 한국 무당들의 모습도 보여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코토코가 결국 그것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양의 피가 튀는 장면 묘사가 끝이라서 코토코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영화에서는 마츠 타카코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고백]에서도 주연을 맡았었다. 이 영화만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옛날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의 그 주인공이었다.


히가 마코토는 저녁에 바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언니인 코토코를 동경해 영능력을 연마했지만, 실력은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떤 사정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래서 더 아이들을 좋아한다. 처음 히데키가 방문했을 때 그를 간파했고, 그의 거짓 삶이 그것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인지해 조언했다. 히데키가 크게 화를 내고 가버렸지만,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며 노자키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방문해 치사를 만났다. 이후 치사를 돌보며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을 수행한다. 치사가 그것에 끌려갔어도 결국 나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마코토가 치사에게 준 은반지 덕분이었다. 기분에 따라 자주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코마츠 나나가 연기했다. 와!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던 나나가 이런 연기 변신을 한 것은 좀 의외였다. 코마츠 나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인 [갈증]에서 주연을 맡았었다.


영화의 감독인 나키시마 테츠야 이야기를 짧게 하자. 일본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감독의 영화를 여럿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고백]과 [갈증] 그리고 이 영화 [온다]까지 세 편을 보았다. [불량공주 모모코]는 보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아직은 손을 대지 못했다. CF 감독 출신이라고 하고 그래서 영상을 기가 막히게 예쁘게 잘 찍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 멋지게 뽑아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꽤 인상적인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갈증]은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온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원작을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온다]를 보면서 이 감독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많은 것을 담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백]과 [갈증]도 한번씩 더 보면서 각 장면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영화에서 시작해 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로 돌아온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고, 다시 본 영화는 기억보다 조금 더 아쉬웠다. 이어서 사와무라 이치의 히가 자매 시리즈 중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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