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름


                                이한주


우리말 갈래사전을 사고

선생인 네 이모네 반 출석부를 몰래 훔쳐보며

특별한 이름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이름

떵떵거리며 출세하는 이름보다는

메아리처럼

나즈막히 들리는 이름 어디 없을까

네가 평생 간직할 나의 첫 선물

네 얼굴만큼 선한

어디 그런 이름 없을까

벌써 며칠째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책방을 둘러보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평생 멍에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이 있을까?' 시인은 시를 소개한 바로 다음 페이지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그래.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 가끔 좀 더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젠 가수라기 보다는 코메디언에 가까운 <호랑나비>의 가수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한때 내 별명이었던 '나비'는 그 <호랑나비>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내막을 모르는 친구들은 그 '나비'가 흔히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라 생각하고, 내 외모가 고양이를 닮은 것도 아닌데 왜 나비라고 불리는 지 묻기도 했다.


내 이름은 '나라에서 으뜸'이 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큰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아이에게 멋진 뜻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명법을 공부하고, 한자를 찾아 익히기도 했다. 사실 나와 아내는 서로 합의해 놓은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양쪽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 쪽 집안에서는 불교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싫다고 하셨고, 다른 쪽에서는 발음이 이상하다고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작명법에 따라 다른 이름들을 몇 개 더 지어봤다.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했고, 국어사전을 뒤져서 순 우리말 이름을 찾아보기도 했다. 몇 개의 새 이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솔직히 우리 부부에겐 미리 정해놓은 이름 외에는 그닥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는 우리가 정한 이름을 어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뜻을 그 이름에 붙여서 최대한 설득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결국 출생신고를 마감 시점인 한 달까지도 이름을 정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도중에 어른들께서 제안한 이름도 몇 개 있었으나, 너무 흔한 이름이거나,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다 거부했다. 마지막 날 나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냥 우리 생각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른들은 마지못해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아이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끔 아이가 자라서 나를 원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좀 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냐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이 이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이야기 해줘야지 생각하곤 했다.


나중에 작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큰 아이의 이름이 워낙 특별한 느낌이라 그에 맞는 적절한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5년 만에 다시 작명법을 새로 공부하면서 한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하고, 내 폰에 저장된 온갖 이름들을 다 써보고 불러보고 했다.


의외로 작은 아이의 이름은 예상치 못하게 쉽게 지었다. 맨 처음 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를 생각했다. 아이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따왔다. 사회주의 계열이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아니 이 사람은 스스로 바꾼 이름이라고 봐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호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이 엄마와 나도 모두 지금까지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작은 아이의 이름은 그 독립운동가의 친구이자 동료인 독립운동가의 호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 사람은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지만, 호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에 그 제안은 내가 했지만, 나는 제안을 하고서도 왠지 익숙치 않은 느낌이라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아내는 마음에 든다고 적극적으로 그 이름으로 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적극적인 태도가 정말 다행이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아이들 이름을 물어본 후 예쁜 이름이라고 누가 지었냐고 묻는다. 둘 다 내가 짓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가 있었다. 지금 그 두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믿는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6-10-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 이름을 한글 외자로 지었어요. 여태 그 이름을 쓸 기회(?)를 만들지 못 했지만 ㅋ

감은빛 2016-11-02 00:13   좋아요 0 | URL
이미 이름을 지어놓으셨군요.
˝쓸 기회를 만드셔야겠네요.˝
라고 답하면 너무 참견하는 것에 되겠죠?
외자라면 성과 연관되어 발음과 뜻에 영향을 미치겠네요.

2016-11-0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5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력으로 해가 바뀌었지만, 아직 음력 설을 지나지 않아 '임진년'이 되기 직전,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 중에 어느 저녁 김해자 선배와 술을 한 잔 했다. 홍어무침과 녹두빈대떡과 막걸리. 예전부터 김해자 선배의 산문을 참 좋아했다. 차분하게 일상을 풀어놓으시는데, 그 안에 녹아있는 따뜻한 마음과 삶의 지혜가 느껴져서 좋았다. 시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시보다 산문을 좋아했다.

 

김해자 선배와 보낸 짧은 시간 다양한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교류하고 계신 여러 작가들의 근황도 알려주시고, 시골 생활의 사소한 이야기들도 말씀해주시고, 현재 작업하고 계신 책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막걸리 통이 점점 비워지면서, 슬슬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배와 헤어지면서,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의 시집을 다시 한번 찾아 읽고, 글을 하나 올리려고 맘먹었는데, 뒤늦게 시를 하나 찾아 읽었다.

 

 

 

 

 

 

 

 

 

 

 

 

 

 

 

 

 

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걸까
갈수록 숲은 어둡고
나무와 나무 사이 너무 멀다
동그랗고 야트막한 언덕배기
천지사방 후려치는 바람에
뼛속까지 마르는 은빛 억새로
함께 흔들려본 지 오래
막막한 허공 아래
오는 비 다 맞으며 젖어본 지 참 오래


깊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내 아직 어두운 숲길을 헤매는 것은
헤매이다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아직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탓이다
깊은 골짝 지나 산등성이 높은 그곳에
키 낮은 꽃들 기대고 포개지며 엎드려 있으리
더 깊이 들어가야 하리
깊은 골짝 지나 솟구치는 산등성이
그 부드러운 잔등을 만날 때까지
높은 데 있어 낮은, 능선의
그 환하디환한 잔꽃들 만날 때까지


김해자 / 無花果는 없다 / 실천문학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12-01-3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시입니다.
돌아서서 반성하게 하는 시입니다.

사람의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ㅠ.ㅠ

선배님 시인과 좋은 시를 포스팅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은빛 2012-02-01 20:3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김해자 선배의 시 보다 산문을 더 좋아합니다.
선배가 시를 참 잘쓰시고, 상도 여럿 받으셨지만,
제가 시를 잘 몰라서 그런지.
시보다는 산문에 더 맘이 가더라구요.

차트랑공님,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01-3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쓰는 분이랑
술 한 잔 걸치면
좋은 생각씨앗
오순도순 나누리라 믿어요.

감은빛 2012-02-01 20:38   좋아요 0 | URL
제가 시인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때 시인들과 술을 마시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확실히 시인들은 다른 작가들보다 더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시에 재주가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감수성이 다 말라버린 듯 해요.

마녀고양이 2012-01-3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너무 좋네요... 시집 살까,,
요즘 숲의 오솔길을 거니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조금 답답해서 그런지.

아우, 첨에 김해자 시인을 감자전으로 읽었지 뭡니까... 이런.
배고파서 그런가봐요, 아침부터 여기 붙어있으니... 오늘은
리뷰를 써야해 라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이곳저곳 놀러다니는 이 아침. ㅋ

감은빛 2012-02-01 20:42   좋아요 0 | URL
김해자 선배의 시집은 이것도 좋지만,
애지 출판사에서 나온 '축제'라는 시집도 좋습니다!
그 시집으로 '백석문학상'도 받았습니다.

감자전이라니! 정말 배가 고프셨나요?
아니면 아침부터 술이 고프신건 아니셨을까요? ^^
많이 바쁘시죠? 건강 꼭 잘 챙기세요!

진주 2012-02-0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인이랑 마주 앉아서 막걸리와 홍어회무침을 드셨다는건가요?
우리집 냉장고에도 홍어회무침 있는데 어쩜..같은 홍어회무침을 먹고도
뽑아내는 건 이렇게 다를까 싶은 생각이 다 드네요 ㅎㅎㅎ

감은빛 2012-02-09 13: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진주님.
답이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네, 김해자 선배와 함께 홍어무침에 막거리를 마셨습니다. ^^
언제 한번 진주님과도 홍어무침에 막거리 한잔 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
 

아내의 브래지어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박영희 / 팽이는 서고 싶다 / 창비

 

몇 해전 박영희 시인과 식사를 하던 중에 들은 얘기가 궁금해서 이 시를 찾아 읽었다. 그때 시인은 창비에서 나온 자신의 시집 '팽이는 서고 싶다'의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씀하셨다.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표제작은 바로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였는데, 창비쪽에서 계속 바꾸기를 요청해와서 결국 '팽이는 서고 싶다'가 제목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대로 '아내의 브래지어'가 제목으로 정해졌다면 책도 훨씬 더 많이 팔렸을거라고 장담하셨다.
 

책을 고를 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마 제목과 표지일 것이다. 그만큼 책을 만들때 어떤 제목을 고를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이미 작가가 제목을 정해놓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의견을 낼 여지가 없다. 대개 시집이나 단편소설집은 수록된 여러 작품들 중에서 표제작의 제목을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정한다. 이 경우에는 작가가 명확하게 표제작을 정해놓았는데, 출판사측에서 표제작을 바꾸기를 원했다. 이유가 뭐였을지 궁금하다. 뭐 짐작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작가가 이렇게 아쉬워할 정도인데도, 출판사가 바꾸기를 강행했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팽이는 서고 싶다' 는 시도 제법 괜찮아서 표제작으로 뽑은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가 사람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박영희 시인께서 그런 말씀을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박영희 시인은 일제시대 광부 징용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7년의 옥살이 끝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좀 별난 이력을 지닌 분이다. 최근에는 르포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아내의 브래지어를 빨아준 경험을 바탕으로 아내에 대한 감정을 풀어놓고 있다. 나는 아내의 생리대는 여러차례 빨아주었으나, 브래지어나 팬티를 빨아준 적은 없다. 대신 탈수가 끝난 빨래를 널면서 브래지어를 물끄러미 쳐다본 적은 있다. 그때 저걸 하고 다니려면 참 갑갑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내도 가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이면 무척 갑갑해 한다. 그리고 가슴을 받쳐주는 용도라면 좀 더 간단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두껍고 무늬도 복잡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아내에 대해 생각하면 여러가지 다양한 감정이 생긴다. 늘 곁을 지켜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 고생하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 결혼 전에는 늘 느끼지만, 결혼 후에는 가끔만 느끼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 등 그런 감정들이 들게 되는 어떤 계기는 다양할 것이다. 시인에게는 브래지어가 그 역할을 했지만, 나는 생리대를 빨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곤 했다. 

술 마시고 적당히 취해서 들어오면,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해서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씻는다. 씻다가 보면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생리대가 보인다.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궈놓았다. 한꺼번에 모았다가 빨려고 놔둔 것일텐데, 손빨래는 모으면 모을수록 두배, 세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안다. 술먹고 늦게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시작한다. 아무래도 손빨래는 팔힘이 좋은 남자가 하면 더 깨끗해진다. 가끔 아내는 내가 빨아놓은 걸레나, 아기 기저귀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빨 수 있냐고 놀랄때가 있다. 오랜 자취생활 동안 손빨래는 정말 지겹도록 해왔다. 빨래판에 빨래를 박박 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문지르고, 비비고, 짜고, 헹구고, 다시 짜고 또 헹구고 마지막으로 물기를 꼬옥 짜내고 널고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빨랫대에 널린 생리대들을 보고 놀랄 아내 얼굴을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누인다. 별 것 아닌 일 하나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래 뭐 아내를 위한다는 게 별 대단한 일을 해야하는 게 아닐거다. 평소보다 좀 더 집안 일에 신경써주는게 가장 아내를 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9-19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0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첫 반응을 보면, 역시 제가 경직되어 있는게 틀림없어요.... ^^
하지만 씹을수록 참 따스하고 고운 이야기입니다.

아내분께서 행복해하시겠는걸요.

감은빛 2011-09-20 12:44   좋아요 0 | URL
흠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브래지어'라는 단어 혹은 '생리대'라는 단어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신 걸까요?
본의 아니게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루쉰P 2011-09-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너무 멋져요!! 흠...이 따뜻한 대감동! 시 너무 좋아요. 요즘 저의 인터넷 친구인 '사자'께 시집을 한 권 선물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나름 시를 읽는 문학도에요. 근데 이 시도 너무나 좋은데요. 게다가 너무 멋있으세요. 저도 정말 감은빛님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싶어요. 아...정말 따스해라.
사실 결혼하면 제 팬티도 부인이 다 빨아주잖아요. 당연하게 생각하구요. 근데 부인의 속옷을 직접 빨아주는 그런 낭만적인 사람이 정말 되고 싶네요. ^^
잘 지내시죠? 항상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며 정화되는 저 입니다. 완전 정화!!

감은빛 2011-09-20 12:45   좋아요 0 | URL
시를 읽는 문학도, 루쉰님.
늘 루쉰님의 댓글을 읽으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됩니다.
저를 웃게 만들다니, 대단한 능력이세요! ^^
지금 연애하는 분과 관계를 잘 만들어가서,
얼른 루쉰님도 결혼하세요! ^^

쉽싸리 2011-09-1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실천해 봐야겠어요. 저는 핏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세탁기에 돌리는줄 알았는데 손빨래를 하겠군요. 그것이 힘은 들지만 더 깨끗이 빨리겠군요. 아닌가?
뭐 하여간 실천해 보도록 하겠슴다. ㅎㅎ 감은빛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감은빛 2011-09-20 12:48   좋아요 0 | URL
세탁기에 돌리는 것보단 당연히 손빨래가 더 깨끗해집니다.
좀 힘이 들기는 하죠.
양이 많은 날에는 하루에도 여러개씩 나오니까요.
귀찮으면 세탁기에 돌려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다만 세탁기 돌리기 전에 충분히 핏물을 빼고,
한번씩 비벼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아유, 쉽싸리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더 가족들을 잘 챙기실텐데요.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할 입장입니다. ^^

yamoo 2011-09-19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멋지고, 감은빛님의 마음도 멋지네요!

감은빛 2011-09-20 12:49   좋아요 0 | URL
멋지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야무님! ^^

순오기 2011-09-20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에 학교에서 보고 비로그인아라 추천만 했는데,
심야에 다시 한번 추천하고 댓글 남겨요.
감은빛님 옆지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편이 서답까지 빨아주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요... 좋은 남편이세요!

감은빛 2011-09-20 12:51   좋아요 0 | URL
아, '서답'이란 단어. 처음 들었어요.
'개짐'이란 단어도 있던데요.
처음에 이 '천 생리대' 만드는 법을
'피자매연대' 활동가에게 배울 때,
'대안 달거리대'라고 배웠는데,
발음도 표기도 영 어색하더라구요.

그에 비해 '서답'이란 단어는 고전적이면서 느낌이 좋네요.
고맙습니다! ^^

진주 2011-09-20 16:22   좋아요 0 | URL
저는 경상도 토박이인데요..^^서답은 제 나이 또래만 되어도 거의 쓰지 않는 말로써 연세드신 어른들이 '빨래'와 같은 의미로 써요. 즉, 서답에는 달거리대라는 의미는 없이 그저 온갖 빨래에 두루 통용되는 그런 사투리지요.

그런데 지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달거리대에 해당하는 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총기있는(ㅋㅋ)제가 기억 못 하는 이유는 경상도라도 젊은 사람들은 표준말을 쓰느라 사투리를 못 배운 이유도 있고요(아..물론 표준말은 알아도 경상도식 억양은 어쩔 수 없지만요)

또 다른 이유는 여성의 생리현상이나 생리대 따위를 공공연하게 말하는 분위가 아니라서 그럴거예요. 제가 어릴 적엔 할머니나, 엄마, 고모, 언니들이 은근슬쩍 그것들을 지칭하는게 미덕이라고 여겼을거 아녜요? 제대로 들은 적이 없으니 모르는게 당연하겠지요.

사실 저도 감은빛님 페이퍼 읽으며 요즘 애들 말대로 '깜놀!'했답니다. 저도 피자매연대 그것이 있는데 이게 여간 번거로운게 아녜요. 그것을 애용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도 대단하고, 핏물이 흥근한 채 욕실에 있는 모양을 상상해도 놀랍네요. 제가 자랄 때 집안에 생리하는 여자가 북적북적했지만 한번도 그 빨래거리를 본적이 없거든요. 그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이 본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요. 달거리가 부끄럽진 않지만 남 눈에 띄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아는 것은 남성우월주의적인 잘못된 교육 때문일까를 생각해보네요.... 가치관에 따라 차이가 있겠죠? 확실한 건 제가 참 보수적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어쨌던 아내의 속옷을 빨래해 줄 마음이 있는 남편은 좋은 남편이예요^^
감은빛 님, 오늘 처음 뵈었는데 이례적으로 많은 말을 했네요^^

감은빛 2011-09-21 10:41   좋아요 0 | URL
진주님, 안녕하세요!
저는 가끔 진주님 서재에 들르곤 했는데, 따로 인사를 드린 적은 없었네요.
먼저 인사해주시고 또 사투리에 대한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

제가 '서답'을 찾아보니,
'빨래'와 '개짐' 두가지 뜻이 있더라구요.
포털에서 사전을 검색해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1 ‘빨래’의 방언(경상, 제주, 충북, 평안).
2 ‘개짐’의 방언(경남, 충청).

지역에 따라 다른 뜻으로 사용했나봐요.

네, 경상도라도 젊은 사람들은 사투리를 많이 못배웠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부산 토박이지만, 대개 서울에서 알게된 사람들은
제가 부산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사투리를 안쓰냐고 물어요.
저는 부산이라도 젊은 사람들은 사투리를 잘 안쓴다고 답합니다.
진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억양만 다를 뿐이죠.

그리고 저희집 화장실 풍경은 놀라실만 하죠! ^^
저도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아내가 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달까? 자유롭달까?
암튼 신체와 관련된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더라구요.
게다가 저희가 어른과 같이 사는게 아니라서 그런 상황이 가능할 겁니다.

저도 반가운 마음에 답글이 길었네요.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stella.K 2011-09-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은빛님 멋진데요!ㅋ
저런 시가 있었군요. 저 시도 멋지고.
이 화창한 가을 날 좋은 글 읽게해 주셔서 감사!^^

감은빛 2011-09-21 10:42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오랫만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숲노래 2011-09-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따순물로 핏덩이를 헹구고 애벌빨래를 한 다음에 목초액을 한두 번 뿌리고
더운물에 담가 놓고서 한두 시간쯤 지나서 두벌빨래와 세벌빨래를 하면
달거리천은 잘 빨 수 있어요.

그나저나, 집에서 일을 하는 남자라면 속옷이든 달거리천이든
일찍부터 빨래하기 마련이니까 뭐...
그닥 대수로운 일일 수 없는데,
이 나라에서는 남자들이 집일을 아예 안 하거나 거의 안 해 버릇하니까,
앞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갈 남자들 또한 똑같이 되풀이되겠지요...

감은빛 2011-09-21 10:47   좋아요 0 | URL
저는 좀 오래 담가둬서 핏물을 빼고,
비누칠을 두세번 하고, 헹구기를 서너번쯤 합니다.
그럼 웬만큼 핏기가 빠지더라구요.
물론 그래도 완전히 하얗게 깨끗해지지는 않지만요.
아내는 몇 달에 한번쯤은 삶기도 하더라구요.
목초액을 뿌리는 건 좋은 아이디어네요.
담에 한번 활용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집안일을 잘 안하긴 하지만,
그것도 세대가 바뀔수록 자연스레 바뀌긴 하는 것 같아요.
제 주위의 삼,사십대 남성들은 곧잘 집안일을 합니다.
물론 그 태도와 빈도가 여성들과 다르긴 하죠.

고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1-09-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게 감은빛님의 일상은 늘 놀랍고 신기해요.^^
일찍부터 혼자 독립하여 사셨다고 해도,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던데
참 자상하신 것 같아요.^^


감은빛 2011-09-21 10:53   좋아요 0 | URL
현맘님, 늘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개 남성들이 집안일을 잘 안하지만,
막상 하게되면 또 대부분 곧잘 하더라구요.
특히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청소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잖아요.
이게 다 평소의 버릇인 거 같아요.
암튼 저는 특별히 자상하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버릇이 들어서요. ^^

비로그인 2011-09-2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감은빛님은 집안일을 꽤 많이 하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나와산지 꽤 오래 되었는데, 나중에 감은빛님처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그래도 이 페이퍼 보면서 좀 나서서 구석까지 뭐 도와줄 일 없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1-09-29 18: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답이 좀 늦었네요.
바람결님도 나와산지 오래되셨군요.
아마 잘 하실 것 같아요!
대부분 혼자 좀 살아본 사람들은 닥치면 다 잘하게 되던데요. ^^
 

외상일기


셋방 부엌창 열고
샷시문 때리는 빗소리 듣다
아욱, 아욱국이 먹고 싶어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또 하루치의 일기를 쓴다
오늘은 오백원어치의 아욱과
천원어치 갱조개
매운 매운 삼백원어치의 마늘맛이었다고
쓴다. 서러운 날이면
혼자라도 한 솥 가득 밥을 짓고
외로운 날이면 꾹꾹 누른
한 양푼의 돼지고기를 볶는다고 쓴다
시다 덕기가 신라면 두 개라고 써 둔
뒷장에 쓰고, 바름이 아빠
소주 한 병에 참치캔 하나라고 쓴
앞장에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는 쓰지 못하고
해방 평등이라고는 쓰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하루살이 날파리가 말라붙어 있는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쓰린 가슴 위에
쓰고 또 쓴다
눈물국에 아욱향
갱조개에 파뿌리
씀벅 나간 손 끝
배어나온 따뜻한 피 위에
꾸물꾸물
쓰고 또 쓴다


송경동 / 꿀잠 / 삶이 보이는 창  

지금은 동네 슈퍼에서도 외상장부를 볼 수 없다. 어릴때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는 외상장부가 있었다. 날려쓴 글씨로 날짜와 이름 그리고 금액이 잔뜩 적혀있는 외상장부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구멍가게에서는 필수였다. 늘 돈이 없었던 시절, 외상이 있었기에 그나마 입에 풀칠하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돈이 없는데, 요새는 카드와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로 버티며 살아간다. 이것도 일종의 외상인가? 아니! 외상은 이자가 없지만, 카드와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은 고금리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그새 사회는 훨씬 더 삭막해졌다. 흔히 그 시절과 비교하여 먹고 살기 좋아졌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훨씬 더 먹고 살기 어려워진 것 같다. 

가끔 엄마가 장보다가 빠뜨린 찬거리가 있으면 심부름을 시켰다. 늦은 밤 아버지의 술, 담배 심부름을 다니기도 했다. 술심부름을 시킬 때는 꼭 내가 먹을 과자도 사도록 허락하셨다. 열번중에 대여섯번은 돈도 없이 심부름을 가곤 했다. 당연히 외상이었다. 가게집 아줌마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수첩을 넘기고는 빠르게 날짜와 이름과 금액을 갈겨쓴다. 가끔은 오백원짜리 동전을 쥐어주고 이백원어치 두부를 사오라거나, 백원어치 콩나물을 사오라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남은 돈으로 외상을 제한다. 외상은 늘거나 줄거나 하지만, 절대 없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 엄마는 그 구멍가게 외상을 다 갚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경동선배를 못 본지 좀 된 것 같다. 지금쯤 다리는 다 나으셨으려나? 여전히 목발을 짚고 다니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전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읽은 선배 글에 의하면 요새는 '희망버스' 때문에 수배되었다는데, 어디가에 숨어계신 듯 하다.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 대책위 시절부터 한미FTA 범대위, 기륭 비정규직 투쟁, 용산참사 대책위 등의 활동으로 늘 수배당하고, 조사받고, 숨어계셔야 했던 날들이 참 지겹게도 이어지는 듯 하다.

이 밤 문득 소주 한병 놓고, 선배에게 이런 저런 얘기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에, 그 특유의 입담이라면 이 지겨운 밤정도는 가뿐히 지새울 수 있으리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1-09-1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너무 공감되고, 감은빛님의 글도 참 공감이 되네요.
화려한 겉모습때문에 종종 우린 잘 살고 있다. 되뇌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외상장부와 동네 구멍가게는 사람 맛이라도 있지요.^^ 물가는 오르고, 외상 주는 곳은 카드회사 밖에 없어요. 예전처럼 옆집 앞집 뒷집 음식 나눠 먹는 재미도 없어지구요. 우리 모두는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걸까 가끔 생각해요.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감은빛 2011-09-17 00:0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현맘님.
추석은 뭐 그럭저럭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고향에는 내려가지 못했어요.
가까운 처가에서 조카들과 놀아주고,
성묘갈때 운전해주고 그러면서 피곤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상장부, 정말 오랜 이야기네요.
아, 맞다, 회사 초년병 때 근처 식당에 선배들이 달아놓은 외상장부는 봤네요.
정말 신기해했죠... ^^

소주 한병과 말.. 저는 완전 서울말 쓰지만, 저도 술 먹이면 말 잘하는데요.ㅋㅋㅋㅋ

감은빛 2011-09-17 00:05   좋아요 0 | URL
저는 대학 1학년때 학과 선배들이 자주가는 술집이나,
운동권 선배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 맡겨진
온갖 신분증과 물건들 보면서 신기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고학번 선배는 저희들 술 사주느라,
1차때는 학생증을, 2차에서는 주민등록증을,
3차때는 시계를, 4차때는 아예 가방을 통째로 맡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cyrus 2011-09-1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상장부가 실제로 있었다니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외상을 해주는
가게가 없을거 같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외상이라는 것을 경험했을 때가
중학생 때 학교 근처 문구사에요 ^^;; 당시 문구사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성격이 착하신데다 워낙에 많은 학생들이 애용하다보니 학생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꿰뚫고 계셨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외상을 해달라고하면 쉽게
승낙해주셨던게 기억이 나네요.

감은빛 2011-09-17 00:0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은 정말 한번도 외상장부를 본 적이 없나요?
신기하네요. 그래도 90년대까지는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동네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겠죠.

그 문구점은 장부는 없었지만, 그래도 외상을 해줬군요.
그럼요. 사람사는 세상에서 외상이 없으면 너무 삭막하잖아요! ^^

숲노래 2011-09-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키려고 힘쓰는 사람들은 안팎에서 힘들겠지요.
아예 아무런 싸움도 아픔도 없이
모두 다 함께 '권력자'와 '기득권자'만 서울에 남기고
서울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간다면,
이 세상이 달라질는지 몰라요..

감은빛 2011-09-23 17:47   좋아요 0 | URL
된장님 말씀처럼 '권력자'와 '기득권자'만 남기고
모두 서울을 떠난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인해
또 새로운 사회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시골이 더이상 시골이 아닌 다른 어떤 공간이 되어버릴 지도.

딱 하루만 전국의 모든 자동차를 멈출 수 있다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종종 해봤는데,
된장님의 이 말씀도 종종 상상해보면 재밌겠네요.
 

아직은 저항의 나이


눈꽃
너는 피어라 나는 네 안에 지마
그래도 울지 않으리
이마 위에 아이 눈썹 만한 눈이파리
예수가 죽어 간 나이
시인이 요절한 나이
초월하지도 못했네 순응하지도 않았네
아 아직은 저항의 나이
내가 쓴 길도 내가 지운 길도
덮고야 마는 단호한 눈발이여
앞선 발자국 하나 없이 내 흔적을 남겨서
당신에게 가야하네
눈꽃 피는데, 당신에게 닿기도 전에
눈꽃만 피는데,
우두둑 솔가지 부러지고
나는 먹먹한 눈물 한 방울로
길을 녹이네


문동만 / 아직은 저항의 나이 / 삶이 보이는 창




한때 운동권이었거나 진보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대체 몇 살이 되면 더이상 진보적이지 않게(보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많은 선배들이 나도 한때는 운동권이었느니 하고 썰을 풀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한숨만 나온다. 그런 모습으로 내게 큰소리치는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을까? 저 나이가 되면 그런 부끄러움마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사람이 무뎌지는 것일까? 진보는 날카로움이라고 했건만 나이를 먹어가면 무뎌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궁금증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똑같은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인가? 글쎄 어떨까? 나이가 많이 들어도 멋지게 살고 계신 선배님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멋지게 살지 못하는 선배들이 사실은 훨씬 더 많다! 나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한참 이른 것 같지만, 나는 혹 어느 후배에게 한심한 선배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다. 아직 한창 어릴때(그저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젊은 열정만으로 똘똘 뭉쳐진 말썽덩어리였을 때)의 나는 선배들 욕을 참 많이 했다. 그땐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선배들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서 싫어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자연스레 운동을 접는 선배를 보면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을 접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혹은 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길이 아주 어긋난 길이 아니라면 박수를 보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욕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아주 어긋난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간혹 자신이 새로 선택한 길이 옳다고 여기고, 진보나 운동을 그저 어린 치기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내게 하루라도 빨리 자기처럼 되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아, 스스로를 386세대라고 자부하면서, 나에게 어서 빨리 철이 들라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 정말 싫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가고 있을까? 나는 아직 처음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젊은 날의 내가 보기에, 난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는걸까? 글쎄 나이를 먹을 수록 이런 것들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

가끔 누군가가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 이라고 답한다.(신기하게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스물아홉이란 내게 어떤 상징을 지닌 숫자이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 강사는 나이가 사십대 중반쯤 되었는데, 절대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늘 스물아홉 이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 해에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은 영원히 스물아홉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이에게 스물아홉과 나에게 스물아홉은 아마 다른 상징을 가진 숫자이겠지만, 나도 그이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 가끔 그런 장난을 해본 것이다.  

나는 이십대의 치기어린 열정과 에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좋다! 세상에 대해 한껏 날을 세운 당찬 기백이 좋다! 좌충우돌 여기저기 부딪히고 찢기어 상처입은 순수함이 좋다! 뭐하나 거리낄 것 없이 마음가는 대로 살아가는 자유가 좋다!

서른을 넘어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마흔을 훌쩍 넘긴 어느 날에도 나는 당당하게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문동만 선배처럼 살아간다면, 충분히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 예전 블로그 글을 살짝 다듬어서 옮깁니다. 
여기서 돌발퀴즈 하나 나갑니다. 
이 시집의 표지에 실린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요?
댓글로 정답을 맞춰주신 한 분께 제 맘대로 선물을 하나 보내드겠습니다.
참고로 2007년엔 평택 대추리, 2008년엔 기륭전자 투쟁현장,  
2009년엔 용산참사현장에 가면 늘 이 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1-04-1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모르겠어요.ㅠ
하지만 감은빛님 돌발퀴즈는 좋아요.
종종해 주세요.ㅎㅎ

감은빛 2011-04-18 16:07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그냥은 어려울것 같아서, 힌트를 최대한 드렸는데....
돌발퀴즈를 자주 하고 싶어도, 뭐 내세울 상품이 별로 없어서요. ^^

2011-04-18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4-18 15:58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힌트를 너무 많이 줘서, 쉽게 맞추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곧바로 맞춰버리셨군요. ^^

2011-04-18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8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4-1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은요...?

감은빛 2011-04-18 17:42   좋아요 0 | URL
앗! 저 위에 댓글이 비밀댓글이었군요. 죄송!
정답은 송경동 시인입니다.
항상 투쟁현장에서 볼 수 있는 분이지요.
기륭 대책위에서는 대표였던가 그렇고,
용산참사 대책위에서는 집행위원장이가 뭐 그런걸 맡고 계셨었죠.

노이에자이트 2011-04-1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운동권 출신들은 사상은 진보적인 것 같지만 실제 하는 행동은 권위주의적이죠.학번 따지고 나이 따지고...게다가 성격도 독선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구요.그리고 별로 머리에 든 것도 없는 것 같고...

감은빛 2011-04-18 17:56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많죠.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그렇게 권위적이고, 학번이나 따져대고,
독선적이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이유는 학생운동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의 틀을 벗어나 좀 더 넓게 보고,
운동을 해보면 좀 달라질 수도 있을텐데요.

대다수의 운동권 출신이라는 분들이 80년대 말에 최루탄에 눈물 좀 쏟아보고,
각목 좀 휘둘러 봤다거나, 보도블럭 깨뜨려서 던저봤다거나.
그런 경험들이 한계인것 같더라구요.
어디가서 운동권 출신이라고 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분들이 또 얼마나 열심히 얘길하고 다니는지 원!

노이에자이트 2011-04-19 15:03   좋아요 0 | URL
너희들이 육이오를 알아? 하는 소리 들어서 지겨웠던 세대들이 이젠 자기들이 똑같이 인생후배들에게 잔소리 하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9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이 시집 저도 가지고 있는데~~~
돌발퀴즈 넘 늦게 봤네요.

전 마흔을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고 보지 않고요, 경계를 지우는 나이라고 봐요.

감은빛 2011-04-19 01:24   좋아요 0 | URL
네, 양철님이라면 쉽게 맞추셨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경계를 지우는 나이라,
어떤 깊은 뜻이 있는 말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요.

루쉰P 2011-04-1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항의 나이라 전 꿈을 잃은 자가 저항을 잃어버린 것이라 여겨요. 그 꿈이 당장에는 실현시킬 수는 없다고 해도 1%라도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는 것, 물론 살면서 전체적으로 그 방향을 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쪽으로 그 쪽으로 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할 때 저항의 나이라 여겨요.
전 아직도 저항 중이죠. 푸훗.

감은빛 2011-04-20 13:25   좋아요 0 | URL
루쉰님의 진지하고 성실한 댓글은 늘 저를 흐뭇하게 합니다!
루쉰님 저랑 비슷한 면이 가끔 보여요.
고맙습니다!

저녁바람 2011-04-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다소곳한 글이네요.

감은빛 2011-04-20 13:27   좋아요 0 | URL
다소곳하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음 어떤 뜻으로 남긴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5-1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 달의 마이 페이퍼에 당선되신 것 축하드려요. ^^ 이름 발견하고 바로 들어와서 축하드립니다.

저도 너무 부끄럽게도 당첨이 됐는데 상품으로 받은 알사탕 4000개를 바꾸니 2만원 너치 책을 살 수 있더라구요. ^^ 완전 신나서 기절할 뻔 했어요. 그걸로 일요일 무료한 근무를 어떤 책을 살까하며 살 떨리게 고민하면서 주문했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1-05-15 23:2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저도 루쉰님께서 당선된 것 봤어요!
예전에는 마일리지로 주더니, 요즘은 알사탕으로 바뀌었네요.
뭔가 적응이 잘 안되지만, 그래도 뭐 당선된 건 감사한 일이지요.

그 덕분에 무료한 시간을 흥미롭게 보냈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안읽은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당분간은 책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자꾸만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게 됩니다.
조만간 또 주문할 것 같네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